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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자율배상은 피해자 갈라치기” 홍콩ELS 사태 후폭풍

김명희 기자

2024. 04. 24

홍콩 ELS 피해에 대한 금융권 자율배상이 시작됐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은행과 증권사,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과 상처를 남긴 홍콩 ELS 사태 후폭풍을 취재했다. 

‘금융권 시한폭탄’으로 불리던 홍콩 ELS의 만기 도래 계좌가 나오면서 피해가 현실이 됐다. 홍콩 ELS는 홍콩H지수(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50개 우량기업을 추려서 산출한 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이다. ELS는 일반적으로 녹인 배리어(knock-in barrier·원금손실 구간)를 설정해놓고 만기가 될 때까지 주가가 그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높은 수익을 얻는 파생금융상품이다. 대신 주가가 녹인 배리어 아래로 떨어질 경우 투자자는 손실을 입게 된다. 만기는 통상 3년, 녹인 배리어는 상품에 따라 다른데 보통 마이너스 30~50% 정도로 잡는다. 즉, 3년 동안 주가가 30~5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국 경기 호황에 힘입어 2021년 2월 1만2107.77까지 올랐던 홍콩H지수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헝다그룹 파산 등 악재가 겹치며 급락해 2022년 10월 4938.56까지 떨어졌다. 주가가 50% 이상 하락했으니 2021년 상반기, 고점 부근에서 홍콩 ELS에 투자한 사람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3월 11일 홍콩ELS 피해 관련,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3월 11일 홍콩ELS 피해 관련,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고 있다.

홍콩 ELS 손실 규모는 ‘역대 최악의 금융 손실’로 불리는 라임 펀드(1조6000억 원)를 훨씬 넘어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추산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권 판매 홍콩 ELS 총규모는 약 13조2000억 원이다. 국민은행 6조7500억 원, 신한은행 2조3300억 원, NH농협은행 1조8000억 원, 하나은행 1조4000억 원, 우리은행 400억 원 등이다. 이 가운데 올해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계좌의 상당수가 손실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2월까지 손실이 확정된 금액은 1조2000억 원이며, 홍콩H지수가 현재 수준(5700선)을 유지할 경우 추가로 4조60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우리은행은 타행 대비 판매액이 적은데, 이에 대해 관계자는 “2021년 당시 홍콩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홍콩 ELS 판매를 전체의 5% 이내로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홍콩ELS 피해자 들이 국회의원에게 보낼 탄원서를 정리하는 모습.

홍콩ELS 피해자 들이 국회의원에게 보낼 탄원서를 정리하는 모습.

피해 규모가 큰 것도 문제지만 불완전 판매 의혹이 더 큰 문제다. 금융사는 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에게 상품에 대한 기본 설명 및 투자 위험성 등에 대해 안내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올해 1월부터 두 달간 은행 및 증권사 11곳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한 결과, 판매사들이 과도한 영업 목표와 실적 경쟁으로 판매를 독려하면서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판매 한도 관리 등에는 소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불완전 판매 정황은 상품 판매 시 녹취가 일부 이뤄지지 않거나, 투자자 의사와 다르게 답변을 유도하거나, 금융사 직원이 투자자를 대신해 서류를 작성한 것 등이다. 불완전 판매의 가장 큰 피해자는 금융 취약계층인 노인들이다. 4월 17일 기준 7527명이 가입해 있는 ‘홍콩H지수 관련-ELS 가입자 모임(피해자)’ 카페에 들어가보면 고령의 은퇴자들이 “홍콩이라는 나라가 전쟁이 나거나 망하지 않으면 손실 날 일이 없다”는 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홍콩 ELS에 가입했다가 노후 자금이 반토막 났다는 사례가 다수 등장한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은 금융사가 설명 의무를 위반하거나 부당 권유 행위를 했을 때 판매 금액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금소법을 위반한 금융사 임직원은 해임 권고, 6개월 이내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징계를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은 이러한 금융사에 대한 금전적, 인적 제재에 앞서 지난 3월 홍콩 ELS 판매사와 투자자 책임을 반영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내놨다. 금융사 판매 원칙 위반과 불완전 판매 여부에 따라 기본 배상 비율 20~40%가 적용되며, 불완전 판매를 유발한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고려해 은행 10%p와 증권사 5%p를 가중하고, 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 여부에 따라 배상 비율이 차등 적용된다는 내용이다. 판매사 책임이 완전히 인정되는 경우엔 100% 배상도 가능한 반면, ELS 가입 횟수가 20회를 초과하고 과거에 손실을 입었던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홍콩 ELS의 위험성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배상 비율이 낮아진다.

금감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금융사들은 자율배상에 돌입했다. 3월 29일 하나은행이 은행권 최초로 자율배상을 실시한 데 이어 신한은행도 4월 4일 일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실시했다. 우리은행은 4월 12일 만기가 도래한 ELS 계좌 40건 중 10건에 대해 배상 비율 동의를 얻어 이 중 2건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완료했다. 국민은행도 4월 15일부터 자율배상 절차를 개시,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부터 순차적으로 문자 등을 통해 배상 절차와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해 기존 고객 보호 전담 부서와 함께 신속한 투자자 배상 처리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NH농협은행도 3월 28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금감원 기준안을 토대로 자율 조정 추진을 결의했다. 농협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자율조정협의회를 구성하고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준용한 세부 조정안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ELS 외에 다른 금융상품도 혹시 불완전 판매?

그러나 일부 투자자는 “차등 배상이 투자자 갈라치기”라고 반발하며 손실 전액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4월 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홍콩 ELS 사태에 대한 피해 차등 배상안 철회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 안 모 씨는 “피해자들은 각 은행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가입을 권유받을 때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걱정 안 해도 되며, 본인들도 가입했고, 통장에 돈을 넣어두면 1%대 이율인데 뭐 하러 돈을 묵히냐, 손실 날 일이 절대 없다는 설명으로 투자자 성향이 공격적이 되도록 했다. 녹취도 은행에만 유리하게 하여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시켰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열심히 살며 모은 목돈이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은행 직원에게 속아 하루아침에 반토막 난 것도 모자라 더 큰 손실로 돌아와 피를 토할 일인데, 원금 배상은커녕 차등 배상으로 피해자들에게 2차, 3차 가해를 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안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위원회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채택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해당 청원은 4월 19일 현재 1만7500명에 가까운 사람의 동의를 얻었다. ‘홍콩H지수 관련-ELS 가입자 모임(피해자)’ 카페에도 자율배상에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은행 차원에선 자율배상을 실시한다고 밝혔지만, 순차적으로 연락이 올 때까지 반토막 난 계좌만 바라보며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투자자들도 많다. 특히 이 카페에서는 다른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성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 ELS 사태의 파장이 더욱 우려되는 이유다.


#재테크 #홍콩ELS #여성동아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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