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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와 그냥 ‘아는 사람’

글·김영희 전 주세르비아 대사

입력 2013.09.04 09:28:00

버스 정류장에 머리가 반백인 중년 여성이 혼자 서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며 보니 내 친구 베아테(Beate)다. 나를 마중 나온 독일 친구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친구로 지낸 지 37년이다. 1976년 10월 쾰른대학교에서 전공 과목인 교육학과 강의를 들을 때 그룹 리포트(Group Report)를 쓰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말이 그룹 리포트지 당시 나의 형편없는 독일어 문장을 베아테가 거의 다시 쓴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베아테는 오랫동안 나의 모든 리포트를 읽고 교정해주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나 나의 독일어 문장이 “품격 있는 독일어”라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베아테를 생각했다. 베아테의 오랜 교정 덕분에 그의 문체가 나의 문체가 된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베아테의 글은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작문 시간에 항상 최우수 문장으로 뽑혔다고 한다. 나는 운 좋게도 좋은 독일어 선생에게 개인 교습을 받은 셈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외교관이 돼 커리어를 쌓아갈 때 한 번도 시기하지 않고 무조건 축하해주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던 친구가 베아테였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과 결혼한 그는 아버지의 인쇄 공장을 관리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때도 매년 생일카드와 연하장을 보내며 안부를 물었다.

스파겔과 작은 햇감자로 차린 점심 식사의 의미
우리나라에서는 친구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 학교 동창이면 모두 친구라고 호칭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독일에서 ‘친구’와 ‘아는 사람’은 다른 의미다. 우리에게 익숙한 친구 개념은 독일에선 아는 사이라고 한다. 독일에선 진정한 ‘친구’가 있으면 행복하다고 할 정도로 친구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는다. 독일 사람과 친구가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친구가 되면 우정이 오래 지속된다. 독일 친구는 마치 듬직한 동행자 같다.
베아테는 쾰른 시내가 아닌 근교의 작은 도시에서 산다. 시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 집으로 찾아가는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베아테가 가르쳐준 기차 시간표와 버스 노선대로 따라가 집까지 찾아가려 했다. 그런데 자동차가 없는 베아테가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계획대로 꽃가게에 들러 꽃을 샀다. 아니 베아테에게 원하는 꽃을 고르라고 했다. 우리는 꽃을 들고 그의 집으로 갔다.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이 아름다웠다. 실내는 고풍스럽게 단장돼 있었고 서재에는 책이 가득했다.
점심 식사로 ‘스파겔(아스파라거스)’과 작은 햇감자가 나왔다. 내가 독일 ‘스파겔’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그는 제철인 6월 초에 많이 구입해 냉동 보관했다고 한다. 대학 다닐 때 베아테의 집을 방문해 나는 햇감자를 먹으면서 내 어린 시절 감자는 너희들의 초콜릿 같은 간식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독일 사람들은 점심 식사 후 커피 타임을 가지는데 특별한 날에는 반드시 직접 만든 여러 종류의 케이크를 곁들인다. 내가 단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과일은 잘 먹는다는 것을 아는 베아테는 딸기와 산딸기로 만든 케이크를 내놓았다. 커피 타임에 맞춰 가까이 사는 89세의 숙모와 시동생 부부, 피아노 선생이 왔다. 베아테는 어릴적 연주했던 피아노를 치기 위해 피아노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모두들 예전에 여러 번 본 반가운 얼굴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독일 사람들은 머리 염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하고 서둘러 쾰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남편이 독일 유학 시절 살았던 집주인 할머니의 86세 생일
그날이 마침 쾰른에서 남편과 내가 묵고 있는 집주인 할머니의 86세 생일이라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1978년 여름, 남편이 철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 왔을 때 살았던 집이다. 우리는 1978년 11월 쾰른대학교에서 처음 만났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 철학 교수가 된 그와 외교관이 된 나는 다시 만나 결혼했다. 이번 여름 쾰른에서 개최된 인문학자 학회에 참석차 와서 남편이 독일 유학 시절 살았던 방에 일주일간 머물게 됐다.
젊을 때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 교사였던 할머니는 책을 많이 읽어 지금도 아주 박식하다. 남편이 사업가이고 부유한 가정이어서 방을 세주어야 할 경제적인 필요성은 없었지만 항상 외국인 학생 두 명에게 방을 내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진보적이고 폭넓은 안목을 지닌 부부는 세 명의 자녀를 문화적 수준이 높은 세계인으로 교육시키고자 했다. 부부가 모두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사 도우미가 필요했는데, 독일에 공부하러 온 콜롬비아 출신 여성을 가사 도우미로 채용하고 어린아이들과 스페인어로 대화토록 했다. 따라서 세 자녀는 독일어와 스페인어 이중 언어를 하며 자랐다. 나아가 방 두 개를 외국인 유학생에게 세주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외국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유학 시절 그 집의 어린 아들 둘에게 라틴어 과외 수업을 했던 남편은 미국으로 귀국한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가족과 교류하며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 집 큰딸은 의사인데 고등학교 시절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현지 남자 친구를 만나 나중에 결혼했고, 현재 네 명의 아이가 있다. 프랑스 유명 기업의 중역인 남편은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며 근무했는데, 현재는 파리에서 근무하며 주말마다 쾰른의 가족에게 온다.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부부는 아이들과 각자의 모국어로 말하며, 프랑스에서 살 때는 가사도우미로 독일 유학생을 두고, 독일에서 살 때는 프랑스 유학생을 채용했다. 현재 16세로 고등학생인 할머니의 큰손자는 이미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자격을 얻어 쾰른대학에서 근대사 강의를 듣고 있지만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리의 국립행정대학(ENA)에 입학할 것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라틴어와 영어, 스페인어를 배운다고도 했다.
할머니의 둘째인 큰아들은 경영학을 전공해, 집안의 사업을 계승하여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의사인 아내와 결혼해 아이가 둘인데, 어머니의 전통을 이어받아 콜롬비아 출신 가사 도우미를 쓰며 아이들을 독일어와 스페인어 이중 언어로 키우고 있다. 할머니의 둘째 아들 역시 경영학을 공부했는데, 쾰른대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러 와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했다. 슬하의 두 자녀도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이중 언어로 키운다. 아이들을 방학 때마다 이탈리아 외가로 보내 이탈리아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한단다.
할머니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족처럼 지낸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혼자 살고 있다. 대신 매주 수요일은 ‘할머니의 날’로 손자 손녀 8명이 모두 할머니에게 오는 날이다. 그날은 온갖 나라 말이 동시에 사용되고 집안은 난리다. 할머니는 그러나 행복하다. 손자 손녀 모두 악기를 다뤄 가끔은 가족 음악회도 연다. 딸과 며느리까지 포함된 할머니 생신 축하 가족 음악회를 보며 음악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상상해봤다. 첼리스트인 일곱 살짜리 손녀는 자신보다 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쾰른 청소년오케스트라의 가장 어린 단원이기도 하단다.
나는 지금 동화 속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독일 가족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다.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도 있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세계인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가치관에 따라 추구하는 삶이 다르다. 세상 밖을 내다보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더 안정되고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할 방안은 없을까?

진정한 ‘친구’와 그냥 ‘아는 사람’


김영희 전 대사는…
전주에서 6남3녀의 막내로 태어나 전주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시 9급 공무원으로 일하다 1972년 파독 간호보조원으로 독일로 건너갔다. 3년간 정형외과 병동에서 일한 후 공부를 계속해 쾰른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쾰른대학 6백년 역사에서 최초로 ‘전공 과목을 강의한 외국인 여성’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독일 통일 직후 1991년 외무부에 특별채용돼 주독일 한국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부터 공사까지 역임한 뒤 2005년 세르비아 대사로 임명돼 대한민국 세 번째 여성 대사가 됐다. 공직 생활에서 은퇴한 후 한국과 미국, 독일을 오가며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20대, 세계무대에 너를 세워라’가 있다.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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