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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찾아 여행 떠나는 21세기 유목민 ‘오지사랑’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어느 곳이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함께 나눠요”

■ 글·박윤희 ■ 사진·오지사랑 제공

입력 2002.11.15 14:39:00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전국 오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임인 ‘오지사랑’ 사이트에 들러보는 게 어떨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둥지를 튼 오지사랑 회원들은 산신과 자연에 안전을 비는 ‘시산제’를 지내고 전국 오지로 여행을 다닌다. 그것도 4륜구동 차량을 이끌고 험로만을 고집하는 오지사랑 회원들의 독특한 여행담을 읽다보면 마치 자연의 향기를 직접 느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신천지 찾아 여행 떠나는 21세기 유목민 ‘오지사랑’

cafe.daum.net/wastelands 오지사랑 회원들은 한달에 1~2회 정도 정기 투어링을 한다.

길아닌 길을 4륜구동 차량으로 달리며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오지 여행 동호회 오지사랑(cafe.daum. net/wastelands) 회원들. 여행광이 따로 없다. 회원들 모두 혈관에 흐르는 역마살을 주체 못해 늘 길을 떠나야 직성이 풀리는 바람의 아들과 딸이다. 4륜구동은 네 바퀴 모두에 동력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자동차 추진방식인 이륜구동에 비하여 추진력이 월등해 비포장 도로와 같은 험로, 경사가 아주 급하거나 노면이 미끄러운 도로를 주행할 때 탁월한 성능을 나타낸다.
오지사랑이 인터넷에 베이스 캠프를 친 것은 지난해 8월. 각자 다른 여행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열성분자들이 헤쳐 모였다. 회원수는 약 5백여명. 번개모임, 정기모임도 여타 인터넷 동호회와는 사뭇 다르다. 마음 맞는 회원들과 접선만 되면 바로 4륜구동 차량을 타고 대관령 고개를 넘거나 동해안을 향해 운전대를 돌린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자동차 바퀴 자국을 전국 곳곳에 남겨야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자유’라는 이름의 에너지가 충전되기 때문이다. 오지사랑 회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만 봐도 대부분 오지의 흙먼지를 풀풀 날리는 무용담이 넘쳐 난다.
‘꽤 깊게 머드(진흙)가 형성되어 있어서 진행이 쉽질 않다. 앞으로도 뒤로도 진행이 여의찮아 휠트러블도 걸리구. 수 차례의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 끝에 겨우 성공. 이어서 들러리님, 이사장님도 비교적 쉽사리 성공! 머드코스 탈출을 위한 몸부림 덕분에 전부 머드 총을 맞아야 했다. 아침에 보니 거의 상그지 꼴이다. 꼭 모심다가 아님 조개 캐다가 온 사람덜 마냥.--;; -토나™
‘어느 집단 농가 뒤쪽 산을 올라 투어링을 하다가 산속에서 어둠을 만난 그때! 노루를 보았던 기억도 있지만, 열대가 넘는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산속을 헤매고 다니며 불평 한마디 없이 협동 단결하여 역마살의 신앙심을 보여주는 데는! 정말 이런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국도도 아닌 지방도를 찾아 헤맨 수하리 계곡! 어딘가 홀린 것처럼 이러다 밤새 헤매고, 여기서 날 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멀고 멀었건만 수하리로 빠지는 지방도를 만났을 때는 꼭 수렁 속에서 건져진 느낌도 들었고! 암튼 여러 신도분들의 따뜻한 배려로 저도 자꾸 이 신흥 종교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자유인
게시판에 올린 회원들의 글을 읽다보면 무슨 산악 게릴라들의 훈련 과정을 엿보는 것 같은데, 오지사랑 회원들은 언제나 험한 여행에 자신을 내던져놓고 이처럼 원시적인 야생 체험에 열광한다.
오지사랑 운영자 김용기씨(32·토나™)도 예외가 아니다. 스스로 ‘오지마약 중독자’라고 부를 만큼 동호회 활동에 푹 빠져있다.
“떠나고 싶을 때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오지사랑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있지 않을까요?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 달빛 머금고 흐르는 강물, 흐르는 계곡에서의 산책, 힘차게 뻗어나가는 백두대간의 능선들, 가을 낙엽 등등 저도 일탈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니까 자연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매주 몸부림치고 있어요.”

신천지 찾아 여행 떠나는 21세기 유목민 ‘오지사랑’
오지사랑 회원들은 한달에 1∼2회 정도 정기투어링을 하는데, 전국 각지의 회원들이 4륜구동 차량을 몰고 낯선 오지로 출발하면서 모임이 시작된다. 이때 ‘CB(Citizen Band)’라고 칭하는 생활무전기는 회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 무전기를 통해 이동상황을 점검하고 교통정보를 교환하거나 ‘허접한’ 수다를 떨며 친목을 다진다. 10∼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다종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은 낯선 여행지에서 ‘고생’을 매개로 끈끈하게 맺어진다.
이들이 오지에 계속 빠져드는 한 4륜구동 차량은 이들에게 ‘종교’다. 운전석에서 보이는 넓고 시원한 시야, 험한 길을 통과 할 때 느끼는 쾌감, 승용차에 비해 튼튼한 프레임과 보디가 주는 안전함,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회원들은 4륜구동 차량의 광신도가 돼버렸다.
98년부터 4륜구동 차량을 몰기 시작한 박순제씨(29·『ARK™』)는 서슴지 않고 차를 ‘친구’라고 말하며 한없는 친밀감을 표현한다.
“나와 한몸이 되어 어디든 같이갈 때, 위험한 곳이나 어려운 곳을 함께 통과해냈을 때, 오지에서 둘이서 함께 밤을 지샐 때 차는 이렇게 늘 나와 함께하는 좋은 친구죠. 비오는 날 차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음악과 함께 신명을 내기도 하는 차. 차는 정말 내가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라고 말하고 싶네요. 친구는 바로 ‘믿음’ 그 자체잖아요.”
회원들이 4륜구동 차량에 관심이 많은 만큼 다들 전문가를 자처한다. 따라서 여행 정보에 대한 공유 못지않게 차에 대한 정보 공유도 짜임새 있게 이루어진다. 회원 게시판 ‘구루마 관리는’ ‘모빌 튜닝 관리 Q&A’를 클릭하면 회원들이 실제 경험에서 얻은 4륜구동 차량의 관리, 정비, 튜닝(부분 개조) 등 각종 유용한 정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혼자 주행하다 구덩이에 빠졌다면. ㅋㅋ 참 난감하다. 이건 안 알려주려고 했는데. ㅜ.ㅜ 뒤 타이어 바람을 뺀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한쪽 바퀴의 공기를 뺀 후 거기에 줄을 두 바퀴 정도 감고 줄의 한쪽 끝을 나무나 커다란 바위에 묶고 천천히 후진하면 바퀴가 윈치의 역할을 하며 탈출할 수 있다. 탈출한 후 스페어로 타이어를 교환하면 끝.’ -참이슬따라
반드시 4륜구동 차량을 갖고 있어야 오지사랑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맨발’이어도 오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주부 한미주씨(39·자유인)는 오지사랑 정기투어링을 떠날 때 회원들의 차 조수석을 얻어 탄다.
“나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자꾸 망설여지잖아요. 그런데 그럴수록 자꾸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집에서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부인이지만 여행지에선 ‘또 다른 나’와 만날 수 있어 좋아요. 특히 오지여행에서 회원들과 함께 고생하고 어려움을 극복해냈을 때 거기서 느끼는 쾌감과 인간적인 유대감은 정말 말로 표현 못하죠.”
한미주씨는 주부 회원 가운데 가장 열심히 정기투어링에 참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인터넷 게시판에 빼놓지 않고 후기를 올리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가 생기 넘치는 글솜씨로 여행 후기를 전하면, 비록 정기투어링에 빠진 회원일지라도 그의 글을 읽고 여행 못 간 아쉬움을 달랜다고 한다.
‘오두기령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간 코스 맑고 깨끗한 계곡이 아주 기억에 남네요! 특히 이번에는 처녀림 같은 곳을 많이 지나가서 신선하고 향긋한 풀 냄새도 맡을 수 있어서 좋았고요. 특이하게(본의는 아니었지만) 몇 군데 군부대를 차례로 순시해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동안은 숲에서 받은 기로 버텨나갈 수 있을 거예요(언제 약효가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답답한 성냥곽 안에서 휴일을 보내기보다는 탁! 트인 자연으로 달려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자유인
그런가 하면 부부가 동시에 오지사랑에 푹 빠진 경우도 있다. 강병철씨(26·설국) 부부가 그런 케이스.
“지난 8월에 아내랑 함께 서해안 여행에 참여했는데요. 취미생활을 같이하니까 얘깃거리도 많아지고, 아내의 경우 결혼 후에도 대인관계를 넓힐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그날 여행 이후 매일 저녁 아내랑 오지사랑 사이트에 접속해 함께 글을 읽는 시간이 일과가 돼버렸어요.”
주 5일제 근무가 확산되면서 오지사랑 회원들의 운전대도 더욱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4륜구동 네 바퀴에 실린 ‘자유’와 ‘일탈’은 삶을 또 다른 각도로 뒤집어보게 만들어서일까. 오늘도 오지사랑 게시판에는 새로운 일탈을 꿈꾸는 회원들의 모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새털처럼 많은 일상을 더욱 치열하게 견뎌내려고 말이다.
‘여행 6일째 마지막 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보신 분은 알겠지만 곧은 길이라 잠이 오기 마련이죠. 하지만 서해대교의 경치. 안개 속을 달리는 그 맛! 여행의 마지막은 이런가 봅니다. 아쉬움, 그리고 막연한 기대감. 기나긴 터널을 지나 잃어버렸던 나의 마음을 다시 찾은 느낌이랄까요? 안산 방면. 서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차가 막히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서울입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나의 생업 속으로. 그리고, 치열한 삶 속으로 들어가겠지요.’ -『ARK™』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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