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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헤어날 수 없는 ‘힐링 지옥’ 일본 북규슈 소도시

이경은 기자

2023. 03. 30

오직 힐링만을 위한 여행지를 찾는다면 일본 북규슈 소도시 ‘히타’ ‘유후인’ ‘벳푸’를 들러보자. 스마트폰 진동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 떠난 ‘내돈내산’ 일본 여행기

이번 여행에 앞서 지난해 11월 일본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어딜 가도 밀려드는 인파에 이곳이 출근길 지옥철인 건지 휴가지인 건지 분간이 안 됐다. 속으로 ‘내가 생각한 휴식이 아니야!’를 백번 외친 오사카 여행이 끝나고 며칠 뒤, 인천발 후쿠오카행 항공편을 끊었다. 이번 목표는 완전한 속세 탈출이다.

지도를 켜고 후쿠오카에서 갈 수 있는 작은 소도시를 찬찬히 살폈다. 그렇게 선택된 곳이 일본 규슈 오이타현의 ‘히타’ ‘유후인’ ‘벳푸’다. 후기를 보니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칭찬이 가득했다. 잠시나마 속세 탈출이 필요한 나에게 제격이다. 10분 만에 완벽한 목적지가 정해졌다.

히타, 유후인, 벳푸 세 도시 모두 후쿠오카시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있지만 이동수단은 고속버스로 선택했다. 기차푯값이 꽤 비쌀뿐더러 소요시간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 고속버스를 타기 위한 준비물은 딱 하나, ‘산큐패스’다. 산큐패스를 미리 구매하면 해당 기간 동안 그 지역의 버스와 선박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산큐패스 이용 지역은 ‘북부 규슈권’ ‘남부 규슈권’ ‘전 규슈권’ 3가지로 나눠져 있어 가고자 하는 도시에 맞춰 구매해야 한다. 3일권, 4일권 등 기간도 다양하니 일정을 고려해 선택하자. 기자는 세 도시가 모두 포함된 ‘북부 규슈권’을 구매했다. 3일권에 7000엔(약 6만9000원)이다.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일부 버스 노선은 예약이 필요하다. 일본 버스 예약 플랫폼 ‘하이웨이버스(highwaybus.com)’를 이용하자. 라인으로 먼저 자리를 예약해두고 탑승할 때 산큐패스를 보여주면 된다. 한국어도 지원해 편리하다. 하지만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예약하고자 하는 날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에 예약 창이 열리는데 몇 분만 지나도 오전 시간대는 모두 마감된다. 특히 후쿠오카와 유후인을 잇는 노선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니 미리 알람을 설정해두고 예매하길 추천한다.

물의 도시 히타

히타는 후쿠오카시 하카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일본 소도시다. 히타의 관광 명소는 크게 마메다마치와 구마마치로 나눠져 있는데, ‘덴료 히타’라고도 불리는 마메다마치는 에도시대 막부 정권의 관할지로 과거 규슈 지방에서 가장 번영을 이뤘던 곳이다. 길도 당시 그대로라 에도시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보존된 전통 거리엔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모여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판대에 전시된 형형색색의 나막신이 눈에 띈다. 길거리 음식도 많다. 무기야 카페에서 갓 튀긴 ‘키마 카레빵’ ‘긴조 아이스크림’ 등이 유명하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한 모습을 보니 경북 경주의 황리단길이 떠오른다. 구마마치는 마메다마치에 비해선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현지인 사이에서 떠오르는 신시가지라고. 구마마치에 있는 맛집에서 배를 불리고 마메다마치에 있는 마쿠마 강변을 느긋하게 산책하면 여행 코스가 완성된다. 히타역에서 마메다마치는 도보로 20분, 구마마치는 10분 거리에 있어 뚜벅이 여행자도 어렵지 않게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히타는 ‘물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물로 된 특산품이 유명하다. 지하수를 사용해 만든 맥주, 일본주, 소주, 식용수, 간장 등이 그 예. 짧은 일정에 방문하지 못했지만 ‘삿포로 맥주 규슈 히타 공장’도 있다. 공장 내에는 음식점이 있어 갓 만든 맥주를 맛보기에 그만이니,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유명 만화 ‘진격의 거인’을 그린 만화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출신지로도 알려진 히타는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만화 속 캐릭터 ‘리바이’의 동상이 있는 가하면 관광 안내소엔 진격의 거인 굿즈도 판매한다.

히타역
히타역과 히타 버스터미널은 서로 마주 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어디서 내리든 히타역 앞 랜드마크에서 사진을 찍어보자. HITA 중 알파벳 ‘I’ 자리에 내가 들어가면 완성! 삼나무가 특산물인 히타답게 랜드마크와 역 대합실 모두 삼나무로 돼 있다.

쿤초슈조
오래된 창고를 사용하는 주류 제조·판매 전문점이다. 일본식 식혜를 비롯해 각종 술과 음료가 전시돼 있을 뿐 아니라 요청 시 맛볼 수도 있다. 도수가 높은 술이 대부분이라 조금씩 홀짝거리면 금세 취하니 주의하자. 판매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술 제조 과정이 설명돼 있는 전시관과 실제 술을 만드는 장소도 구경할 수 있다. ‘고구마 소주’ 한 병 구매한 건 안 비밀.

덴료 히타 하키모노 자료관 아시타야
히타는 예부터 양질의 삼나무와 전나무가 자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히타 게다(히타 나막신)’ 제조 공장이 개설한 직판장으로 수많은 나막신이 전시돼 있다. 하이라이트는 높이 4m가 넘는 일본 제일의 삼나무 나막신. 커다란 나막신 옆에서 사진 한 장 남기자.

마쿠마강
규슈에서 가장 큰 강인 지쿠고강 상류의 미쿠마강. 강가엔 온천 여관이 늘어서 있고 해 질 녘엔 놀잇배 야카타부네가 뜬다. 여름밤에 이곳을 방문하면 약 400년 전통의 어법 ‘우카이’도 구경할 수 있다.


이것만은 꼭 먹자!

‘히타 야키소바’
바삭하게 구운 메밀 면과 아삭한 콩나물을 짭조름한 간장 베이스 양념에 볶아낸 히타 야키소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야키소바 위에 달걀노른자 하나 톡 올려 히타에서 갓 만든 삿포로맥주와 먹는다면 그야말로 환상. 고소한 감칠맛 뒤에 밀려오는 맥주의 청량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TIP
히타 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위치한 관광 안내소를 꼭 들러보자. 물품 보관함에 짐을 맡기거나 자전거 렌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현금만 가능하니 미리 동전을 구비해두는 게 좋다. 관광 안내소엔 한국어로 된 관광 지도도 있다. 미리 챙겨두면 꽤 쏠쏠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산을 낀 료칸 마을 유후인

히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약 45분 정도 이동하면 수려한 경치와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에 도착한다. 유후인 어디서나 보이는 유후산은 마을에 중후한 멋을 더한다. 유후인은 사시사철 따뜻한 온천수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온천 마을이다. 명성답게 길을 따라 수 십 개의 료칸이 자리해 있다. 역 주변과 유노츠보 거리는 시끌시끌하지만 료칸 부근은 한적해 낮밤 상관없이 여유를 즐기기 좋다.

유후인은 자전거길이 잘 깔려 있어 자전거를 타고 관광하기 좋다. 유후인 버스터미널에서 유명 관광지 긴린코 호수로 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이라 자전거를 타면 효율적인 관광이 가능하다. 유후인을 가로질러 흐르는 천변을 따라 약 10분 정도 가면 긴린코 호수로 향하기 때문에 길을 찾기 쉽다.

긴린코 호수
유후인 북쪽 유후산 기슭에 위치한 호수다. 호수 바닥에서 차가운 지하수와 뜨거운 온천수가 같이 나와 물안개가 자주 보이는 게 이 호수의 특징. 물안개는 이른 아침에 자주 눈에 띈다는데 아쉽게도 기자는 그 모습을 보질 못했다. 해 질 녘 호수 위로 힘차게 뛰어오른 물고기가 금빛으로 보인다 해 긴린코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노츠보 거리
유후인 최대 번화가이자 관광지다. 유후인 기차역에서 긴린코 호수를 가는 길이라 반드시 지날 수밖에 없다. 여러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가 모여 있는 이곳은 금상 크로켓이 유명한데, 비싸지 않은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간식거리라 줄 서서 하나쯤 사 먹어봐도 좋겠다.

유후인 료칸
료칸은 일본의 전통적인 숙박 시설로 전통 다다미방과 일본식 코스 요리(가이세키)를 체험할 수 있다. 유후인 지역 대부분 료칸에는 온천을 갖췄다. 하루 관광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면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싹 풀린다.


이것만은 꼭 먹자!

유후인 내 이자카야
유후인에선 대부분의 음식점이 문을 일찍 닫지만 술과 간단한 안주를 판매하는 이자카야는 늦은 시간까지 영업한다. 일정을 마친 뒤 하이볼을 한잔 하러 이자카야에 들러보자. 주인장의 추천 메뉴에 추천 술을 곁들어 먹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유후인에 머무는 이틀 내내 이자카야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TIP
유후인에서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미리 알아보자. 가격도 상설 대여소보다 저렴하고 숙소에 짐을 맡겨놓고 바로 출발할 수 있어 편리하다.

신비한 지옥 마을 벳푸

유후인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이동하면 벳푸에 도착한다. 일본 1위의 온천수 용출량을 자랑하는 온천 명소답게 벳푸에 도착하면 유황 냄새가 도시를 은은하게 맴돈다. 시내 각지에서 온천수가 용출되기 때문이다. 굴뚝마다 나오는 수증기도 인상적이다.

벳푸를 방문한 목적은 ‘지옥 순례(지고쿠 메구리)’를 위해서다. 100℃에 가까운 고온의 간헐천이 펄펄 끓는 모습이 지옥을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벳푸에 있는 지옥은 총 8개. 이중 7개 지옥을 입장할 때 유용한 벳푸 지옥 순례 통합권도 있다. 어른 기준으로 총 2200엔(약 2만1000원). 모든 지옥을 돌아보려면 벳푸역 앞에서 출발하는 가메노이 정기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옥 하나당 입장료는 400엔(약 3900원)이다. 여러 지옥 중 가마도 지옥과 괴산 지옥을 다녀왔다.

가마도 지옥
지옥 온천 중 가장 유명한 지옥이다. 약 90℃의 온천수가 용출되는 이곳 앞을 도깨비 마스코트가 지키고 있다. 지옥 중 즐길 거리, 볼거리, 먹거리가 가장 많다. 맑은 옥색 온천과 부글부글 끓는 황토색 온천 등 다양한 색의 온천이 있고 온천수를 시음하거나 족욕을 즐길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자리한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지고쿠 포춘 쿠키’를 판매한다. 쿠키 위에 지고쿠 캐릭터 중 하나가 그려져 있는데, 캐릭터는 그날 운세를 의미한다.

괴산 지옥
괴산 지옥은 ‘악어 지옥’으로도 불린다. 온천 열을 이용해 악어를 사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로 악어가 많다. 이곳의 구조는 가마도 지옥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입을 벌린 채 움직이지 않는 악어 모형은 헷갈릴 정도로 현실감이 없다. 아이들이 방문하면 가장 좋아하겠다.


이것만은 꼭 먹자!

가마도 지옥 온천달걀
가마도 지옥엔 특이한 먹거리가 있다. 바로 용출수의 증기로 찐 온천 달걀(온센 다마고)이다. 직원의 안내에 따르면 달걀흰자에 소금을, 달걀노른자에 쯔유를 뿌려 먹는다고. “달걀이 이렇게 맛있었나?” 그날, 달걀 역사의 새 지평이 열렸다. 달걀노른자로 입안이 텁텁할 땐 음료 ‘라무네’를 추천한다. 살짝 소다향이 나는 사이다다.



TIP
벳푸에 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지난해 12월 13일 유명 할인 매장 돈키호테 벳푸점이 오픈했기 때문. 이제 면세 기념품과 간식을 구매하기 위해 돈키호테 오이타점까지 갈 필요가 없다. 돈키호테 벳푸점은 오사카나 후쿠오카에 있는 지점과 달리 지역 할인마트 역할도 해 고객 중 현지인 비율이 높다. 벳푸 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있으니 꼭 방문해보길.

 사진 이경은 기자 게티이미지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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