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범수(41)에게 2010년은 잊지 못할 한 해일 듯싶다. 그가 출연한 ‘자이언트’가 국민드라마로 불릴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한편 그해 5월 이윤진씨(29)를 인생의 반려자로 맞았기 때문이다. 이범수는 가수 비의 영어 선생님으로 알려진 이윤진에게 영어를 배우며 2009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는데, 여자는 남자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남자는 여자의 이해심에 끌렸다고 한다.
결혼 생활 1년여 만에 다시 한 번 이윤진씨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리얼 다큐 프로그램 ‘슈퍼맘 다이어리’에 출연해 단란한 가정생활과 국제회의 통역사로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을 공개한 것.
인터뷰날에도 그는 완벽한 ‘워킹맘’의 모습을 보여줬다. 약속 시간 10분 전에 나타난 이씨는 양손에 여벌의 의상과 구두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그는 “현장 분위기가 어떨지 몰라서 몇 가지 더 준비해왔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올 3월에 딸 소을이를 낳고 6월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를 보며 ‘누구의 엄마’라는 수식어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출산한 티가 나지 않느냐고 묻자 그가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임신 7개월부터 출산 후 3개월까지 푹 쉬었어요. 마침 소을이 아빠도 드라마 ‘자이언트’를 끝내서 늘 함께 있을 수 있었는데 정말 원 없이 놀았죠. 드라마 촬영 때문에 미뤘던 신혼여행도 가고, 범수씨랑 알콩달콩 재밌게 지내서 그런지 몸무게가 15kg이나 불었어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한데 회복이 영 안 되네요. 사실, 오늘도 보정 속옷을 입고 나왔어요(웃음). 아이 낳으면 여자의 몸은 정말 달라지는 것 같아요.”
밤샘 촬영에도 매일 집에 들러 태담 나눈 남편
하지만 그는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면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밝게 웃었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던 그는 결혼한 지 한 달 만인 6월에 ‘쭌(June·태명)’을 임신했는데, 마흔이 넘어서야 첫아이를 얻은 이범수의 부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소을이 아빠는 틈날 때마다 과일 하나라도 예쁘게 깎아서 주고, 햄을 많이 넣고 채소를 적게 넣은 ‘이범수표 특제 김밥’을 만들어줬어요. 아기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태담도 꾸준히 해줬죠. 전국 곳곳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집에 오기가 힘든데 정말이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1, 2시간이라도 들러서 ‘쭌아~ 아빠 왔다~’며 아기와 대화를 나누었어요. 갓 태어난 소을이가 범수씨 목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걸 보니까 정말이지 아빠의 그런 노력이 아이의 정서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그렇게까지 노력하진 못했어요. 당시 케이블방송에서 ‘시사콘서트 열광’과 ‘쉘라쉘라 영어로 쿠킹’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태교의 전부였죠(웃음).”
이범수 이윤진 부부는 눈 뜨면 웃기부터 하는 순한 소을이와 함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태어난 소을이는 아빠를 쏙 빼닮았다. 병원 관계자들도 신생아실에 있는 소을이를 보고 단박에 ‘이범수의 딸’이란 사실을 알아챌 정도. 이범수는 딸의 이름도 직접 지었다. 작명소에 의뢰하는 것보다 아빠가 정성 들인 이름을 선물해주고 싶었단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가 지은 이름은 소을. ‘고운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비단 소, 소리 을자를 썼다.
소을이의 성격을 묻자 이윤진씨는 “밤낮을 바꿔 생활하지 않고, 맘마도 잘 먹고, 눈 뜨면 웃기부터 하는 순한 아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보통 엄마들이 하는 대로 딸과 자주 놀아주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집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다 가족사진을 보면 신기해요. 내가 어떻게 이범수의 아내가 됐나, 또 어떻게 아이의 엄마가 됐나 싶어 놀라죠.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직 엄마 될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요. 하지만 결혼 초기에 느끼는 막연한 부담감일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곧 나아지겠죠. 저도 엄연히 엄마니까요.”
이윤진씨는 약간의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 고려대 영문학과를 나와 고려대 언론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정말 숨 가쁘게 살아왔는데 결혼과 임신으로 갑자기 모든 걸 손에서 놓으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상사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초·중·고등학교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다녔는데, 외국에서 살다 보니 한국 방송을 많이 봤어요. 그러다 여러 사람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전하는 아나운서를 꿈꾸게 돼 그 꿈을 실현하고자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운 좋게 대학 4학년 때 춘천 MBC 아나운서가 됐죠. 그런데 그곳에서 알게 된 방송작가님이 가수 비의 영어 교사 자리를 추천해주셨어요.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영어를 가르친 덕에 그 일에 대한 부담감도 없었고,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겠다 싶어서 퇴사를 했죠. 이후 4개월 정도 비씨와 함께 일본, 중국, 홍콩, 미국 등을 다니며 영어로 인터뷰하는 방법을 알려드렸어요. 제가 마치 비씨를 미국에 입성시킨 줄 아는 분도 계신데, 그건 사실이 아니고 도리어 그분 덕분에 견문을 넓혔죠. 이 기회를 빌려 비씨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요.”
이후 그는 공채 시험을 통해 OBS 방송국 아나운서로 들어가 1년여간 직장 생활을 했다. 하지만 ‘비의 영어 선생님’이란 경력이 알려지면서 영어 관련 일에 대한 의뢰가 밀려들었다. 영어 관련 일과 방송 일을 모두 하고 싶어서 다시 사표를 냈다. 그리고 KUMU(고려대호주매쿼리대학교) 통·번역 과정에 입학하면서 국제회의 통역사 겸 사회자로서의 경력을 쌓다가 이범수를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갑자기 일을 놓으니까 몸도 마음도 힘들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손에 힘이 없어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잡는 제 자신을 보니 이렇게 늙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모유 수유를 하면서 집 밖에 나가는 것도 큰일처럼 느껴져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 싶었고요.”
하지만 이씨는 곧 긍정적인 마음으로 우울증을 이겨냈다. 고비마다 남편 이범수는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1990년 개런티 30만원을 받는 단역으로 데뷔해, 20대와 30대 조연 배우 시절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주연 배우로 성장한 만큼 남편은 열두 살 차가 나는 어린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의 롤 모델은 남편”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확신이 안 설 때가 많아요. 방송 일과 통·번역 일을 병행하는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칠 것 같았죠.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소을이 아빠가 그래요. ‘지금은 느릿느릿 가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두 분야를 모두 마스터한 사람이 돼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요. 그 말이 참 설득력 있게 들렸어요. 그 덕분에 요즘에는 육아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더라도 외국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공부하면서 내공을 쌓고 있죠.”
이윤진씨는 존경할 수 있는 남편과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아기자기하면서도 넉넉한 품을 가진 이범수를 “섬세한 대인배”라고 부르며 애정을 과시했다.
“촬영장에 나가면 뭐든 작은 거라도 꼭 사다 줘요. 지난번 ‘기적의 오디션’ 촬영차 미국 LA에 갔다가 왔을 때도 제 선물이라면서 옷가지를 하나씩 펼쳐 보이더라고요. 아이 낳고 나선 맞는 옷이 없어 외출하는 것도 싫었는데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챙겨주니까 고맙죠. 센스가 없는 사람이 물건을 사면 싫겠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 공부를 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감각이 있어요. 친정엄마도 그 옷을 보면서 정말 주옥같은 것만 골라왔다고 말씀하셨죠.”
남편의 매력 포인트를 꼽아보던 그가 뭔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연애 시절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는 듯했다. 차분했던 그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편에게 영어를 가르쳐줄 당시 제가 책을 쓰고 있다고 하니까 어느 날 펜에 제 이름을 이니셜로 새겨서 주더라고요. 선물을 받아서 좋긴 했지만 왜 펜을 주나 싶어 물었더니 ‘책 쓰신다면서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책은 컴퓨터로 쓰는데요’ 하니까 ‘요즘에는 그렇게 책도 쓰나요?’ 하면서 머쓱하게 웃더라고요. 하루는 오전에 영어 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제가 조금 지각해서 ‘아침에 출판사에 원고 넘기고 오느라 늦었어요’라고 양해를 구하니까 ‘이른 아침에 출판사에 다녀오다니 참 부지런하네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에 가지 않고 이메일로 보냈다’고 말했더니 ‘참 세상 좋아졌다’고 해서 한참 웃었죠. 저도 컴퓨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남편은 아예 컴퓨터를 할 줄 모를뿐더러 하려고도 하지 않아요. 대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고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아날로그적인 모습에 제가 반한 것 같아요.”
자상한 남편에게 이씨가 사랑을 전하는 방식은 요리.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것만 먹고 대학 시절에는 언니에게 의지해 살아서 이씨는 요리와는 담을 쌓았다. 오죽하면 친정어머니가 예비 사위에게 “다른 건 몰라도 윤진이한테 밥 얻어먹기는 힘들 것 같다”며 미안해했을 정도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는 “솜씨 좋은 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다”고 한다.
“자꾸만 뭔가를 해주고 싶어요. 아마 이런 게 사랑의 힘이겠죠?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을 떠올리며 평소에는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을 자주 만들어요. 나초, 토르티야, 케사디야 같은 외국 음식도 만들어주는데 깊은 맛이 안 나는데도 범수씨가 좋아해요. 쉬는 날이면 오믈렛·프렌치토스트·햄·베이컨 등으로 브런치를 해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촬영 때 늦게 들어오면 샐러드를 만들어줘요. 출출할 것 같아서 뭔가를 해주고 싶지만 몸 관리를 해야 해서 해주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인생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살기 때문일까. 이윤진씨는 전보다 얼굴이 더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단다. 아무래도 남편과 함께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정생활만큼 사회생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점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남편에게 거는 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이 지금껏 해온 것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가 되면 좋겠어요. 영화 ‘짝패’의 악역부터 드라마 ‘자이언트’의 건실한 모습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잘할 거예요. 앞으로 멜로를 찍으면 더 좋겠죠. 이번에도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에서 김옥빈씨와 멜로를 찍는다고 하는데, 그럴 때면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남편이 남자로서 매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열심히 모니터링해서 남편에게 도움이 되는 아내가 돼야죠.”
그는 이범수의 아내가 아닌 이윤진만의 목표도 털어놓았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활약한 나승연 대변인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어요. 10년 후면 제가 지금의 나승연씨와 비슷한 나이가 되거든요. 그때 나승연씨 같은 위치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을 하면 좋겠어요. 방송 일도 통·번역 일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고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모두 잘하는 제 남편이 롤 모델인데 남편과 함께 노력하다 보면 내실 있는 사회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을이도 그런 엄마 모습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우리 소을이요? 소을이도 언어에 능통한 멋진 여성으로 키우고 싶어요.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그는 이범수의 아내이자 소을이 엄마로서, 또 프로페셔널한 직업인 이윤진으로서 진정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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