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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부부강간’의 실태와 사례

“낯선 사람에 의한 강간보다 더 깊은 상처 남는 게 배우자에 의한 강압적 성폭행”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1.10 10:18:00

부부강간을 법으로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여성계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부부강간으로 고통받는
피해여성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도대체 부부강간이 무엇이고, 왜 법으로 명시해야 하는지에 대해 취재 분석했다.
여성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부부강간’의 실태와 사례
한여성단체가 운영하는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정현숙씨(가명·38). 얼마전 14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그는 이제야 자신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그는 결혼생활 내내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동네 사람들이 알까봐 창피해서 남편이 술에 취해 들어오면 제가 먼저 방문과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어요. 그러고 나서 짐승처럼 얻어맞았죠.”
그에게 하루하루는 두려움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폭력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구타와 폭언이 끝난 후 이어지는 강압적인 성관계였다. 만약 거절하면 다시 욕설과 함께 구타가 이어졌기 때문에 ‘맞지 않기 위해’ 남편의 성욕을 채워주어야 했다.
“창녀에게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신이 창녀보다도 못한, 더러운 물을 버리는 시궁창 같다는 비참한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은 혼자서 화를 내고 성행위를 해서 기분을 풀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왜 맞아야 하는지, 온몸에 멍이 든 채 잠자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그는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이혼소송을 했다. 그런데 소송을 할 때도 남편은 그에게 ‘앞으로 재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강요했다. 남편에게 정씨는 영원한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이혼소송중인 김소희씨(가명·39) 역시 91년 결혼 후 남편의 폭력과 성폭행에 시달려왔다. 잦은 외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하자 칼을 들고 김씨를 협박한 남편은 그후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면서 평소 야한 비디오를 빌려와 김씨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요구했고, 폭행을 한 후에는 상처 정도에 상관없이 성관계를 요구했다. 심지어 말대꾸를 한다고 몽둥이가 부러질 정도로 구타를 해서 김씨의 다리와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성관계를 요구했다. 김씨가 상처로 인한 통증 때문에 잠자리를 거부하면 겁을 주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욕정을 채웠다. 성행위가 끝난 후에는 “몸이 평소와 다르다”며 “누구와 외도를 했느냐”고 따지는 등 아내의 인격을 철저히 무시해왔다.
정씨와 김씨의 사례처럼 강압적인 방법으로 배우자(전 배우자 포함)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관계를 하는 것을 ‘부부강간’이라고 한다. 최근 여성계에서 이 부부강간을 법으로 규정해 처벌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2001년 여성부에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하면서 부부강간 조항을 추가하려다 관련 부처와 남성들의 거센 반발로 보류한 바 있다. 이에 여성단체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여성운동의 화두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원에 따르면 부부강간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몇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백년 이어진 사회적 통념상 남자들은 자기 아내와 성관계를 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에 부부강간이란 말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지금도 많은 법조인들은 “민법 제826조 1항에 보면 부부는 동거의무가 있다. 동거의무는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를 내포하는 것이다. 또한 성생활의 결함이 이혼사유가 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아내에 대한 강간죄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법원에선 아직 부부강간 인정 안해
여성들 역시 부부강간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실정이다. 심영희 한양대 교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모르는 사람이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한 경우 95%의 여성이 강간으로 인지한 반면, 애인과 데이트를 하다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경우는 51%, 남편이 피곤하다며 거부하는 아내를 강제로 성관계한 경우는 35.5%만이 강간으로 인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피해 여성들도 여성단체와 상담을 할 때 다른 폭력에 비해 부부 사이의 은밀하고 사적인 문제인 성문제까지 털어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박소현 상담원의 이야기. 따라서 그동안 여성단체에서도 부부강간에 대한 실태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부부라는 이름 뒤에 감춰져 있는 아내에 대한 성폭행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우리나라의 경우 부부 3쌍 중 1쌍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어요. 또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60%가 심각한 강간을 경험했다고 응답하고 있어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유추해보면 적어도 전체 가정 10쌍 중 한두 쌍은 부부강간을 경험했다고 추정할 수 있어요.”
부부강간이 처음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지난 2000년 4월 이혼소송중 남편을 살해한 신씨사건으로 인해서다. 87년 결혼 후 12년 동안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끊임없이 남편의 폭력과 성학대에 시달렸던 신씨(37)는 99년 10월부터 별거에 들어가 이듬해 1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별거중에도 남편은 신씨가 있는 친정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수시로 칼을 들이대며 위협했다. 그래서 신씨는 무슨 일만 있으면 습관적으로 칼을 치우는 버릇이 생겼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별거중인 남편이 집에 찾아오자 신씨는 습관적으로 칼부터 침대 밑으로 숨겼다. 신씨에게 이혼소송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던 남편은 주방에 칼이 없자 대신 주방용 가위로 위협하며 신씨를 침대로 끌고 가 강제로 옷을 벗기고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다. 이를 뿌리치던 신씨는 순간적으로 침대 밑에 두었던 칼로 남편을 찔렀다. 이혼소송 첫 공판을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여성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부부강간’의 실태와 사례

가정폭력을 피해 여성단체의 쉼터에서 생활하는 여성들.


이 사건에 대해 여성단체에서는 부부강간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실형을 선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으로 부부강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형법 297조에 의하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를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배우자가 제외된다는 규정은 없지만 지금까지 부부강간을 강간죄로 인정한 판례가 없다. 반대로 70년에 간통사건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취하한 김모 여인이 남편이 폭력과 함께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며 고소한 사건이 있었는데, 대법원에서 “부부 사이에는 혼인을 통하여 서로간에 성교를 승낙하였으므로 아내강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 판례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여성계는 남성 중심적 법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강간은 단순한 ‘여성의 순결 박탈’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뜻하며, 혼인한 부부 사이라고 해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씨 사건 이후 부부강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여성계는 최소한 사실상 부부관계가 끝난 상태인 별거 또는 이혼소송중에 일어난 성행위에 대해서는 부부강간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춘숙 사무처장은 “이혼율이 매년 높아지면서 이혼수속중이거나 별거중인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도 증가하고 있다”며 “별거중이거나 다른 방을 쓰는 등 확실히 거부의사를 표시한 배우자에게 강압적으로 성행위를 한 경우 강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계는 또한 구타 후 강간, 원치 않는 변태적 성행위에 대해서도 부부강간으로 규정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여성단체의 쉼터에 있는 김순임씨(가명·44)의 사례는 부부강간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남편과 연애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는 결혼 전부터 강압에 의한 성폭행을 당했고, 지금까지도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에게 맞은 날은 상처 때문에 회사에 병가를 내야 해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 남편은 아내의 건강이나 몸 상태에 관계없이 거의 매일 부부관계를 요구했으며 특히 구타 후에는 꼭 성관계를 강요했다.
심지어 남편은 운전을 할 때도 졸음을 쫓는다며 김씨에게 성기애무를 강요했다. 김씨는 남편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는 내내 욕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이 외에도 때때로 차안에 가두고 “교제하는 남자를 실토하라”며 찌르고 때리고 담뱃불로 지지고 구둣발로 음부를 걷어차는 등 5∼6시간 동안 폭행하기도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가 처음 쉼터에 왔을 때 식사를 제대로 못해 빈혈증세가 있었으며 장기간 걸친 구타로 관절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또한 무기력증에 빠지고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시름시름 앓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성관계 때마다 허락받고 동의한 사실 녹음하란 말이냐” 반발도
‘부부강간’을 법조항에 삽입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주장에 대해 많은 남성과 법조인들은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대의 이유는 “아내에 대한 폭행·협박에 의한 성교는 부부강간 조항을 신설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폭행·협박죄에 근거해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부강간을 법으로 규정하면 자칫 일반적인 부부생활까지 침해를 받고, 악용될 여지도 많다”고 주장한다.
한 네티즌은 “앞으로 부부간에 성관계를 할 때마다 허락을 받고, 배우자가 동의한다는 내용을 녹음해야겠다”고 비꼬았다. 또 다른 네티즌은 “부부강간죄를 만들려면 부부 성관계 거부죄, 부부 명예훼손죄 등도 만들어라” 하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박소현 상담원은 “부부강간이라는 용어가 남자들에게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좀더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사실 원만한 부부 사이라면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아내는 없다. 다만 심하게 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인격을 무시한 채 강압적으로 하는 경우에 처벌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한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는 주장은 이혼을 전제로 한 것으로 가정을 깨자는 것”이라며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부부강간은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각한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하지 않았더라도 아내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남자들도 많아요. 그들까지 기존의 법으로 형사고발, 처벌을 할 수는 없는 문제죠. 하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처음엔 단순 강간이었던 것이 나중엔 폭력을 수반하게 되고, 결국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요.”
가정법률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했던 박모씨(38)가 이런 사례다. 결혼 11년째로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명의 자녀를 둔 박씨는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성관계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안고 있다. 성욕이 왕성한 남편은 매일밤 성관계를 요구했고 하루 종일 육아와 살림에 치인 박씨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엔 ‘남편이 나를 사랑하니까 그런다’고 생각해 응했고 또 ‘거절하면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응했다.
그러나 남편은 박씨가 지쳐 골아떨어져 있을 때나 아이들이 방문을 두드릴 때에도 박씨의 의사를 무시하고 성관계를 가졌다. 애원도 하고 화도 내보았지만 남편은 “결혼한 부부간에 성관계를 거절하면 이혼사유가 된다”며 화를 냈고 나중엔 때리기까지 했다. 단순 강간에서 폭력을 동반한 강간으로 발전한 것이다.
박소현 상담원은 부부강간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조항에 삽입하면 배우자의 요청에 의해 가해자는 형사소송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경미한 사안의 경우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 상담 등을 통해 가해자에게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게 하고 바로잡을 수 있게 해 가정이 깨지지 않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부부강간’의 실태와 사례

지난해 11월30일 열린 서울여성의전화 주최 ‘아내 성학대는 성폭력이다’ 행사 모습.


옛날 속담에 ‘부모가 싸움을 하면 그날 저녁에 부모 사이에서 자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사람들은 흔히 성관계가 관계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폭력 남편들은 한결같이 ‘부부싸움 후 화해의 수단’으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내들은 구타 후 이루어지는 성관계를 성폭행으로 여기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강압적 성행위가 아내에게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폐해를 준다는 점이다. 여성단체의 피해여성 상담자료를 보면 공통적으로 깊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증언하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에 상담을 의뢰한 서영숙씨(가명·36)씨도 남편의 폭력과 강간에 시달려온 피해자. 3년 열애 끝에 결혼한 남편은 실직 후 폭력의 강도가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또한 폭력 후엔 성관계를 요구하고, 관계가 끝나면 다시 폭력이 이어졌다. 남편은 성관계를 할 때 넥타이로 묶거나 진동기구를 삽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칠 때까지 성적 폭력을 휘둘렀고 아이들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관계를 요구했다.
“제 자신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오럴섹스를 강요받을 때면 남편의 성기를 이빨로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어요. 하지만 맞지 않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서씨는 폭력의 후유증으로 수면장애 가려움증 관절통을 앓고 있고, 차 소리가 나면 남편 차일까봐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또한 불안감과 세상에 나 혼자라는 고립감에 휩싸여 있다고 했다.
신성자 경북대 교수에 따르면 피해여성들은 서씨의 경우처럼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것은 물론 불안, 충격, 강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증가되면서 자아존중감이 크게 훼손된다고 한다. 더 심각해지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며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 것.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최영희씨는 부부강간이 낯선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일반 강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상처를 받아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의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95년에 결혼 18년 동안 남편의 알코올중독, 의처증, 그리고 가학적인 변태적 행위와 폭력에 견디다 못한 아내가 전깃줄로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부부강간은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에 대해 무조건적인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 ‘아내는 남편의 배타적인 소유물로 본다’는 남성들의 가부장적 사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한 인격체가 완전히 짓밟히는 불행한 결과를 낳고 있다. 어떻게든 이들에 대한 보호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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