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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황제’ 이주일이 남기고 간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일생’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김순희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2.10.08 12:51:00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9개월간의 폐암투병 끝에 지난 8월27일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씨가 우리 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떠난 이주일은 생전에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여자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비화도 남겼다. 특히 전 전대통령과의 악연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그 이후의 관계를 단독 공개한다.
‘코미디 황제’ 이주일이 남기고 간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일생’
이주일이 떠나던 날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쉴 때 하늘도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 8월27일 오후 3시15분. 쏟아지던 폭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멎었다. 그가 숨을 멎은 것처럼.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9개월간의 투병생활 끝에 폐암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끝내 웃음을 거뒀다. 향년 62세.
‘고이 잠드소서. 가수 하춘화’.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 영안실에 차려진 그의 빈소 입구에 놓인 조화가 눈길을 끌었다. 그의 죽음을 가족 못지않게 안타깝게 여기는 하춘화가 보낸 조화였다.
77년 11월 전북 이리역(현 익산역) 폭발사고 당시 하춘화는 인근의 삼남극장에서 공연중이었다. 폭발사고로 인해 삼남극장도 무사할 리 없었다. 그때 이주일은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불길이 치솟아오르는 극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하춘화를 업고 나와 ‘생명의 은인’이 되었고 이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동료이자 벗으로 지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이주일은 그간의 행동이 말해주듯 60여년에 이르는 생의 궤적은 분명 남다른 데가 있었다. 폐암 말기임을 선고받고 생명을 갉아먹는 암세포와 처절하게 싸우면서도 자신의 과도한 흡연을 자책하며 금연운동에 나서던 모습은 온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그가 금연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본명 정주일. 그는 80년 동양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을 통해 브라운관에 얼굴을 드러내면서 단 2주일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한국 코미디의 간판 스타로 떠올랐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주일’이란 예명은 방송 2주만에 떴다고 해서 붙여졌다. 숱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콩나물 팍팍 무쳤냐?’ 등 그가 남긴 말들은 지금껏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어록으로 남아있다. ‘수지 Q’ 음악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춤추던 모습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65년 샛별악극단의 사회자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80년,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고통스러운 무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40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좌익테러를 당하는 등 가난하고 불운한 초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힘들게 10대를 보냈다. 오랜 친구인 축구인 박종환(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을 만난 것도 축구로 ‘뭔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춘천고 시절이었다.
61년 군에 입대, 군예대에 배속돼 처음으로 무대에 서며 희극배우 수업을 쌓은 그는 제대후 64년 서울로 올라와 약장수들의 쇼 MC를 맡으며 소위 말하는 ‘딴따라’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유랑극단을 전전하던 이주일은 때로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때로는 연예인들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짓눌리며 무명의 설움을 삼켜야 했다.
그의 빈소가 차려진 국립암센터에는 코미디언·가수·영화배우 등 연예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졌고, 정치권에서도 이례적으로 논평을 내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남편을,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은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가 숨을 멎기 두 시간 전 개그맨 이봉원이 병문안을 왔을 때 이주일의 부인 제화자씨(64)는 “남편의 옷(수의)을 가지러 집에 가야겠다”며 급히 분당 집으로 향했다. 제씨가 병원으로 돌아와 막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담당의사는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두 딸과 함께 남편의 임종을 지켜본 제씨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이주일은 지난해 연말 무명시절부터 자신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의 ‘평생’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 삼호프로덕션 최봉호(이주일 장례위원회 부위원장) 회장에게 “내가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전해 듣고 가장 먼저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며 “미안하기도 하고, 잘 해주지 못한 게 영 마음에 걸린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자신의 회고록 (한국일보에 연재)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내와 아이들 생각을 하면 나는 천하에 몹쓸 남편이자 아버지다. 얼굴이 예뻤던 집사람은 젊은 시절 내게 점 찍혀 지금까지 고생만 해왔다. 62년 군예대 시절 결혼했으니 벌써 40년째다.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험했으면 결혼 후 6년 만에 밥상을 들여놓았을 때 아내가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말했을까 싶다. 여기에 내가 결혼한 지 1년도 안돼 고2짜리 여학생과 눈이 맞았을 때부터 여자문제까지 고심해야 했다.”
지난 91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뜬 7대 독자 ‘창원’에 대한 미안함은 더했다. 한때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던 아들은 생활기록부에 아버지 직업을 항상 ‘상업’이라고 적었다. 연예인이라고 쓰면 누구냐고 물어볼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주일이 출연하는 극단쇼를 알리는 포스터가 동네 벽에 붙는 날이면 누가 볼 새라 포스터 한 귀퉁이를 찢곤 했다. 포스터에는 무명 사회자인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 친구 놈들은 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데 저도 포니 중고라도 한대 사주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주일은 야단을 쳤다. “그렇게 자가용을 타고 싶으면 내 차를 타. 내가 버스를 타고 다닐 테니까 네가 벤츠를 타라고. 건방진 녀석.” 이렇게 엄하게 키운 아들이 술을 마시고 운전기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주일은 또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의 사생활을 비교적 담담하고 솔직하게 ‘회고록’에 털어놓았다. 다음은 이주일이 직접 밝힌 일화중의 하나.
“그러니까 방송 출연은 거의 안하고 영화에만 매달려 있던 81년 여름에 일어났던 일이다. 강릉 경포대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숙소는 근처의 현대호텔. 방은 물론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최고급 스위트 룸이었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 저녁에 스태프들과 식당에서 회를 먹고 있는데 밖에 여자들 여섯명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중 한명이 당시 최고로 잘 나가던 여자 탤런트였다. 나와는 방송사에서 서로 눈인사만 나눈 사이였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지금도 간혹 TV에 나오는 당시 최고의 스타였다. ‘어이∼’ 나는 그녀들을 불렀고 우리는 합석을 했다. 그리고 술을 진짜 많이 마셨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들의 숙소는 인근 장급 여관이었다. 성수기여서 호텔을 못 구했다는 것이다. ‘내가 특급 호텔에 묵고 있으니 모두 가서 2차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리고는 호텔방에서 나 혼자서 여자 여섯명과 술을 마셨다. 새벽 5시까지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셨다.
그때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했다. 코디네이터와 매니저 등 나머지 다섯명은 다른 방에 가서 잤고, 나는 그 여자 탤런트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버린 것이다. 다음날 아침 10시. 순간 이상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아내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다. 아내는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여자랑 알몸으로 누워있는 게 그대로 발각됐으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당신, 뭐 하는 놈이야? 이 자식아, 옷이나 입어. 나가. 자식아!’ 뭐라고 할 얘기가 없었다.

‘코미디 황제’ 이주일이 남기고 간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일생’
며칠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협박했다. ‘언론에 폭로해 매장해버리겠다. 너, 유명해졌다고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는 모양인데,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 대신 이실직고하면 한번은 용서해 주겠다. 보통 사이가 아니니까 코디네이터까지 데리고 간 것 아니냐.’ 아내의 화는 풀리지 않았고 서울 한남동에 살고 있는 그 여자 탤런트의 집까지 찾아간 것이다. 예쁘게 잘 차린 살림을 보니까 화가 더 난 모양이다. ‘이거 다 내 남편이 해준 것이지? 너, 당장 한국을 떠나라.’ 그리고는 경대며 장롱을 모두 부숴버렸다. 난 그때 천원짜리 한장 주지 않았는데….
결국 그 여자 탤런트는 1년 동안 미국에 머물러야 했다. 훗날 그녀는 ‘여자로서 사모님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내게 말했지만, 그 사건 이후 나는 늘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당해야 했다. 지금도 그날 밤 내가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었는지는 진짜 모르겠다.”
이주일은 “어쨌든 남자들이여, 매사에 조심할지어다”라는 농담을 곁들여 가며 밝히기 껄끄러운 자신의 여자문제를 고백해 ‘솔직한’ 그의 면모를 엿보게 했다.
그의 빈소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해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수성·이한동 전 국무총리, 정몽준, 김상현, 한승수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3천여명에 이르는 문상객 중 유독 눈길을 끈 사람은 다름 아닌 전두환 전대통령이었다.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웠던 유랑극단의 무명 사회자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20여년 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은 후 황금기를 구가하던 그는 뜻밖의 이유로 연예인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방송출연금지’ 조치를 당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의 코미디가 저질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일 뿐. ‘전두환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아 방송출연이 금지됐다’는 것은 당시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방송출연금지’는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고 분통이 터져 할복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두환 정권에서 방송출연이 금지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TV브라운관 대신 밤업소에서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냈다.
“제가 방송출연이 금지된 것은 다 중계방송을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연 날리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네∼. 많은 연들이 날고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연들입니다. 한 년, 두 년, 세 년. 참으로 휘황찬란한 연들입니다. 온갖 잡년은 다 모였습니다. 턱 나온 년도 있고, 까진 연놈도 있습니다….”
이주일 자신도 ‘외모와 데뷔 연도가 비슷한 두 사람에 대해 이러저러한 얘기가 많으니까 전 대통령이 아예 이주일의 방송출연을 금지시켰다’는 세간의 소문을 그대로 믿었던 터라 밤무대에서 자신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긴 코미디로 분풀이를 했다. 방송출연금지 조치 이후 뒤틀린 이주일과 전 전대통령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이 해소되었다는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이주일이 타계한 다음날인 8월28일 오후 4시경. 빈소를 찾은 전 전대통령은 분향을 마친 후 기자들에게 “이주일씨가 화장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나도 군대시절부터 화장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그의 화장 선택이 화장문화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얘기를 남긴 채 자신과 이주일과의 ‘악연’에 대한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빈소를 떠났다.
지난 9월14일, 전두환 전대통령측에 ‘이주일씨와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 측근은 퇴임 이후 아직까지 언론과 단 한번의 인터뷰도 응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는 게 전 전대통령의 뜻이라며 거절했다. 또 그날은 “연희동 자택에서 공식적인 행사가 있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했지만 접견 예약도 하지 않은 채 전 전대통령 자택으로 향했다. 오후 6시. 토요일이라 비서진은 퇴근한 뒤였고 집 앞에는 경찰병력이 자택 출입을 막고 있었다.
전씨의 대외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장혜진 비서관은 “(전두환전대통령과) 이주일씨와의 오해는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그에 대해 따로 어떤 말씀을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이주일은 91년 11월 개그맨 최병서와 함께 전 전대통령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와 관련, 9월15일 최병서를 만나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주일씨) 아들 창원이가 죽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형님(이주일)이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야, 너 연희동에 살았지. 그러면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알어?’라고 묻더라고요. 아들 장례식장에 전 전대통령이 장세동 전 안기부장,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측근 30명을 이끌고 영안실에 찾아왔던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약속도 하지 않고 무작정 연희동에 갔는데 경찰들이 앞을 막으면서 ‘예약하고 오셨습니까’라고 묻더라고요. 거짓말로 ‘그랬다’고 대답하고는 초인종을 눌렀죠.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라 경찰이 더 이상 제지하지 않더라고요. 전 전대통령은 비서로부터 ‘이주일씨가 왔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맨발로 달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잰걸음으로 현관으로 나와 반갑게 맞이해주더군요.”
이때 이주일은 이미 전 전대통령과 친해진 이후였다.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친해지게 된 것은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8년 전씨가 백담사로 들어간 후 이주일은 다음해 그를 찾아갔다. 친구인 박종환 감독과 함께 비밀리에 백담사를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급속히 친해졌다. 그리고 90년에 한번 더 찾아갔다. 항간에는 백담사 독대를 계기로 지난 방송출연금지에 대한 ‘사과’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원’이 풀린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83년 6월이다. 박종환 감독이 청소년 축구 4강 신화를 이룬 직후 전 전대통령이 박감독과 이주일을 직접 불러 두 사람의 돈독한 우정을 칭찬하는 자리였다. 그때 전대통령은 “이선생님, 왜 한동안 TV에 안 나오셨죠? 전 국민을 웃기신 분이 TV에 갑자기 안 나오니까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주일은 ‘모든 일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저지른 일’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최병서와 함께 불시에 찾아가자 전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이, 그것도 7대 독자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겠냐면서 위로의 말을 많이 해줬어요. 슬픔은 술로 달래는 게 좋다면서 안방에 술상을 차렸어요. 백담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며 자신이 겪었던 여러가지 경험들을 들려주면서 슬픔을 극복하고 살라면서 아픈 마음을 많이 다독여 줬어요. 저를 보더니 ‘이 친구가 나를 가끔 바보를 만든다’면서 호탕하게 웃더라고요. ‘그렇게 전직 대통령들을 상대로 성대 모사하는 게 기분이 나빴냐’면서 ‘아직까지 내가 성대모사를 한 사람 중에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니까 ‘아니다. 기분 나쁘지 않다’라며 웃으면서 대답하더라고요.”
그날의 ‘특별했던’ 술자리는 오후 7시30분에 시작돼 자정을 넘겨서야 끝났다.
전 전대통령은 올해 3월초 이주일이 살고 있는 분당 집에 측근 몇명을 데리고 와서 한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다 돌아갔다. 전 전대통령은 “암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정의원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줬으니 반드시 건강을 되찾을 겁니다. 몇십년 동안 자기 몸을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하늘이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하세요” 라는 말을 하며 이주일의 쾌유를 기원했다고 한다.
아들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그는 실의와 좌절 속에서 정계 진출을 선언했다. 92년 총선에서 경기도 구리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코미디 무대가 아닌 국회의사당 단상에서 정부 고위 관료를 호통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96년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납니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SBS 를 맡은 그는 1백회를 끝으로 97년 브라운관을 다시 떠났다. 그리고 99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자신의 코미디 인생 30년을 결산하는 무대를 가졌다. 세종문화회관은 그의 무명시절이던 72년 여름, 가수 남진 쇼를 이끌던 단장에게 “못생긴 게 어디 남진 쇼 사회자 자리를 넘보느냐”며 발길질당했던 바로 그 자리(옛 서울시민회관)였다. 3일에 걸친 공연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12월1일의 무대는 그가 생전에 펼친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이날은 그의 60회째 맞는 생일이기도 했다.
이주일은 폐암을 선고받고도 병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많은 암환자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심어주었다. 힘겨운 투병생활 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주일. 서민들을 울리고 웃긴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웃음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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