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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기적을 이룬 사람

양손 장애 극복하고 만화가로 인기 모으는 박경근 화백

“찢어지는 가난과 양손의 장애를 극복하고 이뤄낸 성공을 사람들은 ‘조막손의 기적’이라 부릅니다”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이현희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2.11.14 13:16:00

스포츠신문에 연재중인 만화 <바이러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박경근 화백. 성과 관련한 해학적인 묘사로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는 그가 만화가로선 치명적인 양손 장애인임이 밝혀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장애를 극복하고 조막손으로 이룬 기적 뒤에는 또한 ‘남편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다.
양손 장애 극복하고 만화가로 인기 모으는 박경근 화백

그는 자신을 불구로 만든 어머니를 원망하기는커녕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모신 효자다.

스포츠신문에 인기 만화 를 연재중인 박경근 화백(51)을 찾아간 것은 지난 10월 16일, 바로 그 전날 KBS 1TV 를 통해 그의 삶이 소개된 직후였다. 그래선지 그는 계속해서 걸려오는 격려와 축하전화를 받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요즘은 전화가 하도 많이 와서 하루종일 전화 받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방금도 어떤 아주머니가 어제 TV 보고 계속해서 울었다고, 앞으로도 재밌는 만화 많이 그려 달라고 격려전화를 하셨네요.”
아닌게아니라 그는 만화가 인생 30여년 만에 요즘처럼 신난 적이 없다. 쇄도하는 독자들의 격려전화는 물론 며칠전엔 커다란 초콜릿을 사갖고 화실 앞으로 직접 찾아온 아줌마 팬도 있었다.
“아마 부부관계가 조금 안 좋았었나 봐요. 근데 제 만화 보면서 피식 웃다가 그만 웃음보가 터져서 화해를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맙다고 초콜릿을 잔뜩 사갖고 오셨더라고요. 그런 얘기 들으면 기분 좋죠.”
요즘 들어 박경근 화백이 이렇듯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까닭은 가 30~40대 청장년층으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다가, 만화를 그린 주인공이 만화가로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양손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갓난아이 때 입은 화재로 양손이 불길에 녹아버려
박화백이 갓난아이 때 일이다. 어머니가 호롱불을 켜 놓고 이웃에 놀러 간 사이, 호롱불 등잔이 넘어지면서 이불에 옮겨 붙었다. 집 전체가 홀랑 불타 없어지는 큰 화재를 당하면서 그도 두손이 완전히 불길에 녹아버렸다. 지금도 손가락 형태만 조금 남아 있는 정도.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힘들어보이는 그 손으로 그는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웃음 바이러스’를 매일매일 신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일평생을 장애자로 살아가야 하는 멍에를 안겨준 어머니. 그 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없는가 물었더니 “단 한번도 없어요. 워낙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라 그냥 타고난 운명인가 보다 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너무 어려서 사고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일까.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자는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걸 지켜봤기 때문인지 원망보다는 ‘어떻게 해서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될까?’ 늘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총각시절 결혼조건의 으뜸으로 쳤던 것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여자’였던 걸 보면 그의 효심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13년간 모셨다.
어린 시절 박화백에게 손 장애보다 더 큰 장애로 다가온 건 가난이었다고 했다. 그의 공식 학력은 중학교 2학년 중퇴. 그것도 전부 가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손을 잃은 후에는 몸이 성치 않은 자식 때문인지 점차 집에 발길을 끊으셨어요. 생활비도 거의 대주지 않는 바람에 엄니가 시장통에 나가 활명수 장사를 해서 끼니를 때워야 했죠. 어느날은 시장에 엄니를 만나러 갔는데 쌀뜨물을 한 사발 드시더라고요. 어린 마음에도 배가 고파서 저걸 먹는구나 느낌이 오더라고요.”
결국 어머니는 생활고 때문에 영양실조까지 걸리게 되고, 나중에는 정신이상이 올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양실조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엄니는 정신이 나가셨을 땐 인두로 저와 동생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다가도, 정신이 돌아오면 후회하고 밤새도록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우시곤 하셨어요.”

그는 이 대목을 얘기하며 여러 차례 눈물을 글썽였다. 그나마 가난해도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가 나았다. 어느날 어머니는 “서울에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집을 나가버렸다.
이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 집으로 들어간 그는 힘들게 들어간 중학교마저 중퇴한 채, 농사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한참 배워야 할 시기에 꿈도 희망도 없는 농사일에 매달리려니 그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아버지한테 장사밑천을 좀 대 달라고 떼를 썼어요. 처음엔 반대하더니 돈 천원을 주시더군요. 그 돈으로 가방 사고 비누 사서 이마을 저마을 시장을 떠돌아다녔죠.”
그당시 그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굶는 건 예사. 항상 물로 주린 배를 채우고 그나마 마실 물도 없으면 논물을 마실 정도였다. 잘 곳이 없을 땐 논에 낟가리해 둔 볏짚 쌓아둔 더미 안에 들어가 잠을 청하곤 했다.
“그때 밤하늘을 바라보면 은하수는 흘러가고 별의별 생각이 다 나는 거예요. 엄마도 보고 싶고…. 그때 얼마나 많이 울었나 몰라요.”
그렇게 장터를 떠돌던 그에게 어느날 사촌형이 다가와서 이런 말을 건넨다. “시골에서는 만가지 재주를 가져도 먹고 살 수 없지만, 서울은 한가지 재주만 가져도 먹고 살 수 있어. 서울로 한번 가보지 그래?”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럼 서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동안 비누장사를 해서 모은 몇푼의 돈을 갖고 무작정 서울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서울 와서 어렵사리 찾아낸 어머니의 얼굴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전 말도 못 하게 기뻤거든요. 엄니가 안아줄 걸 기대했는데, 안아주기는커녕 이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 거예요. 표정은 잔뜩 굳어서. 떼놓고 온 자식이 서울까지 쫓아왔으니 걱정스러운 거죠. 또 엄니도 결혼에 실패하고 친정에 얹혀살고 있는데 저까지 오니까 난처했던 거죠 뭐.”
그래도 서울까지 올라온 아들을 내칠 수 없었던 어머니는 단칸 셋방에 살고 있는 이복형의 집으로 그를 안내했다. “지금 생각하면 형수한테 정말 미안해요. 단칸방에 제가 만날 죽치고 앉아 있으니 옷도 못 갈아입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오죽 답답했겠어요?” 하지만 그때 내쫓지 않고 그를 돌봐준 형수에게 지금도 그는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손가락 모양만 겨우 남은 손에 펜을 고무줄로 묶어서 만화 그리기 시작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만화’를 접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서울에 올라왔어도 일자리도 못 구하고, 돈도 없이 어슬렁거리던 그는 우연히 만화방에 가게 된다.
“처음 만화 볼 땐 아무 생각 없이 봤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표지 뒤의 속지를 찢어놓고, 똑같이 그리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그렸을까? 어느날 ‘아, 이제 나한테 만화 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대요. 다른 건 뭘 해도 인정을 안 해주지만, 이건 혼자서 그리면 되니까,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니까 이걸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손가락이 없는 그는 펜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무줄로 펜을 손에 묶어보기도 했지만 섬세한 터치를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고 또 그렸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 만화책 뒤에 난 독자투고란을 보고 당시 순정만화로 이름을 떨치던 만화가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고 돌아온 만화가 선생의 말은 가혹했다. “우리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걔가 발로 그려도 이것보단 낫겠어. 만화 힘들어, 포기하고 차라리 양복기술을 배워보는 게 어때?”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용돈으로 제대로 된 만화도구를 장만하고 다시금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이건 해도해도 안되는 거야… 도대체 안 돼. 선생님 화실에서 본 그림들은 살아서 움직이는데 내것은 아니야. 나중엔 스스로한테 화가 나니까 잠도 안 와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자고 밤낮으로 그림만 그려댔죠. 말하자면 그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독이 오른 거예요. 제가 독종이거든요.”
연습하면 할수록 연필로 그리는 데생에는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섬세한 펜터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유일하게 왼손 엄지 사이에 펜을 꽂을 수가 있는데, 보통의 펜대는 두꺼워 끼울 수도 없지요. 펜촉을 넣기 위해 아래쪽 펜대를 얇게 깎아서 썼어요. 하지만 한두 번만 사용하면 금방 부러져서 왼손은 언제나 잉크투성이였어요”
그러던 어느날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왼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난 구멍에 펜을 끼우고 기역 자로 꺾인 오른손 엄지에 힘을 주니까 서로 지탱하는 힘이 생기는 걸 발견했다. 그후 6개월 동안 잠도 안 자고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린 끝에 만화를 완성한 그는 또다른 만화가를 찾아간다.
“선생님이 좋다고 단번에 계약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계약금으로 5천원(당시 5급 공무원 월급이 9천원이었다)을 받던 날, 너무 기쁜 나머지 세상이 노랗고 가슴이 떨리고 정신이 없어서 집으로 오다가 화실 대문에 머리를 부딪혔을 정도예요.”
손에 펜을 묶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그는 마침내 감격적인 첫 작품 을 출간하게 된다. 이후 에 연재한 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등 여러편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와 는 그의 대표작.

양손 장애 극복하고 만화가로 인기 모으는 박경근 화백

성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돋보이는 만화 (바이러스)는 386세대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박화백의 노력과 끈기도 물론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오늘의 성공에 대해 공을 돌려야 할 숨은 공로자는 따로 있다. 그의 아내 김효자씨가 주인공. 박화백의 그림자로서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하는 김씨는 가능한 한 화실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때때로 종이 귀퉁이에 만화를 그릴 땐 종이를 붙잡아주기도 하면서.
“남편에게 뭔가 해 줄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가끔 일하다가 새벽 두시쯤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면 신나게 요리를 해줘요. 한번도 짜증낸 적 없어요. 저희는 부부싸움을 한번도 안하고 24년을 살았으니까요.”
아무리 금실이 좋다고 하지만 부부싸움을 한번도 안했다니. 김씨는 서로 똑같으면 부부싸움이 되지만, 한쪽이 낮은 자세로 나가면 싸움이 안되는 법이라고 지혜롭게 말한다. 그러면서 남편 박화백이 항상 고압적이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을 대해주기 때문에 자신 역시 그렇게 대한다고 한다.
“전 항상 저 아래쪽 낮은 곳에 있으려고 노력해요. 아내로부터 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인정받으려면 그렇게 하면 도저히 싸울 수가 없어요.” 박화백의 말이다.
사진 촬영을 할 때 너무 꼭 붙어 서서 사진기자로부터 “조금 떨어지는 게 좋겠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사이가 좋은 이들 부부. 그러나 김씨의 친정에서는 처음부터 장애인 사위를 흔쾌하게 받아들였을까.
“반대를 무척 많이 하셨죠. 하지만 전 이 사람한테는 얘기를 안했어요. 안 그래도 결혼 안하려고 하던 사람인데 그런 말까지 전하면 당장에 안한다고 할 거 같아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이 사람은요, 연애할 때도 만나자고 전화 한통 먼저 안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맨날 전화해서 데이트 신청하고 졸라서 결혼에까지 골인을 한 거죠.” 아내의 눈흘김에 박화백이 웃으며 대꾸했다.
“전 그땐 이혼하면 그날로 끝이란 생각을 늘 했어요. 그런데 혹시라도 몇년 살다가 싫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다섯번이나 선을 보고 그 여자들이 다 저랑 결혼하고 싶다고 그랬는데도 언제나 항상 망설였어요.”
박화백은 총각시절 은근히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박화백의 인기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니, 냉큼 아내 김씨가 대답을 대신한다.
“본인은 잘 모를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 전화 목소리가 무척 좋아요. 또 만나면 항상 재밌고 유쾌하고 말도 잘 해요. 사람을 포용하는 면도 있고요. 여자들은 유머 있는 남자를 좋아하잖아요. 이 사람이 꼭 그래요.”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 자랑 일색인 아내 김씨말고도 박화백의 화실엔 또 한명의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올해 스물세살의 딸 박송이씨. 아버지가 그림을 완성하면 컴퓨터로 컬러작업을 맡아 도와주고 있는 그녀는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은 듯 올해 7월 열렸던 동아일보 만화공모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가난과 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의 성공을 거둔 박경근 화백. 그는 얼마전 자신의 인생을 담은 책 을 펴내기도 했다. 그 책에서 발견한 아래 구절은 그의 인생관을 함축하고 있다.
“나는 부동산에 투기하거나 복권을 맞추거나 고스톱을 치거나 포커판을 기웃거리며 횡재를 꿈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그안에서 ‘건강한 도전’을 좋아한다. 그것은 때론 나를 위태롭게 만들어도 끊임없이 나를 계발하며 도전해 나갈 것이다” 매일매일 웃음을 만들어내는 그의 ‘건강한 도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란다.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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