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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요즘 이렇게 살고 있어요

도박으로 폐인 됐던 시절 극복하고 거듭나는 개그맨 황기순

■ 글·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3.01.15 10:19:00

97년 필리핀 원정 도박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하면서 세인들을 안타깝게 했던 황기순. ‘나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자포자기하며 대인기피증으로 한동안 집밖에도 못 나오던 그가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하면서 올봄엔 새내기 대학생이 되는 꿈을 안고 의욕에 찬 삶을 살고 있다.
귀국후 남모르게 겪어야 했던 고통과 희망이 엇갈리면서 울고 웃었던 그의 요즘 생활.
도박으로 폐인 됐던 시절 극복하고 거듭나는 개그맨 황기순

꽤나 차가웠던 날씨 속에 여의도공원 한복판에서 만난 황기순(39)의 손엔 자그마한 디지털 카메라 한대가 들려 있었다. 단 한번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이리저리 보고 또 보며 뿌듯해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이거 어제 장만한 건데… 신기하더라고요. 내가 찍은 걸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잖아요. 어제 조카들이랑 집에서 엄청 찍었어요. 요 몇년 사이에 세상이 확 달라졌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요.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놀란 게 휴대전화였어요. 필리핀 가기 전에는 유행에 민감한 연예계에 있는 사람도 열명 중 세명 정도 가지고 있을까 말까 했는데 요즘은 학생들도 다 들고 다니고….”
필리핀에서 도박에 빠져 한때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비난과 함께 사람들의 동정을 자아냈던 그. 다시 옛모습을 찾은 것 같다고 하자 “아이구… 제가 좀 소심해서 적응하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이런 데서 사람 만날 생각을 감히 못했죠. 누가 이런 데서 만나자고 하면 정신 나갔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처음 한 1년 동안 사람들이 무서워 밖에도 못 나갔어요. 나가면 나만 쳐다볼 것 같고 욕 먹을 것 같고…” 라며 스스로도 자신의 현재 모습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를 일어서게 해준 주병진 선배가 잘됐으면 좋겠는데…
“하루 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텔레비전만 보고 있자니 점점 폐인이 되는 것 같아 안되겠더라고요. 용기를 내서 단단히 무장하고 돌아다녔죠.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마스크까지 해서 눈만 내놓고 다녔어요. 복장도 추레한 사람이 그런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다니니까 이상하게 보였겠죠. 경찰한테 검문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 제가 슬그머니 경찰 옷깃을 잡아당겨 구석으로 가는데 경찰이 ‘왜 이래요, 왜 이래요’ 하면서 오다가 황기순인 걸 알아보고 격려해준 적도 많았죠. 그것도 겨울이니까 그렇게 다녔지 봄이 되니까 못하겠더라고요. 모자 쓰기도 그렇고 또 마스크 쓰면 저도 더워서 헥헥거리고 해서 또다시 창살없는 감옥 생활에 들어갔어요.”
그러다 세상에 고개를 들고 나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99년 주병진씨의 도움으로 연극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내 ‘방돌이’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날 선배 개그맨 이용식과 함께 얼떨결에 라는 연극을 보러 갔다. 그때 처음으로 내심 ‘대사 한마디 없어도 저렇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역할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동료들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그런 와중에 그에게도 꿈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는 주병진씨가 제작비를 대고 연출까지 맡았던 작품으로 반응이 좋아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바로 그때 주병진씨가 황기순에게 “다시 일어서 보라”며 연극을 해볼 것을 권유했던 것.
연극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던 그. 그러나 막상 사람들이 코앞에 있는 무대에 서고 보니 앞이 깜깜하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예전의 황기순이 아니었다. 한 일주일간 무대에서 그렇게 헤매다 내려왔다.
“그때 병진이형한테 엄청 욕먹고 맞아가면서 했어요. 형이 바쁜 와중에도 거의 공연장에 와서 지켜봤어요. 난 그 형을 알죠. 물론 병진이형도 점잖게 얘기하며 격려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매를 택한 건 빨리 부딪혀서 깨질 건 깨지고 빨리 일어나라는 거였죠. 그거 하고 나서 비로소 대인기피증이 조금씩 사라지고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전 지금도 주병진 선배를 어려워해요, 그 형 앞에선 담배도 안 피워요. 나이 차이가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닌데 뭐랄까… 형을 보면 항상 나는 어리고 형은 어른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져요.”
주병진씨에 대한 고마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필리핀에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을 때 격려의 편지를 보내준 것은 물론 금전적인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야말로 깨진 쪽박조차 없던 그는 한국에 돌아온 후 누나네 집에 얹혀 살았다. 방 두칸짜리 12평 반지하 집에서 조카 둘과 누나, 어머니까지 복닥거리다 보니 비좁기 그지 없었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물건인 옷 박스까지 그 좁은 방에 쟁여놓고 보니 한 사람만 누워도 마땅히 앉을 데가 없었다.
“예전에 방송할 때 입던 옷으로 입지 못할 게 90%지만 옛날 생각이 나서 버리질 못하겠더라고요. 누나네 집은 걸어놓을 때도 없고 해서 두어달간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내 손으로 직접 옷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근데 오피스텔 얻을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병진이형을 찾아갔는데 입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형, 저…’ ‘뭐야, 얘기해봐’ ‘저…’ ‘얘기해봐 이놈아. 돈 필요해?’ 하길래 할 수 없이 사정 얘기를 하고 돈 얘기를 꺼냈죠.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근데 두말 않고 천만원을 내주는 거예요. 병진이형은 그런 배려가 있는 사람이에요.”
주병진씨에 대한 얘기가 나왔기에 인터뷰 직전 도박혐의로 소환됐던 것을 거론하며 심정을 묻자 “착잡하죠. 그랬을 리가 없겠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제가 뭐라고 언급하기도 힘든 상황이고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안타까운 마음뿐이에요. 옆에서 보면 병진이형이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면서 이민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속상해요” 라며 주병진씨에 대한 말을 아꼈다.

도박으로 폐인 됐던 시절 극복하고 거듭나는 개그맨 황기순

황기순은 자신이 지금 이렇게 세상을 활보하고 다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도박하다 진 빛 때문에 필리핀에서 1년 반 가량 숨어지내다 방송 카메라에 잡혔을 때만 해도 황기순은 자신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방송국 PD가 저를 찾아왔을 때 마치 저승사자가 온 것 같았어요. 들켜서 도망가야 하는데 도망갈 상황이 아니더라고요. 이미 저를 1주일 동안 따라다니며 몰래카메라처럼 다 찍어놓은 상태에서 도망가면 허겁지겁 도망가는 뒷모습을 마지막 장면으로 내보낼 텐데 그거 방송되면 제가 얼마나 추해보이겠어요. 순간 갈등하다 차라리 포기하고 인터뷰에 응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제가 방송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던 건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어머니와 통화했을 때 선배집에서 잘 있다고 했는데 아들의 꼬라지가 이렇다는 걸 노인네가 보시면 어떻겠는가 싶어서였죠. 아무튼 그때는 ‘이 걸로 내 인생은 끝이구나’ 싶었는데 방송이 나가고 나니까 오히려 속이 후련하더라고요.”
한국에 오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교도소에 가는 것보다 솔직히 ‘한국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좌절감이었다. 필리핀에 있을 때 동네 골목길마다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를 보면서 오토바이 택배 일을 해볼까, 택시운전을 해볼까…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하지만 그것도 남 앞에 설 자신이 있어야 했기에 선뜻 나서지도 못했다.
그런 와중에 연극을 접하게 한 주병진씨와 동료들의 배려는 지금도 그에게 많은 힘이 된다. 자신이 초청받은 행사 관계자에게 미리 얘기해놓고 데리고 가던 동료들. 무대 뒤에 있다가 호명하면 얼떨떨하게 나가서 인사하고 용돈이나마 쥘 수 있게 한 동료들의 따뜻한 마음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그.
“뭐든지 처음이 제일 힘들어요. 야간업소에 처음 나가던 날도 너무 떨려서 3시간 전에 갔죠. 웨이터들이 죽 늘어서 있는 입구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심지어 웨이터들도 무섭더라고요.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들이 욕하지 않을까, 해코지하지 않을까 싶어 정말 두려웠어요. 무슨 소릴 했는지 모르지만 마지막에 앞으로 모든 분들에게 실망시키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했는데 술집에서 그런 박수 처음 받아봤어요. 마치 인기가수 공연장에서나 나올법한 박수였죠. 만약 첫 무대에서 야유받고 그랬다면 아마 지금껏 사람들 앞에 못 나섰을 거예요.”
그가 인천방송 에 고정멤버로 출연한 지도 어느덧 2년. 처음 출연했을 때 2~3주간은 ‘왜 이런 사람을 출연시키느냐’며 비판의 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거기에 굴비를 달아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 졸였던 마음을 다시금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송을 하면 할수록 새록새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신의 과오로 아내를 떠나보낸 것도 후회스럽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그 사람(전 부인)은 지금 다시 결혼해서 아기도 낳았어요. 잘된 일이죠. 가장 아쉬운 건 제가 이런 식으로 다시 생활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었다면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일이 터지고 나서 와이프가 가장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되고 보니 채무관계에 얽힌 모든 것들이 그 사람한테 갔거든요. 미안하잖아요. 사실 속으론 붙잡고 싶었고 그래도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제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어요. 근데 막상 법적으로 다 정리됐다고 하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뭐랄까… 물에 빠졌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 있잖아요. 그걸 놓은 심정이었죠.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아이는 없었어요.”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시 방송생활을 할 거라 생각했다면 좀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도 굴뚝같다. 불법체류자로 할 일이 없던 그.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때 그가 한 일이라곤 한국식당 앞에 쌓여있는 신문을 주워와 아예 외워버릴 만큼 꼼꼼히 들여다보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에서 건질 수 있는 코미디 소재가 무궁무진했을텐데 말이다.

도박으로 폐인 됐던 시절 극복하고 거듭나는 개그맨 황기순

나이와 상관없이 이것저것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는 황기순.


그런 와중에 이홍렬씨로부터 ‘네가 경험하고 배웠던 걸 체계화시켜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선배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며 고민하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황기순은 전남 나주에 있는 동신대학교(다중매체 연기, 영상학 전공) 수시모집에 합격, 올봄이면 새내기 대학생이 된다.
“나름대로 인생 경험도 많이 했고 눈치도 빨라 세상 돌아가는 건 잘 알겠는데 체계화시켜서 내 걸로 만들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하지만 솔직히 가방끈이 짧아 그런지 그렇게 하는 게 좀 힘들거든요. 사실 학비에 대한 부담도 있고 늦었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갈등을 하다가 결심한 거예요. 생각해보니 배우는데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홍렬이형이 서른 중반에 대학에 갔는데 그때는 제가 이해를 못했어요. 방송이나 열심히 하지 새삼스레 무슨 공부인가 싶었는데 지금 홍렬이형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젠 이것저것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뛰고 있지만 수입으로 따지면 예전에 비할 바 못된다. 큰돈은 아니지만 밤낮으로 뛰어다니면 통장에 차곡차곡 돈 쌓여가는 재미라도 느껴야 하건만 그는 빚이 줄어드는 낙에 산다고 한다. “밤에 늦게 들어와 지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 땐 가끔 허무한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바로 그 빚을 갚기 위해 카지노에 갔다 값진 경험을 하고 돌아왔기에 돈 갚아나가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라며 씨익 웃어보인다.
황기순은 예전엔 사람들이 필리핀 얘길 꺼내면 쑥스러워 싫어했는데 요즘은 가끔은 상기시켜주는 게 좋다고 한다. “사람이 간사해서 조금 편해지면 풀어지곤 하는데 풀어질 만하면 그러지 않으려고 일부러 안 잊으려고 해요. 필리핀의 ‘필’자만 나와도 모든 게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마음이 다져지거든요”라며 도박의 뼈저린 경험을 되새겼다.
“카지노에는 없는 게 딱 세가지가 있대요. 시계, 유리창, 그리고 제정신인 사람… 반면 카지노엔 마취성분이 있는 방향제를 뿌린대요. 그것도 법적으로 허용치가 있대요. 그러니까 무서운 데죠. 카지노 건물은 그냥 안 짓는대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테리어 전문가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까지 동원된대요. 깔끔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안정이 안되는 인테리어로 사람을 홀린다는 거죠. 그리고 이건 믿거나 말거나지만 하다못해 건물 올릴 때 유골도 묻어놓고 그런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피곤해 죽겠는데 자리에서 못 일어나는 거예요. 결국 저도 13만달러를 앉은 자리에서 다 날렸잖아요.”
정선에 카지노가 생긴다고 했을 때 그는 이미 문제가 생길 거라고 했다며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질 거라고 한다. 기자가 농담삼아 슬쩍 “혹시 정선에 가봤느냐”고 했더니 특유의 작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못 가죠. 어유…” 라며 목소리 톤이 높아지며 허허 웃는다.
“사람들이 가끔 저한테 ‘이젠 안하지?’ 하며 물어봐요. 안하는 게 아니라 할 이유가 없죠. 도박이라는 게 즐기려고 하다 빠져드는 건데 저는 빚 갚으려고 갖다가 쫄딱 망한 거잖아요. 요즘도 경조사에 가면 심심풀이로 동료들이 고스톱 칠 때 전 옆에서 커피, 담배 심부름해요. 그러다 보면 제 호주머니에 돈이 수북하게 들어와요. ‘담배 한대 피우시죠‘ 하면 고맙다 만원, ‘커피 한잔 드시죠’ 고맙다 만원, ‘야 기순아 형이 땄다’ 만원… 저희는 초상집에 가면 신인들이 검은 양복 입고 서빙하는데 전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그 친구들한테 해장국 사 먹이고 사우나 가라고 주고 여유 없는 선배나 후배한테 차비 하라고 주는데 그거 얼마나 좋아요. 신경 안 쓰고 몸 안 망가지고 인심 쓰고….”
황기순은 도박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일수록 감추면 안된다고 했다. 욕을 먹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 “도박이라는 게 혼자서 끙끙대면 절대 못 빠져 나와요. 그래서 저는 너무 고마운 게… 온 국민이 저의 감시자로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하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그는 밝고 활달하던 황기순으로 돌아가 있었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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