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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model

'타임'지가 인정한 아주 특별한 소년 한현민

editor 정희순

입력 2018.01.18 15:21:25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묻는 이들에게 모델 한현민은 통쾌한 한 방을 날렸다. 
달라도 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겠다고. 소년의 꿈은 이토록 원대하다.
오늘만 세 번째 스케줄이다. 학교 대신 방송국에 출석 도장을 찍고, 온라인 연예 매체와 인터뷰를 한 뒤 곧장 이어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는 늦어도 오후 1시 무렵엔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는 지난해 11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7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패션모델 한현민(17) 군이다. 

189cm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현민 군은 지난 2016년 3월 한상혁 디자이너의 ‘2016 F/W 시즌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쇼’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지난 10월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는 20개 브랜드 쇼에 모델로 발탁됐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대강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현민군을 만나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곱슬곱슬한 머리에 까만 피부. 보기엔 영락없는 외국인인데, 사실 그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우리나라 고교생이다. 그는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5남매 중 맏이. 서울 이태원동에서 나서 쭉 그곳에서 자랐다. 

검은 피부의 한국인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온 현민 군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친구들이 놀리는 것은 물론이요, 어쩌다 친구와 친해져도 “부모님이 너랑 놀지 말래”라는 말이 돌아왔다. ‘타임’지는 ‘2017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에 그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동질성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외모때문에 놀림 받았지만, 이제는 그 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모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규 혼인 가정 10가구 중 1가구가 다문화 가정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현민 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먼저 촬영을 마치고 근처 분식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라고 하자 그는 치즈 라면을 가리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에 김밥과 떡볶이를 추가로 시켜 그와 나눠 먹었다. 메뉴를 가져다주신 주인아저씨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때마침 현민 군이 이렇게 물었다. 

“김치 좀 더 먹어도 돼요?”



끼니를 제대로 못 챙겨서 어떡해요. 한창 먹을 나이인데. 

그렇죠? 한창 놀 때이기도 한데 너무 바빠서 학교에 못 간지 한 달 정도 됐어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데, 솔직히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런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어요. 

현민 군이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어색해요. 이렇게 김치 먹는 모습도 신기하게 생각되고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제 피부가 검다고 해서 농구할 때 바지 내려 입고, 덩크슛 넣고 그렇진 않아요. 친구들보다 키도 크고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농구를 언제나 잘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생각하시는 일반 남학생이랑 똑같아요. 

이렇게 분식집 와서 떡볶이 먹고, 라면 먹고 장난치면서 노는 거죠.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키 안 크게 하는 한약을 먹는다는 것 정도예요. 지금 키가 189cm인데 너무 크면 모델을 하기에 오히려 좋지 않거든요. 


외국인으로 오해받아 당황했던 적도 있나요. 

이태원 거리를 지나는데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볼 때요(웃음). 제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거든요. 얼마 전엔 tvN 에듀 예능 프로그램 ‘나의 영어 사춘기’에서 캐스팅 제안을 받아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영어도 배우고, 예능도 하고 1석 2조잖아요. 한두 달 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진짜 많이 는 것 같아요. 하하.

‘타임’에서 선정한 30인에 뽑혔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어땠어요. 

솔직히 말하면 ‘타임’지가 뭔지 몰랐어요. 국내 수많은 매체 중 한 곳인 줄로만 알았죠. 추석 전쯤이었나, ‘타임’지 쪽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소개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긴 했는데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죠. 실감한 건 국내 언론에 소개됐을 때예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무척 신기하더라고요. 

2016년 3월 한상혁 디자이너 쇼에서 오프닝을 맡았어요. 데뷔 무대인 셈인데, 그땐 어땠어요. 

엄청 떨었죠.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 그 무대가 제 인생을 바꿔놨다고 생각해요. 모델들은 런웨이에 서기 위해 사전에 피팅을 해보는 절차를 거치거든요. 저는 한상혁 선생님의 옷을 입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오프닝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았어요. 그때 머리를 핑크색으로 염색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그걸 본 친구들이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까만 강백호 같았어”라고 하더라고요. 

언제부터 모델이 되겠다는 꿈을 꾼 건가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요. 초등학교 땐 야구를 했는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접어야 했죠. 꿈이 있다가 갑자기 없어지니 불안했는데 주변에서 “너 옷에도 관심 많으니까 모델을 해보는 건 어때” 하고 권유하더라고요. 그때 키가 178cm였어요. 모델치곤 작았지만, 더 클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막연하게 ‘모델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죠. 

모델이 되겠다고 하니 주변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부모님은 “얘가 헛바람 들었네”라고 말씀하셨어요. 조금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선생님 첫마디는 “네가 어떻게 모델을 하니”였고요(웃음). 사실 학교 성적이 끝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저는 문제 덩어리였거든요.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하니까 부모님이나 선생님 입장에선 “쟤가 커서 뭐가 되려나” 하는 걱정이 크셨겠죠. 

패션위크 무대에 선 걸 보고는 다들 놀랐겠어요. 

주변에선 “용 됐다”고들 하죠. 엄마는 겉으로 내놓고 말씀은 안 하셔도 속으론 되게 기뻐하시는 것 같았어요. 어느 날 보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제 컬렉션 컷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뿌듯했죠. 저를 문제아로만 보셨던 선생님들도 “현민이 사진 보면 전혀 평소 같지 않더라” 하면서 축하해주시더라고요. 

데뷔 무대에 서게 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돈 한 푼 못 받고 브랜드 광고를 찍은 적도 있고, 오디션을 보게 해준다고 해서 돈을 내고 사진을 찍었는데 속은 거였어요. 그러다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제 사진을 보고 대표(소속사 에스에프 엔터테인먼트 윤범 대표)님이 연락을 주신 거예요. 이태원 길거리에서 만났는데 한번 걸어보라고 하시더니 “이번 시즌 쇼에 반드시 세워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 한상혁 디자이너 앞에서 오디션을 봤고, 패션위크 무대에 서게 된 거죠. 

모델로서 강점과 약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둘 다 피부색요. 모델 사이에서도 튀는 외모라 쇼에서 주목받는 건 강점이에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런웨이에 못 설 때도 많아요.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앞으로 제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람들은 현민 군을 두고 “편견을 이겨낸 다문화 가정 소년”이라고들 해요. 집에서 장남이고 동생들이 넷이나 있는데, 혹시 동생들에게 해준 말이 있나요.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긴 했지만, 그게 서러워서 운 적은 없어요. 오히려 싸웠으면 싸웠지(웃음). 바로 아래 동생이 이제 곧 열 살이에요. 아직 어려서인지 다행히 사람들 시선 때문에 힘들다고 한 적은 없어요. 나중에 혹시라도 “형, 어떻게 견뎠어?” 하고 물어보면 저희 엄마가 그러셨듯이 저도 동생들에게 똑같이 말해줄 것 같아요. “기억해. 너는 특별하단다”라고요. 

앞으로의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처음에는 옷이 좋아서 모델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유가 바뀌었어요. 달라도 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요. 

대한민국이 다문화 가정 친구들도 편견 없이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모델로서는 해외 컬렉션 무대에 오르는 게 목표예요. 그러려면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하하.


photographer 홍태식 designer 박경옥
사진제공 에스에프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8년 1월 6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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