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9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앞. 다양한 연령대 관객이 야광봉을 손에 쥔 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대비로 공연장 가는 길이 온통 물바다라 관객이 적을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이날 두 차례 공연 모두 매진이었다.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부활 멤버의 얼굴이 떠오르자 휘파람과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비가 오네~ 그 누가~ 지나쳐간~ 아스팔트 위로~.”
부활 6집에 실린 노래 ‘가능성’이었다. 보컬 정동하는 “장마철이라 이 곡으로 시작했다”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베이시스트 서재혁은 “부활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다”며 좌중을 웃겼고, 드러머 채제민은 “요 근래 부활에서 ‘귀요미’가 됐다”며 “스타일리스트가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골라줬다”고 했다. 작곡가, 작사가, CF 모델, 예능인, 국민 멘토…,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객석에 키스를 날렸다. 옆자리 관객이 벌떡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김태원은 “로보트 태권V 조종사”라며 보컬 정동하를 소개했다. 정동하는 부활 멤버로 6년을 활동하며 힘들 때 설움을 날려준 곡 ‘생각이 나’를 불렀다. 그때 무대에 전 보컬 정단이 등장했다. 정동하와 하모니를 이룬 그는 “혼자 있을 때 친구가 되어준다”며 기타를 잡고 ‘호랑나비’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불렀다.
김태원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1986년 발표 당시에는 묻혀버렸는데 성시경이 CF에서 부르자 17년 만에 떴다. ‘네버 엔딩 스토리’도 ‘내조의 여왕’에서 윤상현이 부르자 떴다”며 “이렇게 히트하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곡이 없다. 지금 들을 곡은 앞으로 10년 뒤 뜰 곡”이라고 농을 쳤다. 부활의 명곡 ‘노을’ ‘사랑’ ‘흑백영화’ ‘추억이면’ 등이 이어졌다.
트레이드마크인 긴 생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박완규는 ‘비밀’과 ‘론리 나이트’를 불렀다. 그의 뒤를 이어 ‘부상 투혼’ 이성욱이 등장했다.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모자를 눌러쓴 채였다. 이들은 다 함께 ‘사랑해서 사랑해서’를 부른 뒤 보컬 네 명이 합세해 부른 ‘누구나 사랑을 한다’를 열창했다.
“내일을 알 수는 없겠죠~ 어쩌면이라고 예상할 뿐이죠~ 늘 생각했던 게 늘 바래왔던 게~ 이뤄져가는 거죠 이뤄져온 거겠죠~”
이날 무대에는 김태원의 수제자인 ‘위대한 탄생’의 손진영과 이태권도 깜짝 출연했다. 손진영은 “성욱이 형님께 전화 드렸는데 좋은 목소리라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이성욱은 “사실 무대에 서기 쉽지 않았다”라며 “(여러분과) 약속드린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부활은 패밀리예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부활 7집에 실린 ‘리플리히’를 불렀다. 청아한 음색은 여전했다.
콘서트의 대미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앙코르 곡은 ‘희야’와 ‘네버 엔딩 스토리’였다. 노래 도중 갑자기 소리가 끊기고 불이 꺼졌다. 알고 보니 깜짝 이벤트였던 것.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관객들은 손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부활 전·현 멤버가 목례로 화답했다. 이성욱은 가장 마지막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7집 보컬 이성욱의 우여곡절 인생
저녁 공연을 위해 준비 중인 이성욱(37)을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났다. 그는 콘서트를 앞둔 지난 6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 컨디션에 대해 묻자 “최상”이라며 웃었다.
“안 좋은 쪽으로 최상이에요(웃음). 팔이나 어깨 부러진 건 수술하면 그만인데 머리를 다쳐서 말하고 노래할 때 많이 울려요.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고 불렀어요.”
그래도 그는 낮 공연에 대해 “너무 좋았다”며 “가수는 무대에 있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순간에는 몸이 쑤시는 것을 전혀 못 느꼈어요. 머리가 울려서 노래가 잘 안 들렸고 틀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게 했죠.”
이번 ‘부활 콜라보레이션 플러스 콘서트’에서는 현재 부활 멤버 외에도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왼쪽부터 정단, 김태원, 정동하, 이성욱, 박완규.
한때 그가 중태라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는 “당시 정신을 잃었고 순간적으로 심장이 멈췄는지 조치를 받았다”라며 “중환자실에 있다가 많이 좋아져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고 했다. 7시 공연을 마치면 다시 병원으로 향할 예정.
이성욱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이 아버지를 덮쳤다. 뺑소니였다. 35년 전이라 범인을 잡을 방법도 없었다. 이번 사고로 병원에서 눈을 뜬 그는 ‘이나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었다고 했다.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갔다가 사고가 났거든요. 새벽이라서 어두컴컴했는데 다행히 택시기사가 병원에 데려다주셔서 목숨을 구했어요. 하늘에서 아버지가 지켜주셨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부활의 전·현 멤버들끼리는 학교 동창처럼 친한 사이라고 했다.
“꼼장어에 소주 한잔 하는 친한 형 동생 사이죠. 같이 부활 보컬을 해서 심적으로도 통하는 게 많고요. 태원이 형의 괴롭힘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알려주기도 하고(웃음).”
이성욱은 부활의 7집 보컬로 활동했다. 부활 7집은 구하기 힘든 걸로 따지면 ‘특등급’이다. 앨범도 조금 찍은 데다 발매되자마자 회사가 부도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 그렇게 묻힌 그의 앨범이 최근 팬들의 요청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외국에선 명반이 재발매되는 경우는 있지만 부활 7집은 단 몇천 장밖에 안 팔린 희귀 음반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앨범도 아니었는데 재발매된 게 기적 같아요.”
한동안 그는 가수 활동을 쉬었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선뜻 무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꾸준히 드라마 ‘주몽’ ‘마녀유희’ 등의 OST에 참여했다.
“어느 날 태원이 형이 ‘성욱아, 너도 이제 노래를 해야 하지 않겠니’ 하더라고요. ‘너무 하고 싶어요’ 하니까 ‘회사부터 그만둬라’라고 해요. 사실 직장을 그만두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형이 녹음실에서 노래를 들려줬을 때 ‘아, 그만둬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올해 2월 그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남은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처음에는 부부싸움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내가 돈을 못 벌어도 하고 싶은 걸 하라며 응원해준다고. 일곱 살인 큰딸은 유치원에서 “우리 아빠가 노래를 한다”며 자랑한다고 했다.
“사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이를 잘 키우는 것도 의무지만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의 행복이 오래도록 유지돼서 제 딸이 아빠가 가수라는 걸 자랑스럽게 느끼면 좋겠어요.”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비운의 보컬’이라는 별명에 대한 속내도 털어놨다.
“그게 이경규 선배님이 만들어주신 별명이거든요. 말이 무섭더라고요. 비운의 보컬 하니까 바로 큰 사고가 나잖아요. 이제는 비운의 보컬이 아니라 천운의 보컬로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제 노래가 누군가의 가슴속 한 귀퉁이에라도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노래 철학이에요. 주어진 팬이 단 한 명일지라도 감동시킬 수 있는 노래를 부르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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