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와인과 춤 | 이기갈 코트 로티 라 랑돈 라-라-라, 이 가을 포도 밟기가 시작된다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5. 10. 08

고흐 ‘아를의 붉은 포도밭’

고흐 ‘아를의 붉은 포도밭’

한국 와인 마니아들 사이에서 ‘라-라-라 시리즈’라고 불리는 와인이 있다. 바로 프랑스의 이 기갈(E. Guigal)이 생산하는 라 랑돈(La Lan-donne), 라 물린(La Mouline), 라 튀르크(La Turque)다. 모두 프랑스의 론 밸리 지역 코트 로티(Côte-Rôtie)에서 제조한 레드와인으로 ‘라라스’라고도 불린다. 론강은 알프스산맥에서 시작돼 리옹을 가로질러 아비뇽과 아를을 거쳐 지중해로 이어지는 긴 강이다. 고흐가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그가 생전에 판매한 유일한 작품인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 떠오른다. 1946년 에티앙 기갈(Etienne Guigal)이 론강 북부에 자리한 코트 로티의 작은 마을 앙퓌에 이 기갈이라는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1961년 그의 아들 마르셀과 손자 필립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2003년부터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 오크통을 제작했고, 현재 이 기갈의 최고급 와인은 모두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것이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2003년, 2005년, 2009년 ‘라-라-라 시리즈’에 100점을 주기도 했다. 그는 “벨벳 같은 질감의 끝나지 않는 마무리에 걸쳐 점차 변하는 다크 프루트 풍미의 만화경을 제공한다”(2017)며 세 와인에 대해 멋진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이 중에서 라 랑돈은 100% 시라즈(암적갈색과 짙은 보라색 포도 품종)로만 만들어 타닌이 강하며 강렬한 풍미와 묵직한 구조감이 특징이다. 코트 로티 라 랑돈의 라벨에는 웃통을 벗은 3명의 남성이 사각형 통 안에서 포도를 밟는 모습이 갈로로망 모자이크 방식으로 담겨 있다. 이 라벨을 보자 리옹의 갈로로망박물관과 세비야고고학박물관에서 본 모자이크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갈로로망(Gallo-Romaine)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은 갈리아 지방의 로마화된 갈리아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기갈의 ‘라-라-라 시리즈’, 라 랑돈(왼쪽). 라 랑돈 라벨 그림과 유사한 포도 밟기 모자이크화. 스페인 세비야고고학박물관 소장. 

이 기갈의 ‘라-라-라 시리즈’, 라 랑돈(왼쪽). 라 랑돈 라벨 그림과 유사한 포도 밟기 모자이크화. 스페인 세비야고고학박물관 소장. 

라 랑돈의 라벨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전통적인 포도주 양조 과정인 ‘포도 밟기(Grape Stomp)’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포도 수확철인 가을, 대략 8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진행된다. 수확한 포도의 껍질에서 과육 부분만을 분리하는 과정인데, 현대에는 기계를 사용한다. 3명의 남성이 직사각형 큰 틀 안에 담긴 포도를 열심히 밟고 있다. 다리를 높게 들어 올려 포도를 밟고 있는 모습이 뭔가 즐거워 보이고, 으깬 포도의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진동하는 듯하다. 이 모자이크는 프랑스 생제르맹앙레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포도주 양조는 포도를 수확하여 밟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포도 밟기는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맨발로 포도를 밟아 으깰 때는 힘듦을 잊기 위해 노동요처럼 음악을 곁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고될 법한 노동은 그들에게 때때로 즐거운 유희가 되기도 한다. 라 랑돈의 라벨에 담긴 세 남성의 역동적인 포도 밟기는 라 랑돈의 맛이 얼마나 다채로우면서 즐거울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이기갈코트로티라랑돈 #와인과춤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