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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중인 신부와 일본에서 비밀 결혼식 올린 신해철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입력 2002.11.15 09:16:00

“이왕 결혼할 거면 아내가 가장 힘들 때 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지난 9월30일 일본의 한 성당에서 양가의 가족들만 모인 가운데 결혼식을 올린 가수 신해철.
신부 윤원희씨가 1년 전 암판정을 받고 두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신해철이 직접 털어놓은 시련을 딛고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사연.
암 투병중인 신부와 일본에서 비밀 결혼식 올린 신해철
역시 신해철(34)이었다. 평소 음악적인 것 이외의 사생활 부분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답게 결혼식도 언론의 취재를 피해 일본의 한 성당에서 양가 부모와 형제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면서도 경건하게 치른 것이다. 이 자리엔 그와 가까운 지인들조차 초대하지 않았다. 결혼 전 한 신문에선 그의 결혼식에 친척인 서태지가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신해철의 결혼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결혼식을 올린 다음날인 9월30일 새벽 2시, 그가 진행하는 SBS 라디오 프로그램 을 통해서였다. 방송을 진행하던 그는 특유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그런데 제 손가락에 이상한 반지가 끼워져 있네요. 아, 그렇군요. 제가 결혼을 했군요” 하며 자신의 결혼 사실을 밝혔다.
“저나 색시나 결혼했다는 실감은 안나고,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힌 그는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행위에 대한 주변상황이라든가 형식, 절차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경건하고 엄숙해야 할 예식장에 카메라가 들어와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또한 “지금 내 옆에 아내가 자고 있으며 방송이 끝나면 깨울 것”이라고 말해 신혼 첫날밤 신부와 함께 있는 곳에서 방송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진행하지 않고 그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진행을 해왔는데, 이날은 휴대용 녹음장비를 이용해 호텔방에서 방송을 진행한 것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멕시코 신혼 여행중에도 쉬지 않고 방송을 할 생각”이라고 했지만 멕시코 현지 사정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해철과 결혼한 신부는 9세 연하의 윤원희씨(25).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명문대학인 스미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윤씨는 대학 1학년 때인 96년 미스코리아 뉴욕 진으로 선발된 적이 있는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재원이다. 그녀는 졸업 후 골드만삭스사에 입사했으며 2000년 12월까지 일본지사에서 근무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한국에 돌아온 이유에 대해 윤씨의 측근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윤씨는 외국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결혼도 외국에서 할 생각이었지만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는 것. 윤씨도 96년부터 6년 가까이 부모 품을 떠나 혼자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 생각도 간절했고, 공부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효도는 때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99년말 뉴욕에서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신해철도 방송에서 “만난 지 1천일이 조금 넘었다”고 밝혔다. 첫 만남 후 가끔씩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호감을 갖기 시작했지만 결혼을 결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해철은 2년 전 기자와 만났을 때 자신은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길들여진 가부장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가정이 자신의 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공포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그가 결혼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였다고 한다. 거기엔 결혼한 누나의 영향이 컸다고.
“집에서 애만 키우는 누나가 있어요. 그런데 누나가 하는 말을 듣다보면 가끔 위대한 사상가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삶의 지혜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걸 보며 ‘내가 아닌 남과 교류를 하는 관계’인 결혼 속에 놀라운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뭔지 궁금했고, 직접 겪어보기로 했어요. 가정이 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길러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암 투병중인 신부와 일본에서 비밀 결혼식 올린 신해철

96년 미스코리아 본선 모습. 오른쪽이 윤원희씨다.

또한 그는 방송에서 결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쪽으로 흘러가게 한 몇가지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아내 윤씨의 암투병. 윤씨가 두 차례나 수술을 받고, 6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은 암환자였다고 밝힌 신해철은 “암투병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내가 지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윤씨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1년전. 자꾸 피곤하다고 해서 처음엔 단순히 몸이 안 좋은 것으로만 알았는데 검진 결과 암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전화로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났던 것 같아요. 그래도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네 팔다리가 다 없고, 신체 어느 부분이 손상되었다고 해도 네가 지금 살아있으면 됐다. 일단 치료하는 데 신경을 쓰자’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는 지난 6개월 동안의 항암치료 기간이 두 사람에게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다”며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힘든 방사선 치료과정을 잘 견디고 있는 영숙이(신해철은 방송에서 윤씨를 이렇게 불렀다)를 보며 ‘기왕 결혼할 거면 이 사람이 가장 힘든 시기에 남편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암이라는 시련이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이다. 또한 윤씨의 소식을 들은 신해철의 어머니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결혼을 서두른 것도 결혼을 앞당기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한다.
“항암치료 받는 데 따라다니다 저도 건강검진을 받아보았어요. 그런데 제가 골다공증이라는 거예요. 졸지에 둘 다 환자가 됐죠. 그렇게 해서 두 환자가 서로를 위로하다 결혼에 골인한 겁니다.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었던 이런 고통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이런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우리 두 사람이 가진 행운에 대해 자다가 깨어나서 생각해도 고마울 지경입니다.”
현재 윤씨의 항암치료는 일단 성공적으로 끝난 상태. 앞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제가 영숙이에게 ‘날라리 암’이라고 놀리기도 해요. 세상에 수술 2번, 방사선 치료 6개월, 총 1년 안에 치료가 되는 암이 어디 있어요” 하며 웃는 신해철의 목소리에서 시련을 이긴 뒤의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로 인해 생긴 손바닥 두배 만한 크기의 상처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는 그의 고백에서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한편 그는 2세에 대한 기대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방사선 치료의 영향 때문에 앞으로 최소 2∼3년 동안은 아이를 갖지 않을 예정이지만, 그후 아이가 생기면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결혼과 관련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지만 신해철은 예상대로 자신의 결혼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와 친한 지인들 역시 “본인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비록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신해철 부부의 행복과 윤씨의 완전한 회복을 기원한다.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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