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데, 이상하게 못 뜬 배우.’ 그동안 배우 서지혜(34)를 수식하는 말에는 이런 표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이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듯하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흑기사’ 덕분이다. ‘흑기사’는 사랑하는 여자 정해라(신세경)를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건 남자 문수호(김래원),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매혹적인 훼방꾼 샤론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멜로. 극 중 서지혜는 2백50년 전 지은 죄로 불로불사의 삶을 사는 마녀 샤론으로 등장해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악행도 서슴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연기를 하는 제 입장에서도 샤론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렇게 애달픈 사랑은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한 남자를 몇 백 년 동안 혼자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샤론이 죽지 않는 존재라는 데 생각이 집중되었어요. ‘내가 죽지 않는 존재이고, 그럼에도 내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밝힐 수 없는 인물이라면 어떨까.’ 2백5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보아왔을 텐데 하필 그중 자신에게 단 한 번도 틈도 내어주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까에 생각이 미치니 애잔한 마음이 들면서 짠해지더라고요.”
“사실 촬영 초반엔 일정이 빡빡해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주변 분들이 ‘드라마 잘 보고 있다’ ‘재미있다’고 얘기해주셔서 반응이 좋다는 걸 알았어요. 지인들이 보내온 인터넷 기사를 볼 때마다 뿌듯했죠. 그런데 한편으론 ‘인생 캐릭터’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기도 해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시청자들은 샤론을 능가하는 흡인력을 발휘하길 기대하실 테니까요. 어쨌든 이번 작품이 서지혜라는 배우를 좀 더 많은 분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책임감도 더 생기고, 욕심도 더 생기고, 제 연기 인생에 원동력이 되어준 작품입니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을 안고 있는 여자, 죽지도 못하고 내내 사랑에 가슴 아파야 하는 삶을 그려내기 위해 그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게다가 샤론이라는 인물을 표현해내기 위해선 사극부터 액션, 남장에 노인 분장까지 다양한 모습을 모두 소화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에겐 지난 15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연기 내공을 오롯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동안 힘들 때도 있었어요. 20대 중반에는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업을 위해 1~2년 쉬기도 했죠. 그러다 문득 내가 연기자가 아니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는데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거라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30대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애정을 갖고 캐릭터를 만들다 보면 더 멋진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그에겐 행운보다 노력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흑기사’는 그 정점에서 만난 작품인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다’고만 하기엔 그 스스로 일궈낸 것들이 너무 많다. 촬영 전 그는 한상우 PD와 김인영 작가를 만나 수차례 대화를 나누며 인물을 분석하고, 촬영이 시작된 후엔 장면별로 감정선을 해석하기 위한 회의를 거듭하며 샤론에 빠져들었다. 워낙 독특한 인물이다 보니 튀는 감정선 하나하나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샤론은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줄도 모르는 인물이었어요. 남들이 봤을 땐 집착이겠지만, 그런 샤론을 연기하는 내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어느 날엔 촬영장에서 래원 오빠한테 ‘조금만 더 샤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했을 정도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갔죠.”
“캐릭터가 잘 살 수 있도록 스타일리스트 팀과 계속 의논해가면서 의상 콘셉트를 잡아나갔어요. 화려한 아이템이 잘 어울리는 편이라 포인트가 되는 벨트, 반지에도 신경을 많이 썼죠.”
그는 드라마가 끝나고 다짐했단다. 비록 연기일 뿐이라 할지라도 이제 다시는 짝사랑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돌이켜보면 그가 연기해온 인물들은 하나같이 늘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때로는 그 짝사랑이 비뚤어진 마음을 낳고 인생을 파멸로 이끌기도 했다. 그냥 연기로 치부하기엔 너무 긴 시간 동안 같은 감정의 골을 만들어왔다. 촬영하는 동안 ‘외롭다’는 기분마저 들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젠 정말 짝사랑하는 캐릭터는 그만해도 좋을 듯싶다.
“지금 딱 생각나는 건 세 명의 남자가 나를 쫓아다니는, 사랑받는 역할이에요. 코믹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은데, 어쨌든 더 이상 짠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현실에서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그는 키 크고 잘생기고 다정다감한, 마음에 품었던 나름의 이상형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굳이 이상형을 꼽자면 “(‘흑기사’의) 수호 같은 남자”라고 한다. 한 여자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 말이다. 짝사랑의 상대라면 상처를 많이 받겠지만, 내 남자라면 최고일 것만 같아서다. 그는 싸우고 집착하며 감정 소비하는 사랑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언젠가 만날 인생의 반쪽은 편안하게, 서로의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director 김지영 기자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동아일보 사진DB파트 HB엔터테인먼트
“연기를 하는 제 입장에서도 샤론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렇게 애달픈 사랑은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한 남자를 몇 백 년 동안 혼자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샤론이 죽지 않는 존재라는 데 생각이 집중되었어요. ‘내가 죽지 않는 존재이고, 그럼에도 내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밝힐 수 없는 인물이라면 어떨까.’ 2백5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보아왔을 텐데 하필 그중 자신에게 단 한 번도 틈도 내어주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까에 생각이 미치니 애잔한 마음이 들면서 짠해지더라고요.”
‘너무 예쁜데, 이상하게 못 뜬 배우’
서지혜는 이번 드라마로 데뷔 이래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그 기쁨을 “보람찬 한 해를 보낸 것 같은 기분”에 비유했다.“사실 촬영 초반엔 일정이 빡빡해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주변 분들이 ‘드라마 잘 보고 있다’ ‘재미있다’고 얘기해주셔서 반응이 좋다는 걸 알았어요. 지인들이 보내온 인터넷 기사를 볼 때마다 뿌듯했죠. 그런데 한편으론 ‘인생 캐릭터’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기도 해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시청자들은 샤론을 능가하는 흡인력을 발휘하길 기대하실 테니까요. 어쨌든 이번 작품이 서지혜라는 배우를 좀 더 많은 분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책임감도 더 생기고, 욕심도 더 생기고, 제 연기 인생에 원동력이 되어준 작품입니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을 안고 있는 여자, 죽지도 못하고 내내 사랑에 가슴 아파야 하는 삶을 그려내기 위해 그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게다가 샤론이라는 인물을 표현해내기 위해선 사극부터 액션, 남장에 노인 분장까지 다양한 모습을 모두 소화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에겐 지난 15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연기 내공을 오롯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동안 힘들 때도 있었어요. 20대 중반에는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업을 위해 1~2년 쉬기도 했죠. 그러다 문득 내가 연기자가 아니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는데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거라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30대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애정을 갖고 캐릭터를 만들다 보면 더 멋진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그에겐 행운보다 노력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흑기사’는 그 정점에서 만난 작품인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다’고만 하기엔 그 스스로 일궈낸 것들이 너무 많다. 촬영 전 그는 한상우 PD와 김인영 작가를 만나 수차례 대화를 나누며 인물을 분석하고, 촬영이 시작된 후엔 장면별로 감정선을 해석하기 위한 회의를 거듭하며 샤론에 빠져들었다. 워낙 독특한 인물이다 보니 튀는 감정선 하나하나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샤론은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줄도 모르는 인물이었어요. 남들이 봤을 땐 집착이겠지만, 그런 샤론을 연기하는 내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어느 날엔 촬영장에서 래원 오빠한테 ‘조금만 더 샤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했을 정도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갔죠.”
준비된 배우 되기 위해 오랜 시간 자기 관리에 힘써
그는 어떤 작품이 들어오든 해낼 수 있는 ‘준비된’ 배우가 되기 위해 8년간 꾸준히 필라테스를 하고, 철저히 식단을 관리하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들였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그가 입고 나온 옷과 액세서리도 매회 화제가 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급기야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에서까지 샤론에게 신상을 입히기 위해 줄을 섰고, 드라마 제목을 ‘흑기사’에서 ‘샤론양장점’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돌았다. 무엇보다 세인들의 주목을 끈 것은 그의 뛰어난 패션 센스였다. 드라마 속 그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차갑고 도도한 악녀 이미지와도 썩 잘 어울리는 직업군이다. 그는 패션을 통해 자신의 외면이 가진 장점들이 한껏 발현될 수 있도록 언뜻 평범해 보이는 슈트에도 볼륨감 있는 액세서리를 매치했다. 또한 과감한 컬러와 디테일을 살려 늘씬한 몸매와 서구적인 마스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캐릭터가 잘 살 수 있도록 스타일리스트 팀과 계속 의논해가면서 의상 콘셉트를 잡아나갔어요. 화려한 아이템이 잘 어울리는 편이라 포인트가 되는 벨트, 반지에도 신경을 많이 썼죠.”
그는 드라마가 끝나고 다짐했단다. 비록 연기일 뿐이라 할지라도 이제 다시는 짝사랑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돌이켜보면 그가 연기해온 인물들은 하나같이 늘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때로는 그 짝사랑이 비뚤어진 마음을 낳고 인생을 파멸로 이끌기도 했다. 그냥 연기로 치부하기엔 너무 긴 시간 동안 같은 감정의 골을 만들어왔다. 촬영하는 동안 ‘외롭다’는 기분마저 들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젠 정말 짝사랑하는 캐릭터는 그만해도 좋을 듯싶다.
“지금 딱 생각나는 건 세 명의 남자가 나를 쫓아다니는, 사랑받는 역할이에요. 코믹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은데, 어쨌든 더 이상 짠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현실에서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그는 키 크고 잘생기고 다정다감한, 마음에 품었던 나름의 이상형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굳이 이상형을 꼽자면 “(‘흑기사’의) 수호 같은 남자”라고 한다. 한 여자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 말이다. 짝사랑의 상대라면 상처를 많이 받겠지만, 내 남자라면 최고일 것만 같아서다. 그는 싸우고 집착하며 감정 소비하는 사랑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언젠가 만날 인생의 반쪽은 편안하게, 서로의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director 김지영 기자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동아일보 사진DB파트 HB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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