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다섯 번째 |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

공동육아 공동체 산들어린이집

“내 아이와 동시대 사는 이웃 생각하면 책임감 생기죠”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2012. 03. 16

자기 아이가 유치원의 무슨 반인지, 친구가 누구고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아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 11년 전 공동육아에 뜻을 둔 8가구가 모여 개원한 산들어린이집에서라면 그런 부모를 만날 수 있다. 아이 교육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부모들을 만났다.

공동육아 공동체 산들어린이집


서울 광진구 구의동 산들어린이집은 공동육아라는 목표로 의기투합한 부모들이 모인 곳이다. 보육 교사가 할 일을 부모가 직접 한다는 게 어찌 보면 귀찮을 수도 있다. 전체 조합원이 모이는 총회는 1년에 2번. 연령별, 방별로 매달 1번씩 모임이 있다. 회의도 많고 일일 교사 참여까지 해야 하지만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의 만족도는 아주 높다. 산들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성장하는 곳”이라며 입을 모은다.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밥과 간식이 나오고 텃밭을 가꾸는 친환경적인 어린이집이다 보니 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와 부모가 많아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없는 것도 있다. TV 시청, 과도한 특기적성교육, 주입식 조기 언어 교육, 1회용품. 이곳의 아이들은 TV 앞에 앉아 비디오를 보는 대신 마당에서 뛰어놀고 텃밭을 가꾼다. 누구누구 아빠, 엄마 같은 호칭도 없다. 서로 ‘별명’으로 부른다. 그렇기에 아이와 교사, 부모 사이에 권위적인 상하 위계도 없다. 고사리(13~24개월), 달래(25~36개월), 솔방울(37~48개월), 토리(49~60개월), 큰바위(61개월~). 이는 부모들이 머리 맞대고 지은 연령별 방 이름이다.

철수 아빠, 영희 엄마 대신 별명으로
일곱 살, 두 살 아이 아빠 정시중씨(41·별명 나무그늘)는 “이곳에서 이웃을 얻은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곳에는 등원 버스가 없어요. 부모가 직접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가요. 아침저녁으로 부모들과 만나서 인사도 나누고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모둠 활동을 하니까 어린이집 밖에서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친해진 가족끼리 소모임도 해요. 마음 맞는 아빠들은 축구 시합도 하고 캠핑도 다니죠. 2주에 한 번씩 모여서 대청소를 하는데 끝나면 함께 밥을 먹어요.”
이곳의 장점 중 하나로 정씨는 ‘평일 아마’ 제도를 꼽았다.
“‘아마’는 아빠와 엄마의 줄임말로, 교사가 휴가나 월차를 내면 엄마 아빠가 일일 교사로 참여하는 활동을 말해요. 내 아이가 활동하는 공간에서 다른 아이들을 돌보며 놀이나 활동에 참가해서 친구가 돼주는 거죠. 참고로 자기 아이가 있는 반은 못 맡게 돼 있어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투명하죠.”
세 아이 엄마 이지인씨(38·별명 소금별)는 “시간과 마음 맞는 사람들이 산발적으로 모여서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신다”며 “어린이집 기자재도 대부분 아빠들이 만든 것”이라고 귀띔했다.
“솜씨 좋은 아빠들은 어린이집 전기 배선과 수도관 위치도 훤히 꿰고 있어요. 책상도 만들고, 문짝도 달고 페인트칠도 하고요. 장마철이 다가오면 보수 공사도 직접 해요.”
원장 박정화씨(42·별명 달팽이)는 “종종 전문가를 부르는 게 빠를 때도 있지만 다들 고치고 나면 뿌듯해한다”라며 웃었다. 박씨는 어린이집이 만들어질 당시인 11년 전 아이를 7세 반에 보내며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치계미(雉鷄米)라고 어르신들에게 음식도 대접하고 여흥도 즐기는 옛 풍습이 있어요. 저희도 입동 무렵 근처 경로당에 아이들과 가서 시루떡도 해서 나눠 드리고 노래도 부르고 안마도 해드려요. 그러면 할머님들이 예쁘다며 아이들을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죠.”
박승진씨(34·별명 돌멩이)는 일곱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을 둔 아빠다. 그는 사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다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이곳을 찾았다.
“다른 어린이집은 문 앞에서 부모랑 아이가 헤어지잖아요. 여기는 어린이집 안까지 부모가 들어가요. 싫든 좋든 다른 아이들을 다 만나게 되죠. 아이들이 저보다 고참이라 먼저 와서 ‘누구야? 별명이 뭐야?’ 물어보고 다음날부터 ‘돌멩이 안녕?’ 인사하며 다가와줬는데, 그런 점이 새로웠어요. 정말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가 다니는 것 같은 곳이죠. ‘날적이’라고 선생님들이 매일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기록하는데, 부모도 집에서 아이가 어땠는지 적어서 소통하죠.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고민거리까지 다 적어서 공유해요.”
일곱 살, 네 살 아이 엄마 박민경씨(35·별명 동동이)도 박승진씨와 비슷한 경우다.
“한 달 정도 구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는데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굉장히 낯설어 하더라고요. 그곳은 어린이집 안에 부모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어요. 하지만 이곳은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부모가 함께 있어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 한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혼자 집에서 아이만 키우다 보니 우울해지더라고요. 이곳에는 비슷한 육아관을 가진 부모들이 항상 주위에 있고, 부모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동육아 공동체 산들어린이집

산들어린이집 아이들은 유기농 먹거리로 만든 간식을 먹는다.



공동육아 통해 평생 이웃과 친구 얻어
물론 사람과 사람이 모이다 보니 마찰이 없을 수는 없다. 박승진씨는 “저희도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지만 사소한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분쟁이 있다”라며 “대화를 많이 하고, 가끔은 술을 마시면서 풀고 모두가 나서서 치열하게 해결한다”고 했다.
이지인씨는 “사람이 모인 곳이라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제겐 장점이 더 많았다”고 했다.
“첫째로 아빠들이 육아나 교육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좋았어요. 그리고 아이와 제가 평생 갈 수 있는 이웃과 친구를 얻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큰아이에게 발달장애가 있는데, 제가 한때 그걸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했거든요. 그런 자신을 깨고 아이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하고 요구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곳이 바로 여기예요. 스스로 알을 깨려고 노력했지만, 밖에서 망치로 두드리며 알을 깨도록 도와준 게 이곳 사람들이었어요.”
두 아이의 아빠인 이종훈씨(45·별명 오렌지)는 “공동육아를 시작하려면 많은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큰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보냈던 이씨는 작은딸을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공동육아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부모가 고스란히 고생을 감내해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편하게 집에 있다가 ‘오늘은 재밌었어?’ 물어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는 거죠.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우고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주변의 많은 부모와 그런 고민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요.”
이씨는 “하지만 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다 짐이고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내 아이만 바라보지 않고, 아이가 속한 사회와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고 고민하지 않으면 공동육아는 어려운 숙제일 뿐이죠. 황금 같은 주말에 낮잠을 포기하고, 비 새는 천장을 수리하고 대청소 하러 어린이집을 찾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예요. 여기에 내 아이가 다니고 있고, 내 아이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가 있기 때문이죠.”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