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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난치병 ‘만성 호산구성 백혈병’ 앓는 아기 현진이의 딱한 사연

“한달 안으로 수술해야 한다는데 수술비가 없어 막막하기만 해요”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정미화 ■ 사진·성경훈

입력 2002.10.09 12:54:00

이제 갓 15개월을 넘긴 작은 몸으로 ‘만성 호산구성 백혈병’이란 희귀병과 싸우고 있는 박현진양. 유일한 치료방법인 골수이식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3천5백여만원이나 되는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부모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아기천사’ 현진이가 건강한 웃음을 되찾길 바라는 현진이 부모의 애타는 사연.
희귀 난치병 ‘만성 호산구성 백혈병’ 앓는 아기 현진이의 딱한 사연
만성 호산구성 백혈병이란 희귀한 난치병을 앓고 있는 15개월 된 박현진양. “현진이를 취재하고 싶다”는 전화에 엄마 한인숙씨(31)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현진이가 힘겨운 골수검사를 끝내고 막 병실로 돌아온 참이라고 했다.
“아이가 너무 작아서 골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며 의사가 수십번씩 기계로 뼛속을 후벼대는 통에 현진이가 울고 발버둥치는데…, 어른도 견디기 힘들다는 그 아픔을 어린 것 혼자 어떻게 견뎌내는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 현진이가 하루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세요.”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현진이 엄마의 절박한 흐느낌에 가슴이 먹먹하게 저려왔다.
다음날, 전남대병원 제1병동에 입원하고 있는 현진이를 찾아갔을 때 한씨는 전날보다 한결 밝은 얼굴로 칭얼대는 아이를 어르며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있었다.
“현진이의 병을 처음 알았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제 잘못인 것만 같아 밤이고 낮이고 아기를 안고 울기만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씩씩해야 현진이도 힘을 내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 앞에서는 울지 않는데, 어제는 현진이가 골수검사를 너무 힘들게 받는 바람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한씨는 애써 웃으며 말했지만 천장으로 돌리는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하다. 현진이는 전날 골수검사로 많이 지친 듯 기운이 없어 보였다. 골수검사도 힘들었지만 벌써 며칠째 열이 내리지 않고 간과 비장이 부어 아이가 많이 시달린 상태라고 했다. 평소에는 방긋방긋 잘 웃어서 병원 간호사들에게 ‘헤보’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이날은 내내 웃음을 잃은 채 칭얼대기만 할 뿐이었다. 여러 차례의 골수검사와 매일 받는 혈액검사, 그리고 수도 없이 먹어야 하는 쓰디쓴 항암제는 연약한 15개월짜리 아기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겨운 시련이다.
여느 아이처럼 현진이도 엄마 한씨와 아빠 박홍수씨(43)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이다. 현진이 부모는 결혼한 지 6년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 용하다는 병원에도 다니고 좋은 약도 많이 먹었지만 아이는 생기질 않았다. 너무나 아이를 갖고 싶어 여러 차례 인공수정도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동안 부부가 겪은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부는 기적처럼 맏딸 세진이(4)와 아들 지호(3)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그후 채 1년이 되지 않아 부인 한씨는 다시 셋째 현진이를 가졌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인데다 박씨의 사업실패로 몹시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부부는 망설임 없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오랫동안 고생하며 바라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에 연년생으로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는 게 고단했을 법도 하지만 박씨 부부는 천사 같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기만 했다.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막내 현진이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방실방실 잘 웃고 애교가 많아 집안의 귀염둥이였다.
그런 현진이가 청천벽력과 같은 백혈병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3월. 생후 10개월 때 일이다. 환절기에 걸린 기관지염이 잘 낫지 않아 찾은 순천의 한 병원에서 의사는 백혈병을 의심했다. 서둘러 전남대병원으로 옮겨 정밀 진찰을 받은 후에 최종적으로 내려진 병명이 만성 호산구성 백혈병이다.
호산구성 백혈병은 백혈병의 일종으로 혈액 속의 백혈구 중 하나인 호산구가 과다하게 증가해 심장과 간, 비장 등 신체 기관을 손상시켜 방치하면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일반적인 골수성 백혈병과는 달리 동양인에게는 드물고 서양의 성인들에게서나 가끔 발생하는 희귀병이다. 더구나 현진이처럼 어린 환자는 세계 의학계에도 보고된 사례가 없어 명확하게 알려진 치료법조차 없는 형편이다.
의료진은 골수이식수술을 현진이의 병을 완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완치 성공률은 70% 정도. 다행히 현진이는 세살배기 오빠 지호와 골수조직이 거의 일치해 부모는 희망을 안고 수술 일정이 잡혀지기만 기다려왔다.
하지만 지난 9월초부터 현진이의 병세가 만성에서 급성으로 돌아서 부모와 의료진을 다시 한번 긴장시키고 있다. 적어도 한달 이내에는 이식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현진이가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열이 내리고 부어있는 간과 비장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만약 상태가 좋아지지 않더라도 골수이식수술은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완치율이 15%정도로 크게 떨어진다는 말에 현진이 부모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현진이의 상태와 함께 부모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나날이 늘어나는 치료비와 거액의 골수이식수술비 문제다. 아버지 박씨는 의류도매업을 하면서 한때 여수, 순천 등지에 커다란 의류직매장을 여러 곳 경영할 정도로 사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96년 홍수로 인해 2억여원의 손실을 보면서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잇따라 불어닥친 IMF에 옷가게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면서 박씨는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
99년 보성읍에서 운영하던 마지막 옷가게를 처분하면서 박씨에게 남은 것은 빈손과 3천여만원의 사채뿐이었다. 지금 현진이네 가족은 15만원짜리 월셋방에서 아버지 박씨가 순천에서 작업장 인부 운송기사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 1백3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6개월 동안 현진이가 한달 이상씩 입원한 횟수만 벌써 네번째다. 현재 병원에서 먹고있는 약만 해도 한알에 2만7천원이나 하는 고가 백혈병 치료제인 글루백을 비롯해서 5가지 정도에 달한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되어 의료혜택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쌓인 치료비만 해도 6백만원이 넘은 상태다.
“급한 대로 여기저기 부탁해서 얻은 친지들의 도움과 카드대출 등으로 그때그때 병원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3천5백여만원이 들어간다는 골수이식 수술비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죠. 이미 사업할 때부터 형제들에게 수천만원씩 피해를 입혔던 터라 더 이상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형제들도 그럴만한 형편이 못됩니다.”
아버지 박씨의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현재 박씨 부부가 유일하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의료보험공단에서 현진이의 수술비에 의료보험 적용 승인을 내줘 수술비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만성 호산구성 백혈병의 치료사례가 없어 의료보험공단 측은 수술비의 의료보험 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병원 쪽에서도 현진이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의료보험 승인을 받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결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3월 아프기 직전 현진이는 엄마 손을 잡고 걸음마를 곧잘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 손을 잡고 일어서기조차 힘들어졌다. “엄마, 아빠, 맘마”를 부르던 귀염둥이 ‘헤보’의 입에선 이제 “아야”라는 신음소리만 터져나올 뿐이다.
지난 5월14일은 현진이의 첫돌이었다. 현진이가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던 무렵이었다. 마침 광주 병원에 가야할 날이었지만 엄마는 현진이를 위해서 서둘러 정성껏 돌상을 차렸다. 현진이가 몹쓸 병마를 이기고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수수팥떡과 길고 긴 무명실타래를 무엇보다 먼저 돌상에 올렸다.
이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져 하루빨리 ‘헤보’ 현진이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웃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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