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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버스 타고 서울 - 파리 왕복 여행한 전 패션모델 최미애 가족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 값진 기회였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최숙영 ■ 사진·조영철 기자, ‘보그 코리아’ 제공

입력 2002.12.11 13:54:00

패션모델 출신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최미애씨. 그가 패션 사진작가인 프랑스인 남편, 아홉살짜리 아들, 세살인 딸, 그리고 가족 같은 개 ‘꼬꼿’과 함께 이색 버스여행을 하고 돌아와 여행중에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3백18일 동안 유라시아 대륙 15개국 4만km를 온 가족이 버스로 여행하면서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최씨 부부를 만났다.
중고버스 타고 서울 - 파리 왕복 여행한 전 패션모델 최미애 가족
이들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온 가족이 버스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돌아온 장 루이 볼프(39), 최미애(35) 부부를 찾았을 때 이들은 사진전시회를 앞두고 한창 작업중이었다.
패션 사진작가인 프랑스인 남편 장 루이 볼프씨는 입고 있는 청바지며 스웨터에 온통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전시회에 걸 사진 액자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사진작가가 액자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만, 그는 어떤 것이든 제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루이는 세트까지 직접 만들어요. 어시스트가 있어도 혼자서 다 해요. 그러니 일의 양이 얼마나 많겠어요. 옷을 사다줘도 페인트에, 본드에, 실리콘에, 온전할 날이 없어요. 페인트 만진 손으로 컵도 만져서 더럽혀놓고요. 집안도 보세요, 온통 페인트 투성이에요.”
패션모델 출신인 한국인 아내 최미애씨의 말이다. “어젯밤에도 남편하고 같이 사진 액자를 만드느라 밤샘을 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얼굴은 화장기도 하나 없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근 두 사람은 유라시아 대륙을 일주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도전 없는 밋밋한 삶은 견디지 못하는, 한마디로 ‘못 말리는 부부’였다.
3년간의 동거 후에 프러포즈한 남편
이들의 첫만남은 88년 겨울, 루이씨는 사진작가로 최씨는 패션모델로 서울 충무로의 한 에이전시에서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선한 인상의 루이가 아주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최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자꾸만 생각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사람과 ‘피사체’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89년 1월 촬영차 제주도에서 또 만남이 이뤄지면서, 두 사람은 일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분방한 사고를 지닌 서로에게 무작정 끌렸고, 결국 한남동에 3평짜리 방을 얻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후 도쿄로 이사를 했다.
“3년 동안 동거생활을 했어요. 루이는 프랑스식 영어로, 나는 한국식 영어로 말을 했는데 처음에는 정말이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어요. 서로 깊은 대화는 못 나누고 단답형으로 “배 고프냐?” “예스” “어디 갈까?” “노우”하는 식으로 말을 했죠.”
최씨는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동거생활이 더욱 힘들었다. 가뜩이나 남편하고도 말이 안 통하는데 일본에서 살았으니 오죽했을까. 성격도 내성적이라서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중고버스 타고 서울 - 파리 왕복 여행한 전 패션모델 최미애 가족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루이의 열심히 일하는 면에 반했다”는 최씨는 동거한 지 3년 만에 루이로부터 청혼을 받았다고 한다.
“프러포즈를 할 때도 너무 웃겼어요. 도쿄에는 예쁜 꽃가게들이 많은데 루이가 그중 한 꽃가게에 들어가더니 다짜고짜 시들은 꽃 한송이를 뚝 잘라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난 키가 커서 뭐든지 큰 것은 싫어하는데 그 큰 꽃을 주면서 할 말이 있대요. 뭐냐고 물으니까 밑도 끝도 없이 결혼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생각해보겠다고요. 물론 속으로는 날아갈 듯이 기뻤지만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면 재미없잖아요. 저는 한달 후에 루이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어요.”
집안의 반대는 없었다. 당시 외국인 남자하고 딸이 사귄다는 것만 알아도 기겁을 하며 딸이 바깥출입을 못하게 머리를 빡빡 깎아놓는 부모들도 많았는데 그의 부모는 그러지 않았다. 너무도 순순하게 결혼 승낙을 해주었다. 그 말끝에 “우리 부모님, 너무 멋지죠?”하며 그가 경쾌하게 웃는다.
92년에 결혼한 이들은 동거생활까지 합쳐서 벌써 13년째 같이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그동안 도쿄, 방콕, 홍콩, 파리 등을 오가며 살았다. 그 사이에 아들 구름(9)이, 딸 릴라(3)도 태어났다. 이사도 서른번 넘게 다녔지만 매번 새로운 곳에서 사는 기쁨에 번거로운지도 몰랐다고 한다.

중고버스 타고 서울 - 파리 왕복 여행한 전 패션모델 최미애 가족

최미애 부부는 또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부부의 위기’는 왔다. 아들 구름이가 네살이 됐을 때의 일이다.
“홍콩에 살면서 제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어요. 모델 일은 매력적이지만 생명이 짧잖아요. 그래서 메이크업을 새로 시작한 건데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더라고요. 저는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아들을 데리고 홍콩에서 파리로 갔어요. 루이는 자기는 파리가 싫다고, 가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한달 뒤에 뒤쫓아왔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파리에서 함께 살았는데 6개월 만에 홍콩에서 가져간 돈이 바닥이 난 거예요. 루이와 나는 자주 싸웠어요. 전 그때 루이가 너무 미웠어요. 이해하고 배려하고 챙겨주기보다는 트집을 잡고, 잔소리를 해댔지요. 뒤통수만 봐도 미워서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생활습관의 차이도 컸다. 최씨는 깔끔한 성격인데 반해 루이씨는 뭐든지 어지럽게 늘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요리를 만들 때도 양념통을 죄 꺼내서 쓰고는 제자리에 갖다놓지를 않았다. 그러니 자연 뒷정리는 그녀의 몫이 될 수밖에.
양치질을 할 때도 이를 닦고 나서는 칫솔을 제자리에 꽂아두는 법이 없었다. 샤워를 한 뒤에도 젖은 타월을 세탁기 안에 넣지 않고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아서 그를 짜증나게 했다. 그럴 때마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했는데 나중에는 급기야 ‘이 남자하고는 살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다.
그래서 이혼을 요구했다. 루이씨는 이혼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신 별거를 하자고 했다. 이에 동의하고 최씨는 집을 얻어서 따로 나가서 살았다. 다행히 광고회사에 취직해 집세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아들 구름이 3일은 최씨와 4일은 루이씨와 지내는 별거생활이 시작됐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별거한 지 8개월 만에 이들은 재결합했다. “떨어져 있어 보니까 아들한테 미안했고 루이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내가 먼저 합치자고 했다”는 게 최씨의 말이다.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었나 봐요.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재결합을 했어도 좁힐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문화적인 차이였다. 이들은 아이를 키우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아들 구름이 아기였을 때, 숨 넘어갈 듯이 울면 최씨는 안아주고 달래주기에 바빴는데 반해 루이씨는 모른 척하고 냉담하게 대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면 루이는 “아이가 우는 행동으로 우리한테 스트레스를 주면 안된다”고 했다. “아이가 뭘 아냐?”고 최씨가 맞받아치면 루이씨는 또 그대로 “아직 어려서 말과 감정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아기도 다 안다”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들을 과잉보호하잖아요. 프랑스 사람들은 안 그런 것 같아요. 요즘도 구름이가 학교 갈 때 나는 추울까봐 옷을 많이 껴입히는데, 루이는 옷을 많이 입히지 못하게 해요. 옷을 많이 껴입으면 학교 가서 아이들하고 어울리기에 힘들다고 감기 들지 않을 정도로만 입히라고 말해요.”
이혼의 고비 넘기면서 서로의 존재를 더욱 소중하게 느껴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것은 그가 아니라 루이씨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이들 위주로 생활을 했다. 아무리 피곤해서 쉬고 싶어도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하면 같이 놀아주고 밤에 잘 때도 꼭 책을 읽어준다면서, “루이는 아이들이 우선이에요”라고 말했다.
“아이들 교육과 요리는 루이 담당이 됐어요. 아들 학교숙제도 루이가 봐주고 음식도 제가 만들면 맛이 없다면서 루이가 다 만들죠. 덕분에 제가 요리를 안한 지도 8년이 넘어요. 루이는 프랑스식도 아니고 한국식도 아닌 음식을 잘 만드는 데 꽤 맛이 있어요.”
이들은 아침에는 빵과 요플레, 우유, 주스를 먹고 하루 중 한끼는 꼭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도 야채는 생으로 먹고 소시지나 햄 같은 것을 반찬으로 먹는다고 한다.
“저는 아침에 밥을 안 먹은 지 꽤 오래 됐어요. 아마 루이와 동거생활을 했을 때부터였을 거예요. 그래서 명절 같은 때 친정집에 가서 아침에 밥을 먹으려면 너무 힘들어요. 밥보다는 빵이 더 편하거든요.”

중고버스 타고 서울 - 파리 왕복 여행한 전 패션모델 최미애 가족

장 루이 볼프는 사진액자 제작 등 모든 전시회 준비를 직접 다 했다.

부부가 같이 살면 닮는다더니 최씨 역시 남편을 닮아가는 걸까.
서울 이태원에 ‘아뜰리에 고구려’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착실하게’ 살던 두 사람은 지난해 여름 ‘방랑 기질’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고 버스 한 대를 구입해 유라시아 대륙 일주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는 일만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반복되는 스트레스를 견디면서까지 일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문에 여행을 하게 된 거예요. 제 고향 서울에서 루이의 고향 파리까지 여행 일정을 잡고 35인승 중고 버스를 사서 캠핑카로 개조했어요. 그것도 루이 혼자서 다 했죠. 우리 버스를 본 사람들은 루이에게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루이는 버스를 아파트 실내처럼 완벽하게 만들었어요.”
2001년 8월30일, 인천항에서 중국 다롄항으로 향하는 페리호에 그 캠핑카를 실으면서 이들의 여행은 시작됐다. 가족 같은 개 ‘꼬꼿’도 함께였다.
루이와 미애는 중국 베이징을 거쳐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카자흐스탄 악토베, 러시아 볼고그라드, 터키 이스탄불, 그리스 테살로니키, 이탈리아 나폴리, 로마를 경유한 끝에 지난해 12월5일 루이의 고향인 파리에 도착했다. 루이씨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이들은 해를 넘긴 2002년 2월 2일, 서울을 향해 다시 떠났다. 터키까지 온 뒤 이란 테헤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인도 델리·뭄바이·뉴델리, 네팔 카트만두, 중국 칭다오, 시안을 돌며 모험을 계속하다 톈진에서 떠나는 페리호를 타고 지난 7월13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꼬박 3백18일 동안 15개국 4만km를 버스로 여행하고 돌아온 것이다.
이들이 여행을 하면서 쓴 돈만 해도 4천만원(중고 버스 구입비와 개조비는 제외), 스튜디오 보증금과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으로 여행비를 마련했다. 나중엔 돈이 부족해서 파리에서 서울로 오는 도중에 책을 쓰기로 하고 선인세를 받아 어렵게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여행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물론 여행하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6m 낭떠러지로 차가 굴러 떨어질 뻔했고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술에 취해 쇠파이프를 든 사람들이 탄 5대의 지프가 뒤를 쫓아와 필사적으로 탈출을 해야 했다. 버스로 육로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파키스탄 국경에서 15일간 꼼짝 못하고 묶여 있었던 적도 있었다.
“중국 둔황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일이에요. 술 취한 농부가 경운기를 몰고 가다가 경운기가 뒤집혀서 머리를 심하게 다친 거예요. 여행을 하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경운기 밑에서 농부를 끌어내어 버스에 태운 뒤 병원으로 데리고 갔죠. 그곳은 병원으로 가는 데만도 2시간이 걸릴 정도로 오지였던데다 다른 차량도 없어서 우리 부부가 아니었으면 농부는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거예요.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는 게,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흐뭇해요.”
여행중 루이씨는 운전과 차 수리를 도맡아 가족의 ‘든든한 안내자’ 노릇을 했다. 최씨는 온갖 잡다한 일을 챙기며 남편과 두 아이, ‘꼬꼿’을 따뜻하게 보살폈다.
여행중 목숨 잃을 뻔한 위험한 순간도 경험
이들은 또 ‘뷰티 프로젝트’라는 사진 작업도 병행했다. 이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여인들이 다양하게 ‘메이크업’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루이씨는 디지털 카메라로 현지인들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면서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
문명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 살아가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보면서 최씨는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 다만 사는 방식이 다를 뿐, 빈부의 차이를 빼고는 지구촌 어느 곳이나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그에게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여행하면서 잃은 것은 없어요. 오히려 얻은 게 많지요. 내 가족, 이웃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어요.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도전 없는 밋밋한 삶을 거부하는 이 부부는 사진전시회가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여행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들의 거침없는 삶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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