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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의 도전

영화 ‘해안선’에서 광기 어린 연기 선보인 톱스타 장동건

”리얼한 연기 위해 사흘간의 지옥훈련도 악으로 버텼어요.”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LJ 필름 제공

2002. 12. 11

‘메이저 스타’ 장동건과 ‘마이너 감독’ 김기덕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해안선'이 11월22일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장동건은 민간인을 간첩으로 오인해 사살한 후 그 죄책감으로 서서히 미쳐가는 강상병역을 맡았다. 이젠 ‘미남’ 배우가 아닌 ‘연기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가 직접 털어놓은 '해안선' 촬영 뒷이야기와 연기 열정.

영화 ‘해안선’에서 광기 어린 연기 선보인 톱스타 장동건
장동건은 잘생긴 남자의 대명사다. 하지만 정작 ‘미남’ 배우 장동건(30)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가 연기생활에 있어 떨쳐내야 할 가장 큰 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장동건의 새로운 영화 ‘해안선‘에서는 그의 잘생긴 외모가 전혀 돋보이지 않는다.
제7회 부산영화제의 개막작, ‘메이저 스타’ 장동건과 ‘마이너 감독’ 김기덕이 만났다고 해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해안선‘은 8억원의 제작비를 가지고 한달 동안 촬영된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 철책선 근처의 군 초소를 배경으로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이 한 개인을 비정상적인 광기와 파괴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동건은 민간인을 간첩으로 오인해 사살한 후 그 죄책감 때문에 서서히 미쳐가는 강상병역을 맡았다.
“제 강점인 외모를 써먹을 데가 하나도 없는 작품이에요(웃음). 제 능력 한에서는 최선을 다해 강상병을 표현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역시 역부족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동안 제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해줬다는 점 그리고 제가 더 이상 잘생긴 배우로 불리지 않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장동건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모두 챙겨볼 정도의 열혈팬이다. 그러나 그는 김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특유의 밑바닥 정서와 보편적이지 않은 심리를 표현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영화 ‘나쁜 남자‘를 본 후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나쁜 남자‘에서 조재현 선배님이 연기했던 ‘한기’를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저기 있었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때부터 김기덕 감독님과의 작업이 저 자신을 진정한 배우로 한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믿었죠.”
그는 올해 초 영화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LJ필름은 그에게 ‘해안선‘의 시나리오를 건넸고 장동건은 단돈 ‘5천만원’에 출연을 결정했다. 그동안 수억원대의 출연료를 받았던 그로서는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무엇보다도 장동건 자신이 출연을 원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멜로는 사양, 차기작도 전쟁 소재 남성영화
영화 ‘해안선’에서 광기 어린 연기 선보인 톱스타 장동건

그는 본격 촬영에 앞서 동료 연기자들과 함께 해병대 지옥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김기덕 감독과의 첫 작업. 하지만 지난 6월부터 한달여 동안 서해 변산반도의 위도에서 진행된 촬영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본격 촬영에 앞서 그는 해병대 출신 조교들로부터 동료 배우들과 함께 3일간 지옥 훈련을 받았다. 군인인 강상병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김감독의 판단 때문.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군면제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훈련은 생애 처음이었다. ‘훈련을 끝까지 완수한다. 조직의 명령에 끝까지 복종한다’는 각서까지 썼지만 이틀간 6시간밖에 못 자는 강행군 속에서 영화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악으로 버텼어요. 군대를 다녀오지 못했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했죠. 이런 훈련 덕분에 몸과 마음으로 강상병역을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촬영 내내 김감독과 호흡이 잘 맞았다. 장동건은 “엽기적인 영화 스타일로 봐서 보통사람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범했다”며 허허 웃었다. 물론 처음에는 촬영 속도가 너무 빠르고 촬영장에 모니터가 없어 자신이 연기한 장면을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촬영하는 내내 위도에서 머무른데다가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이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강상병의 광기를 온몸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고. 또 그는 김감독이 배우들과 영화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심이 넓으며 배우들의 의견을 존중해줘서 좋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베드신이 있었어요. 감독님과 ‘강상병의 캐릭터를 살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면 찍겠다’고 약속했죠. 그런데 촬영하다 보니까 굳이 베드신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제 의견을 전했더니 감독님도 고개를 끄덕이셨고 그 장면을 촬영에서 제외하셨죠.”
어쨌든 ‘해안선‘에서 그의 광기 어린 연기는 어느 정도 합격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잘생긴 외모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 사실 그동안 그의 출연작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미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다. 99년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시작으로 ‘아나키스트‘ ‘친구‘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그리고 ‘해안선‘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의 얼굴에 어울릴 법한 멜로물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 차기작인 ‘태극기 휘날리며‘도 전쟁을 소재로 한 남성영화다.
“전작에서 못해본 것을 새로운 영화에서 시도하고, 그 시도를 통해 나를 둘러싼 일정한 선을 넘고 싶다”는 배우 장동건.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연기에 목말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그를 보면 진정 아름다운 배우란 어떤 모습인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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