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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FE IN HOKKAIDO

대자연이 만든 문학, 미우라 아야코를 찾아서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글 | 황경성 나요로시립대학 교수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황경성 미우라아야코기념관 제공

2012. 05. 08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미우라 아야코, 고바야시 다키지, 와타나베 준이치를 꼽을 수 있다. 세 사람의 작품 세계는 너무나 다르지만 그 문학을 탄생시킨 배경은 하나다. 인간을 한없이 미약한 존재로 만드는 대자연이다.

대자연이 만든 문학, 미우라 아야코를 찾아서

시오카리 고개에 있는 미우라아야코기념관. 아야코가 무명 시절 경영하던 잡화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홋카이도에서 삿포로 다음으로 큰 도시인 아사히카와(旭川)에서 육로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나요로 시까지 오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 시오카리토게(鹽狩峠, 토게는 일본어로 고개란 뜻)다. 이 고개를 넘을 때는 급행열차도 완행열차도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엔진소리는 숨이 가쁜 듯 거칠어진다.
이 고개의 꼭대기에 기차역이 있고 역사 뒤편 언덕에는 미우라아야코기념관이 있다.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1922~1999)라고 하면 소설 ‘빙점’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여성 작가다. 기념관은 아야코가 무명 시절 밤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생계를 위해 운영하던 잡화점을 재현해놓은 곳으로, 8년 전 나요로시립대학에 부임한 뒤 신입생들과 함께 첫 견학을 온 곳이기도 하다. 왜 이처럼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곳에 기념관을 세웠을까 자못 궁금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빙점’ 못지않게 ‘시오카리토게’라는 작품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 청년의 고귀한 희생 기념하는 시오카리 고개
1917년 2월 22일 삿포로행 열차가 이 고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 열차가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안 청년이 열차 밑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나머지 승객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이 청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약혼 예물을 교환하기 위해 삿포로로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같은 기독교 신자였던 아야코는 이 청년의 고귀한 희생에서 모티프를 얻어 ‘시오카리토게’라는 소설을 썼다.
미우라 아야코는 17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돼 ‘황국신민’을 키운다는 자부심과 의욕에 넘쳤다. 하지만 패전과 함께 교육자로서 죄책감과 상실감을 경험하고 폐결핵에 걸려 10여 년을 자포자기 상태로 살았다. 당시의 자신을 ‘불량환자’라고 회고할 만큼 반항적이었던 그에게 삶의 희망을 준 것은 두 남자였다. 마에카와 다다시(前川正)는 그의 첫사랑이자 약혼자였다. 다다시는 아야코가 자학적인 병상 생활 끝에 자살을 기도하자 자신의 발등을 돌로 쳐 피범벅을 만든 뒤 “신앙이 부족한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너를 구원할 수가 없다. 그런 한심한 나를 벌하기 위해 발등을 내리친다”고 말해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그 후 술과 담배를 끊은 아야코는 신앙인이 됐고 훗날 당시를 떠올리며 “죄를 의식하지 않으면 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다다시가 폐결핵에 걸려 아야코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운명은 인간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약혼자와의 사별에 상심한 아야코 앞에 미우라 미쓰요(三浦光世)가 나타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미쓰요는 죽은 다다시가 환생한 듯 꼭 닮아서 아야코를 놀라게 했다. 이후 아야코와 결혼한 미쓰요는 평생 온갖 병마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다. 1964년 아야코가 쓴 ‘빙점’이 아사히신문 1천만 엔 현상 공모에 당선돼 본격적인 소설가 로 활동하다 건강이 악화돼 더는 펜을 들 수 없게 됐을 때 미쓰요는 아내의 구술을 받아 적어 수십 권의 소설을 완성했다. 그렇게 손이 되고 발이 돼준 남편에게 아야코는 새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헌사를 바쳤다. ‘시오카리토게’를 출간할 때는 이렇게 썼다. ‘어떤 말로 감사해야 할지 가르쳐주세요. 나의 스승, 나의 남편 미쓰요 님.’(1968년 9월 22일)
홋카이도에는 미우라아야코기념관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앞서 소개한 시오카리 고개에 있고, 다른 하나는 소설 ‘빙점’의 무대인 아사히카와에 있다. 아사히카와에 있는 기념관은 아야코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전국적으로 기금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특히 ‘빙점’의 주인공 요코가 산책하던 자연휴양림(외국 수종 견본림) 내에 있어 소설을 읽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곳을 먼저 들른다. 숲을 지나면 ‘빙점’에서 의사 나쓰에의 딸 루리코가 유괴돼 살해당하는 곳이자 양녀인 요코가 자살을 시도한 비에이 강이 나온다.

대자연이 만든 문학, 미우라 아야코를 찾아서

1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시오카리토게’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 학예원 고이즈미 마사요 씨. 2 아사히카와에 있는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 독자들이 전국적으로 기금을 모아 지은 것이다.



아사히카와에 있는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
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기념관을 찾았다. 4월인데도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져 긴 장화를 신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백 마리의 까마귀만이 반기는 숲을 가로질러 비에이 강가까지 걸어가는 동안 왜 이곳에서 ‘빙점’이라는 소설이 탄생했는지 깨달았다. 곧게 뻗은 침엽수립과 잔설 사이로 흘러내려가는 비에이 강물은 요코의 가련하면서도 아름다운 죽음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은 ‘미우라 문학의 모든 것’ ‘작가의 인생’ ‘미우라 문학의 세계’ ‘풍부한 작품군’ ‘함께 걸어서’라는 5개의 주제 별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1998년 6월 13일 개관 이래 2012년 4월 6일 현재 43만5천78명이 다녀갔다. 이날 2층 라운지에는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 수십 종이 쌓여 있었다.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물으니 2010년 3월 11일 동일본 대재해 때 피해를 입은 동북지방의 주민에게 전국 독자로부터 미우라 아야코의 책을 기증받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기념관은 1백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미우라 아야코 탄생 90주년인 올 한 해 동안 유명인사의 강좌 등 많은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고 한다.
첫 방문 때는 기념문학관 학예원 고이즈미 마사요(小泉雅代) 씨가 전시물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고 두 번째 방문 때 아야코의 남편 미쓰요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낯선 외국인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의 모습에서 88세 노인이라고는 짐작하기 힘든 강인함과 평생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한 온화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미우라 아야코는 ‘이 생명 다할 때까지’에서 “나는 항상 소설을 쓸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주어진 이 생명을 인간답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라고 고심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고뇌를 털어놓았다. ‘시오카리토게’에서는 “현대인의 사전에는 이제 희생이라는 단어는 잊힌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겨진 이야기’에서 “질병으로 내가 잃은 것은 건강뿐이었다. 그 대신 나는 신앙과 생명을 얻었다. 사람이 생을 마감한 후 남는 것은 공적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눈 것들이다”라며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남겼다.



대자연이 만든 문학, 미우라 아야코를 찾아서

1 아야코와 남편 미우라 미쓰요 씨가 담소하는 모습. 아야코의 건강이 악화돼 펜을 들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남편은 아내의 구술을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2 소설 ‘빙점’의 배경이 된 아사히카와의 자연휴양림. 이 길을 따라가면 주인공 요코가 자살을 기도한 비에이 강이 나온다. 3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게공선’의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모습. 그는 서른 살에 요절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 고뱌야시 다키지
홋카이도 출신 가운데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가 있다. 아키타 현에서 태어났지만 네 살 때 홋카이도의 오타루(小樽)로 이주해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오타루는 삿포로 북서쪽에 있는 도시다. 다키지가 1929년 발표한 ‘가니고우센(蟹工船: 한국에는 ‘게공선’으로 번역됨)’은 캄차카 반도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현실을 고발한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2008년 신초사에서 문고본으로 재발행한 ‘가니고우센’이 50만 부 이상 팔리고 2009년 영화화되는 등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비정규직 고용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젊은 세대의 근로조건이 점차 악화하고 있는 현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귀원 씨의 번역으로 처음 소개됐고, 최근 일본에서 재조명되자 새로 번역 출간됐다.
그런데 고바야시 다키지와 미우라 아야코는 깊은 인연이 있다. 미우라 아야코가 다키지의 어머니를 소재로 ‘母:1992년’이라는 작품을 쓴 것. ‘가니고우센’을 발표한 후 일본 공안에 쫓기는 신세가 된 다키지는 지하에 숨어 살면서도 글을 써서 받은 돈을 어머니에게 보낼 만큼 애틋한 아들이었다. 다키지의 어머니는 비록 글을 읽지는 못했지만 한결같이 아들을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였다. 그런 다키지가 공안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죽자 아들의 주검을 안고 비통해하는 어머니에게서 미우라 아야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검을 안고 슬픔에 잠긴 마리아의 모습(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을 오버랩하며 소설 ‘母:1992년’을 썼다고 한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옛 창고를 카페로 개조한 뒤 많은 관광객들이 오타루를 찾아오고 있는데, 특히 ‘시립오타루문학관’에 가면 자식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어머니의 애절함이 담긴 시 ‘아, 또다시 이 2월이 왔구나’ 등 고바야시 다키지와 그 어머니에 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홋카이도 출신 작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와타나베 준이치(渡淳一, 1933~ )다. 그는 삿포로 의과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대학 강사를 하다 전업작가가 됐다. 그의 작품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의료 관련 소설과 전기가 있지만 무엇보다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실락원’은 1997년 발표하자마자 2백60만 부 이상 팔리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락원’ 논쟁은 계속된다, 와타나베준이치문학관
소설은 사회적 상실감을 느끼며 권태기에 빠진 중년 남자와 가정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유부녀가 만나 서로를 구원하듯 육체를 탐닉하면서도 한편으론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동반자살을 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찾는다는 내용. 이 작품에 관해서는 지금도 최고 수준의 문학작품이라는 평가와 불륜을 조장하는 삼류 연애소설에 불과하다는 평가 사이의 논쟁이 주인공 구키와 린코의 뜨거운 정사만큼 식을 줄 모른다. 여하튼 일본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와타나베준이치문학관이 삿포로 나카지마(中島) 공원 안에 있다.
며칠 전 친분이 있는 ‘홋카이도신문’의 구도 유타카(工藤雄高) 기자와 이야기를 하다 귀가 솔깃한 대목이 있었다. 구도 기자가 작성 중인 기사의 내용인데, 내가 사는 지역(홋카이도의 북서쪽)의 자살률이 홋카이도 내에서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적으로 봐도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자살의 이유가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보건 당국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추측 가운데 하나가 홋카이도의 기후 등 환경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내용이었다. 그 근거로 홋카이도와 거의 비슷한 기후 조건을 지닌 아키타 현(秋田懸)의 자살률도 전국 최고 수준임을 들었다.
‘홋카이도(北海道)’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거진 숲과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유럽풍의 대자연을 연상한다. 나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관광객처럼 감탄만 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 대자연과 마주하면 누구나 사랑에도 우울에도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의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높은 자살률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런 환경이 홋카이도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 기회가 되면 다시 짚어보고 싶다. 오늘은 오랜만에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잔설 위에 봄비가 녹아내린다.

대자연이 만든 문학, 미우라 아야코를 찾아서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는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 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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