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출신으로 인기 드라마 잇따라 출연
아직은 본명보다 극 중 이름인 마도진이 더 익숙할지 모르겠다. MBC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에서 모델 출신다운 우월한 신체 조건과 신인임에도 어색하지 않은 연기로 안방극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도상우. 모자란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도, 스스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설레어하는 모습도 참 예쁜 이 남자의 매력.
MBC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에서 보여주던 재벌 2세 특유의 빤질거리는 모습도, 우유부단하고 불안정한 모습도 온데간데없었다. 선이 고운 미소년의 등장에 3초 정도 당황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도상우(28)는 시청률 30%대를 돌파하며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전설의 마녀’에서 신화그룹 오너의 내연녀 차앵란(전인화)의 아들 마도진 역으로 출연 중이다. 마도진은 뭘 입어도 맵시가 나는 이상적인 외모의 소유자지만 개념과 예의 같은 미덕은 찜 쪄먹은 지 오래고, 중증 마마보이다. 그럼에도 능글능글 눙치기도 잘하고 붙임성이 좋은 캐릭터다.
극 중의 능청스러운 모습만 보면 여기저기서 연기깨나 했을 성싶지만 이 드라마는 도상우의 세 번째 출연작이다. 연기 초짜가 벌써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으니 운과 실력을 모두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그는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에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몸에 밴 모델 포즈가 고민
“화면에 나온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면 아마 선배님들 덕분일 거예요. 특히 ‘어머니(그는 극 중 모친인 전인화를 그렇게 불렀다)’는 ‘얘는 내 눈을 보고 연기 연습을 해야 잘되는 아이니까 눈을 맞추면서 연습해야 된다’면서 항상 눈을 보며 연습을 도와주세요. 현장에선 이게 참 드문 일이래요. 연습을 도와주신다고 해도 대본을 함께 읽어주는 정도지, 눈을 보면서 감정 연기까지 해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대요.”
그에게는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는 대세남들의 공통분모인 ‘패션 모델 출신’이라는 이력이 따라붙는다. 2008년 서울 패션 위크에서 디자이너 이주영의 컬렉션 무대에 선 것을 시작으로 최범석·곽현주·고태용 등 내로라하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무대와 필립 림·다미르 도마 등 해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무대를 두루 섭렵했다. 187cm의 우월한 ‘기럭지’와 세련된 패션 감각, 조금만 건드려주어도 이미지가 180도 달라지는 모델 출신 특유의 유연함은 그가 가진 큰 무기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은 배우라 평가했다.
“모델 출신이라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연기에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해요. 자신도 모르게 배어나오는 애티튜드라고 해야 하나요?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저도 모르게 모델 포즈 같은 게 튀어나오나 봐요. 그냥 길을 걷는 장면인데 저 혼자 워킹을 하고 있었던 거죠. 처음엔 그 때문에 야단도 많이 맞았고…. 심지어 ‘괜찮아, 사랑이야’를 찍을 땐 배역에서 잘릴 뻔했어요.”
그는 지난해 SBS 화제작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주인공 지해수(공효진)의 남자친구로 출연했다. 첫 번째 작품이었던 tvN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에선 비중이 크지 않았던 만큼 그에겐 두 번째 출연작인 ‘괜찮아, 사랑이야’가 연기다운 연기를 해볼 수 있었던 최초의 작품인 셈이다.
“쟁쟁한 배우가 많이 출연해서 제 모자란 연기가 더 튀었을 거예요. 지금도 그때 제가 나온 장면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라니까요. 감독님도 답답하셨는지 제가 계속 그 상태면 배역에서 빼겠다는 말씀까지 하시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때마침 조인성 선배님과 대립하는 장면이랑 공효진 선배님한테 ‘우리 3백 일 때 뭐할까’ 라고 미소를 띠면서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두 장면이 극 전개상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준비를 엄청 했어요. 손짓 하나하나까지 디테일하게 고민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나 봐요. 그 신을 촬영하고 나서 감독님께서 바로 전화를 주셨어요. 계속 출연해도 될 거 같다고, 열심히 해보자고….”
연기 연습에는 될 때까지란 게 없다
그에겐 눈물나게 고마운 순간이었다. 다른 연기자들처럼 오랜 시간 단역을 전전하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것도 아니고, 연기 학원을 다니며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운 것도 아니었기에 스스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로 카메라 앞에 섰던 터였다.
“이순재 선생님 같은 분들도 언제나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읽고 또 읽고 연습을 계속하시는 거죠. 집에서 대본을 들고 혼자 연습을 하면서 나름대로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현장에 갔는데 그럴 때마다 예상이 여지없이 무너졌어요. ‘되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그냥 망하는 거였어요. 연기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아무리 준비를 해가도 상대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거든요.
정말 신기한 건 제가 아무리 연습을 해가도 현장에서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다보면 다른 연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훨씬 더 좋고 자연스럽더라고요. 혼자 연습할 때는 그냥 슬픈 정도의 감정이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상대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다 보면 눈물이 북받쳐 오를 때도 있었죠. 민망하고 죄송할 정도로 모든 배우들이 저를 배려해 연습을 도와주고 현장 동선을 준비하세요. 제 감정대로만 하면 연기가 완성될 수 없다는 걸 배우면서 연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거 같아요.”
드라마를 통해서 그를 볼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의 말끝에 오밀조밀 묻어나는 사투리 억양이다. 굳이 감추려 애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티가 나게 촌스러운 것도 아닌. 예를 들자면 부산이 고향인 모델 출신 배우 강동원이 조근조근 자기 이야기를 풀어낼 때 억양 같다. 그 역시 부산 출신이다. 대화를 할 때는 이렇게 확연히 티가 나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드라마에선 어떻게 서울 토박이에 능글맞고 뻔뻔한 부잣집 막내아들 역을 소화해냈을까.
“연습했어요.”
물론 그렇겠지만 사투리 억양이란 게 연습한다고 쉽게 고쳐지는 건 아니다. 하루이틀, 아니 한두 해 이 악물고 연습해도 어느 순간 툭툭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걸 초짜 연기자가 연습만으로 고쳐냈다니 보기완 다르게, 사슴 눈 뒤에 독종 같은 구석을 숨겨두었나 싶다.
“아직 완벽하게 고쳐진 게 아니에요. 오늘처럼 편하게 대화를 할 때는 사투리 억양이 그냥 나와요. 그래서 한 장면을 위해 대사를 수십, 수백 번 녹음하면서 들어보고 고치고 들어보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거예요. 연습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살아요. 틈만 나면 녹음해서 들어보는 거죠. 그런데도 계속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 ‘엄마’ 같은 단어들. 아무리 연습해도 억양이 남더라고요. ”
연기를 하면서 비로소 발견한 나
그가 연기하는 마도진은 주인공이 아님에도 캐릭터가 굉장히 입체적이다. 극의 초반, 꿈도 야망도 없이 돈만 흥청망청 쓸 줄 아는 전형적인 재벌 2세 캐릭터였던 도진은 극의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점차 자아를 되찾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한 순정남으로 돌아섰다.
“처음엔 도진이가 그냥 한량에 엄마만 찾는 마마보이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부잣집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했어요. 그런 사람들에겐 공통적인 특징이 있더라고요. 말을 툭툭 뱉고, 성격도 까칠하고, 자기가 잘났다는 것도 확실히 알고 있더라고요. 자신감이 넘치는 거죠. 그래서 초반의 도진이는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어요. 겉으로는 부잣집 막내아들 도진이를 맞게 표현했는데 제 내면에는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없었던 거죠.”
힘이 됐던 건 도진의 어머니를 연기하며 그를 진짜 엄마처럼 살뜰하게 챙겨주고 있는 배우 전인화의 조언이었다.
“어머니도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처음부터 잘 알고서 시작하진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수많은 인물 분석 데이터가 있고, 인물의 성격과 배경 등등에 대해 고민을 해도 직접 연기를 하면서 빠져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라고요. 그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한 분도 자기가 연기하는 인물을 알아가는 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니까 조바심이 조금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정말 어머니 말씀처럼 도진이란 인물을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극 초반에 나타났던 도진이의 마마보이 같은 모습은 엄마에 대한 연민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니까,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었던 거죠. 도진이의 마음속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저와도 참 많이 닮았더라고요.”
만약 극 중 도진처럼 부모가 반대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도 여자를 택하지 않겠느냐”였다.
“외동아들로 자라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예전엔 제가 외로움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누군가 옆에 있어야 기운이 나는 사람이더라고요. 나중에 저도 도진이처럼 철이 들어가고, 제 아이에게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결혼도 빨리 하고 싶고요.”
연기를 하면서 그는 몰랐던 스스로를 자꾸만 발견해내는 재미에 빠져드는 중이다.
스물여덟, 행복해지고 있다
만으로 스물여덟 살. 신인 연기자치곤 적지 않은 나이다. 한때 꽤 잘나가는 모델이었고, 모델이 되기 전까진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부터 옷가게 점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모델이 되고서도 한동안은 다른 일을 계속해야 했다.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속은 배고픈 직업이라 모델 일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못난이는 되지 말자는 결심만은 지켜왔다.
새삼 돌아보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지만 많은 것을 놓치기도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갑자기 그가 엄지손가락을 쭉 내밀어 치켜세웠다.
“이 손가락 보이세요? 이렇게 생긴 손이 손재주가 많대요. 저도 예전엔 몰랐는데, 제가 손재주가 좀 있는 거 같더라고요.”
지난해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서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 로그 2014’를 진행하면서 그는 지금껏 자신이 만나보지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이 난 것은 가구를 만드는 일이었다.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가구를 만들어야 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인데도 뚝딱뚝딱 제법 잘 만들어냈다. 전문가들도 감탄사를 쏟아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건 가구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이 몹시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제 손으로 집을 짓고 싶어요. 페인트칠이며 조명 다는 일도 제가 직접 하고, 가구 하나하나까지 제 손으로 만든 집이요.”
가구를 만드는 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을 공유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LP판으로 김광석의 노래를 듣거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연극을 보는 것도 예전엔 그가 좋아하는 일인지조차 몰라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의 버킷 리스트 중에는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도 포함돼 있다. 여물지 못한 자신의 연기를 가다듬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관객과 호흡하는 배우가 되고픈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저는 정말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직 신인 주제에 건방진 말이긴 하지만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선배님들이 ‘인기 많아져봐라, 너도 어깨에 힘 들어가고 사람들 시선 신경 쓰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불행하지 않을까요? 보고 싶은 전시를 보지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편히 먹지 못하고, 어딜 가나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말이에요. 저는 아직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느끼고 싶은데 인기가 많아지면 그런 제약이 생길 것만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소속사에서 싫어할까요?”
그는 솔직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인기를 지키기 위한 가식에 파묻힐까 봐 걱정하는 설익은 오지랖도 지녔다. 나이 서른을 목전에 둔 소년 같은 배우와의 인터뷰는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그는 행복한 배우가 될 것이다. 오늘의 인터뷰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쏟아낸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잊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안심이 된다.
기획·김지영 기자|글·김지은 자유기고가|사진·조영철 기자, MBC 택시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직은 본명보다 극 중 이름인 마도진이 더 익숙할지 모르겠다. MBC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에서 모델 출신다운 우월한 신체 조건과 신인임에도 어색하지 않은 연기로 안방극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도상우. 모자란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도, 스스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설레어하는 모습도 참 예쁜 이 남자의 매력.
MBC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에서 보여주던 재벌 2세 특유의 빤질거리는 모습도, 우유부단하고 불안정한 모습도 온데간데없었다. 선이 고운 미소년의 등장에 3초 정도 당황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도상우(28)는 시청률 30%대를 돌파하며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전설의 마녀’에서 신화그룹 오너의 내연녀 차앵란(전인화)의 아들 마도진 역으로 출연 중이다. 마도진은 뭘 입어도 맵시가 나는 이상적인 외모의 소유자지만 개념과 예의 같은 미덕은 찜 쪄먹은 지 오래고, 중증 마마보이다. 그럼에도 능글능글 눙치기도 잘하고 붙임성이 좋은 캐릭터다.
극 중의 능청스러운 모습만 보면 여기저기서 연기깨나 했을 성싶지만 이 드라마는 도상우의 세 번째 출연작이다. 연기 초짜가 벌써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으니 운과 실력을 모두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그는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에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몸에 밴 모델 포즈가 고민
“화면에 나온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면 아마 선배님들 덕분일 거예요. 특히 ‘어머니(그는 극 중 모친인 전인화를 그렇게 불렀다)’는 ‘얘는 내 눈을 보고 연기 연습을 해야 잘되는 아이니까 눈을 맞추면서 연습해야 된다’면서 항상 눈을 보며 연습을 도와주세요. 현장에선 이게 참 드문 일이래요. 연습을 도와주신다고 해도 대본을 함께 읽어주는 정도지, 눈을 보면서 감정 연기까지 해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대요.”
그에게는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는 대세남들의 공통분모인 ‘패션 모델 출신’이라는 이력이 따라붙는다. 2008년 서울 패션 위크에서 디자이너 이주영의 컬렉션 무대에 선 것을 시작으로 최범석·곽현주·고태용 등 내로라하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무대와 필립 림·다미르 도마 등 해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무대를 두루 섭렵했다. 187cm의 우월한 ‘기럭지’와 세련된 패션 감각, 조금만 건드려주어도 이미지가 180도 달라지는 모델 출신 특유의 유연함은 그가 가진 큰 무기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은 배우라 평가했다.
“모델 출신이라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연기에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해요. 자신도 모르게 배어나오는 애티튜드라고 해야 하나요?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저도 모르게 모델 포즈 같은 게 튀어나오나 봐요. 그냥 길을 걷는 장면인데 저 혼자 워킹을 하고 있었던 거죠. 처음엔 그 때문에 야단도 많이 맞았고…. 심지어 ‘괜찮아, 사랑이야’를 찍을 땐 배역에서 잘릴 뻔했어요.”
그는 지난해 SBS 화제작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주인공 지해수(공효진)의 남자친구로 출연했다. 첫 번째 작품이었던 tvN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에선 비중이 크지 않았던 만큼 그에겐 두 번째 출연작인 ‘괜찮아, 사랑이야’가 연기다운 연기를 해볼 수 있었던 최초의 작품인 셈이다.
“쟁쟁한 배우가 많이 출연해서 제 모자란 연기가 더 튀었을 거예요. 지금도 그때 제가 나온 장면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라니까요. 감독님도 답답하셨는지 제가 계속 그 상태면 배역에서 빼겠다는 말씀까지 하시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때마침 조인성 선배님과 대립하는 장면이랑 공효진 선배님한테 ‘우리 3백 일 때 뭐할까’ 라고 미소를 띠면서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두 장면이 극 전개상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준비를 엄청 했어요. 손짓 하나하나까지 디테일하게 고민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나 봐요. 그 신을 촬영하고 나서 감독님께서 바로 전화를 주셨어요. 계속 출연해도 될 거 같다고, 열심히 해보자고….”
MBC 드라마 ‘전설의 마녀’에 재벌 2세로 출연 중인 도상우.
연기 연습에는 될 때까지란 게 없다
그에겐 눈물나게 고마운 순간이었다. 다른 연기자들처럼 오랜 시간 단역을 전전하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것도 아니고, 연기 학원을 다니며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운 것도 아니었기에 스스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로 카메라 앞에 섰던 터였다.
“이순재 선생님 같은 분들도 언제나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읽고 또 읽고 연습을 계속하시는 거죠. 집에서 대본을 들고 혼자 연습을 하면서 나름대로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현장에 갔는데 그럴 때마다 예상이 여지없이 무너졌어요. ‘되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그냥 망하는 거였어요. 연기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아무리 준비를 해가도 상대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거든요.
정말 신기한 건 제가 아무리 연습을 해가도 현장에서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다보면 다른 연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훨씬 더 좋고 자연스럽더라고요. 혼자 연습할 때는 그냥 슬픈 정도의 감정이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상대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다 보면 눈물이 북받쳐 오를 때도 있었죠. 민망하고 죄송할 정도로 모든 배우들이 저를 배려해 연습을 도와주고 현장 동선을 준비하세요. 제 감정대로만 하면 연기가 완성될 수 없다는 걸 배우면서 연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거 같아요.”
드라마를 통해서 그를 볼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의 말끝에 오밀조밀 묻어나는 사투리 억양이다. 굳이 감추려 애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티가 나게 촌스러운 것도 아닌. 예를 들자면 부산이 고향인 모델 출신 배우 강동원이 조근조근 자기 이야기를 풀어낼 때 억양 같다. 그 역시 부산 출신이다. 대화를 할 때는 이렇게 확연히 티가 나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드라마에선 어떻게 서울 토박이에 능글맞고 뻔뻔한 부잣집 막내아들 역을 소화해냈을까.
“연습했어요.”
물론 그렇겠지만 사투리 억양이란 게 연습한다고 쉽게 고쳐지는 건 아니다. 하루이틀, 아니 한두 해 이 악물고 연습해도 어느 순간 툭툭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걸 초짜 연기자가 연습만으로 고쳐냈다니 보기완 다르게, 사슴 눈 뒤에 독종 같은 구석을 숨겨두었나 싶다.
“아직 완벽하게 고쳐진 게 아니에요. 오늘처럼 편하게 대화를 할 때는 사투리 억양이 그냥 나와요. 그래서 한 장면을 위해 대사를 수십, 수백 번 녹음하면서 들어보고 고치고 들어보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거예요. 연습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살아요. 틈만 나면 녹음해서 들어보는 거죠. 그런데도 계속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 ‘엄마’ 같은 단어들. 아무리 연습해도 억양이 남더라고요. ”
연기를 하면서 비로소 발견한 나
그가 연기하는 마도진은 주인공이 아님에도 캐릭터가 굉장히 입체적이다. 극의 초반, 꿈도 야망도 없이 돈만 흥청망청 쓸 줄 아는 전형적인 재벌 2세 캐릭터였던 도진은 극의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점차 자아를 되찾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한 순정남으로 돌아섰다.
“처음엔 도진이가 그냥 한량에 엄마만 찾는 마마보이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부잣집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했어요. 그런 사람들에겐 공통적인 특징이 있더라고요. 말을 툭툭 뱉고, 성격도 까칠하고, 자기가 잘났다는 것도 확실히 알고 있더라고요. 자신감이 넘치는 거죠. 그래서 초반의 도진이는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어요. 겉으로는 부잣집 막내아들 도진이를 맞게 표현했는데 제 내면에는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없었던 거죠.”
힘이 됐던 건 도진의 어머니를 연기하며 그를 진짜 엄마처럼 살뜰하게 챙겨주고 있는 배우 전인화의 조언이었다.
“어머니도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처음부터 잘 알고서 시작하진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수많은 인물 분석 데이터가 있고, 인물의 성격과 배경 등등에 대해 고민을 해도 직접 연기를 하면서 빠져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라고요. 그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한 분도 자기가 연기하는 인물을 알아가는 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니까 조바심이 조금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정말 어머니 말씀처럼 도진이란 인물을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극 초반에 나타났던 도진이의 마마보이 같은 모습은 엄마에 대한 연민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니까,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었던 거죠. 도진이의 마음속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저와도 참 많이 닮았더라고요.”
만약 극 중 도진처럼 부모가 반대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도 여자를 택하지 않겠느냐”였다.
“외동아들로 자라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예전엔 제가 외로움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누군가 옆에 있어야 기운이 나는 사람이더라고요. 나중에 저도 도진이처럼 철이 들어가고, 제 아이에게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결혼도 빨리 하고 싶고요.”
연기를 하면서 그는 몰랐던 스스로를 자꾸만 발견해내는 재미에 빠져드는 중이다.
스물여덟, 행복해지고 있다
만으로 스물여덟 살. 신인 연기자치곤 적지 않은 나이다. 한때 꽤 잘나가는 모델이었고, 모델이 되기 전까진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부터 옷가게 점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모델이 되고서도 한동안은 다른 일을 계속해야 했다.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속은 배고픈 직업이라 모델 일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못난이는 되지 말자는 결심만은 지켜왔다.
새삼 돌아보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지만 많은 것을 놓치기도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갑자기 그가 엄지손가락을 쭉 내밀어 치켜세웠다.
“이 손가락 보이세요? 이렇게 생긴 손이 손재주가 많대요. 저도 예전엔 몰랐는데, 제가 손재주가 좀 있는 거 같더라고요.”
지난해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서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 로그 2014’를 진행하면서 그는 지금껏 자신이 만나보지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이 난 것은 가구를 만드는 일이었다.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가구를 만들어야 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인데도 뚝딱뚝딱 제법 잘 만들어냈다. 전문가들도 감탄사를 쏟아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건 가구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이 몹시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제 손으로 집을 짓고 싶어요. 페인트칠이며 조명 다는 일도 제가 직접 하고, 가구 하나하나까지 제 손으로 만든 집이요.”
가구를 만드는 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을 공유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LP판으로 김광석의 노래를 듣거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연극을 보는 것도 예전엔 그가 좋아하는 일인지조차 몰라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의 버킷 리스트 중에는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도 포함돼 있다. 여물지 못한 자신의 연기를 가다듬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관객과 호흡하는 배우가 되고픈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저는 정말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직 신인 주제에 건방진 말이긴 하지만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선배님들이 ‘인기 많아져봐라, 너도 어깨에 힘 들어가고 사람들 시선 신경 쓰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불행하지 않을까요? 보고 싶은 전시를 보지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편히 먹지 못하고, 어딜 가나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말이에요. 저는 아직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느끼고 싶은데 인기가 많아지면 그런 제약이 생길 것만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소속사에서 싫어할까요?”
그는 솔직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인기를 지키기 위한 가식에 파묻힐까 봐 걱정하는 설익은 오지랖도 지녔다. 나이 서른을 목전에 둔 소년 같은 배우와의 인터뷰는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그는 행복한 배우가 될 것이다. 오늘의 인터뷰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쏟아낸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잊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안심이 된다.
기획·김지영 기자|글·김지은 자유기고가|사진·조영철 기자, MBC 택시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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