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금 매우 행복하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콧구멍이 발름거리고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여성동아>의 신년 가계부에 실린 토정비결을 비롯해 각종 인터넷의 사주점들을 두드려보니 2003년의 운세가 약속이라도 한 듯 좋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또 점 보러 갈 때마다 풀이를 수첩에 메모하는데 몇년전 수첩까지 뒤적여보니 “마흔다섯부터 대길운! 고생 끝 행복 시작!” 등의 글도 적혀 있어 신빙성을 더 한다. 그래서 이젠 마흔다섯살, 사십대 중반의 확실한 중년아줌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잇값을 못하고 히히덕거린다. 마치 대단히 멋진 애인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있지, 나 새해부터 대박이래. 마구마구 좋단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니. 그래도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
집에서 인터넷 점을 보다가 호들갑을 떨며 이렇게 즐거워했더니 딸아이가 찬물을 확 끼얹었다.
“엄마,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말유. 내가 철 들고서 늘 들어오던 레퍼토리 아뉴? 2002년에는 나라운은 물론 엄마 개인운도 좋다며 월드컵 특수를 노릴 일이 없나, 축구장에서 음료수 장사라도 해야겠다 등등 꿈을 펼치더니 5월쯤엔가 삼재가 아직 안 끝나서 되는 일이 없다며 푸닥거리라도 해야겠다고 한 분이 누구유?”
맞다. 그랬다. 2002년부터 대운이 들어온다고 해서 기대에 부풀었지만 별로 운이 좋지 않다며 투덜거리며 지냈다. 그런데 지나놓고 생각해보니 2002년엔 강남으로 이사도 하고, 새 책도 내고, 부수입도 늘어나는 등 변화와 발전이 많았다. 몸무게까지 발전해서 출생 후 최고의 체중과 똥배를 자랑하지 않는가.
도대체 재수가 좋다는 것, 운이 좋다는 것은 무얼까. 마크 마이어스란 미국의 언론인이 쓴 <운 좋은 사람을 만드는 아주 사소한 습관들(How to make Luck)>이란 책을 보면 행복도 그렇지만 행운 역시 타고나거나 팔자소관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느끼는 거라고 한다.
또 최근 영국의 하트퍼드셔 대학 심리학 교수팀들이 1백명의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도 ‘`행운’은 그 상태가 아니라 행운을 느끼는 이들과 못 느끼는 이들의 차이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교수들은 이들을 모두 대학으로 불러들여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팀과 재수없다고 여기는 팀을 나눠 컴퓨터 동전 던지기 테스트를 실시했다. 참가자 각각에게 꼬마 요정이 컴퓨터 스크린을 가로질러 동전 던지는 것을 보여준 뒤 동전이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물었다.
테스트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동전의 면을 맞춘 횟수와 운이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맞춘 횟수가 같게 나타났다. 결국 자신이 박복하고 재수없다고 느끼는 이들도 실제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더 운이 좋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것이다.
시험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해보니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생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 가운데 나쁜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일은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자신이 운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반대였다. 대개 나쁜 일만 주로 기억하고 좋은 일은 잊어버렸다.
주변을 살펴보면 정말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많이 했기에, 혹은 부모님이 어떤 교회나 절에서 축수 기도를 드렸기에 저렇게 운이 좋을까 싶은 이들이 있다. 평생 고생이나 어려움이라고는 모르고 성장해 하는 일마다 마법처럼 술술 잘 풀리고 주변에서도 항상 도와주려는 사람,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들 말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지지리도 잘 안풀리고 하는 일마다 실수나 실패만 해서 주변을 안타깝게 하는 이들도 있다. 처음엔 동정해주던 이들도 나중엔 슬슬 피한다. 그런데 그게 과연 그들의 운 때문일까.
주변에서 행운아라고 불리는 이들을 보면 그냥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게 아니다. 복권도 사야 당첨되고, 소개팅이나 데이트라도 해야 멋진 이성을 만날 수 있다. 한 아줌마는 얼굴도 못생기고 얌체인데 잘생긴데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은 그 마누라라면 꼼짝을 못하고 항상 장도 같이 보러 다니고 금실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주변에선 ‘`남편복을 타고 났다’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줌마, 얼굴과 달리 남편에게 애교를 부리고 주위에 얌체짓을 하는 대신 살림을 똑소리나게 한다.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것이다.
또 재수없는 이들을 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횡액을 당한 게 아니다. 교통사고 역시 그 자리에 서 있었거나 차를 운전해서 당한 일이고, 사기를 당한 것 역시 사기꾼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글거리고 웃으며 명랑하게 “재수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못 봤다. 늘 찡그리고 입이 튀어나온 상태에서 궁시렁대니 그런 모습을 예뻐하고 뭔가 도움을 주려는 이들이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이혼녀는 입을 열면 불평불만이다. 자기는 우아하고 멋진 여자인데 남편을 잘못 만나 신세를 망쳤으며, 남편의 중상모략으로 친정식구들까지 자기를 오해한다는 피해의식까지 갖고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걸면 언제나 징징 우는 소리만 해서 솔직히 만나는 것이 두렵다. 경제적이건 정신적이건 도움을 준 이들에게도 감사하기는커녕 “더 도와줄 수 있으면서 이것밖에 안 도와주고 생색만 낸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기쁜 일, 슬픈 일이 많았지만 엉뚱한 봉변을 당한 일은 거의 없다. 칭찬을 받은 일도 내가 한 일이고, 비난받은 일 역시 내가 저지르고 잘못 처리한 일들이었다.
행운이란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찾아오고, 행운 역시 명랑하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또 자신에게 늘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한다. 스스로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그런 낙관적인 생각이 자동적으로 얼굴에, 행동에 나타난다.
난 행운아다. 사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커다란 상을 받아야 행운아인 것은 아니다. 몸이 건강한 것, 온 가족이 무사한 것, 이 나이에도 할 일이 있고 그 일이 장난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것, 실력 없는 것이 아직도 탄로 나지 않아 그럭저럭 버티는 것 등등이 다 내 복이 아닌가.
앞으론 더 엄청난 행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워낙 대기만성 스타일이니까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현명해지며 직장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승진도 하고, 귀인이 나타나 도움도 주고, 또 갑자기 능력이 출중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게다. 행운이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아니 나와 친해질 수 있도록 아니 내가 행운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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