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꽃처럼 피어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장미꽃일 필요는 없다. 저마다 타고난 빛깔과 향기를 발산하며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 된다. 예쁘다고 우쭐대는 꽃들 사이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황석정. 그녀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역할을 통해서 대중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왔다. 영화 의 연변 사투리를 구사하는 조선족 달러상, 드라마 의 짝퉁 판매상 산드라 황, 에서 완벽한 뒤태를 자랑하던 재무부장, 매회 화려한 패션을 선보인 의 편집장 김라라까지 대중의 시선을 훔치는 매력적인 신 스틸러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저처럼 못생긴 여배우는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끝까지 살아남아서 기존의 전형적이고 한정된 여성 캐릭터의 폭을 넓혀나가겠다고요. 이 세상엔 저 같은 사람들도 많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편견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면 여성에 대한 시각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황석정은 못생겼다는 말에 결코 상처 받지 않는다. 한때는 아픔으로 다가왔던 외모 콤플렉스를 여유로운 농담으로 승화시킬 만큼 성숙해졌다.
“제 얼굴에 익숙해지느라 고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대한민국 편견을 깨는 일원으로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아하하하하~”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황석정. 카메라 앞에 선 그녀가 보란 듯이 물오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활짝 핀 꽃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외모와 범상치 않은 일상만큼이나 그녀의 연기 인생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그녀가 연기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부산여고 재학 시절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25분짜리 ‘허생전’을 만들었고, 학교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교감 선생님께 그 연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황석정은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던 그날의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한다. 무대에서만 가능한 흥분과 집중, 아드레날린의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을 맛본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의 인생을 연기에 전부 쏟아부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부모님에게 음악적 끼를 물려받은 그녀로서 음악가의 길을 걷는 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버지는 TBC 악단 트럼본 연주자로 쇼 프로그램 무대에 섰고, 어머니는 음악 교사 출신으로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했지만 할머니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특히 자신의 못다 한 꿈을 큰딸이 대신 이루길 바랐던 어머니는 학생회비를 못 낼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도 피아노를 치게 했다. 그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란 황석정은 우연히 접한 국악 공연에 매료돼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해 피리를 전공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맛본 연기의 감동이 내내 잊히질 않고 다시 무대에 서도록 그녀를 부추겼다. 그러다 무작정 찾아서 들어간 곳이 극단 한양레퍼토리. 1년 반 동안 하루에 포스터를 1천 장씩 붙이러 다니는 등 연기보다는 허드렛일을 주로 맡았다. 이곳에서 만난 배우 설경구는 황석정의 연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넌 연기해야 돼, 연기해!”라면서 등을 떠밀었다. 물론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배우로 산다는 건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넌 금방 뜰 거야”라는 소리를 20년 동안 계속 들었고, 그만큼이나 “넌 왜 안 뜨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고 괴롭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불꽃처럼 사는데도 나는 왜 대우를 받지 못하지,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조금 편법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6개월을 앓아누운 적도 있었죠. 저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인 거예요. 그 이후로 연기하면서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하자 마음먹었어요.”
황석정은 최근 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가장 처음 알아봐준 선배 설경구와 영화 촬영장에서 다시 만났다. “연기자가 되라!”는, 마치 계시와도 같았던 선배의 말에 가슴 뜨거워졌던 후배가 20년의 세월을 돌아 그 선배와 조우한 것이다.
“경구 오빠는 제가 연기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그 당시 저는 아주 뜨거운 사람이었는데, 그런 열정과 끼를 보고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그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기억난다’고 하더군요. 촬영장에서 오빠와 만났다 하면, 함께 포스터도 붙이고 술잔도 기울이던 그때로 돌아가 폭풍 수다를 떨기 바빴죠.”
황석정은 최근 에서 하차했다. 이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기 때문이다. 경매로 낙찰받은 3층짜리 집으로 이사해 어머니와 삽살개 대박이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 복작거리며 살고 있다. 오랫동안 혼자 삶을 꾸려온 그녀에게 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건 적잖은 위안이다.
사실 황석정은 몇 년 전까지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러다 최근 소통을 시작하면서 기적처럼 화해했다. 자신에게 엄격하기만 했던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해 대화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어가려 억척스럽게 살아온 한 여자를 보게 됐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뾰족한 바늘 끝에 닿은 듯 따가울 때가 많았지만 억센 삶을 살아내느라 애쓴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뼛 속 깊이 각인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어머니한테 가졌던 반감들이 다 없어졌어요. 어머니도 노래 부르며 행복해하세요. 서로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요. 아파서 모시게 됐지만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황석정은 여자의 역할은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든, 아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대지의 여신인 땅이 모든 생명을 길러내듯이 언제나 길러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저는 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사람을 거부한 적이 없어요. 나누는 마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상대를 이해하고 싶고, 같이하고 싶기 때문에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안 되면 헤어지는 거죠.”
그렇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그렇다!”는 대답이 쏜살같이 날아든다. 한예종 2학년 때 첫 연애 이후로 연애를 쉬어본 적 없다는 그녀의 연애 세포는 언제나 깨어 있다.
“우리 어머니가 만날 기도하고 있어요. 연애 상대를 못 만나게 해달라고요(웃음). 이제야 딸과 함께 살게 됐으니까 제 연애가 싫으신가 봐요. 우리 어머니 기도발 센데, 두 손 못 모으게 뭐라도 대드려야겠어요. 아하하하하~”
황석정은 바쁜 가운데서도 틈틈이 민화를 그린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볍게 시작했는데 민화와 사랑에 푹 빠지는 바람에 지금은 따로 작업실을 마련했을 정도. 민화 속엔 꽃도, 나비도, 호랑이도, 사람도, 산신령도 함께 어울려 웃고 있다. 그래서 민화를 보면 세상 만물이 서로 화합해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직접 그린 민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하는데 이번에 꼭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과 두 작품을 함께하면서 친해진 황정음이다.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라는 뜻에서 부귀영화를 부르는 ‘목단화’를 줄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경영학부 학생인 주인공들이 서로 부딪치고 성장해가는 드라마인데, 제가 거기에 자극을 주고 갈등을 일으키고 깨달아가게 하는 데 발판이 되는 역할이에요. 만약 내가 교수라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학생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열정과 고집이 있는 교수라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더군요. 다들 그런 비슷한 경험 있잖아요. 학교 졸업할 때는 저 교수한테 벗어나서 좋다고 했지만 사회생활하다 보면 ‘아, 그 교수가 이런 얘길 했었지!’ 깨달았던 경험. 근데 강마녀는 끝까지 사랑하기는 힘든 여자죠. 아하하하하~”
1월 말 시작하는 MBC에브리원 웹툰 드라마 에서는 국악 전공을 살려 연기뿐 아니라 창, 판소리, 민요 등을 직접 소화할 예정이다. 타고난 음악적 흥과 끼를 어떻게 녹여낼지 자못 궁금하다. 또한 1월 말에는 고향과 같은 연극 무대로 다시 돌아온다. 연극 (1월 22일~2월 21일, 명동예술극장) 20주년 특별 공연으로, 극의 원작자인 김광림 한예종 연극원 교수가 10년 만에 연출가로 돌아오고 권해효, 김뢰하, 류태호, 이대연 등 초연 멤버들이 대거 합류한다. 황석정은 선배 배우들과 다시 만나 함께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이고 큰 감동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지고 주름도 숨길 수 없는 나이가 됐지만 동료들이 그 시절 열정과 흥,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랐다. 동료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황석정 자신도 맡은 역할을 잘해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고.
인터뷰 내내 진지함과 유쾌함을 오가며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했던 황석정. 20년 만에 연기 인생의 절정기에 접어든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입니까?”
“가장 큰 즐거움은 연기자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때예요.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니까요. 가장 큰 두려움은 제가 가진 마음이…, 아니 없어요. 제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도 잠깐 생각했는데, 안 그럴 거 같아요. 정말 우려되는 것은 세계 평화죠. 진짜로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제가 무슨 미스 유니버스 같네요. 아하하하하~”
다른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미소 짓고 기뻐하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황석정. 세계 평화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미니유니버스 이상의 아름다움을 황석정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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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처럼 못생긴 여배우는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끝까지 살아남아서 기존의 전형적이고 한정된 여성 캐릭터의 폭을 넓혀나가겠다고요. 이 세상엔 저 같은 사람들도 많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편견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면 여성에 대한 시각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황석정은 못생겼다는 말에 결코 상처 받지 않는다. 한때는 아픔으로 다가왔던 외모 콤플렉스를 여유로운 농담으로 승화시킬 만큼 성숙해졌다.
“제 얼굴에 익숙해지느라 고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대한민국 편견을 깨는 일원으로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아하하하하~”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황석정. 카메라 앞에 선 그녀가 보란 듯이 물오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활짝 핀 꽃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전으로 가득한 연기 인생
황석정의 실제 삶은 드라마 에서 보여준 뒤태만큼이나 반전 매력으로 가득하다. MBC 예능 프로그램 에서 그녀는 여느 여배우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일어나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가 하면,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애완견 대박이 빗으로 빗는 등의 일상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여배우의 가식을 철저히 비워낸 모습에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꼈다. 반전은 더 있었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에 심지어 연기가 하고 싶어 뒤늦게 진학한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란다.개성 있는 외모와 범상치 않은 일상만큼이나 그녀의 연기 인생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그녀가 연기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부산여고 재학 시절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25분짜리 ‘허생전’을 만들었고, 학교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교감 선생님께 그 연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황석정은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던 그날의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한다. 무대에서만 가능한 흥분과 집중, 아드레날린의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을 맛본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의 인생을 연기에 전부 쏟아부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부모님에게 음악적 끼를 물려받은 그녀로서 음악가의 길을 걷는 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버지는 TBC 악단 트럼본 연주자로 쇼 프로그램 무대에 섰고, 어머니는 음악 교사 출신으로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했지만 할머니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특히 자신의 못다 한 꿈을 큰딸이 대신 이루길 바랐던 어머니는 학생회비를 못 낼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도 피아노를 치게 했다. 그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란 황석정은 우연히 접한 국악 공연에 매료돼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해 피리를 전공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맛본 연기의 감동이 내내 잊히질 않고 다시 무대에 서도록 그녀를 부추겼다. 그러다 무작정 찾아서 들어간 곳이 극단 한양레퍼토리. 1년 반 동안 하루에 포스터를 1천 장씩 붙이러 다니는 등 연기보다는 허드렛일을 주로 맡았다. 이곳에서 만난 배우 설경구는 황석정의 연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넌 연기해야 돼, 연기해!”라면서 등을 떠밀었다. 물론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배우로 산다는 건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넌 금방 뜰 거야”라는 소리를 20년 동안 계속 들었고, 그만큼이나 “넌 왜 안 뜨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고 괴롭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불꽃처럼 사는데도 나는 왜 대우를 받지 못하지,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조금 편법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6개월을 앓아누운 적도 있었죠. 저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인 거예요. 그 이후로 연기하면서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하자 마음먹었어요.”
황석정은 최근 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가장 처음 알아봐준 선배 설경구와 영화 촬영장에서 다시 만났다. “연기자가 되라!”는, 마치 계시와도 같았던 선배의 말에 가슴 뜨거워졌던 후배가 20년의 세월을 돌아 그 선배와 조우한 것이다.
“경구 오빠는 제가 연기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그 당시 저는 아주 뜨거운 사람이었는데, 그런 열정과 끼를 보고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그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기억난다’고 하더군요. 촬영장에서 오빠와 만났다 하면, 함께 포스터도 붙이고 술잔도 기울이던 그때로 돌아가 폭풍 수다를 떨기 바빴죠.”
해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오늘을 사는 원동력
황석정은 자신의 역할을 잘하면 그날 잠이 잘 오는 사람이고, 그걸 잘해낼 수 있을까 불안해서 촬영 전날에는 잠을 못 자는 사람이다. 데뷔 이후 가장 바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느라 지칠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을 음악으로 받아들이고 리듬을 탄다는 생각으로 즐기는 중이다. 바쁜 삶이 주는 행복이 분명 있다. 뭔가 해내야 할 일이 있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원동력이 된다. 다만 조금 더 바란다면, 지칠 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황석정은 최근 에서 하차했다. 이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기 때문이다. 경매로 낙찰받은 3층짜리 집으로 이사해 어머니와 삽살개 대박이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 복작거리며 살고 있다. 오랫동안 혼자 삶을 꾸려온 그녀에게 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건 적잖은 위안이다.
사실 황석정은 몇 년 전까지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러다 최근 소통을 시작하면서 기적처럼 화해했다. 자신에게 엄격하기만 했던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해 대화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어가려 억척스럽게 살아온 한 여자를 보게 됐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뾰족한 바늘 끝에 닿은 듯 따가울 때가 많았지만 억센 삶을 살아내느라 애쓴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뼛 속 깊이 각인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어머니한테 가졌던 반감들이 다 없어졌어요. 어머니도 노래 부르며 행복해하세요. 서로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요. 아파서 모시게 됐지만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황석정은 여자의 역할은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든, 아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대지의 여신인 땅이 모든 생명을 길러내듯이 언제나 길러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저는 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사람을 거부한 적이 없어요. 나누는 마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상대를 이해하고 싶고, 같이하고 싶기 때문에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안 되면 헤어지는 거죠.”
그렇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그렇다!”는 대답이 쏜살같이 날아든다. 한예종 2학년 때 첫 연애 이후로 연애를 쉬어본 적 없다는 그녀의 연애 세포는 언제나 깨어 있다.
“우리 어머니가 만날 기도하고 있어요. 연애 상대를 못 만나게 해달라고요(웃음). 이제야 딸과 함께 살게 됐으니까 제 연애가 싫으신가 봐요. 우리 어머니 기도발 센데, 두 손 못 모으게 뭐라도 대드려야겠어요. 아하하하하~”
황석정은 바쁜 가운데서도 틈틈이 민화를 그린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볍게 시작했는데 민화와 사랑에 푹 빠지는 바람에 지금은 따로 작업실을 마련했을 정도. 민화 속엔 꽃도, 나비도, 호랑이도, 사람도, 산신령도 함께 어울려 웃고 있다. 그래서 민화를 보면 세상 만물이 서로 화합해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직접 그린 민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하는데 이번에 꼭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과 두 작품을 함께하면서 친해진 황정음이다.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라는 뜻에서 부귀영화를 부르는 ‘목단화’를 줄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연기는 언제든 비우고 떠나야 할 셋방살이 같은 것
배우가 하나의 집이라면 연기는 거기에 셋방을 들이는 것과 같다. 한 인물이 복작거리고 살다 떠나면 다시 새로운 인물에게 그 방을 내어주는 것. 셋방살이를 거쳐간 수많은 인물들이 모두 애틋하지만 배우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래야 또다시 세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석정이 최근 새롭게 들인 인물은 tvN 드라마 의 교수 강마녀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박해진, 김고은 등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황석정이 맡은 강마녀는 원작에는 없던 역할로 학생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교수 1순위로 꼽히는 인물. 그녀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깐깐한 교수로 완벽 변신했다.“경영학부 학생인 주인공들이 서로 부딪치고 성장해가는 드라마인데, 제가 거기에 자극을 주고 갈등을 일으키고 깨달아가게 하는 데 발판이 되는 역할이에요. 만약 내가 교수라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학생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열정과 고집이 있는 교수라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더군요. 다들 그런 비슷한 경험 있잖아요. 학교 졸업할 때는 저 교수한테 벗어나서 좋다고 했지만 사회생활하다 보면 ‘아, 그 교수가 이런 얘길 했었지!’ 깨달았던 경험. 근데 강마녀는 끝까지 사랑하기는 힘든 여자죠. 아하하하하~”
1월 말 시작하는 MBC에브리원 웹툰 드라마 에서는 국악 전공을 살려 연기뿐 아니라 창, 판소리, 민요 등을 직접 소화할 예정이다. 타고난 음악적 흥과 끼를 어떻게 녹여낼지 자못 궁금하다. 또한 1월 말에는 고향과 같은 연극 무대로 다시 돌아온다. 연극 (1월 22일~2월 21일, 명동예술극장) 20주년 특별 공연으로, 극의 원작자인 김광림 한예종 연극원 교수가 10년 만에 연출가로 돌아오고 권해효, 김뢰하, 류태호, 이대연 등 초연 멤버들이 대거 합류한다. 황석정은 선배 배우들과 다시 만나 함께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이고 큰 감동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지고 주름도 숨길 수 없는 나이가 됐지만 동료들이 그 시절 열정과 흥,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랐다. 동료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황석정 자신도 맡은 역할을 잘해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고.
인터뷰 내내 진지함과 유쾌함을 오가며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했던 황석정. 20년 만에 연기 인생의 절정기에 접어든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입니까?”
“가장 큰 즐거움은 연기자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때예요.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니까요. 가장 큰 두려움은 제가 가진 마음이…, 아니 없어요. 제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도 잠깐 생각했는데, 안 그럴 거 같아요. 정말 우려되는 것은 세계 평화죠. 진짜로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제가 무슨 미스 유니버스 같네요. 아하하하하~”
다른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미소 짓고 기뻐하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황석정. 세계 평화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미니유니버스 이상의 아름다움을 황석정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헤어&메이크업 · 순수 청담점 | 스타일리스트 · 이그네
제품협찬 · 딘트(02-3442-0220) 이상봉(02-553-3380) 쥬얼카운티(02-3448-0805) 지고트(02-6911-0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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