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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의 지독한 방황 끝내고 돌아온 록가수 강산에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2.11.15 09:58:00

“항상‘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 아내가 최고의 응원군이에요”
록가수 강산에가 본명 강영걸로 돌아왔다. 최근 4년 만에 새 음반 <강영걸>을 낸 것.
그간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에 대해 지독하게 고민했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음반은 강산에 자신에 대한 통찰의 결실로 보인다. “오랜 방황에도 자신을 지켜준 아내가 너무도 고맙다”며 함박 웃음을 짓는 강산에를 만났다.
4년간의 지독한 방황 끝내고 돌아온 록가수 강산에
“어렸을 때는 ‘영걸’이라는 이름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세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지만 지독히 싫어했죠. 대학 때 한 친구가 ‘강산에’라는 이름을 지어주자 아무런 미련 없이 본명을 버렸어요(웃음). 하지만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니 불현듯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네요. 흑백 사진 한장과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 아버지였는데도 말이죠. 아버지가 유일하게 제게 물려주신 강영걸이라는 이름도 새삼 정겹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록가수 강산에(39)가 돌아왔다. 4년 만에 7집 음반 을 낸 것. 지난 세월 그는 지독하게 방황을 했다. 92년 데뷔 후 1집 와 2집 가 빅히트를 치며 사회 비판적인 성향이 강한 정상의 록가수로 활동했던 그는 98년부터 긴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98년 무작정 떠난 미국에서 1년 여 방황의 세월을 보냈고, 99년 대마초 흡입사건이 터지면서 교도소에서 4개월 복역, 80시간의 사회봉사를 했으며 2000년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가’ 고민해왔다는 강산에. 오랜 고민 끝에 그가 찾은 것은 바로 인간 강영걸 그 자신이었다. 어릴 적 세상을 떠나 작은 추억마저 공유하지 못했지만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아내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앨범 타이틀은 본래의 자신을 뜻하는 ‘강영걸’, 부제는 ‘강영걸 공화국’인 이번 음반은 그가 처음으로 직접 프로듀싱했다. 여권형식을 본뜬 음반 속지에 그의 삶의 단상들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을 실었는데, 특히 맨 앞에는 한참 힘들 때 미국에서 딴 운전면허증 사진을 넣었다. “가는 곳마다 신분조회를 받았다”는 그의 말처럼 사진 속 그는 험악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진다.
대마초 흡입, 교도소 복역, 미국 유랑하며 힘든 시간 보내
4년간의 지독한 방황 끝내고 돌아온 록가수 강산에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가수 강산에가 아닌 인간 강영걸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사회 비판적인 노래가 많았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음반에는 자신의 이야기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첫째 트랙에 실린 ‘명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장 절절하게 표현한 곡.
“‘명태’라는 가곡이 있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인데, 미국의 사막을 돌아다니면서 종종 흥얼거렸거든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가사가 구구절절 제 마음에 와닿는 거예요. 명태는 함경도 특산물인데, 저희 아버지의 고향이 함경도거든요. 실향민으로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이 너무도 가슴 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때 한번 명태라는 노래를 제가 직접 만들어보리라 결심했죠.”
하지만 평범한 노래는 만들지 않았다. 이른바 ‘사투리 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
‘영걸이 왔니? 무중이는 어찌 아이 왔니? 아바이 아바이 밥잡쉈소. 상구 아이 왔니’ ‘명태 그 기름으로는 또 약용으로 쓰인데이제이요.’
그는 함경도 사투리의 맛을 제대로 살리려고 실향민의 마을인 속초 아바이 마을에 가서 녹음을 했다. 또 어렸을 적 세들어 살던 함경도 출신 주인집 부부의 말씨를 떠올려가며 곡을 썼다. 그의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를 끌어들인 ‘와 그라노’에서도 사투리 랩의 정겨움이 물씬 풍겨 난다.
타이틀곡인 ‘지금’은 그가 처음으로 부른 남녀간의 사랑 노래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아내가 직접 썼다. 그의 아내는 91년 결혼한 두살 연하의 일본인 여성 나비(37·본명은 다카시 미에코). 이들 부부는 현재 경기도 일산에서 살고 있다.
“제 아내가 가사를 참 잘 써요. 2집의 ‘넌 할 수 있어’도 아내가 쓴 것이고요. ‘더 이상 더’ ‘어쩌면’ 등도 아내가 썼어요. 물론 일본어로 쓴 것을 제가 한국말로 번역했죠. 사실 아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작사한 것으로 했지만 이젠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해요. 음반에서 작사가가 ‘나비’라고 되어있는 것은 모두 아내가 쓴 거예요. 또 제 노래는 아내와 공동으로 작사 작업을 한 것이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강산에는 데뷔하기 전 서울 신촌지역에서 음악활동을 하다 당시 연세대 어학당에 다니던 부인을 만났다. 아무리 국제화 시대라 해도 외국 여성, 특히 일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요. 그건 저희 집안 내력인 것 같아요. 보통 외국사람이랑 결혼한다고 하면 집안에서 반대한다는데 저희 어머니는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물론 처음에는 처가댁에서 반대했죠. 결혼한다고 데려온 남자가 한국인, 그것도 음악 한다는 사람이니 얼마나 탐탁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제 아내가 집안에서 신뢰를 받았던 것 같아요. 저를 믿은 게 아니라 아내를 믿고 결혼시킨 거죠(웃음).”
한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서일까. 아내는 완전히 경상도 아줌마가 다 됐다고 한다. 그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표준말이 아닌 경상도 사투리를 배웠다는 아내는 우리말로 대화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아내와 함께 남대문시장에서 쇼핑을 하면 오히려 저를 일본인으로 봐요. 남대문시장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잖아요.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은데 제게만 일본말로 ‘물건을 사라’고 말하거든요(웃음). 아내야 툭하면 ‘뭐라카노’ 이러면서 경상도 말로 이야기하니까 다들 한국사람으로 보죠. 여자 강산에라고 보면 돼요.”

4년간의 지독한 방황 끝내고 돌아온 록가수 강산에

앞으로 그는 음악 방송과 콘서트 등을 통해 팬들과 자주 만날 계획이다.

그의 최고 지지자는 물론 아내다. 할 일을 제쳐두고 아이를 먼저 낳지는 말자고 한 것도 아내고, 음악 하며 힘들어 하고 방황하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준 것도 아내다. 99년 미국으로 홀연히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힘들기도 했으련만 언제나 변함없이 그를 믿어준다고 한다. 이번 음반에서는 그런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노래가 있다. ‘작은 노래’가 바로 그것.
‘참 좋은 냄새가 나요… 그대 없는 그 슬픔과 그대 있어주는 행복을 작은 내 노래 만들어 불러봅니다.’
가사 전체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게 묻어나지만 강산에는 “워낙 사랑 표현을 못해 제대로 감정이 드러났는지 모르겠다. 마음만 전해지면 좋겠다”며 부끄러워했다. “역시 작사는 자신보다 아내가 한수 위인 것 같다”는 그는 일본에서 아내의 싱글 음반을 내주는 것이 꿈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싱글 음반시장이 잘 형성돼 있어 음반을 내기가 수월한데다가 아내가 한 작사의 묘미를 살리려면 일본어로 내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 그리고 강산에의 또 다른 꿈은 바로 2세 만들기다.
“아직 아이가 없어요. 지금 아내가 저의 큰딸이고 제가 아내의 큰아들이에요(웃음). 그동안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었는데 이젠 강산에 주니어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더욱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될 것 같아요.”
우울하고 심각한 성격일 거라는 선입관과 달리 강산에는 매우 유쾌하고 밝다.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할 정도로 분위기 메이커. 하지만 밝아진 것은 최근 몇년 사이라고 한다. 20대 때는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했을 만큼 ‘한 성질’ 했다. 하도 인상을 쓰고 다녀서 관상 보는 사람이 “음악하지 않았으면 사람 몇을 죽였을 인상”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미국에 있을 때는 사람들로부터 ‘위험한 인물’이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듣기도 했다.
“미국에 있을 때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만사가 귀찮고 인생이 무엇인지, 제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래서 가는 곳마다 신분조회를 받았을 정도로 험악하게 하고 다녔죠. 한번은 미국 공항의 심사대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이 와서 저만 다른 곳으로 끌고 가더군요. 다른 사람보다 몸수색을 더 열심히 하는데 기분 참 좋지 않대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답답하니까 ‘나는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죠. 뭐,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웃음).”
그때 매우 화가 났던 그는 배웅나온 친구에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를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물었다. 대답은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직역하면 표지로 책의 내용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 그는 이 문장을 지금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월드컵 기간 내내 음반 작업을 못했을 정도의 축구광
하지만 요즘은 성격이 많이 유해졌고 인상도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화를 내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알게 됐고 특히 4년 동안의 방황기를 겪은 후 이른바 관조의 자세도 생겼다고.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도 데뷔한 지 10년이 넘은 ‘중견가수’의 대열에 섰고 내년이면 나이도 40세다. 불혹(不惑)의 나이라는 마흔을 앞둔 그의 심경은 어떨까.
“이젠 방송 프로듀서들과 인터뷰하는 기자들이 다 저보다 어리더군요. 예전에는 제가 항상 막내였는데. 지난 4년 동안 저는 시간이 멈춰진 공간, 진공 속에서 지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전부 변한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많이 어려도 배울 게 있는 사람이 있고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만 작아보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그래도 마흔살이 됐으니 빨리 2세를 가져야겠는 걸요(웃음).”
여가시간에는 항상 운동을 한다는 강산에는 모든 운동을 좋아하지만 특히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월드컵 기간 내내 전혀 작업을 하지 못해 음반 발표가 한달이나 늦어졌을 정도. 월드컵 때 ‘폴란드전’과 ‘독일전’은 붉은악마 복장을 요란하게 하고 경기장을 찾아가 관람했다.
“제 아내는 우리집 텔레비전 화면이 항상 ‘녹색’이라고 말해요. 항상 축구장 잔디가 깔려 있으니까요(웃음). 종종 축구장에 가서 직접 축구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 축구게임을 즐기기도 해요. 아내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제가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월드컵 열풍이 분 후 조금씩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긴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강산에. 그는 최근 머리를 짧게 잘랐다. “음반을 내면서 새롭게 각오를 다지려고 자른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전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항상 친구에게 머리손질을 받아왔는데, 한달 전쯤인가 이 친구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겠다고 했어요. 약간 불안했지만 해보라고 했죠. 그런데 영 아니었어요. 그래서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가 ‘이 머리, 너무 상태가 심란해서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바리캉으로 완전히 밀어버렸죠. 처음에는 짧은 머리가 어색했는데 이젠 관리하기 편해서 좋아요. 머리 감은 후 대충 빗고 무스 한번만 쓱 바르면 되니까요(웃음).”
인터뷰를 마친 후 강산에는 기자에게 작은 스케치북을 보여줬다. 요즘 취미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는 그는 잠에서 막 깨어난 아내를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줬다. “예쁘죠?”라며 행복하게 웃는 모습에서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방황을 끝내고 돌아온 그의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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