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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사교육과 재건축, 욕망의 메타포 대치동 은마 & 우선미

김명희 기자

2024. 02. 16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사교육과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날마다 주차 전쟁이 벌어지는 낡고 허름한 이곳으로 교육과 재테크에 대한 열망을 안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은마가 강남 아파트 거래량 1위에 오른 이유다. 

빠숑이라는 필명으로 부동산 시장에 관한 인사이트를 전달하고 있는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과 함께 동네 임장기를 연재한다.

대치동 사교육 1번지 은마아파트.

대치동 사교육 1번지 은마아파트.

서울 강남구 대치동 316번지에 자리 잡은 은마아파트는 명문 학군과 학원가가 집결해 있어 ‘사교육 1번지’라 불린다. 실제로 2023년 서울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일반고 1위(휘문고)와 3위(중동고)가 은마아파트 학군이다.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재건축 하면 은마아파트를 떠올린다. 강남 노른자위 땅에 입시 특구라는 프리미엄을 더하면 재건축 이후 대박은 떼어 놓은 당상이 분명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재건축이 무산됐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반포와 개포는 상전벽해가 된 지 오래다.

은마아파트는 탄생 과정부터 욕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1997년 부도가 나면서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을 촉발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바로 이 은마아파트를 통해 사업 기반을 닦았다. 빈농 출신 세무서 말단 공무원이던 정 회장은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역술인의 말에 따라 광산업에 손을 대 큰돈을 벌었고 건설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가 구로동 영화아파트에 이어 두 번째로 지은 아파트가 바로 은마다. 172세대에 불과했던 영화아파트에 비해 은마는 28개 동 4424가구 대단지이자 당시 민간 아파트로는 최대 규모였다.

지하주차장이 없고 주차 공간이 협소해 2중 주차를 해놓은 차량들이 많다.

지하주차장이 없고 주차 공간이 협소해 2중 주차를 해놓은 차량들이 많다.

원래 대치동 일대는 비만 오면 범람하는 유수지였다. 김학렬 스마트튜브부동산연구소장에 따르면 정태수 회장은 서울시로부터 이 땅을 싸게 사들인 뒤 양변기, 도시가스와 온돌난방이 들어간 신식 아파트를 지었다. 당시 국민주택은 20평대 규모였으나 은마아파트는 31평(공급면적 101㎡), 34평(115㎡)으로 고급화를 꾀했다. 이런 정 회장의 전략과 때마침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은마아파트는 1978년 8월 분양 20일 만에 완판됐다. 분양가는 31평형 1847만5000원, 34평형 2034만5000원이었다. 김 소장은 “1973년 지어진 반포주공1단지 분양가가 700만 원, 1976년 완공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분양가가 1000만 원대 중반이었던 것에 비하면 은마아파트 분양가는 엄청나게 비싼 편이었다. 은마아파트 분양으로 한보는 2000억 원을 손에 쥐고 대기업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2002학년도 수능 어려워지자 이듬해 은마 가격 50% 상승

대치동 집값을 좌우하는 학원가.

대치동 집값을 좌우하는 학원가.

은마아파트가 전국구로 유명해진 건 교육 때문이다. 원래 서울의 대표 학원가는 서초구 압구정동이었다. 교육열이 가장 높은 동네이기도 했고, 아웃풋도 좋았다. 실제로 서울대 총동창회가 발간한 ‘2002 서울대 인명록’을 보면 서울대 출신 인구밀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동네가 압구정동(인구 1만 명당 636.7명)이기도 했다. 대치동이 압구정동을 따라잡은 건 2000년대 초반이다. 김학렬 소장은 “지금 대치동을 사교육 1번지로 만든 건 명문대 운동권 출신들이다. 그들이 임대료가 비싼 종로, 압구정동, 반포 대신 대치동에 모여들어 주변의 풍부한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며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2002학년도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자 2001년 3억 원 선이던 31평형의 평균 매매가가 2002년 4억9000만으로 5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대치동 학원가는 변화무쌍한 입시제도에 맞춤형 전략을 제시하며 사교육 1번지 명성을 드높여가고 있다. 최근엔 시대인재, 대성학원 등 메디컬 입시에 강한 학원들이 등장하면서 대치동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의대 정원이 확대되고 정시 영향력이 커지는 2028학년도 입시 개편안 등 앞으로의 입시 로드맵을 보더라도 대치동은 입지가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거의 모든 교육 전문가들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은마아파트가 살기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글쎄”다. 은마아파트는 단지 입구에 지하철 3호선 대치역이 붙어 있고, 평지에 버스 노선도 다양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다. 분양 이래 45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주변 상가는 병원부터 학원, 방앗간, 떡집까지 없는 게 없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돼 아파트 곳곳이 낡고 녹슬었으며 지하 주차장이 없다 보니 공간이 부족해 2중, 3중 주차는 기본이다. 상가 방문 차량이 많은 날은 명절 백화점만큼이나 주차 전쟁이 치열하다. ‘곧 재건축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아파트 지하에 방치해오던 쓰레기를 참다 참다 2021년 청소했는데, 그 양이 2300톤에 달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준공 20년이면 재건축이 가능했다. 은마아파트는 그때부터 재건축을 추진해 2002년 시공사(삼성물산과 GS건설) 선정까지 마쳤지만 안전진단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때부터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악몽이 시작됐다. 수차례 도전 끝에 2010년 안전진단에는 통과했으나 이후에도 서울시의 35층 층고 제한, 주민 갈등 등으로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5층 규제를 폐지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약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해 9월에는 강남구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월 12일, 주민 간 갈등으로 조합장이 직무집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기존 조합장 측은 1월 중으로 최고 층수를 49층으로 올리는 내용의 정비계획 변경안을 강남구청에 접수할 예정이었으나 직무 정지로 재건축이 다시금 난항에 빠지게 됐다.

재건축 이슈에 따라 은마아파트 가격은 급등락을 거듭했지만 교육 때문에 항상 수요가 뒷받침됐다. 이를 이용해 갭 투자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김 소장은 “은마는 부동산 단타 투자자들의 성지기도 했다. 대단지에 우상향하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은마아파트 거래 건수는 109건으로 강남구 거래량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은마아파트 31평형의 매도 호가는 23억2000만~25억 원(직전 실거래가 23억7000만 원), 34평형은 26억2000만~29억2000만 원(실거래가 27억8000만 원) 선으로, 최근 조정 분위기에도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전세가는 계속 하락해 31평형이 6억 원대 초반에 거래되고 있으며 매물도 많다. 수능 이후 이사철엔 전세가가 급등하는 것이 대치동 ‘국룰’이지만 최근 개포동에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은마아파트를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학군지라 해도 선택의 폭이 다양해지면서 더 이상 은마아파트에 수요가 몰리지 않는 것이다.

대단지 사업성 높은 미도, 학원가 가까운 선경과 우성

중대형 위주라 재건축 사업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치 미도아파트.

중대형 위주라 재건축 사업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치 미도아파트.

대치동 간판 재건축 단지로는 ‘우선미’도 빠질 수 없다. 우선미는 은마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개포 우성, 대치 선경, 한보 미도아파트를 일컫는다. 이들은 은마아파트와 학군, 학원가, 교통, 상권 등 입지의 장점을 공유한다. 통상 우선미로 묶어 부르지만 각각 특징이 뚜렷하고 재건축 속도 및 사업성에도 차이가 있다.

재건축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대치역을 사이에 두고 은마아파트와 마주 보고 있는 미도아파트(1983년 준공·2436세대)다. 미도는 은마아파트 분양으로 큰 이익을 남긴 한보가 그다음에 지은 아파트로, 한때 강남에선 ”은마에서 자식 자랑 말고 미도에서 돈 자랑 말라“는 말이 있었다. 은마아파트가 중형 평수 위주인 데 비해 미도아파트는 34평(공급면적 113㎡)부터 66평(220㎡)까지 다양하며, 대형 평형 비중이 오히려 더 높다. 김 소장은 ”미도가 은마보다 4년 늦게 입주했는데, 은마가 좁아서 안 들어갔던 압구정동 부자들이 미도와 선경 대형 평형으로 많이 옮겨와 부자 아파트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미도아파트는 2022년 11월 서울 대단지 중 처음으로 서울시에 신속통합기획을 신청하면서 재건축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당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재건축 찬반 설문조사에서 찬성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다. 현재 최고 50층 3800가구 규모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데, 가구당 평균 대지 지분이 79.86㎡에 달해 대치동 재건축 단지 중에서도 사업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소장은 ”개포동 신축의 경우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세대)가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세대)에 비해 커뮤니티가 훨씬 큰데 추가분담금은 절반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재건축 사업성에서 단지 규모가 절대적이라고 설명했다. 미도아파트는 서울대곡초를 끼고 있는 초품아지만 중학교가 조금 먼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우선미 가운데 삼성동에 가장 가까워 삼성동 개발 호재를 누릴 수 있으며, 은마아파트 맞은편이라 재건축이 완료될 경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췄다.

대치초-대청중 학군을 끼고 있는 선경과 우성 아파트. 뒤로 보이는 건물은 타워팰리스다.

대치초-대청중 학군을 끼고 있는 선경과 우성 아파트. 뒤로 보이는 건물은 타워팰리스다.

대치 선경아파트(1034세대)와 개포 우성아파트(1140세대)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대치동에서도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서울대치초, 대청중 배정에 유리하다는 강점이 있다. 선경아파트는 재건축 추진 방식을 두고 일반 재건축 vs 일대일 재건축으로 추진 주체끼리 대립하고 있고, 개포 우성아파트는 재건축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지긴 했으나 아직 큰 움직임은 없다. 김 소장은 ”선경아파트는 대치동 학원가의 장점을 좀 더 누릴 수 있고, 개포 우성아파트는 수인분당선과 지하철 3호선 더블 역세권에 도곡동 타워팰리스 상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두 아파트를 눈여겨보고 있다면 사업성의 우열을 따지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도아파트 34평(113㎡)의 매도 호가는 26억2000만~28억 원(직전 실거래가 28억2000만 원), 선경아파트 31평(101㎡)의 호가는 29억5000만~32억 원(실거래가 28억8000만 원), 개포 우성아파트 31평(102㎡)의 호가는 30억5000만~32억 원(실거래가 29억92000만 원) 선으로 가격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은마재건축 #대치우선미 #시대인재 #여성동아

도움말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사진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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