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픽 & 화제

정몽준 의원 부인 김영명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살아가는 이야기’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연합뉴스 제공

2002. 10. 07

각종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남다른 내조를 해온 아내 김영명씨의 공이 크다. 그녀가 처음으로 털어놓은 정의원과의 만남, 싸우며 깊어진 부부사랑, 자식교육 등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 & 남편의 생모 기사를 보며 느껴야 했던 가슴 아픈 심경 고백.

정몽준 의원 부인 김영명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살아가는 이야기’
정몽준 의원(51)이 9월17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본격적인 대권경쟁에 뛰어들었다. 신당 창당 등 대권을 향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그는 월드컵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며 올 대선에서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김영명이 없다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의원의 아내 김영명씨(46)는 그동안 최고경영자의 아내, 정치인의 아내, 월드컵조직위원장의 아내로서 ‘특별한’ 내조를 해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김동조 전 외무장관이 주일대사로 부임하면서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김씨는 그후 김 전장관이 주미대사로 발령받으며 대부분의 학창생활을 미국에서 보냈다. 이런 경험으로 일어와 영어에 능숙한 김씨는 미 웨슬리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해 식견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故) 정주영 회장이 88올림픽 유치활동을 벌일 때 수행을 하기도 했는데, 능숙한 외국어 실력과 상대를 사로잡는 화술로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당시 취재기자들의 후일담이다. 또한 그의 진가는 월드컵 유치 활동을 벌일 때도 빛을 발했다. FIFA 집행위원 아내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그들로 하여금 남편들의 마음을 돌리게 하고, 행사장에서는 잔잔한 미소와 화술로 사람들을 사로잡아 ‘미스 스마일 월드컵’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 궁금증을 갖게 했던 그가 대통령 후보의 아내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얼굴을 내비쳤다. 그런 김씨를 9월13일 오전 11시에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2층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 언론에 나오는 걸 무척 꺼려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이들 할아버지도 유명하셨고 아버지도 정치와 축구 때문에 언론에 많이 나오는데, 아이들은 그런 것을 싫어하는 편이에요. 친구들이 편하게 놀러오고, 자고 갈 수도 있는 평범한 가정생활을 원했어요. 그래서 저만이라도 언론에 안 나가려고 한 거죠. 엄마로서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던거죠.”
- 정의원의 대선출마를 반대했던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처음엔 많이 망설였어요. 남자들의 일도 중요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도 중요하지만 저로서는 아이들과 가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월드컵 기간에 우리 국민들이 이루어낸 성과들을 보면서, 또한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똑똑히 확인하면서 더 이상 남편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92년 대선 때 시아버지를 도왔고, 남편을 도와 국회의원 선거도 네번이나 치른 경험이 있지만 이번 선거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선거가 없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도 만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가볼 생각을 못했던 곳에도 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대선 때는 총선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돼요.”
- 지금 “선거가 없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을 만나고, 가볼 생각을 못했던 곳에 갔다”고 했는데, 김영명씨는 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결혼 후에는 대재벌가의 며느리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보통 서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사람은 다 같다고 생각해요. 서민이든 재벌이든 다 정을 주고 받고,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기본적인 공통점이 차이점보다 더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전부 체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서민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 서민층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셨는데, 재래시장에 가본 적이 있나요?
“시장은 주로 제가 봐요. 신혼살림을 울산에서 했는데, 울산중앙시장에 가면 이것저것 조금씩 가져다 파는 할머니들이 있어요. 그때는 참 철이 없어서 그분들에게 콩나물 2백원어치 사면서도 깎곤 했어요. 이제는 그렇게 못하죠(웃음). 그때는 가계부도 꼬박꼬박 적고 그랬어요.
- 정의원은 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닮아 검소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사실인가요?
“궁상맞다고 할까봐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예요(웃음). 남편은 지금도 양말에 구멍이 나면 기우라고 해요. 와이셔츠도 목깃과 소매 끝이 낡으면 그 부분만 새 천으로 갈아서 입어요.”

정몽준 의원 부인 김영명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살아가는 이야기’
-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또 외국의 귀빈들을 상대한 경험도 많아서, 만약 퍼스트레이디가 된다면 지금까지의 퍼스트레이디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제일 중요한 건 남편이 가장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내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 공식적인 활동은 남편의 손이 못미치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싶어요. 한쪽이 못하는 일을 커버해주는 것이 부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월드컵 유치활동을 하면서 정의원이 FIFA 집행위원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화환을 보내 호평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남자인 정의원의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은데, 김영명씨 생각이었나요?
“그렇지 않아요. 남편은 꽃을 좋아해요. 남편을 처음 만나고 한달 쯤 지났을 무렵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어떻게 알고 꽃다발을 건네주더라고요. 남자에게 처음 받아보는 꽃이어서 기분이 좋았죠(웃음). 그후로도 생일 때 다른 선물은 안 해주어도 꽃은 꼭 보내줘요.”
- 두 분은 78년 미국 유학중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만에 서울 정동교회에서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 이국 땅에서 사귀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1년 동안 데이트를 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많이 만나지도 못했어요. 저는 그때 졸업반이었고, 남편도 대학원 과정을 밟기 위해 막 유학을 온 상태여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공부하느라 바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기억이 없어요. 사람들이 프로포즈를 어떻게 받았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어요. 그런 것도 없이 물 흐르듯 결혼까지 갔거든요. 그래서 가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두 사람은 연애시절 주말에 만나 테니스를 즐겨치곤 했다고 한다. 스포츠광인 정의원으로서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따뜻한 데다 테니스까지 잘 치는 김씨를 천생배필로 확신을 했던 모양이다. 그는 지난 94년 FIFA 부회장에 당선된 후 처음 가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연애시절 김씨와 결혼해 멋진 테니스 부부 파트너가 될 꿈에 부풀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정의원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우선 키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어서 어머니가 늘 ‘너는 키 큰 신랑감 없으면 시집도 못 갈 거다’라고 농담을 하곤 했었어요. 그런데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키가 크니까 좋더라고요. 첫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의원은 과거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자’는 마음으로 산다”는 다소 이색적인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 정회장은 “결혼식 때 주례들이 대부분 서로 존경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서로 존경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존경하기 어려운 데도 자꾸 무리해가면서까지 존경하는 것보다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부부애정에 훨씬 더 효과적이에요. 왜 성경에도 ‘궁휼히 여기사’라는 말이 있잖아요”하며 웃었었다. 정말 정의원의 말대로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 정의원 부부도 부부싸움을 할까 궁금합니다.
“그럼요. 하죠. 부부싸움 안하는 부부가 있나요?(웃음)”
- 화해는 어느쪽이 먼저 하는 편인가요?
“남편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뚜렷해요. 그리고 솔직해요. 그게 정치생활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가식이 없이 솔직한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때로 막 화를 내기도 하지만 금방 풀어져요. 아침에 출근할 때 말다툼을 하면 사무실에 도착해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꼭 화해를 하자며 전화를 해요. 그러면 전 그때까지 삐친 척하며 전화를 받긴 하지만 기분은 좋죠.”
- 주로 싸우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남들은 신혼 때는 깨가 쏟아진다고 하는데, 우린 그때도 많이 싸웠어요. 저는 고향이 경상도고, 여자형제들이 많아요. 그런데 시댁은 강원도고 남자형제들이 많아요. 그래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요. 그런 것 때문에도 많이 싸웠고, 또 음식 때문에도 많이 싸웠어요. 신혼 초에 전 나름대로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는데, 남편은 그걸 먹으면서 시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섭섭하죠. 다른 걸로도 많이 싸웠는데, 지나고 나면 ‘왜 그런 것 때문에 싸웠나’ 싶더라고요.”
- 정의원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워낙 타고난 건강체질인데다 스스로 관리를 철저히 해 몇달씩 해외출장을 다녔어도 크게 아픈 적이 없었어요. 건강관리법도 특별한 것은 없어요. 보약을 안 먹는 대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거든요. 그래서 식사준비에 신경을 쓰는데, 된장찌개와 된장국, 김치를 좋아해 빼놓지 않고 식탁에 올리는 정도예요.”
- 실제 나이에 비해 피부가 아주 고우신 것 같은데,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글쎄…, 특별할 것이 없는데…, 제 생각엔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아들도 대학 신입생 땐 매일 밤새 놀고 아침에 들어오니까 얼굴이 무척 거칠었어요. 그런데 2학년 올라가면서 생활에 밸런스를 찾으니까 피부가 좋아지더라고요. 피부관리실은 안 가는 편이에요. 오히려 운동을 하는 게 피부관리에 좋은 것 같아요.”
- 지난번에도 정의원과 함께 지리산에 가시는 걸 봤는데, 산을 잘 타는 것 같습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북한산이 가까우니까 남편이랑 종종 가요. 헬스는 밖에 가서 하기가 좀 그래서 집에 자전거를 갖다놓고 하고 있는데, 20분만 해도 땀이 쫙 나요. 일주일에 4일 이상 하라고 해서 지키려고 하는데, 대선 때문에 점점 바빠지니까 그것도 힘드네요.”

- 자녀가 대학 2학년인 아들, 대학 1학년인 딸, 고3인 딸 외에 초등학교 1학년인 늦둥이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계획 의식이 부족해서 그냥 그렇게 됐어요(웃음). 사실 넷째를 가졌을 때 굉장히 무안한 경험이 많아요.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 묻기도 했어요.”
막내 예선군이 태어난 것은 지난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축구예선전이 한창 열리던 때였다. 당시 올림픽 예선전이 열리던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막내의 출산 소식을 접한 정의원은 “축구대표팀이 올림픽 지역예선을 통과했으니 아이 이름도 ‘예선이’로 하자”고 제안했다는 후문이 있다.
- 정의원의 자녀교육 방침은 어떤가요?
“남편은 늘 공부 너무 많이 시키지 말라며 ‘가끔 멍하니 천장 쳐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가끔 ‘괜히 동네 엄마들 말 듣고 너무 많이 시키는 것 아니냐’며 저를 견제하곤 하죠. 저도 첫애 때는 다른 엄마들처럼 부지런히 학원에 보내고 그랬거든요. 남편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까 아이들에게 운동, 특히 수영을 많이 시키라고 강조해요.”
- 정의원은 애들과 잘 놀아주는 편인가요?
“애들하고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 모처럼 쉬는 날이면 애들하고 놀고 싶어 하면서도 좋아하는 등산도 가고 싶어해요. 그래서 애들에게 등산을 같이 가자고 하는데, 어려서는 곧잘 따라오더니 좀 크니까 안 가려고 해요. 등산 가자고 하면 막 방안에 숨고(웃음). 부모 자식간에 취미가 같아야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축구는 온 가족이 다 좋아해요. 농구도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아이들과 같이 농구를 하곤 하죠.”
- 아버지가 너무 바쁜 것에 대해 자녀들이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나요?
“애들이 클수록 아빠의 역할이 중요해요. 어렸을 때도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엄마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클수록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아이들도 바쁜 아빠에 대해 불만이 없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 남편은 자기가 하는 일에 아이들을 참여시키려고 하는 편이에요. 등산갈 일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하고, 식사 모임이 있을 때에도 아이들이 참석해도 좋은 자리면 꼭 데리고 가요. 그렇게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 정의원이 워낙 바빠 둘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나요?
“집에서는 아이들이 많고 산만해서 그런 분위기를 즐길 수가 없어요(웃음). 보통 시간이 나면 등산을 가거나 테니스를 치는데, 가끔 분위기를 내기 위해 둘만 외출해서 식사를 한다든지, 그렇게 해요. 남편은 세세한 것까지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좋았던 게 축구협회 일로 둘이 해외출장을 갈 일이 많았어요. 총회 등을 할 때 보통 부부를 함께 초청하거든요. 그럴 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겨요.”
끝으로 김영명씨에게 세간에 돌고 있는 정의원 생모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 거북한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정의원의 생모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그건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본인(정의원)이 직접 말씀하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그 문제에 대한 제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면, 그 문제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인데, 그게 과연 대통령의 자질과 관련이 있는 부분인가 묻고 싶어요. 출생이라는 건 자신의 의사와 상관이 없는 거잖아요. ‘나는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출생의 문제를 건드리는 게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자체가 서글프고 답답해요. 그런 풍토가 실망스럽고….”
“아이들이 잡지에 난 아빠의 생모기사 읽었다고 해 가슴이 아팠어요”
- 정의원의 생모가 따로 있다는 건 언제 처음 알았나요?
“정의원이 언제 알게 되었는지도 본인이 직접 말씀하실 거예요. 저는 몰랐어요.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걸 언뜻 들은 적은 있어요. 그렇지만 누가 진지하게 말을 한 적은 없어서 저는 그저 ‘남편이 공인이라 이런 소문도 도는구나’ 하고 지나쳤어요.”
- 아직까지 정의원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한 건가요?
“그동안 언론에서 정의원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을 제기했잖아요. 그에 대한 말을 하는 중에 그 이야기도 했어요.”
- 이 문제가 불거지는 것에 대해 가족으로서의 심정은 어떤가요?
“그 문제가 공개된다는 게 남편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어머니도 아직 살아계시고, 저희 아이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솔직히 아이들은 그 이야기에 대해 앞으로도 모르기를 바랐어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이야기를 했어요. ‘혹시 아빠가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면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자기들도 벌써 잡지에서 봤대요. 그런 게 엄마로서 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괜히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들로서는 아무래도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게 가장 좋죠. 그런데 그런 것을 못해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김영명씨는 난감한 질문에 대해 서로 큰 동요없이 담담하게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선하게 웃던 눈빛이 마지막에 흐려지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대통령 후보의 아내로서 견뎌야 할 몫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는 “먼저 남편이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에, 더 할 이야기가 있으면 그때 하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