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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같은 내 얼굴

조경란<소설가>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조경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1.29 11:54:00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도 변한다. 이젠 양귀비의 시대도 가고 마릴린 먼로의 시대도 갔다.
지금은 건강미인 시대라고 하던가? 하지만 혹시 처음부터 아름다움에 관한 본질이란 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끊임없이 든다. 그 본질을 만든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연 여성이었을까 남성이었을까.
사과  같은 내 얼굴

내가 내 얼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스무살이 넘어서부터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무렵인 것 같다. 물론 그전에, 학창시절 때도 거울을 들여다보며 없는 쌍꺼풀을 만드느라 뾰족한 바늘귀로 밤새 눈두덩을 그어댄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땐 내 얼굴이 예쁜지 못생겼는지, 혹은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지 적극적인 관심은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얼굴에 관한 나의 관심은 증폭되었다. 내 친구 K가 코 성형수술을 한 건 대학을 졸업하던 해이다. 학벌이나 실력이 안 좋은 것도 아닌데 면접 시험에서 자꾸만 떨어지는 이유는 자신의 외모, 즉 콧대 없는 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K를 말리지 않았다. 성형수술을 해서 K가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꽤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물론 기분 좋은 소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아휴, 남의 속도 모르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행여 내 사각턱이 드러날까 휘어진 콧날을 알아챌까 전전긍긍한다. 나는 벌써 십구년째 똑같은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나를 생각할 때면 어떤 이는 까만 단발머리부터 떠오른다고도 하는데 그 헤어 스타일이 어느덧 나만의 독특한 개성이 돼버린 것 같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헤어 스타일은 뒤로 넘겨 하나로 반듯하게 묶는 것이다. 그러면 귀찮은 드라이를 외출할 때마다 하지 않아도 되고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될 텐데. 사각턱이라 머리를 묶는 것도 모자를 쓰는 것도 안 어울린다. 첫인상도 깐깐하고 차가워 보인다. 사진을 찍을 일이 있으면 가능한 한 정면에서 찍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 모든 게 내 사각턱 때문이다. 게다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내 코는 살짝 휘었다.
얼마전에 나는 드디어 성형외과에 갔다!
누가 코 수술을 하고 누가 쌍꺼풀 수술을 했다느니, 화제가 그런 쪽으로 흐를 때마다 내 턱이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턱을 좀 깎아 둥글게 만들면 어떨까, 뭐 그런 말들을 종종 했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단발머리로 턱을 살짝 가리는 거였다. 턱을 깎는 수술은 얼굴 성형수술 중에서도 가장 크고 위험한 수술이다. 게다가 내가 알기론 전신마취까지 해야 한다. 각진 턱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던 한 여자 탤런트가 턱을 깎는 성형을 하고 다시 텔레비전에 출연했을 때 나는 저 여자 참 용기가 있네, 했다. 아무튼 내 사각턱은 내 콤플렉스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기어이 난 큰코다치고 만 것이다.
일자로 길게 생긴 문손잡이에 부딪쳐 돌출된 눈썹뼈 부분이 찢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의 얼굴 중 그 부분이 가장 약하고 쉽게 찢어지는 데라고 했다.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이 찢어진 부분이 하필이면 얼굴인데다가 한쪽 뺨으로 붉은 피가 줄줄줄 흘러내리면서 공포는 더욱 커졌다. 흉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동네 병원에 가 일단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성형외과에 가서 살갗을 반듯하게 자르고 꿰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다음날 오후에 아는 분이 실력 좋다는 의사선생님이 있다는 성형외과에 다행히 예약을 해주었다. 겨울방학이라 성형외과에 예약하기가 쉽지 않은 때라고, 지금 이때가 일년 중 성형외과가 가장 바쁠 때라고 했지만 그 말을 쉽게 믿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병원에 가보니 그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내가 소개받아 간 곳은 압구정동의 어느 성형외과였다.
그날 나는 얼굴을 열한 바늘 꿰맸다. 상처는 6개월 후쯤 어쩌면 없어질 거라고 했다. 병원을 나올 때는 아이고 부처님 이 상처만 낫게 해주신다면…,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극도로 조심하느라 실밥을 풀고 난 후에도 약 2주 동안 간신히 고양이세수만 한 채 물 한 방울 안 묻혔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알코올이 가장 나쁘다고 하기에 그 좋아하는 맥주도 단 한 모금도 안 마셨다. 2주 동안 나는 잠자고 밥 먹고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책을 읽었다. 평상시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나는 약간 침울해졌다. 외출할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것과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매일 수십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상처가 아물기만을, 나는 고독하게 기다려야 했다.
턱을 깎을 거라느니 코가 누구처럼 좀 반듯했으면, 하는 말들은 그후로 한번도 입밖에 꺼내본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수술하러 들어갔을 때 널려 있던 그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운 수술 도구들을 보았을 때부터 나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상처만 낫는다면 그 어느 때보다 내 얼굴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아름답다!
그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무척 좋다. 그런데 과연 아름답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자못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각 시대의 문학 작품이나 미술품, 영화 등을 토대로 미의 본질을 탐색했던 프랑스 출신의 여성학자인 프란세트 팍토는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모방하고자 했고 모방에 능숙해지자 아름다움을 규격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모방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완전한 자기’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 혹은 미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그 기준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여성에게 아름다움이란 스스로를 속박시키는 굴레라는 말은 사실이 아닐까.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도 변한다. 이젠 양귀비의 시대도 가고 마릴린 먼로의 시대도 갔다. 지금은 건강미인 시대라고 하던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 처음부터 아름다움에 관한 본질이란 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끊임없이 든다. 그 본질을 만든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연 여성이었을까 남성이었을까.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가이자 작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라고까지 말했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난다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앞에 두고도 그 아름다움에 맹렬히 질투만 할 줄 알았지 찬사하는 것에 참으로 인색했었다. 아마 내 결점을 감추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잘생긴 턱에 찬사를 보낸다면 그는 얼른 내 턱에 한번 더 시선을 줄 테니까. 상처만 낫는다면, 이젠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한번 얼굴을 다치고 나니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진다. 이제는 예쁘게 생겼다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잘 늙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기왕이면 주름도 얼굴을 찡그려 생긴 게 아니라 웃어서 생긴, 밖으로 퍼진 부챗살 같은 그런 주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이 지긋한 아름다운 분들은 젊고 예쁜 사람들보다 더욱 아름답다.
내 친구 K가 요즘처럼 자주 생각난 적이 없다. 코 성형을 한 후 K는 지하철에 앉았을 때도 눈을 감고 못 잔다고 하였다. 누군가 지나가다 슬쩍 얼굴을 칠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 친구 K,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세수할 수 있을 정도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 이메일을 보내 얼굴을 다친 것에 대해 하소연했다. 한 친구가 이런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갖게 된다고, 그게 바로 우리 삶의 편린과 흔적이라고, 그러니 애써 그걸 가리고 다니지 말라고…. 나는 용기를 얻었다. 다행히 상처는 교묘하게도 오른쪽 눈썹 부분에 났다. 지저분해 보이긴 하겠지만, 요즘 나는 상처에 연고를 덕지덕지 바르고 외출하기 시작했다. 3센티미터, 이 열한 바늘의 꿰맨 자국이 내가 내 얼굴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었다.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것이 마치 하나의 잣대가 돼버린 듯한 남성중심의 획일적인 미적 기준이나 미에 대한 강박관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이젠 진정한 나의 개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사과 같은 내 얼굴’이라고 느끼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얼굴에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는 한해가 된다면 참 좋겠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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