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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물 & 화제 │ 한 길 걷는 부부

세계 일류 악기유통업체로 성장시킨 코스모스악기 민명술 정진숙 부부

“악기와 함께한 35년, 우리 부부에겐 음악같이 맑고 고운 소리만 납니다”

■ 글·장인석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2.10.09 11:02:00

세계 2백대 악기유통업체에 꼽힐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코스모스악기.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민명술 정진숙 부부는 말 그대로 ‘동반자’다. 열평 남짓한 작은 점포에서 시작, 굴지의 기업으로 키우기까지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신뢰와 정성으로 서로를 대한 이들 부부의 남다른 성공 이야기를 들어본다.
세계 일류 악기유통업체로 성장시킨 코스모스악기 민명술 정진숙 부부
정진숙 감사(59)는 아직도 지난 1월12일을 잊을 수 없다. 그 날은 남편과 함께 단 둘이 창업한 코스모스악기가 창사 30주년을 맞아 1백 10명의 임직원과 함께 축하연을 가진 날이다. 아기를 등에 업고 채 열 평도 되지 않던 매장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피아노며 기타를 닦던 당시를 회고하던 정씨의 눈에 기념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서는 남편 민명술 사장(60)이 보였다. 직원 모두의 노력에 감사한다는 기념사 말미에 민사장은 뜻밖의 말을 던졌다.
“우리 코스모스악기가 30년 만에 오늘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제 아내의 공입니다. 아내 자랑한다고 핀잔을 주는 분도 있겠지만 아내가 없었다면 전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업하기 전, 결혼해서부터 함께 악기를 팔던 시절까지 합하면 정감사는 35년간 제 손과 발이 돼주었습니다.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정감사는 당혹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날에도 남편으로부터 언질을 전혀 듣지 못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쁠 리 없었다. 그렇게 말해준 남편의 마음씀씀이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회사가 커지면서 ‘여자가 회사 일에 간섭한다’는 소릴 안 듣기 위해 노심초사했어요. 여자가, 그것도 사장 부인이 감사를 맡고 있다고 하니까 ‘겉보기와는 달리 깐깐하다’며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부사장님이 70세가 넘은 분인데, 20여년 전 저희 회사로 영입할 때 사장 부인이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말에 ‘껄끄럽다’며 주저하시더래요. 남편이 ‘제가 외국에 자주 나가 회사에서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해명하자 어쩔 수 없이 입사하셨는데, 나중에 회식 자리에서 저를 붙들고 ‘아주머니가 왜 이 회사에 나오는지 알 것 같다’고 인정해준 적도 있어요.”
회사 내에 정감사의 사무실은 따로 없다. 1층 카운터 옆이 정감사의 자리. 자료를 검토하거나 기록할 때만 사장실에 와서 컴퓨터를 사용한다. 나이 많은 직원이 많기 때문에, 여자가 권위적으로 보여서는 안될 것 같아 그렇게 했다는 것.
민명술 정진숙씨 부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악기를 갖고 있는 부부다. 전세계의 유명악기 1만2천종을 공급하는 코스모스악기는 최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의 음악잡지 가 선정한 세계 2백 업체 중 46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악기유통업체.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는 전문악기의 70% 이상, 낙원상가에서 거래되는 악기의 70% 이상이 이 두 사람의 손을 거치고 있다. 그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그간 매스컴에 얼굴을 비추는 것을 꺼려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여야 하는 경제풍토에서 저희 회사는 비록 악기지만 외제를, 그것도 거의 고가품을 수입해서 팔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민사장 부부가 하필이면 외제악기를 수입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다. 80년대 초반 초등학교에서 1인 1기 음악교육을 장려하면서 악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음악 전공자도 날로 증가 추세였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국산악기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사정이 이러니 전문가를 위한 악기와 특수악기 등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실정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이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코스모스악기는 눈부시게 성장해온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가와이를 비롯 로랜드, 로저스, 피베이, 반도렌, 바하 등 세계 유명악기 회사의 독점 공급권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의 악기 및 부품제조 회사 1백여 군데와 거래하고 있다. 서초동 사옥과 낙원상가의 4개 직영점을 비롯해 전국에 12개의 직영점을 갖고 있으며, 6개의 지사와 3개의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코스모스악기의 지난해 매출액은 3백78억원. 지난 3월에는 2001년도 법인세 15억원, 부가가치세 9억6천만원을 성실하게 납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36회 납세자의 날을 맞아 산업포장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성공을 거뒀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으려고 늘 기도드립니다. 지금까지의 30년이 ‘배움의 30년’이었다면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30년을 준비하자고 말하곤 하지요.”
코스모스악기의 성공은 무일푼으로 시작해 성공의 열매를 거둔 민명술 사장 부부 인생 역정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상경, 근면 성실 하나로 13년 만에 내 가게 가져
72년 1월초 민명술 사장은 부인과 함께 집에서 개업 인사의 말을 쓰고 있었다. 악기점 개업을 주위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조그만 가게, 그것도 악기점을 여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민명술 사장에게는 각별한 날이었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상경한 지 13년 만에 마침내 자신의 점포를 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해남군 황산면, 지금처럼 목포까지 도로가 개설돼 있지 않던 그 시절 황산면은 섬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깡촌이었다. 그의 집은 할아버지 대까지는 부농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대에 오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그는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에 ‘남의 집살이’를 자처하며 목포로 떠났다.
“머슴처럼 허드렛일을 하며 중학교까지 마쳤지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열일곱인가 열여덟살 때 서울의 친구 하나 믿고 무작정 서울로 왔지요.”
하지만 친구 역시 고학을 하는 형편이라 그를 도와줄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서울역 앞에서 지게도 지고, 용산역 앞에서 장작도 패고 껌팔이 구두닦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학교에 갈 참이었다.
“그러다가 명동에 있는 악기점의 일을 잠깐 해주게 됐는데, 사장님이 저를 부르셨어요. 내 밑에서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학교도 보내주고 먹이고 재워주겠다고 했지요.”
숙식만 해결돼도 좋은데, 야간학교까지 보내준다니 그는 성심을 다해 일했다. 그가 일했던 한국악기(수도피아노사의 전신)는 피아노 부품을 수입해 조립해서 판매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 처음에는 청소와 심부름을 맡아 했다. 남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며 성실히 일하는 그를 눈여겨 본 사장의 배려로 음악회 티켓 파는 일도 맡게 됐고, 은행 심부름도 도맡아 했다. 야간학교를 졸업하자 이번에는 대학진학을 꿈꾸게 됐다. 열심히 일하며 공부하던 중 입대영장이 나왔고, 그는 비둘기부대의 의무병으로 월남 첫 파병군인이 됐다.
“사장님이 제대하면 다시 회사로 돌아오라고 할 정도로 절 신임해주셨어요. 덕분에 부담없이 군대에 갈 수 있었지요. 월남에서 13개월 복무하면서 남들이 하는 고생 다 해보았지만 제겐 또 다른 의미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월남의 군인들에게 즐거움이란 국내에서 오는 위문편지를 읽는 일 정도였다. 그에게도 수십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그중에서 한 편지가 눈에 띄었다. 필체나 내용이 야무지고 성실하게 보였다. 답장을 보내자 다시 답장이 왔다. 그렇게 1년 간 편지로 사귀다 귀국한 뒤 결혼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정감사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 중매는 호지명이 했다’며 웃곤 하지요.”

세계 일류 악기유통업체로 성장시킨 코스모스악기 민명술 정진숙 부부

월남 파병 당시 위문편지를 통해서 사랑이 싹텄다는 민명술 ,정진숙 부부는 초창기부터 악기사업을 같이 했다.

“그때 전 여상을 졸업하고 교학사에서 경리로 일했는데, 회사에서 단체로 위문편지를 보냈어요. 그때 저만 답장이 와서 좀 화제가 됐었는데, 저이가 회사로 갑자기 찾아와 막무가내로 나오라고하지 뭐예요.”
그때 교학사는 새학기 교과서 준비로 무척 바빴다고 한다. 그런데 웬 새까맣게 탄 군인이 정문에서 “정진숙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댔으니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제대 후 수도피아노사에 재입사한 민사장은 영업부에서 일하며 얼마후 부장으로 승진했고, 두 사람은 67년에 결혼했다.
“주례를 서준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저희 보고 목포로 내려가 지점을 맡으라고 하시더군요. 사장님도 제 집사람을 잘 보았어요. 그래서 집사람은 지점의 관리 및 경리를 맡고, 저는 영업을 맡아 일을 했지요.”
비록 사글셋방이었지만 민사장에겐 신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 세끼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 좁지만 편안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결혼하기 전 피아노창고에서 먹고 자고 했던 그이니만큼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피아노 판매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출판사 일만 하다가 피아노를 팔려니까 처음엔 말이 잘 안나왔어요. 게다가 아이를 업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부잣집 마나님들을 상대하려니,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지요. 목포에선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있었거든요.”
그렇지만 남편에게 ‘창피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직원 한명을 고용하려면 월급이 얼만데, 그 돈의 지출을 막기 위해서도 그녀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목포의 실적이 오르자 두 사람은 대전으로 옮겼고 그후 부산지점을 맡았다. 하지만 수도피아노사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결국 두 사람은 고민 끝에 회사를 나와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72년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내 입점한 자신의 점포였던 것. 민사장은 발이 닳도록 열심히 뛰어다녔다.
“수도피아노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안면을 터둔 분들이 많았어요. 다행히도 그분들이 저를 잘 도와주셔서 장사가 잘됐어요. 단 한해도 적자를 보거나 매출액이 떨어져 본 적이 없거든요. 운이 좋았던 탓이지요.”
그 당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통기타의 덕도 많이 보았다. 통기타의 수요가 급증해 지금의 낙원상가 2층에 통기타를 전문으로 하는 제2의 매장을 열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악기 소매상가가 됐지만 그때는 2층 전체가 거의 텅 비어있었어요. 제가 점포를 열 때 세 개 정도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낙원상가의 터줏대감인 셈이지요.”
77년, 10년 만에 두 사람은 마침내 ‘마이홈’을 장만했다. 남가좌동의 18평짜리 집. 주인집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부부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정감사는 큰애가 펄쩍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고생이 사르르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셋방 살 때는 탁아소에 애들을 맡기고 출근했어요. 당시에는 탁아소가 부족해 홍제동에서 신촌까지 와서 아이를 맡겨야 했죠.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아이 울음소리가 골목길까지 쫓아오면 출근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운 거예요.”
집을 장만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호기를 얻었다. 78년 시행된 ‘악기 수입자유화’. 국산품이 있었던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 등을 제외하면 악기의 대부분은 수입품에 의존해야 하지만, 원칙적으로 수입이 금지되어 있어 외국에 몰래 나가 들여오던 시절이었다.
“악기 판매만 해서는 도약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악기, 특히 전문악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여 일단 악기 수입에 뛰어들자 마음 먹었지요.”
민사장의 동물적인 사업감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외국의 유명 악기사들은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호의적으로 상담에 응했다. 선두주자에게는 예상치 않은 행운이 찾아드는 법. 그는 82년 세계 최고의 악기 제조회사인 야마하의 독점 공급권을 따냈고, 때마침 운좋게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밤업소가 호황을 누리는 틈을 타 전자악기 판매로 큰 이익을 올렸다.
“물건이 모자랄 정도였죠. 전자악기는 거의 모두 외제품에 의존하던 시절이니 공급자가 많지 않아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다만, 악기를 구매해준 밤업소가 오픈하면 인사치레로 찾아가 술을 팔아주어야 하는 것이 좀 고역이긴 했습니다만…(웃음).”
77년 코스모스악기사를 개업하고 90년 주식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회사는 급성장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악기 유통회사, 오퍼상에 불과했다. 민사장은 코스모스악기가 오퍼상에서 탈피해 명실상부한 대규모 악기유통전문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음악인들의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체계적인 애프터서비스 제공과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악기 공급이었다.

그는 자신이 유통시키지 않았어도, 코스모스악기가 독점공급권을 갖고 있는 브랜드는 모두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했다. 직원들도 모두 해외 연수를 보내 선진 기술을 습득시켰다. 수리하다가 안될 경우라면 현지로 보내거나 현지의 외국 기술자를 초빙해 수리해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코스모스악기는 믿을 만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매출액은 급신장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유명회사와 직거래를 통해 중간마진을 없애자 코스모스악기와 거래하는 대리점들도 증가했다. 특히 파이프오르간이나 신시사이저 등 고가의 제품들과 전문가들의 연주용 악기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민사장 부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양한 악기 및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도록 노력하는 한편, 매년 외국의 유명 연주자들을 초빙해 공연을 주최하는 등 음악 관련 문화사업도 펼쳐나갔다.
자녀에겐 엄한, 그러나 아내에겐 자상한 남편
두사람은 용인집에서 함께 출근하며, 퇴근도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함께한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셈인데, 지금까지 심하게 다툰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내가 ‘여자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제가 하는 일에 간섭을 별로 하지 않고 자기 주장도 심하게 펴질 않으니까요.”
“남자 하는 일에 여자가 주장을 많이 하면 집안이 편하겠어요? 또 저이가 비록 겉모습은 터프하고 다혈질 같지만 의외로 자상하고 섬세해요.”
직접 노란 넥타이를 사서 맬 정도로 패션에도 일가견이 있는 민사장은 외국 출장 때면 늘 그 나라 토산품이며 공예품, 접시 등을 사온다. 집안 꾸며 놓은 솜씨도 모두 민사장의 작품. 휴일에는 시장에서 장을 봐오는 것도 그의 몫이라고 한다.
민사장의 취미는 집안 가꾸기 외에 콜렉션. 40년 동안 수집한 그림이 3백~4백점이나 돼 작은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가장 아끼는 그림은 박생광의 ‘십장생’을 비롯해 오지호의 ‘무등산’, 대원군이 그린 난 등이다. 그 외에 작고한 운보 김기창의 그림도 꽤 많다. 최근에는 조선조 유학자 우암 송시열의 편지로 보이는 ‘고서’를 입수했는데, 진품 여부를 감정중이라고. 미술품만 아니라 카메라, 시계, 만년필, 라이터, 파이프까지 콜렉션이 퍽 다양하다.
섬세한 기질과는 달리 그는 엄격한 아버지다. 큰아들 관기씨(34)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MBA와 일본 게이오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현재 부사장으로 재직중인데, 그가 지각이라도 하는 날에는 며느리까지 불러들여 함께 야단을 칠 정도다.
“대학 때도 너무 늦게 다니거나, 버릇 없이 굴면 매를 들었지요. 주위 사람들이 ‘맞는 아들도 대단하지만 때리는 아빠도 대단하다’고 했어요. 딸 은영이도 예외는 아니지요. 대학교 2학년 때 어른에게 인사를 하는데 고개만 까딱하지 뭡니까.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밤새도록 무릎 꿇린 채 35도 이상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가르친 적도 있어요.”
정씨는 당시에는 남편이 자녀들에게 너무 엄하게 대하는 것을 이해 못해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남들로부터 자식들이 하나같이 착하고 예의바르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결과적으로 남편의 훈육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민사장 부부는 지난해에는 경기도 양주군에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무료양로원을 지어 성빈센치오수도회에 기증했다. 이를 통해 오래전 고생만 하다 일찍 돌아가신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며 맑게 웃었다. 신혼여행을 해남의 선친 묘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대신했던 효심 깊은 부부답게, 당시 선친 묘소 앞에서 ‘돈을 벌면 좋은 일을 하겠다’던 다짐을 지킨 셈이다.
올 10월이면 ‘코스모스-가와이’란 이름으로 코스모스악기의 첫 브랜드상품을 출시한다. 비록 OEM방식으로 가와이의 기술로 만들어진 디지털피아노지만 한국인의 정서와 취향에 맞도록 그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가미돼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피아노의 맑은 울림을 가장 좋아한다는 민사장 부부. 온 세상에 이 맑은 울림이 퍼져나갈 때까지 그들의 악기 사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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