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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어도 좋아> 주인공 부부가 말하는 노인의 성과 사랑

■ 글·김선중 ■ 사진·메이필름 제공

입력 2002.10.07 13:23:00

노부부가 벌이는 7분간의 롱테이크 섹스신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외’판정을 받은 영화 <죽어도 좋아>. 소외된 노인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호평을 받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첫눈에 반한 뒤 한달도 못돼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박치규·이순예씨.
그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씨 부부가 털어놓은 ‘젊은이와 똑같이 열정적인’ 노인의 사랑.
영화  주인공 부부가 말하는 노인의 성과 사랑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노인의 성(性)문제를 양지로 끌고 나와 공론화시킨 (박진표 감독, 메이필름 제작).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외’판정을 받아 사실상 상영금지에 묶여있다. 우리나라에는 ‘등급외’ 판정을 받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극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와 전주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노인들의 성기노출 및 오럴섹스 장면이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극약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에 영화 관계자들과 시민단체 등은 ‘표현의 자유’와 ‘볼 권리’를 주장하며 재심의를 청구했다. 정확한 판결은 10월말쯤 내려질 전망인데, 잘하면 11월쯤엔 일반인도 화제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진다.
가 사회·문화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함께 주목을 받는 사람은 바로 박치규(71) 이순예씨(71). 이 영화의 남녀주인공인 두 사람은 아마추어 배우이자 실제 부부다. 이미 영화 에서 평범한 할머니인 김을분씨가 천연덕스런 연기를 펼친 바 있지만, 의 노부부가 보여준 자연스러우면서 대담한 연기력에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
시대를 잘 타고났다면 유명배우가 되었음직한 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컸지만, 영화사측과 박감독은 철저히 노부부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 했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어렵사리 주인공 부부의 사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2001년 2월21일 성동구 노인복지회관에서 처음 만난 박치규 이순예씨는 그야말로 첫눈에 서로 불꽃이 튀었다고 한다.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를 한탄하며 두 노인은 그 길로 택시를 타고 박치규씨의 창신동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하늘이 맺어준 연분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애틋해 했다. 일찍이 배우자와 사별했던 두 사람 모두 소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특히 ‘청춘가’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른다고.
“그해 3월14일 할머니 앞으로 적금을 하나 넣어주고 다음날인 15일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어요. 서두른 감도 없지 않지만 살 만큼 살았는데 이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왔는데 할머니를 만난 다음부터는 천하를 얻은 기분이랄까요?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더욱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욕심도 생기고요.”

영화  주인공 부부가 말하는 노인의 성과 사랑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색시가 너무 예쁘다는 할아버지의 극찬에 할머니는 새색시마냥 수줍어했지만 행복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순예씨 또한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홀로 지내는 밤이 못 견디게 두렵고 고독했다며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감사했다.
“외로움의 고통과 참혹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자식들도 각자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위로가 될 수가 없어요. 평상시에 늘 ‘얼마나 살다 간다고 이렇게 고독하게 살아야 하나, 좋은 남자 만나면 정말 잘해주고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할아버지를 만난 겁니다. 나를 극진히 아껴주니 더욱 고맙고, 나 역시 다른 남자는 찾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 분을 사랑합니다.”
얼마 전 커플링도 나눠 꼈다는 두 사람은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있다면 재혼을 적극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식들과 세상사람들의 눈총이 무서워 재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고독하게 사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생활비는 할아버지의 연금과 집세에 의존하고, 살림과 가계부 정리는 전적으로 할머니의 몫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아쉬울 것 없이 알콩달콩 사는 두 사람은 매일 손잡고 산책을 하고, 저녁상을 물리곤 장구 치며 소리를 하는 재미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 줄 모른단다.
“몇 달 전 내가 굉장히 아픈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가 청소 빨래 식사까지 도맡아 해주고, 간호도 극진히 해줘서 울컥했어요. 정말 고마웠고 다음에 영감이 아프면 내가 좀더 잘해줘야지 하며 다짐까지 했지요. 서로의 몸이 아플 때 특히 배우자가 간절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파격적인 섹스신이 있는 영화 에 박치규 이순예씨가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박진표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작년 3월 박감독이 노인들의 사랑방식을 취재, 연출한 경인방송 특집다큐멘터리 3부작 에 두 노인의 이야기가 실렸던 것. 박감독은 나이를 초월한 노부부의 사랑에 감동을 받아 곧 영화로 만들 것을 결심했고, 감독을 신뢰하던 노부부도 흔쾌히 출연을 승낙했다.
“젊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멋지게, 후회 없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망측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아들 하나 만드는 것인데, 하하. 농담 삼아 이런 얘길 꺼내면 할머니는 화내기는커녕 ‘한번 노력해 봅시다’하고 맞장구를 쳐줍니다. 우린 정말 궁합이 잘 맞는 부부 아닙니까?”
황혼기에 찾아든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서로 충분히 배려하는 마음 때문인 듯싶다. 아니 어쩌면 세상사에 찌들어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던 젊은 날을 후회하며, 두번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는 노인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맺어준 성동구 노인복지회관이 주최한 노래자랑에 초대된 박치규 이순예씨는 1년 전의 자신들과 똑같이 고독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했다.
“사랑은 누가 가져다 주는 게 아니예요. 마음속으론 설레는 사랑을 꿈꾸지만 엄두를 못 내고들 계시지요?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혼자 살 이유가 어디 있나요? 외롭다고 한숨만 쉬고 살지 말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열심히 궁리하세요. 노인들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답니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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