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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KALEIDOSCOPE

오가닉이라는 이름의 종교

Worshipping Organic

글 · 조엘 킴벡 | 사진 · REX

작성일 | 2015.09.08

오가닉이라는 이름의 종교
뉴욕에서 살다 보면 ‘오가닉’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듣는다. 처음에는 먹거리에서 시작된 오가닉이란 키워드가 어느새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입고 바르는 데까지 전파돼, 인간의 몸에 닿는 모든 것에 오가닉이 적용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른바 라이프스타일 패턴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철학과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뉴요커들의 오가닉에 대한 선호 혹은 집착은 가히 집단 최면 수준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뉴욕에서 오가닉이 이렇게까지 절대적인 힘을 휘두르진 못했다. 건강을 생각하고 좀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앞선 사람들이 벌이는 일종의 작은 무브먼트였달까. 이렇듯 모든 생활의 근본을 바꿔버릴 정도로 오가닉이 신흥 종교처럼 숭배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일이다.

실례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뉴욕에서 오가닉 음식은 다 맛있다고 할 수 없었다. 일찍이 공자가 말했듯 양약고구(良藥苦口)라고, 몸에 좋은 것이 입에는 쓰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몸에 좋다니 먹긴 하지만, 감탄사가 절로 날 만큼 감동을 주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가닉 푸드 중에서 맛없는 것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다고 할 정도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 오가닉이 대세가 되고 나니, 뉴요커들은 이제 얼굴과 몸에 바르는 것까지 오가닉이라는 관념의 영향을 받게 됐다. 어느새 오가닉이라는 종교가 몸에 바르는 화장품과 생활용품에까지 깊숙이 침투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오가닉이라는 명제는 복음(福音)이 되어 이전까지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것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게 사람들을 몰아가며 교세(敎勢)를 넓혀가고 있다.

레티놀 성분을 비롯해 주름을 없애준다고 숭배받던 성분들이 오가닉 화장품에서는 언급도 하면 안 되는 화학성분의 대표로, 제거 대상 1호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또한 화장품의 품질을 장기간 유지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온 파라벤 삼형제 - 메틸파라벤, 에틸파라벤, 프로틸파라벤은 화장품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마’로 낙인찍혔다. 아주 오랫동안 충치를 예방하는 우리 친구로 굳게 믿었던 불소 성분은 치아 뿌리부터 망가지게 하는 희대의 배신자가 되었다.

과학 기술의 결정체로 탄생해 많은 사람의 피부에 흡수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화장품들이, 오가닉 화장품 시대가 도래하자 하나같이 낙오자나 변절자로 변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오가닉이 종교를 넘어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돼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이며, 특히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그리고 몸에 바르는 것에 유난히 관심 많은 사람이기에, 오가닉 광풍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가닉 음식은 맛없다며 싫어하고, 오가닉 화장품은 효과 없다며 무시하던 나였지만, 어느새 맛있으면서 몸에도 좋다니 금상첨화라 생각하고 오가닉 레스토랑이나 케이터링만 고집한다. 또한 금방 사라지는 효과보다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피부 본연의 힘을 길러야 한다며 친구들에게 오가닉 화장품을 은근히 권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누구보다 열렬히 오가닉을 지지하는 신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화장품에서만큼은 몸에 밴 이전 습관을 버리지 못해 조용히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자주 방문할 때마다 백화점과 약국 혹은 로드숍에 넘쳐나는 오가닉 화장품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제품들을 한가득 쇼핑하기 때문이다. 바르기만 하면 금세 피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질 듯 수분을 담뿍 머금게 해줄 것 같은 화장품, 눈에 거슬리는 잡티를 지우개처럼 말끔히 지워줄 것 같은 신상품, 혹은 점점 깊어가는 주름을 몇 번 바르는 수고로 쫙 펴줄 것만 같은, 이른바 최첨단 신기술 화장품의 강력한 유혹에 무너지고 만다.

결국 낮에는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오가닉 화장품, 밤에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유명 브랜드 화장품, 이렇게 나눠서 쓰며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해보지만, 오가닉 화장품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기존 화장품에서 정을 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 애인을 동시에 사귀는 듯한 묘한 죄책감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 죄책감의 기원은 아마도 기존 화장품은 오가닉 화장품이 그토록 반대를 부르짖는 성분을 다량 함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당장이라도 주름을 없애줄 태세의 화학성분 화장품보다 주름을 없애준다는 공약은 애초에 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할 계획 없는 오가닉 화장품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가닉이라는 이름의 종교


오가닉이라는 이름의 종교

1 제시카 알바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오가닉 제품을 찾다가, 어떤 식으로든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돼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고, 직접 오가닉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창립했다. 2 트레이더 조스, 홀푸즈 마켓 같은 오가닉 전문 슈퍼마켓은 식음료뿐 아니라 화장품과 생활용품 분야에서도 오가닉 제품을 선택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브라질과 남미 오가닉 화장품까지 가세

이런 경향은 나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홀푸즈 마켓(Whole Foods Market)이나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 같은 오가닉 전문 슈퍼마켓이 뉴욕을 장악한 이후 식음료뿐 아니라 오가닉 화장품과 생활용품이 매장을 채우게 됐고, 그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닉 화장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저변이 크게 확대됐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닉적인 생활 방식을 선택하면서 병원 처방약 대신 천연 성분에서 유래한 오가닉 제품을 잘 활용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치유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엔 오가닉 제품 중에서도 어떤 것이 100% 천연 성분이며, 그 100% 천연 성분 중에서도 어떤 것이 원재료 자체부터 오가닉이었나 같은 미세한 문제를 집요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 결과 어떤 물품이 정말 오가닉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물품인지 증명해주는 단체가 생겨났고, 많은 오가닉 관련 제품이 그러한 단체가 부여하는 증명 마크(USDA Organic, EcoCert 등)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오가닉 보증 마크는 기존 화장품 브랜드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화장품 시장에서 오가닉 화장품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을 눈치 챈 기존 화장품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오가닉 화장품의 핵심 상품을 모방 혹은 참조해 신제품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는데, 이 보증 마크가 기존의 브랜드가 가진 화학제품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데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오가닉 화장품 역시 몇 년 전에는 그리 매력적인 제품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자연 유래의 천연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제품의 색상, 촉감, 향기 등이 대중이 화장품에 갖는 환상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오가닉 화장품은 발전을 거듭했고, 오가닉 화장품만이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친환경 발상의 디자인과 캠페인까지 더해져 뉴요커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다.

이런 오가닉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창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섹시한 배우로 추앙받았던 제시카 알바가 대표적인 경우.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화학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고자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제품이 절대 다수라는 것을 몸소 겪고 자신이 직접 오가닉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창립했다. 회사 이름도 오가닉 트렌드에 부합하는 ‘어니스트 컴퍼니(Honest Company)’.

샴푸, 보디워시, 치약, 손세정제, 선크림 등은 물론 아기와 관련된 기저귀, 세제, 로션 등 작은 규모로 시작한 이 회사는 이제 1백50여 가지 오가닉 제품을 생산하는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가닉 라이프를 영위하는 대표적인 셀레브러티 미란다 커 역시 자신의 오가닉적 삶을 그대로 반영한 스킨케어 제품군을 발매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모국인 호주의 청정 지역에서 엄선한 오가닉 원료로 생산하는 ‘KORA(코라)’라는 화장품 라인은 98% 이상의 고순도 오가닉 성분으로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가끔은 뉴욕에서 사는 것이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개개인의 개성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분명해 각자 삶의 기준을 만들어 살 것 같지만, 실상은 세상의 모든 문화와 트렌드가 가장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또한 총망라되어 있는 곳이기에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조바심을 느끼게 되는 곳이 또한 뉴욕이기도 하다.

요즘 뉴욕에서는 호주나 뉴질랜드발(發) 오가닉 화장품을 넘어서 브라질과 남미 각국에서 시작된 오가닉 화장품이 점점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아마존의 대자연에서 수확한 희귀한 천연 재료를 베이스로 제조된 다양한 제품이 차세대 히트 아이템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오가닉을 고집하는 미국 브랜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들었다. 물론 그 인기의 이유가 오가닉이라는 점보다는 톱 여배우들(그들은 유명 화장품 브랜드 모델)이 쉬쉬하며 사용하는 세럼이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이 화장품 역시 백화점 화장품 매장이 아닌 고급 슈퍼마켓에서 판매된다고 한다. 뉴욕에서처럼 말이다.

오가닉이라는 이름의 종교
Joel Kimbeck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디자인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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