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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한 잡지 <작은책> 살리기 나선 교수 출신 ‘농사꾼’ 윤구병

“제 몸 굴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 글·임소영 ■ 사진·박성배

입력 2002.10.08 15:43:00

95년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전라북도 변산에 내려가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윤구병씨.
그곳에 공동체 마을을 만들어 살면서 좀처럼 외부와 소통하지 않던 그가 최근 한달에 한번씩 ‘서울 나들이’를 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월간지 <작은책> 편집인을 맡았기 때문. 낮엔 열심히 땅을 갈고 밤엔 책 밭을 일구는 윤씨를 만나보았다.
노동자를 위한 잡지  살리기 나선 교수 출신 ‘농사꾼’ 윤구병

변산 공동체 마을에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불한당’이라 부른다.

대학교수 출신 농사꾼 윤구병씨(59)가 최근 도서출판 ‘일하는 사람들’의 월간지 편집인을 맡았다. 윤씨는 지난 95년, 15년 동안 재직했던 대학교수직과 반(反) 생태적 도시생활을 반납하고 전북 변산으로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변산에 공동체마을을 만들어 40여명의 식구들과 함께 생태주의적 삶을 실천해왔다. 그런 그가 지난 8월부터 편집인을 맡아 한 달에 한번씩 ‘서울나들이’를 하고 있는 것.
농사꾼 윤씨를 취재하려면 그가 일군 변산 공동체마을에서 최소한 3박4일은 같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선(先)노동·후(後)취재’. 이것은 예전부터 그가 고수해온 원칙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그를 취재하고 싶으면 그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그가 이런 원칙을 깼다.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취재에 응한 것이다. 3박4일 노동에 지레 겁먹고 있던 기자에겐 천우신조(?)나 다름없었다. 좀처럼 자기 고집을 꺾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갑자기 심경 변화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폐간 위기에 몰린 노동자의 글벗 편집인 맡아
“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래도 언론에 자주 소개돼야 독자도 많아질 테니까요.”
이처럼 윤씨의 원칙을 바꾸게 만들고 공동체마을 문턱을 낮추게 한 은 지난 95년에 창간된 현장 노동자들의 글 모음집이다. 윤씨는 그동안 외근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비록 소수 정기구독자 중심이긴 했지만 7년 동안 휴간 한번 없이 꾸준하게 발행된 은 최근 적자에 시달리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지난 6월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평소 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윤씨는 폐간 위기를 보다 못해 스스로 팔 걷어붙이고 살리기에 앞장선 것이다.
“한달에 수십권의 잡지가 쏟아져 나오죠. 하지만 그 중에 현장 노동자들을 위한 잡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은 꼭 필요합니다.”
그는 을 ‘징검돌’이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살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여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공동체마을을 뜨지 않는 그가 한달에 한번씩 ‘외도’를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2002년 8월 혁신호가 나왔다.
“반응이 좋아요. 일부 마니아들로부터 책의 색깔이 모호해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비교적 좋게 평가해주니 힘이 나네요.”
8월 혁신호는 지난호보다 쪽수가 훨씬 늘어났고 내용도 다양해졌다. 노동자들의 글뿐만이 아니라 서해교전, 미국, 지역감정 등 시사적인 글과 일반 서민들의 생활 글도 실었다. 배부 방식도 정기구독자 중심에서 벗어나 대형서점 및총판 배본을 하는 등 일반 독자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노동자들은 자기 글이 소중하다고 생각 안해요.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자긍심이 없어요. 그건 사회에서 그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기 때문이죠. 노동자들의 글 모음집 은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욱 널리 읽히고 알려져야 해요.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도 알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제 몸 굴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 받는 사회’가 윤씨와 의 이상향인 셈. 그는 기자에게도 ‘십 수권’을 얹어주며 3박4일 노동을 빚진 만큼 독자확보에 앞장서 달라는 ‘뼈 있는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기자는 공동체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의무적으로 홍보에 귀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몇번이나 ‘독자 확보’를 약속(?)한 후에야 비로소 그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15년 동안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지냈다. 또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공동대표, 한국글쓰기 교육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월간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그리고 등을 기획했다.
삶의 본디 모습은 ‘두발로 걷고 작은 조막손으로 일해서 사는 것’ 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그는 95년, 교수직을 반납하고 시골로 내려왔다. 그의 귀농을 두고 사람들은 ‘생태주의자의 귀농’ 운운하며 그가 교육운동을 하러 갔다느니, 환경운동을 하러 갔다느니, 농촌계몽운동을 하러 갔다느니 말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교수로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7년 후. 그는 이제 행복할까.
“시골에서 제대로 산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년 깨닫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배워도 다 못 배우겠더군요.”
7년 전, 귀향을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감동할 만큼 치밀한 계획을 짜서 내려왔는데 실제로 농사를 지어보니까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웃었다. 아무리 제때 씨를 뿌리고 정성을 다해 돌봐도 결국은 자연의 뜻대로 된다는 것.
“하물며 풀 자라는 속도도 모두 다른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어요. 도시와 같은 인공적 환경에서는 90% 이상이 사람 의지대로 된다면 시골에서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면 돼요.”
물론 처음보다야 농사일에 어느 정도 손이 익었고 시골생활에도 적응했지만 여덟살배기 ‘초보농사꾼’에 불과하다고 겸손해했다.
현재 변산 공동체마을에 상주하는 식구(이른바 밥상공동체)들은 40여명. 그동안 이곳에 머물다간 사람까지 포함하면 수백명에 이른다. 대부분 윤씨가 쓴 책이나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을 읽고 공동체마을을 찾아온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두살배기 아가부터 환갑이 넘은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며 스님, 목사, 수녀 등 종교인부터 사업가, 주부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가지가지다. 여기에 각자 마음속 사연은 또 어떠하랴. 하지만 공동체마을에서 성별, 나이, 직업, 개인사정 등은 중요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아니 불(不)자와 땀 한(汗)자를 써서 ‘불한당’이라고 부릅니다. 불한당은 공동체마을 식구가 될 자격이 없지요.”
한마디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다. 이들은 매일 밤 작업회의를 거쳐 각자 해야 할 노동량을 정한다. 새벽부터 각자 일정에 따라 2천여평의 논에 곡식농사를 짓고 7천여평의 밭에 들깨, 콩, 고추 등을 심는다.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 등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유기농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어 메주를 쑤어서 간장, 된장을 만들고 감물, 쪽물을 들인 천연염색 옷감을 만들어 판매한다. 또한 변산 근처에서 자생하는 1백여 가지 약초를 발효시켜 효소를 만들거나 약초 술을 담궈 판매한다. 이렇게 생산·판매된 모든 수익금은 공동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소유한다.
“공동체마을에서도 인간관계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지요. 이제껏 도시생활과 사적소유에 길들여져 왔잖아요.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관계를 풀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본적으로 공동체마을 원칙에 동의한 사람들이니까 소소한 갈등은 작업회의 시간에 막걸리 한잔 나누고 나면 금세 풀어집니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곳을 떠난 사람들도 많다. 그들 중 일부는 몇 년 뒤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노동자를 위한 잡지  살리기 나선 교수 출신 ‘농사꾼’ 윤구병

변산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는 ‘교육공동체’다.

변산 공동체마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교육공동체’에 있다. 일찌감치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공동체를 구상했던 윤씨는 누구보다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다. 변산 공동체를 만들기 직전 출간한 를 읽으면 그의 파격적인 교육관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98년, 변산면 마산리의 폐교를 빌려 중고등학교 과정을 개설했다. 하지만 무인가 학교이기 때문에 이곳을 졸업한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하고는 달리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각자 제 힘으로 제 앞가림을 하고 여럿이 어울려 협력하면서 공생의 길을 찾아가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공동체학교의 목표입니다.”
그는 이제까지의 제도교육은 산업사회 유지를 위한 인력을 키우는 제한된 목표는 달성했을지 몰라도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심성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변산 공동체학교에서는 일과 놀이가 중심이 되는 감각 표현교육을 중시한다. 또한 텃밭 가꾸기, 목공, 건축, 요리, 그릇 빚기, 천연염색 등 노작교육을 병행한다.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지 않는 대신 노동을 제공한다. 물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국어·영어·수학 등의 정보과목도 배운다. 현재 학생 수는 모두 아홉명. 이들은 각각의 진도에 따라 1:1 교육을 받고있다.
공동체마을 교사가 되려면 일단 공동체마을에서 1년 이상 농사를 지어야 한다. 현재 공동체 학교에는 15명의 교사가 있다. 공동체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으면 가족이 모두 공동체마을에서 함께 생활해야 한다. 자녀 혼자만은 받아주지 않는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부모가 삼위일체가 돼야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학교의 원칙이다. 잠깐이라도 공동체 학교에 자녀를 맡기고 싶다면 이곳에서 매년 개최하는 계절학교를 이용하면 된다. 이때도 물론 부모가 동행해야 한다. 기간은 6박7일 정도이고 소정의 수업료를 받는다. 수업내용은 갯벌구멍에서 바지락 찾기, 팽이 깎기, 솔잎발효식품 담그기 등 노작교육 중심으로 진행된다. “배우는 아이들은 과도기에 있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도시로 내보내야 하니까요. 아마도 그곳에서 가치관의 충돌을 겪게 되겠죠. 어느 것이 자신에게 더 맞는지 검증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공동체학교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은 도시지역이나 제도권 학교에 있는 것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년 전 검정고시를 치른 아이들의 성적이 ‘너무 좋아’ 일부 학부모들이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욕심으로 이곳에 자녀를 맡기려 하는 현상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그는 도시로 나간 아이들이 언젠가 공동체마을로 다시 돌아올 것도 확신했다. 시골에서 보낸 행복한 유년시절을 잊지 못해 결국 귀농을 결심하게 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들 역시 공동체생활을 하며 교육받았던 시절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마을로 돌아온 그들이 이곳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공동체마을 역사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도시에서 온 사람의 전형적인 약탈정신”이라고 기자를 혼내기도
윤씨는 마을 이곳저곳을 보여주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박4일 노동을 면제받은 염치없는 기자에게 따뜻한 점심도 차려주었고, 밭에서 자라는 작물과도 하나하나 인사시켰다. 1백여 가지 약초로 만든 음료를 선뜻 내주는가 하면 아이들이 직접 그렸다며 학교 화장실의 벽화도 보여줬다. 그러던 중간중간 쓴소리도 잊지 않아 적당하게 긴장시켰다. 인터뷰 내내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기자에게 “필름 좀 아껴 써라” 라고 하는가 하면 학교에 있는 의자가 맘에 들어 “하나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가 “도시에서 온 사람의 전형적인 약탈정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혼쭐이 났다. 또한 유기농산물이 너무 비싸다는 말을 했다가 그의 노여움을 샀다. 도시 사람들은 농촌을 착취하려고만 했지 제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이런 식으로 농촌을 계속 착취한다면 결국 공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공동체마을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앞으로 30년은 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도시로 나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가족을 이루고 살 때까지는 좀더 세월이 흘러야겠지요. 그것은 제 몫은 아닌 것 같아요. 전 일단 씨를 뿌렸으니까 정성을 들이고 수확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의 몫이겠지요.”
그는 지금은 변산 공동체마을을 외딴 섬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변산 공동체마을이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하고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며 자율적인 문화를 형성한다면 제2, 제3의 공동체 마을이 생겨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공동체마을 젊은이들에게 기대했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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