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보연(52)이 맏딸 은재씨(22)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인터뷰에서 딸 자랑을 많이 들었다”고 하자 그는 “남편(전노민)이 자랑하고 다닌 거지, 난 아니에요” 하며 손사래를 친다. 두 사람이 닮았다는 말에도 “솔직히 내가 얘보다 좀 예쁘지” 하며 또 한번 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그러자 은재씨는 다소 서툰 발음으로 “우리 엄마는 원래 이렇게 냉정해요” 하며 그에게 눈을 흘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은재씨는 현재 뉴욕 시라큐스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 중이며 얼마 전 겨울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
모녀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미국에서 두 딸 은재·은조(18)를 낳은 김보연은 이혼 후 친정엄마와 여동생에게 아이들을 맡긴 채 다시 한국에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을 떼놓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면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속앓이를 했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연기밖에 없으니까요. 다행히 동생과 언니네가 LA에 모여 살아서 아이들이 외롭지 않게 자랐어요. 또래 사촌도 많고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워낙 아이들을 예뻐해주니까.”
사춘기 시절 방황하는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마음 다잡게 해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은재씨는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울기도 했다고. 하지만 김보연은 그런 딸에게 따뜻한 말 대신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며 더욱 엄격하게 대했다. ‘예쁜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희가 딸만 다섯인데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참 무서우셨어요. 저도 막상 자식을 낳아보니 안으로 품기보다 엄하게 대하게 되더라고요. 더욱이 아이들이 외국에서 생활하니까 집안에서라도 한국 정서를 익히게끔 했어요. 어릴 적 아이들에게 늘 하던 말이 ‘손님이 오면 인사 잘해야 한다’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요즘도 미국에 가면 눈뜨자마자 아이들한테 잔소리를 퍼부어요. 밥 먹는 모습, 말투, 걸음걸이까지 다 지적하죠(웃음).”
그가 딸들에게 다정하게만 대할 수 없던 이유는 따로 있다. 어려서부터 자존심이 강하고 원칙주의자이던 그는 “사람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들을까봐 더욱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에게 야단치고 윽박지를 때는 마음이 찢어지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 믿었다고. 고맙게도 두 딸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모범생으로 잘 자라줬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잔소리 덕분이에요. 비록 한 공간에 있진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 것 같았거든요. 잠시 게으름을 피우려다가도 엄마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다잡은 적이 많아요. 한번은 학교 근처 한인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TV 화면에 엄마 얼굴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마치 공부 열심히 안 한다고 혼내시는 것 같아서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요(웃음). 친구들은 엄마를 왜 그렇게 무서워하냐고 하는데, 당연히 무섭죠. 엄만데. 그래도 엄마와 저는 비밀이 없을 정도로 친해요(웃음).”
은재씨의 ‘무섭다’는 말은 ‘존경한다’는 의미에 더욱 가까운 듯 보였다. 오랜 세월 엄마가 얼마나 힘겹게 자신들을 위해 살아왔는지 잘 알기에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경외감이라 할 수 있다. 은재씨는 고3 때 잠시 엄마와 갈등을 겪었지만 그로 인해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사춘기가 늦게 왔나봐요. 갑자기 공부도 하기 싫고, 대학 진학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엄마는 난리가 났죠. 일 때문에 한국에 계실 때였는데 전화로 매일 싸우다시피 했어요. 그러다 미국에 오셨는데 달라진 제 모습을 보시고는 혼내기는커녕 ‘엄마는 너를 혼낼 자격이 없어. 정말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띵’했어요. 잘못은 제가 했는데 왜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시는지… 너무 죄송하고 저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엄마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신 뒤 혼자 한참을 엉엉 울었죠. 그러고는 다시 책을 꺼내들어 미친 듯이 공부를 시작했어요(웃음).”
처음 듣는 딸의 고백에 김보연의 눈시울이 금세 촉촉해졌다. 언제나 강한 척, 냉정한 척한 그였지만 자식에 대한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 탁자 위 냅킨으로 눈물을 훔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은재씨의 코끝도 빨개졌다.
“은재가 맏이라 둘째에 비해 더 엄하게 키웠던 것 같아요. 회초리도 많이 맞았죠. 덕분에 둘째는 언니 혼나는 걸 보고 미리 야단맞을 행동을 안 하더라고요. 두 아이 모두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알아서 잘했어요. 은재가 어릴 적 책을 쌓아놓고 읽었는데 요즘 둘째가 그래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인데, 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기가 이루겠다며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 중이에요. 부족한 엄마 밑에서 두 아이 모두 착실하게 생활하고 있어 고맙죠.”
“엄마 아빠 애정 행각에 닭살 돋아요”
김보연은 엄마이기 이전에 연기자로서 큰딸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두 딸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연기자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특별히 말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한데 김보연은 “엄마가 연예인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괜히 거만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며 웃었다.
“은재가 고등학교 올라가서 처음 알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미국에서 한식당을 가면 ‘왜 사람들이 엄마한테 인사하고 우리 보고 귀엽다고 해?’하면서 의아해했어요. 그러다 제가 연기자라는 걸 알고 무척 신기해했죠. 미국 배우처럼 돈을 많이 버는지, 한국에서는 얼마나 유명한지, 궁금한 게 많나봐요. 인터넷으로 과거 출연했던 영화, 드라마 CF까지 다 찾아봤더라고요(웃음).”
김보연은 지난 2004년 전노민과 재혼해 두 딸에게 새 아빠를 만들어줬다. 당시 큰딸 은재씨는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못마땅했지만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재혼에 찬성했다고 한다. 전노민에게 프러포즈를 권한 것도 두 딸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지금껏 아빠 없이도 잘 살았는데 왜 이제 와서 엄마가 재혼하겠다고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새 아빠를 만나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니까 두 분이 빨리 결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두 분이 금반지를 나눠 끼고 있었는데 미국에는 ‘커플링’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반지가 너무 빈약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아빠한테 ‘우리 엄마 사랑해요?’ 하고 물은 뒤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시기에 ‘그럼 빨리 프러포즈하세요’ 하고 부추겼죠. 그때 아빠 얼굴이 어찌나 빨개지는지, 동생과 제가 많이 놀렸어요(웃음).”
자상하고 인정 많은 전노민은 두 딸 눈에도 ‘최고의 남편감’이라고 한다. 김보연이 재혼 후 더욱 예뻐지고 건강해진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은재씨 역시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보살펴주는 아빠를 보면서 할 말을 잃을 때가 많다고 했다.
“얼마 전 엄마 아빠가 방송에 나와서 ‘결혼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싸웠다’고 하던데, 그 말 진짜예요. 좋은 게 있으면 다 엄마 갖다주고, 집에 함께 있으면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해요. 같이 TV를 볼 때도 엄마 아빠 사이에 낄 틈이 없어요.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마누라 일어났쪄?’ 하고 애교를 떨고,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 서방님 왔어’해요. 솔직히 너무 닭살이 돋아서 듣기 괴로울 때도 있어요(웃음).”
전노민은 두 딸에게도 더없이 자상한 아빠. 은재씨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 몰래 용돈도 잘 주고, 모녀 사이 갈등요소를 없애주는 해결사”라고 한다. 용돈을 잘 준다는 말에 깜짝 놀란 김보연은 “한 번 외출할 때 얼마나 주는데? 2만원 이상?” 하면서 딸을 추궁했다. 성인인 딸에게 2만원이 과연 큰돈일까 싶지만 김보연은 지금껏 두 딸에게 용돈 한번 넉넉하게 준 적 없는 ‘자린고비’형 엄마라고 한다. “그래도 대학생이 돼서는 용돈이 늘었을 것 같다”고 하자 은재씨는 바로 “노우(No)~”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연출을 전공하다 보니 필름이며 재료값이 많이 들어가는데, 얼마 전에는 필름값으로 3백36달러50센트가 나왔다고 했더니 1달러도 더하지 않게 정확히 그 액수만 보내주셨어요. 교내에서는 학생증으로 결제가 다 가능하기 때문에 특별히 용돈 쓸 일이 없는데, 가끔 수업이 늦게 끝나 식당 문이 닫혀 있으면 밖에 나가서 친구한테 얻어먹기도 해요(웃음). 한국에서도 엄마 물건을 사용하려면 꼭 허락을 받아야 하고요. 말 안 하고 사용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거든요.”
김보연은 아이들이 경제적 자립을 하기 전까지는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키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절약정신을 길러주는 게 아이들을 위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는 것. 지금껏 두 아이 모두 그 흔한 MP3플레이어 하나 없다고 한다.
“휴대전화도 고2 때 처음 사줬어요. 보통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으면 할머니나 이모한테 그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생활했는지를 물어본 뒤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일 때 사줘요. 그렇지 못하면 아이들도 알아서 더 이상 사달라고 조르지 않죠. 얼마 전에는 은재가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서는 ‘집에 있는 아빠 티셔츠 빌려 입어도 돼?’하고 묻더래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남편이 ‘대학생인데 옷을 안 사주면 어떻게 하냐’며 저를 나무라더군요. 이번에 은재가 한국에 들어올 때도 가장 싼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세 번이나 경유해 서른 시간 넘게 걸려 집에 왔더라고요. 남편은 기가 막혀했지만 저는 대견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보연은 전노민과의 재혼으로 딸 하나를 더 얻었다. 현재 미국 시카고 고모집에서 살고 있는 막내딸 은지(17)는 방학 때마다 두 언니가 있는 LA로 건너온다고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하던 아이들이 한데 모이기만 하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잘 어울려 논다고. 처음 만남에서부터 서먹함을 찾아볼 수 없던 세 딸은 이름도 은재·은조·은지, 마치 돌림자를 쓴 것처럼 비슷하다.
“세 아이 모두 똑같이 대하려고 해요. 하지만 은지한테는 잔소리를 덜 하는 편이에요. 아직 어려 혹시라도 상처받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위로 두 아이에게 대하는 것과 똑같이 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해요.”
웃는 모습이 똑 닮은 김보연 모녀는 성격은 물론 식성, 좋아하는 이상형까지 닮아 있다. 김보연은 얼마 전 은재씨가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평소 맺고 끊음이 분명한 성격인데, 그런 자신의 성격을 딸이 그대로 닮았더라는 것. 음악과 그림을 아는 분위기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모녀의 공통점 중 하나라고 한다. 다만 은재씨의 결혼문제만큼은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듯했다.
“은재가 착한 남자 만나서 빨리 가정을 꾸리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살아보니까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한 거더라고요. 제가 하도 결혼 타령을 하니까 아이는 더 결혼하기 싫대요(웃음). 그래서 한번은 TV를 보다가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무한도전’에 나오는 정준하씨를 고르더라고요(웃음). 저는 꽃미남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은재는 덩치도 크고 남자답게 생긴 사람이 좋대요.”
김보연은 벌써 어른이 돼 엄마를 이해하고 걱정해주는 딸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했다. 앞으로 딸들과 함께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곱게 나이 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듣고 있자니, 흰머리 성성한 어머니와 그를 둘러싼 아름다운 세 딸의 모습이 한 편의 영상처럼 떠올랐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