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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네 번째 |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시선장애 극복하고 ‘기적의 오디션’ 우승한 손덕기

“콤플렉스도 신이 주신 선물이죠”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박해윤 기자

2012. 02. 15

지난해 SBS에서 방영한 배우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 2만2천여 명의 지원자 중 최후의 우승자에게는 SBS 드라마 주조연급에 캐스팅되는 파격적인 기회가 주어졌다. 꿈같은 기회를 거머쥔 ‘러키 가이’의 이름은 손덕기. 중학생 때부터 배우를 목표로 한길만 달려온 그를 만나 에너지를 나눠 받았다.

시선장애 극복하고 ‘기적의 오디션’ 우승한 손덕기


“저는 재능을 타고나진 않았어요. 느리지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죠. 배우가 되려면 몸을 잘 써야겠다 싶어 무용을 배웠고, 발성이 좋아야겠구나 싶어 노래를 배웠죠. 뭐든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외국어도 공부하고 운동도 배웠어요.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전에 체력을 확 끌어올리려고 운동을 다시 시작했어요. 크로스 핏이라고, 몸 만드는 데 그만이죠. 하하.”
손덕기씨(29)는 중학생 때부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등을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그는 “누구나 ‘저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저런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꿈이 좀 강했다”고 말했다. 복싱, 프랑스 격투기, 무술, 피아노, 기타, 재즈, 발레, 탭댄스, 힙합, 현대무용…. 손씨가 배우가 되기 위해 차근차근 쌓아온 내공의 일부다. 성균관대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연기예술학을 전공한 그는 ‘기적의 오디션’ 대전 예선에서 유창한 영어로 ‘조커’를 연기하며 호평을 받았다. 알고 보니 유학 한 번 안 간 거제도 출신 국내파.
“원래 외국어 욕심이 많아요. 하루에 10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죠. 전공 고를 때 영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공부할 테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 프랑스어문학을 선택했어요. 요즘은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중국어는 혼자 공부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잠깐 놨어요(웃음).”

키가 크니, 돈이 많니? 하지만 꿈이 있어요
지난 4년간 손씨는 뮤지컬 무대에서, 1년은 연극 무대에서 관객을 만났다. 단편영화 2편을 찍고,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3백 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연기 아닌 다른 것으로 돈을 벌면 무너질 것 같았다”는 손씨. 집에서는 공부 잘하는 큰아들이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원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셨지만 계속 ‘저는 이게 정말 하고 싶다’고 밀고 나갔죠. 공부는 12년 동안 해왔고 상위 4% 안에도 들던 터라 승산이 있는데, 뭣 하러 가능성 없는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하셨죠. 부모님 말씀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네가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잘생겼니, 키가 크니, 돈이 많니, 연줄이 있니, 경험이 많니?’였어요. 그래서 ‘월급쟁이나 배우나 어떤 직업이든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순간 배우를 하고 있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득했어요.”
그는 ‘기적의 오디션’ 예선 당시 서울에서 살고 있었지만 오디션을 보러 일부러 대전으로 갔다. 이유는 “그게 제일 빠른 일정이었다”라며 “도저히 서울 오디션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기적의 오디션’은 매회 생방송으로 연기를 하고 합격과 불합격을 가렸다. 노래는 한 곡으로 완결된 무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연기는 그때그때 즉각적인 감정이입으로 무대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파이널 무대에서 드라마 ‘대물’의 하도야 검사를 연기했는데 연기는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습 때가 훨씬 좋았거든요(웃음). 실시간으로 결과가 나오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이 더 컸어요. 현장 분위기는 좋았어요. 모두 즐겁게 촬영에 임했고 그때 만난 이들 대부분이 소속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죠. 어제도 (허)성태(‘기적의 오디션’ 톱5 멤버) 형이랑 만나 수다 떨고, 다들 자주 연락하면서 사이 좋게 지내요.”
배우가 되는 길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 ‘기적의 오디션’ 심사위원인 이미숙은 그의 연기를 보고 “배우로서 눈을 안 마주치는 건 연기하는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라며 애정 어린 독설을 했다. 손씨는 어릴 적 앓은 뇌종양 후유증으로 시선장애를 갖고 있다. 당시 그 말에 눈시울을 붉혔던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최후의 1인이 됐다. 그는 “진짜 운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일곱 살 때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돌아간 거예요. 병원에서 원인을 못 찾더라고요. 결국 대학병원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MRI 검사를 받고 뇌에 종양을 발견했어요. 중환자실에 있다가 전신마취하고 장장 17시간의 대수술을 받았어요.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이 낮았는데 수술이 잘돼서 서울대학병원 선생님들 사이에서 별명이 ‘러키 보이’였어요.”

2만2천대 1 경쟁률 뚫은 러키 보이

시선장애 극복하고 ‘기적의 오디션’ 우승한 손덕기




지금도 수시로 눈 때문에 힘든 순간이 찾아오지만 “콤플렉스를 신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자”며 밝게 웃는 손씨. 그는 꿈을 향해 나아가다 역경이 있더라도 “버텨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저 위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안 보이잖아요. 덜 고민하고 더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꿈을 꾸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이죠. 머리로만 어떻게 올라갈지 걱정하지 말고 거절당하고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보여줘야 해요.”
틈날 때마다 서울 종각 인근을 배회하기를 즐긴다는 그는 이유를 묻자 “서점이 세 군데나 모여 있잖아요”라고 했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점을 돌며 책을 읽는다. 연기 관련 서적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냐고 묻자 배낭에서 두 권을 꺼냈다. 그의 오디션 출연 사례가 실린 ‘서바이벌 오디션 멘토링’과 존 고든의 저서 ‘씨드’.
이제 배우가 된 그는 새로운 꿈을 꾼다. 송강호, 유해진, 이병헌, 김윤석, 하정우, 기무라 다쿠야 같은 연기를 하는 것이다.
“하정우씨의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흡인력 있는 연기가 좋아요. 극적인 순간이 아님에도 이 사람이 어떻게 연기할지 보고 싶은 연기를 하고 싶죠. 기무라 다쿠야는 저를 꿈꾸게 한 사람이죠. ‘저런 좋은 배우가 돼서 언젠가 같이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꿨고, 그건 하루의 활력소였어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좋아요. 제 매력이요? 마음을 담아서 노력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연기할 때 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미라클 스쿨’의 멘토 이범수는 그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범수 형은 열정적으로 사는 법을 몸소 보여주셨어요. 그걸 보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웠죠. 형이 자신감, 열정, 에너지, 감정 그런 것을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기적의 오디션’ 김용재 PD는 5월쯤 SBS에서 방영될 미니시리즈에 손씨가 투입될 거라고 전했다. 그는 애절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나 선과 악이 공존하는 역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만약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도 저는 평생 배우의 꿈을 꿨을 거예요. 느긋하게, 급하지 않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래오래 배우를 하고 싶거든요. 묵묵히 지켜봐주시면, 실망시키지 않고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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