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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르는 위험천만 킥보드, 무면허에 보험 적용도 안 돼

문영훈 기자 | 김민아·전혜빈·황예지 인턴기자

2024. 04. 24

최근 중·고등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전동킥보드다. 학교, 학원 할 거 없이 수시로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아이가 자칫 사고라도 날까봐 노심초사다. 전동킥보드는 사실상 누구나 탈 수 있지만 사고 후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전동킥보드를 주행하려면 제2종 원동기장치 이상 면허가 필요하지만 사실상 누구나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다.

전동킥보드를 주행하려면 제2종 원동기장치 이상 면허가 필요하지만 사실상 누구나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다.

100여 개의 학교가 모여 있는 경기 수원시 권선구 일대, 4월 11일 오후 7시 경 전동킥보드를 탄 한 중학생이 40대 여성과 충돌했다. 전동킥보드로 인도 위를 빠르게 달리던 중학생이 보행신호를 기다리던 행인을 쳤다.

무면허, 노헬멧, 다인승 위험 3종 세트

전동킥보드 교통사고 건수는 최근 4년간 10배 이상 증가했다.

전동킥보드 교통사고 건수는 최근 4년간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거리에서 곡예 킥보드를 타는 청소년은 심심찮게 목격된다. 매주 보행지도를 하는 수원서부녹색어머니회 소속 이모(35) 씨는 “헬멧도 안 쓰고 위험하게 두 명씩 전동킥보드를 타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 거주하는 장민주(36) 씨는 “도로 위에서 전동 킥보드로 드리프트 하는 학생도 봤다”며 “어린아이가 많은 공원 산책로에서 빠르게 달리는 전동킥보드를 보면 살인 무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러한 청소년 대부분이 무면허 상태라는 것. 2021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만 16세 이상, 제2종 원동기장치 이상 면허 보유자만 전동킥보드를 주행할 수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순찰 시 전동킥보드 단속을 함께 진행하는데 셋 중 하나는 청소년이고, 이 중 90% 이상은 무면허”라고 말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개인형 이동장치 연령대별 사고·사망·부상 현황’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이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주행하다 적발된 사례는 2021년 3482건이었으나 2022년 8월까지 적발된 건수만 7486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무면허 운전이 빈번한 이유는 전동킥보드 대여 업체 상당수가 제대로 된 면허 인증 절차를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헬멧 착용 등 안전 규정 역시 게시판에 고지만 돼 있을 뿐이다. 스윙, 지바이크, 빔모빌리티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빅3’ 사업자 중에서 현재 미성년자에게 운전면허 등록을 강제하는 곳은 스윙뿐이다. 스윙 역시 성인의 경우 별도의 면허 등록 없이 바로 이용할 수 있다. 킥보드 대여업은 ‘자유업’으로 분류돼 정부가 킥보드 대여 업체를 관리·감독할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PM 관련 사고는 증가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PM 교통사고 건수는 2018년 2255건에서 2022년 4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했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PM 사고 현황에 따르면 2022년 발생한 PM 사고 2402건 중. 무면허 사고가 46.9%(1127건)를 차지했고 이중 20세 이하는 81%(921건)였다.



전동킥보드 특성상 사고는 큰 부상으로 연결될 위험이 높다. 운전자가 서 있는 공간이 좁아 균형을 잡기 어려운데다 두 명이서 탈 경우 위험도는 더 크게 증가한다. 또 헬멧 착용 없이 운행하다 넘어지거나 충돌할 경우 킥보드 구조상 두부 및 안면부 손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2년에만 26명이 PM 사고로 사망했다.

PM에 적합하지 않은 도로 사정 역시 사고를 부추긴다. 도로교통법상 PM은 자전거도로로 주행해야 한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의 75%(2022년 기준)를 차지하는 자전거 겸용도로에서도 주행할 수 있다. 보행자와 자전거, PM이 뒤섞이는 자전거 도로가 대부분인 셈이다. 또 자전거 도로가 없는 곳에서는 우측 차도를 이용해야 하지만 PM 이용자들은 인도를 이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 19일부터 ‘사람중심도로 설계지침’을 시행해 PM을 고려해 도로를 설계하도록 했다. 사고 위험이 높은 경우 차도와 보도, PM 도로를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PM를 고려한 도로 폭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이 담겼으나 이를 모든 도로에 적용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안전사고는 늘고 있지만 PM 이용자는 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자동차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서는 PM을 자동차로 규정하지 않아 보험 가입 의무에서 제외된다. 전동킥보드 대여업체가 보험사 간 맺은 단체보험이 있으나 대부분 기기 고장에 따른 이용자 피해만 보상해 주는 형태다. PM 운영사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인형 이동장치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안’은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태로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 자동 파기된다.

특히 무면허 PM 운전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주의가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법 53조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는 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면허는 12대 중과실 중 하나에 속한다.

“PM 전용 면허 등 새로운 규제 필요”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PM 규제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PM 전용 면허를 소지해야 하는 영국, 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은 기존 면허(원동기 면허)에 PM을 추가한 형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원동기 면허가 필요한 이륜차와 전동킥보드는 작동 방법과 인프라 등 특성이 아예 다르다”며 “새로운 이동 수단에 맞게 새로운 면허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도 지키지 않는 헬멧 규정을 권고로 바꾸는 대신 속도제한을 낮춰야 사고 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와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전동킥보드 현행 최고 시속 25㎞/h를 시속 20㎞/h로 낮춰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속 25㎞/h 주행하다 발생한 충격은 자전거의 2.3배로 충격을 낮추는 장치가 없는 전동킥보드 특성상 속도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독일, 일본 등에서는 전동킥보드의 속도를 시속 20㎞/h로 제한하고 있다.

해외 일부 도시에서는 PM 퇴출 등 다양한 규제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2023년 9월부터 PM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4월 실시한 전동킥보드 대여 찬반 주민 투표 결과, 참여자의 89%가 PM 금지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공공도로에서의 PM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자전거친화도시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기황 수연건축 대표는 “PM이 다른 교통수단과 공존하려면 먼저 자동차 중심의 교통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차량과 보행자 사이에 존재하는 자전거, PM 등 다양한 교통 수단에 대한 위상을 정립하고, 이를 배려하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동킥보드 #PM #사고 #보험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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