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서태화(48)보다 배우 서태화가 더 좋은 이유가 하나 있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그의 음식을 모든 사람이 맛볼 수는 없지만 배우 서태화의 연기는 원하는 누구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요리사로 전업을 선언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그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의구심은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지난해 영화 ‘짓’으로 배우 인생 첫 단독 주연을 맡았던 그가, 올해는 2월 28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홀스또메르’를 통해 원초적인 배우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조리대 앞에 서 있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하면서도 “요리 또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한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것이 성악을 전공하고 요리를 즐기면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서태화의 연기가 빛나는 이유 중 하나다.
“저는 ‘한 우물을 파자’보다 ‘그물을 펼쳐라’는 주의예요. 그물을 넓게 펼쳐놓으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걸릴 수 있잖아요. 도미도 잡힐 수 있고, 고등어도 광어도 잡힐 수 있겠죠. 어떤 것이든 다 먹어봐야 뭐가 가장 좋은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에게는 연기도, 성악도, 요리도 여러 마리 물고기 중에 하나예요. 먹어보니 별로 맛이 없는 것도 있었고, 더 맛있는 것도 있었던 거죠.”
서태화의 프로필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말이 절로 이해가 된다. 그가 넓은 그물망을 펼쳐놓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인생 항로 바꾼 곽경택 감독과의 인연
그가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음악 수업을 받은 후 미국 맨해튼 음대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하지만 한양대 성악과 입학 당시 실기 시험 준비 기간이 고작 6개월에 불과한 재능 충만한 인재였다는 사실과,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8년간이나 유학 생활을 할 만큼 학문적 내공을 쌓았다는 점, 그리고 귀국 후 독창회는 물론 오페라에 출연하는 한편 대학에서 성악을 강의하기도 할 만큼 확고한 인생 항로가 정해져 있었다는 세부적인 내용까지 살펴보면 ‘왜?’라는 물음표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우선 10여 년간 다 키워놓은 물고기를 놓아주고 새로운 물고기에 정성을 쏟은 열정의 온도가 놀라웠다.
“처음 성악을 시작할 때도, 연기를 시작할 때도 갑자기 ‘훅’ 꽂히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무엇이 됐든 ‘훅’ 꽂히는 것이 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란 서태화. 작은 동네에서 의사의 아들로, 늘 동네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던 그는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터득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 때 인생의 진로를 바꿔 성악가의 길을 걷고, 뉴욕에서 만난 친구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서른 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10년간 일궈온 인생 텃밭을 다시 갈아엎는 과감한 선택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처음 영화에 출연했던 건 친구 숙제를 도와주는 차원이었어요. 그때 곽경택 감독이 자신의 뉴욕대 영화연출과 졸업 작품에 출연해달라고 했거든요. 저는 귀국하자마자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알버트 헤링’ 한국 초연을 준비 중이었고요. ‘영창 이야기’(1995)를 먼저 찍고 공연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추가 촬영을 해야 한대서 오페라에서는 목사로, 영화에서는 양아치를 오가며 연기를 했죠. ‘영창 이야기’가 삼성영상사업단 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곽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한 거죠. 그 뒤로 곽 감독과 ‘억수탕’(1997)을 찍었는데, 또 청룡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어~~’ 하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그렇게 ‘연기’가 그의 가슴에 ‘훅’ 꽂히던 순간은 주저하지 않고 다가왔다. ‘훌륭한 성악가’가 되겠다는 신념은 어느새 배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는 연기가 뭔지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가 될 것 같았고,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송강호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이 기자에게 ‘송강호처럼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려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더욱 단호해진 말투로 “송강호도 제가 될 수는 없잖아요. 서로의 독창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남들과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꿈꾸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서태화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배우로서 그가 꿈꾸는 모습이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제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뼛속까지 배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점에서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배우를 꿈꿔왔던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요. 그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착을 쌓아온 거잖아요. 그래서 여전히 ‘아! 나는 배우다’라고 생각하는 게 저에게 올바른 태도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도 배우가 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봐요. 시작은 다르지만 여느 배우들과는 달리 성악을 했다는 것 또한 배우로서의 장점이 될 수도 있잖아요. 다른 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나만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리도 그중 하나고요.”
“아직 100% 배우가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연기 20년 차 배우의 겸손함은 여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매일 각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작품에 임할 때만큼은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렇지 않다면 사기꾼이죠. 그건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제가 잘못하면 적게는 30, 40명에서 많게는 1백,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 역할에 충실하고 상대 배우를 배려하며 그 짧은 기간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하죠.”
영화 ‘친구’ 이후의 시간들
여전히 그의 최고 흥행작은 부인할 수 없이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다. 1997년 이후 막상 성악가의 길을 접고 배우로의 길로 들어선 뒤에는 ‘비천무’ ‘닥터K’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에 출연하면서도 4년간을 무명으로 보냈다. 그러다 ‘친구’가 8백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그 또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구’의 유명세만큼 배우가 넘어야 했던 장벽 또한 높았다. 시나리오는 몰려들었지만 선뜻 작품을 선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을 쉬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될 것 같았죠. ‘친구’의 이미지를 벗고 배우로서의 변화를 꾀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이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하지만 관객들은 ‘친구’의 저와는 다른 모습에 큰 이질감을 느끼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이것저것 따져가며 작품을 고르고 골라 출연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선택 기준을 버리고 제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게 좋은 거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 뒤로는 작품을 더 편안하게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많은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그만큼 연기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고, 정작 연기도 더 재미있어졌죠.”
그때부터 주연, 조연, 우정 출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든 것도 그때쯤. ‘넌센스’ ‘잼보리’ ‘해피앤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등에 출연하며 아예 대학로에서만 3년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 ‘홀스또메르’ 또한 2008년 서울 홍대 산울림 소극장에 올랐던 ‘트릿’ 이후 6년 만의 연극 작품이라 기대가 크다.
“저는 연기의 기본기 없이 시작해서, 연극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기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서 대학로로 갔어요. 그 뒤로 연극은 항상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연극은 배우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온전히 배우의 힘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연극이죠.”
서태화는 ‘홀스또메르’에서 주인공인 말 홀스또메르(유인촌)의 진면목을 알아준 최초의 사람 세르홉스키 역을 맡았다. 작년 가을부터 연습을 시작해 지난겨울 몇 차례 공연을 올린 적도 있다. 역할 대부분이 ‘말’인 작품에서 ‘사람’ 역을 맡게 된 이유를 묻자 “대본에 세르홉스키를 묘사한 대목이 있어요. 혈색 좋고 젊고 잘생겼다고요” 하며 해맑게 웃는다.
연기자로서 먼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의 그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단연 요리다. 이제는 서태화를 이야기할 때 ‘요리’를 빼 놓으면 섭섭할 만큼. “연기할 때보다 요리할 때 더 행복하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눈빛부터가 다르다. 연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요리는 언제나 즐거운 작업이니까.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옆집 할머니한테 처음 파스타를 배웠어요.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게 즐거웠죠. 대학 입학할 때부터 혼자 살았으니까, 먹고사는 차원의 요리였지만 말이죠.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을 초대하고 파스타를 해주면 그들이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맛이 들쑥날쑥했던 터라 정식으로 배워보려는 마음에 이탈리아 파스타 코스 학원에 갔죠. 거기에서 잡지사와 연이 닿아 요리 칼럼 연재를 하게 됐고, 또 그게 인연이 돼서 ‘키친 파이터’에 출연하게 됐거든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인연과 우연이 다리가 돼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키친 파이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이제는 ‘요리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까지 얻게 됐다. 그는 배우로서도 또 하나의 캐릭터를 부여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요리를 잘한다는 게 배우로서도 플러스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요리를 잘하는 캐릭터를 캐스팅할 때 서태화라는 배우를 떠올릴 수도 있잖아요. 더욱이 요리를 하면서 배우로서 가져야 할 집중력을 연습했던 것도 도움이 됐고요. 제가 요리를 하면 정말 집중을 잘하거든요.”
그가 여전히 ‘맨스 콰이어’라는 전문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성악의 끈을 놓지 않듯이, 요리사로서의 끈도 단단히 부여잡았다. 이탈리아 파스타 코스, 이탈리아 북부 요리에 이어 양식·중식·궁중 요리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최근에는 ‘햄 소시지 육가공 자격증’을 따기 위해 2주간의 합숙 교육도 받았다. 2월 25일에 한식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나면 이제 일식 자격증만 남는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은 삶
“먹는 걸 좋아하고,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겨요. 조금 더 맛있는 걸 만들고 싶다는 욕심요. 손쉬운 요리요? 간편하게 먹으려면 컵라면이나 즉석 짜장면을 드세요. 그게 가장 간편하죠. 맛있게 요리를 해 먹으려면 작은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어요. 그중에 가장 쉬운 음식이 바로 파스타죠.”
그가 추천해준 가장 간편한 음식은 바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다. 올리브 오일과 마늘만 있으면 되는 가장 쉬운 요리. 면을 삶을 때 물의 10% 분량만큼 소금을 넣어야 간이 제대로 밴다며 살짝 귀띔한다. 나박김치 국수 또한 그의 추천 메뉴. 직접 담가 적당히 익힌 나박김치 국물에 설탕을 넣고 핸드 거품기로 잘 녹인 후 참기름을 떨어트려 국수를 말아 먹는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 끼일지라도 4대나 되는 냉장고 탈탈 털어 제대로 한상 차려 먹는다는 미혼 남자, 서태화. 정성껏 차린 밥상에 누군가와 마주 앉고 싶지는 않을까?
“사실 가장 맛있는 것이 혼자 차려 먹는 밥이에요. 음식도 상대방을 위한 배려거든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면 그 사람의 취향과 입맛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혼자 먹는다면 내 입맛, 내 취향만 고려해서 딱 내 입에 맞게 차릴 수 있으니까 그보다 맛있을 수는 없죠.”
물론 그가 펼쳐 놓은 그물망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연이 닿고 우연이 쌓여 인연이 된 사람이 없을 뿐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냐고요? 글쎄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특별히 나쁜 게 없으니까 이대로 쭉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대로가 좋은 게 아니라, 이대로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 스타일리스트·최지현
■ 장소협찬·카페 Qooom(02-2695-3337)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의구심은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지난해 영화 ‘짓’으로 배우 인생 첫 단독 주연을 맡았던 그가, 올해는 2월 28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홀스또메르’를 통해 원초적인 배우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조리대 앞에 서 있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하면서도 “요리 또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한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것이 성악을 전공하고 요리를 즐기면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서태화의 연기가 빛나는 이유 중 하나다.
“저는 ‘한 우물을 파자’보다 ‘그물을 펼쳐라’는 주의예요. 그물을 넓게 펼쳐놓으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걸릴 수 있잖아요. 도미도 잡힐 수 있고, 고등어도 광어도 잡힐 수 있겠죠. 어떤 것이든 다 먹어봐야 뭐가 가장 좋은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에게는 연기도, 성악도, 요리도 여러 마리 물고기 중에 하나예요. 먹어보니 별로 맛이 없는 것도 있었고, 더 맛있는 것도 있었던 거죠.”
서태화의 프로필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말이 절로 이해가 된다. 그가 넓은 그물망을 펼쳐놓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인생 항로 바꾼 곽경택 감독과의 인연
그가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음악 수업을 받은 후 미국 맨해튼 음대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하지만 한양대 성악과 입학 당시 실기 시험 준비 기간이 고작 6개월에 불과한 재능 충만한 인재였다는 사실과,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8년간이나 유학 생활을 할 만큼 학문적 내공을 쌓았다는 점, 그리고 귀국 후 독창회는 물론 오페라에 출연하는 한편 대학에서 성악을 강의하기도 할 만큼 확고한 인생 항로가 정해져 있었다는 세부적인 내용까지 살펴보면 ‘왜?’라는 물음표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우선 10여 년간 다 키워놓은 물고기를 놓아주고 새로운 물고기에 정성을 쏟은 열정의 온도가 놀라웠다.
“처음 성악을 시작할 때도, 연기를 시작할 때도 갑자기 ‘훅’ 꽂히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무엇이 됐든 ‘훅’ 꽂히는 것이 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란 서태화. 작은 동네에서 의사의 아들로, 늘 동네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던 그는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터득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 때 인생의 진로를 바꿔 성악가의 길을 걷고, 뉴욕에서 만난 친구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서른 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10년간 일궈온 인생 텃밭을 다시 갈아엎는 과감한 선택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처음 영화에 출연했던 건 친구 숙제를 도와주는 차원이었어요. 그때 곽경택 감독이 자신의 뉴욕대 영화연출과 졸업 작품에 출연해달라고 했거든요. 저는 귀국하자마자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알버트 헤링’ 한국 초연을 준비 중이었고요. ‘영창 이야기’(1995)를 먼저 찍고 공연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추가 촬영을 해야 한대서 오페라에서는 목사로, 영화에서는 양아치를 오가며 연기를 했죠. ‘영창 이야기’가 삼성영상사업단 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곽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한 거죠. 그 뒤로 곽 감독과 ‘억수탕’(1997)을 찍었는데, 또 청룡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어~~’ 하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그렇게 ‘연기’가 그의 가슴에 ‘훅’ 꽂히던 순간은 주저하지 않고 다가왔다. ‘훌륭한 성악가’가 되겠다는 신념은 어느새 배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는 연기가 뭔지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가 될 것 같았고,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송강호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이 기자에게 ‘송강호처럼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려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더욱 단호해진 말투로 “송강호도 제가 될 수는 없잖아요. 서로의 독창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남들과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꿈꾸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서태화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배우로서 그가 꿈꾸는 모습이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제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뼛속까지 배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점에서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배우를 꿈꿔왔던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요. 그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착을 쌓아온 거잖아요. 그래서 여전히 ‘아! 나는 배우다’라고 생각하는 게 저에게 올바른 태도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도 배우가 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봐요. 시작은 다르지만 여느 배우들과는 달리 성악을 했다는 것 또한 배우로서의 장점이 될 수도 있잖아요. 다른 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나만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리도 그중 하나고요.”
“아직 100% 배우가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연기 20년 차 배우의 겸손함은 여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매일 각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작품에 임할 때만큼은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렇지 않다면 사기꾼이죠. 그건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제가 잘못하면 적게는 30, 40명에서 많게는 1백,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 역할에 충실하고 상대 배우를 배려하며 그 짧은 기간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하죠.”
영화 ‘친구’ 이후의 시간들
여전히 그의 최고 흥행작은 부인할 수 없이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다. 1997년 이후 막상 성악가의 길을 접고 배우로의 길로 들어선 뒤에는 ‘비천무’ ‘닥터K’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에 출연하면서도 4년간을 무명으로 보냈다. 그러다 ‘친구’가 8백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그 또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구’의 유명세만큼 배우가 넘어야 했던 장벽 또한 높았다. 시나리오는 몰려들었지만 선뜻 작품을 선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을 쉬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될 것 같았죠. ‘친구’의 이미지를 벗고 배우로서의 변화를 꾀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이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하지만 관객들은 ‘친구’의 저와는 다른 모습에 큰 이질감을 느끼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이것저것 따져가며 작품을 고르고 골라 출연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선택 기준을 버리고 제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게 좋은 거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 뒤로는 작품을 더 편안하게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많은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그만큼 연기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고, 정작 연기도 더 재미있어졌죠.”
그때부터 주연, 조연, 우정 출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든 것도 그때쯤. ‘넌센스’ ‘잼보리’ ‘해피앤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등에 출연하며 아예 대학로에서만 3년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 ‘홀스또메르’ 또한 2008년 서울 홍대 산울림 소극장에 올랐던 ‘트릿’ 이후 6년 만의 연극 작품이라 기대가 크다.
“저는 연기의 기본기 없이 시작해서, 연극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기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서 대학로로 갔어요. 그 뒤로 연극은 항상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연극은 배우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온전히 배우의 힘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연극이죠.”
서태화는 ‘홀스또메르’에서 주인공인 말 홀스또메르(유인촌)의 진면목을 알아준 최초의 사람 세르홉스키 역을 맡았다. 작년 가을부터 연습을 시작해 지난겨울 몇 차례 공연을 올린 적도 있다. 역할 대부분이 ‘말’인 작품에서 ‘사람’ 역을 맡게 된 이유를 묻자 “대본에 세르홉스키를 묘사한 대목이 있어요. 혈색 좋고 젊고 잘생겼다고요” 하며 해맑게 웃는다.
연기자로서 먼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의 그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단연 요리다. 이제는 서태화를 이야기할 때 ‘요리’를 빼 놓으면 섭섭할 만큼. “연기할 때보다 요리할 때 더 행복하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눈빛부터가 다르다. 연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요리는 언제나 즐거운 작업이니까.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옆집 할머니한테 처음 파스타를 배웠어요.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게 즐거웠죠. 대학 입학할 때부터 혼자 살았으니까, 먹고사는 차원의 요리였지만 말이죠.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을 초대하고 파스타를 해주면 그들이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맛이 들쑥날쑥했던 터라 정식으로 배워보려는 마음에 이탈리아 파스타 코스 학원에 갔죠. 거기에서 잡지사와 연이 닿아 요리 칼럼 연재를 하게 됐고, 또 그게 인연이 돼서 ‘키친 파이터’에 출연하게 됐거든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인연과 우연이 다리가 돼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키친 파이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이제는 ‘요리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까지 얻게 됐다. 그는 배우로서도 또 하나의 캐릭터를 부여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요리를 잘한다는 게 배우로서도 플러스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요리를 잘하는 캐릭터를 캐스팅할 때 서태화라는 배우를 떠올릴 수도 있잖아요. 더욱이 요리를 하면서 배우로서 가져야 할 집중력을 연습했던 것도 도움이 됐고요. 제가 요리를 하면 정말 집중을 잘하거든요.”
그가 여전히 ‘맨스 콰이어’라는 전문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성악의 끈을 놓지 않듯이, 요리사로서의 끈도 단단히 부여잡았다. 이탈리아 파스타 코스, 이탈리아 북부 요리에 이어 양식·중식·궁중 요리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최근에는 ‘햄 소시지 육가공 자격증’을 따기 위해 2주간의 합숙 교육도 받았다. 2월 25일에 한식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나면 이제 일식 자격증만 남는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은 삶
“먹는 걸 좋아하고,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겨요. 조금 더 맛있는 걸 만들고 싶다는 욕심요. 손쉬운 요리요? 간편하게 먹으려면 컵라면이나 즉석 짜장면을 드세요. 그게 가장 간편하죠. 맛있게 요리를 해 먹으려면 작은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어요. 그중에 가장 쉬운 음식이 바로 파스타죠.”
그가 추천해준 가장 간편한 음식은 바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다. 올리브 오일과 마늘만 있으면 되는 가장 쉬운 요리. 면을 삶을 때 물의 10% 분량만큼 소금을 넣어야 간이 제대로 밴다며 살짝 귀띔한다. 나박김치 국수 또한 그의 추천 메뉴. 직접 담가 적당히 익힌 나박김치 국물에 설탕을 넣고 핸드 거품기로 잘 녹인 후 참기름을 떨어트려 국수를 말아 먹는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 끼일지라도 4대나 되는 냉장고 탈탈 털어 제대로 한상 차려 먹는다는 미혼 남자, 서태화. 정성껏 차린 밥상에 누군가와 마주 앉고 싶지는 않을까?
“사실 가장 맛있는 것이 혼자 차려 먹는 밥이에요. 음식도 상대방을 위한 배려거든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면 그 사람의 취향과 입맛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혼자 먹는다면 내 입맛, 내 취향만 고려해서 딱 내 입에 맞게 차릴 수 있으니까 그보다 맛있을 수는 없죠.”
물론 그가 펼쳐 놓은 그물망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연이 닿고 우연이 쌓여 인연이 된 사람이 없을 뿐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냐고요? 글쎄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특별히 나쁜 게 없으니까 이대로 쭉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대로가 좋은 게 아니라, 이대로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 스타일리스트·최지현
■ 장소협찬·카페 Qooom(02-2695-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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