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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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웩슬러 지능검사, 초등학교 입학 전 필수라고?

EDITOR 정혜연 기자

2019. 10. 27

학부모라면 자녀의 지능지수가 궁금한 건 당연지사. 그러나 절반쯤은 상술에 불과하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8월 말 방영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공부가 머니?’가 큰 화제를 모았다. 프로그램 제작 취지가 ‘교육비는 낮추고, 성적은 올린다’인 만큼 첫 소개로 교육에 과잉 지출을 하는 가족이 등장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탤런트 임호의 초등학교 저학년과 미취학 3남매는 방과 후 학습지와 숙제 때문에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방송 이후 인터넷 전국 맘카페마다 관련 글이 쇄도했다. 학습량을 두고 ‘밤마다 잠과 싸우며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저쯤 되면 아동 학대 수준’ 등 비난의 글이 쏟아진 것. 반면 ‘대치동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정도는 해야 한다’ ‘부모마다 교육관이 다른 것일 뿐’이라는 우호적인 글도 만만치 않았다. 

이와 함께 진행자인 유진의 딸 로희의 지능검사 결과도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제작진이 다섯 살 로희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했는데 IQ가 127로 또래 아이들 대비 상위 3%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로희는 언어이해, 시공간, 유동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 등 5개 영역에서 모두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특히 언어이해를 비롯한 3개 영역은 ‘우수’ 결과를 얻어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로희 IQ 127, 방송 타고 지능검사 관심 급증

제작진이 로희에게 시행한 검사는 ‘웩슬러 유아지능검사(WPPSI)’로 7세 이하 미취학 아동의 지능지수를 파악하기 위한 도구다. 1946년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웩슬러가 기존 여러 지능검사를 바탕으로 개인용 지능검사 WB-1·2를 개발했고, 개정을 거듭해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능검사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에 따라 성인(고등학생 이상), 아동(초등학생~중학생), 영유아(7세 이하)로 나눠 검사를 실시한다. 최고 점수는 160, 최하 점수는 40으로 설계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아동의 경우 점수가 130 이상이면 영재라고 칭한다. 



검사를 실시하는 곳은 다양하다. 대부분의 아동심리상담센터와 정신건강센터, 소아정신과 등에서는 심리 상태를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 웩슬러 지능검사와 심리검사를 동시에 실시한다. 또 전국의 각 영재교육원에서는 지원자의 학업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웩슬러 지능검사를 실시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얻은 학생을 대상으로 입학을 허가한다. 이외 각 구청 육아지원센터에서도 심리검사와 함께 웩슬러 지능검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다. 

검사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영재교육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심리검사와 함께 웩슬러 지능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70만원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 반면 구청 육아지원센터의 경우 심리검사를 포함해 10만원대에도 가능하며, 영재교육원에서 웩슬러 지능검사만 실시할 경우 10만~20만원의 비용이 든다. 

지능검사 질문 내용은 동일한데 검사 비용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평가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웩슬러 지능검사는 단순히 점수를 내는 것보다 정신과 전문의나 임상심리 상담사가 올바른 해석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문의와 상담사의 경력, 평가 결과에 따른 피검사자의 평판 등에 의해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방송 이후 미취학 아동을 둔 학부모뿐 아니라 초등학교 학부모 가운데 웩슬러 지능검사를 받으려는 이가 급증했다. 8세 여아를 둔 주부 이모 씨는 “내가 어릴 때는 초등학교에서 학급별로 IQ 검사를 실시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 없다 보니 답답하다. 아이가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기는 하는데 어떤 면에서 우수하고 부족한지 보다 정확하게 알고 싶다. 로희와 같이 높은 IQ가 나온다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번 검사를 받아보고 싶어 유명 영재교육원에 검사를 예약했다”고 말했다.

“지능검사 결과 없이도 학습 욕구 충족 가능”

이와 같이 학구열이 높은 학부모라면 자녀의 IQ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영재교육원이다. 자녀가 학습적으로 어느 정도 부모의 지시 내용을 따라올 경우 IQ 측정과 영재교육원 입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이런 학부모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인기 기관에서는 검사를 바로 받을 수 없을 정도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K영재원의 경우 지능검사 예약 문의가 하도 많아 올해부터 전화 접수를 받지 않고 방문 상담 이후 현장 예약만 받고 있다. K영재원 직원은 “입학 상담 예약을 현장 접수로 바꾼 후에도 접수량이 많아 적어도 두 달 뒤에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K영재원은 지능검사 결과가 또래에서 상위 15% 안에 들어야 수업 등록을 할 수 있다. 응시자 가운데 지능검사 수치가 낮게 나와 수업 등록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이도 적지 않다. 또한 이른바 영재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수업에 적응을 잘하는 아이의 경우 기존보다 수업 후 지능지수가 더 올라간다’는 입소문까지 난 덕에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처럼 자녀의 IQ를 파악하고, 높은 경우 영재원에 입학시키는 것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거치는 하나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특히 웩슬러 지능검사는 방송에 소개되기 전부터 ‘대치동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 필수로 받는 검사’로 통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웩슬러 지능검사를 단순히 IQ 측정용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김희성 사람사이 심리상담센터 상담사는 “단지 아이가 학습적으로 빠르다는 이유로 지능검사를 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아이가 현재 원하는 공부를 따라가고 있다면 지능검사 결과 없이도 충분히 학습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또 지능검사는 영재를 판단하는 것뿐 아니라 정신지체, 인지적 강점과 약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실시된다. 지능검사 결과는 임상이나 교육기관에서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지침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웩슬러 지능검사 수치와 학업성취도가 크게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수도권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한 아동심리상담가는 “웩슬러 지능검사는 단순히 지능검사라기보다는 아이의 적응 지능 지수를 측정하기 위한 도구다. 아이의 검사 수치만 가지고 하버드대나 서울대를 운운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서울대 학생들의 지능지수는 평균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부모가 아이의 지능지수에 관심을 쏟기보다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학습적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 게티이미지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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