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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 일깨우는 인터넷 살림꾼 황선희 주부

사이버 공간 체험

■ 글·박윤희

입력 2002.10.23 13:30:00

“자주 아픈 딸아이의 건강한 모습 담기 위해 ‘기계치’ 아줌마가 소박한 영상일기를 쓰게 됐어요”
세탁기도 제대로 못 다루는 ‘기계치’ 주부가 디지털 캠코더로 영상 일기를 만들고 인터넷에 가족 홈페이지까지 직접 만들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무공해 농사를 짓고 있는 왕초보 농사꾼 남편의 좌충우돌 체험기와 다운증후군 딸아이의 성장기를 풋풋하고 따뜻한 글솜씨로 엮어낸 주부 황선희씨의 ‘사이버 집들이’에 나서보자. 모락모락 김나는 그의 시루떡 같은 삶이 우리 정신의 허기를 채워준다.
꼭사진을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고장났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머피의 법칙’ 운운하며 카메라를 원수 보듯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카메라가 고장났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주부 황선희씨(47)는 자타가 공인하는 ‘기계치’. 세탁기 만지는 것도 ‘무서워’ 한번 작동 방법을 결정하면 두번 다시 손대지 않고 그대로 쓴다. 80년대 초반, 집에 침입한 도둑이 새로 구입한 고가의 캠코더를 훔쳐갔을 때 남편은 쓰린 속을 달래는 데 한참이 걸렸지만, 그는 속으로 만세를 부른 사람이다. 기계를 만져야 하는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이렇게 기계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그가 직접 웹 디자인을 배워 인터넷 가족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진과 비디오 촬영은 물론 편집, 녹음까지 한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운증후군 증세가 있는 둘째아이 유리(20)가 관절이 자꾸 탈구돼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어요. 늘 집에서 혼자 심심하니까 비디오 보는 것을 좋아해요. 아마 영화 을 천번도 넘게 봤을 걸요. 하도 비디오를 반복적으로 봐서 비디오 기계가 세번이나 완전히 망가졌어요.”
그는 딸아이가 영화 보기를 좋아하니까 자신이 찍히는 것도 좋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딸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비디오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마포도서관, 영상미디어센터를 들락거리며 비디오 촬영 및 제작기술을 익혔다.
“어느 날 갑자기 ‘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기계가 두려웠어요. 그러다가 영상미디어센터에서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제작’이란 강의를 들으면서 누구나 찍을 권리, 생각을 말할 권리 그리고 방송 미디어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는 딸아이가 자주 아팠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딸의 건강한 모습을 디지털 캠코더에 담아두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완성한 작품이 13분짜리 작품 이다. 내친 김에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실시하는 6개월 과정의 웹 제작을 배웠고 마침내 사이버 세상에 ‘버들꿈네(munu55.hihome.com)’라는 방 한칸을 얻었다.
‘버들이를 낳았을 때, 세상에 대한 분노나 거부는커녕 울음조차 시원스레 뿜어내지 못했다. 기껏 내가 세상에 반응한 것이라곤, 어미로서는 부끄럽게도 아파 숨어 버린 것밖에 없다. 정작 돌봄이 필요한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 힘없고 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질질 끌려가며 살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숱한 만남과 사건 속에 이젠 거듭난 존재로 이 땅에 발을 굳게 딛고 서 있다. 뒤늦게 화해한 세상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통해 내 안에 고여 있는 나를 나누고 싶다. 그 작업 중 하나가 홈페이지고 또 하나가 여기에 곁들일 버들이의 영상 일기다.’
그는 가족 홈페이지를 만들게 된 배경을 ‘버들꿈네’에 이렇게 적고 있는데 ‘버들이’는 둘째딸 유리를, ‘꿈’은 첫째딸 연희(21)를 부르는 애칭이다.
‘남편은 생명을 살리자는 꿈을 안고 강원도 산촌 자락에 몸을 맡겼다. 기가 듬뿍 든 황토를 주물러 정성스레 흙집을 짓고 무공해 쌀이랑 콩, 감자, 고구마, 배추, 무를 심고 바른 먹을거리 문화를 일구고 있다. 둘째놈을 몹시 사랑하고 큰놈 연희에게도 많은 희망을 꿈꾸는 사람. 자신의 아픈 아내를 10여년 지켜보며 힘든 세월을 견뎌내더니 이제는 자유인이 되어 팔도 어디인가로 훌훌 떠나 혼자만을 즐기기도 하는 사람. 별난 건강법으로 먹고 자고 마시는 일을 강요해 식구들의 사랑스런 미움을 사기도 하는 사람. 한마디로 그는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랄까?’

그의 소개대로 남편 김상현씨는 5년 전부터 강원도 홍천에서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무공해 농사를 짓고 있다. 농약과 퇴비를 전혀 쓰지 않는 ‘자연농법’을 시도, 오리 농법과 우렁이 농법으로 논농사와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의 밭농사를 짓고 있다. 시골에 내려간 첫해에 그의 남편은 3천여평의 밭에 쥐눈이콩을 심었다. 그런데 추수 때 거두어들인 쥐눈이콩은 겨우 세알! 이 일로 부부는 ‘죽임’이 아닌 ‘살림’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자연의 신음소리에 둔감한 세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를 이 사건에 대해 그는 버들꿈네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남편은) 시골에 내려 간 첫해에 3천평 밭을 일궈 열심히 김 매고도 콩 몇알 못 건졌다. 그때도 남편은 그랬었다. 우린 못 먹어도 덕택에 땅이 살아났다고. 우여곡절 겪은 끝에 그 콩이 온전한 콩알로 서울 집에 올라왔다. 어떤 콩인가를 알기에 시장의 여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중략)… 마침 동충하초를 담았던 플라스틱 원통이 생각났다. 쥐눈이콩을 담고 버들꿈 상표를 넣어 뚜껑을 닫는다. 뿌듯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담은 정성이다. 남편의 삶과 뜻은 모르더라도, 흙의 귀함을 아는 이에게 버들꿈네 생명을 전할 것이다. 나누는 마음, 따로 또 같이.’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바다에서 황씨처럼 따뜻한 ‘인터넷 살림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가 가꾸는 사이버방 한칸에는 이처럼 ‘살림’과 ‘생명’에 대한 경건한 이야기가 ‘버들꿈네 쥐눈이콩’ ‘압력솥 다리미’ ‘선물’이란 제목을 달고 세상 사람들과 교신을 시도한다.
소설가 펄벅이 ‘자라지 않는 아이’라고 표현한 다운증후군 장애인. 펄벅 역시 다운증후군 장애아동을 둔 엄마였다. 황씨는 ‘자라지 않는 아이’ 때문에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딸 유리로 인해 ‘자연’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자연이 병들면 사람도 병들어요. 자연을 살리면 사람도 살아나게 되고요. 남편은 자연을 병들게 하지 않는 바른 먹을거리를 만들어 유리에게 먹이고 싶어해요. 산촌이 자연에는 열려있는 공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닫힌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언제쯤 시골로 내려가게 될지 잘 모르지만, 시골에서 살게 되면 세상을 향한 좀더 넓은 ‘창’이 필요할 것 같아서 비디오 작업과 홈페이지 꾸미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은 유리가 학생이고 몸이 약해 병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강원도에서 온 가족이 모여 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만일 강원도에 가게 되면 인터넷을 이용해 여러가지 일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버들꿈네 방문객들에게 그곳 농사꾼들이 수확한 무공해 농산물을 소개하거나 판매해보면 어떨까 생각중이고요. 그곳 초등학교 아이들을 모아 비디오 촬영교육이나 인터넷 강습도 해보고 싶어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결혼 전 고등학교에서 국사, 세계사를 가르친 교사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작은 생명’이 아름답다고 느껴 ‘작게 살자’고 매일 스스로 다짐하는데, 그래서 인지 사이버 정원 ‘꽃다지’에서 그가 가꾸는 도라지꽃, 금낭화, 개망초 등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도 모두 작아서 사랑스러운 것들이다. 버들꿈네에 올려놓은 ‘제 몫’이란 글에서, 그는 큰 것만 추구하며 ‘살림’을 파괴하는 무한 속도 경쟁 시대를 향해 꽃다지처럼 작은 화두를 이렇게 던지고 있다.
‘쪽파를 다듬는다. 손에 익은 작은 칼로 파 수염을 자른다. 선물로 받은 것인데 앙증맞고 예쁜 것이 실용적이고 일도 썩 잘 해낸다. 어제는 끝이 뾰족한 요놈으로 감자 싹을 파내고, 겨울 지나 쭈글거리는 감자껍질을 벗겼다. 미끈해진 감자를 잘 갈아 오늘 다듬은 이 쪽파를 송송 잘라 넣고 굴을 넣으면 먹음직한 해물빈대떡이 되겠지.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이렇게 제 몫을 잘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다고 움츠려 드는 나는 내 몫을 다하고 있는 걸까?’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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