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99년 3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통해 ‘유교의 유효 기간이 끝났다’ ‘효도가 사람 잡는다’ ‘공자 바이러스’ 등 강한 말로 유교를 비판했던 상명대 중문과 김경일 교수(46)는 그 후 지리한 법정 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성균관 유림들이 ‘악담과 패설로 공자와 유교에 모멸감을 줬다’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23일 대법원은 5년 남짓 힘겨루기를 해온 이 싸움에서 김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특정인이나 단체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킬 만한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며 “이 책이 유교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교의 진흥과 유교 문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성균관의 평가를 저해시켰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승소가 확정된 후 상명대 천안캠퍼스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예상외로 김 교수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였어요. 그런데 지인들이 과격하다고 말려 제목을 순화시킨 것이죠.”
유교의 문제점을 지적한 지식인은 많지만 그처럼 ‘확실한’ 비판은 드물다. 그는 왜 하고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독 공자에게 살의를 느끼는 것일까.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 어른, 기득권자,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 우월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조성 말살 교육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어요.”
이외에도 유교의 문제점은 하나 둘이 아니라는 그는 ‘공자 바이러스’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했다. 유교가 인간 모두의 인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나이 든 남자’만을 옹호하고 있어 여성들의 피해와 고통이 크다는 것. 이런 이유로 그는 제사나 명절 풍습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명절 때 ‘고향에 간다’고 하는데 그건 남자들만의 고향이잖아요. 또 명절이나 제사 때 남자들은 방 안에 앉아 놀고 여자들만 부엌에서 일하는 것도 너무 이상한 문화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이런 왜곡된 남성 중심의 유교 문화가 지속되는 걸 보면 한국은 정말 미련한 사회에요.”
부엌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는 한 부엌 두 여자의 ‘잘못된 만남’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한 부엌에 넣는 일은 일종의 문화적 가학 행위라고 생각해요. 부엌은 단순히 반찬을 만드는 장소가 아니에요. 독특한 자기만의 삶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죠. 따라서 이런 잘못된 만남은 어서 사라져야 할 것들 중에 하나예요.”
고부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인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도 남다르다.
“치매 환자를 반드시 자식들이 모셔야 한다는 생각도 ‘효가 사람 잡는’ 대목이에요. 정부는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현실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고 왜 며느리에게만 ‘맹목적인 효도’를 강조하는 거죠? 치매 문제를 비롯한 노인 문제는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문중 땅이란 걸 다 없애고 그곳에 실버타운을 만들면 좋겠어요.”
유교가 나이 든 남자만을 옹호해 여성들의 피해와 고통이 크다고 말하는 김경일 교수.
그가 공자를 강력히 비판하는 책을 펴냈을 때부터 그와 가족들은 거의 매일 협박성 전화에 시달렸다고 한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몇 달 동안 학교와 집으로 저를 죽여 버리겠다는 전화가 계속 왔어요. 협박성 편지가 등기우편으로 배달되기도 했고요. 익명의 사람들이 하도 집으로 전화를 해대서 아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지요. 저희 가족이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이루 다 말 못합니다.”
직접 학교로 찾아와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위대가 학교를 점거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김경일을 교수직에서 물러나게 하라’고 총장에게 요구했다.
“제 주변 사람들로부터 맞고소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표현의 자유를 돈이나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요. 끝까지 ‘몸으로 때울’ 각오였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런 주장을 하는 그도 한때 ‘유교적 가치관이 의미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유교 공부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천자문과 붓글씨를 배우기 시작, 대학에서 한문학을 전공했다. 이때 ‘논어’ ‘맹자’에 심취해 전국에 있는 서원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기도 했다. 또한 대만으로 유학을 떠나 중국문화대학 중문연구소에서 고대문자와 갑골문자를 전공, 국내 갑골학 박사 1호가 되었다.
“갑골문자를 연구하면 동양 문화의 기원을 알 수 있어요. 글자만 익히는 데도 5년이 걸리는 까다로운 학문인데 이 공부를 하다가 유교 최초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유교가 어떻게 변질됐고 역사를 왜곡했나를 알 수 있었어요.”
갑골학에 푹 빠져 지낸 9년간의 대만 유학생활이 그를 유교 반대주의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이미 1백 년 전에 유교를 버리고 일본도 유교를 버렸는데 왜 유독 우리만 유교에 얽매여 사는지 모르겠어요. 유교는 21세기에 안 맞는 옷이에요.”
그는 해마다 40일 정도 자동차로 중국 곳곳을 여행한다. 지난 91년 처음 시작한 여행이 올해로 15년째에 이르는데 그가 카메라에 담은 중국인의 생활 풍속만 해도 1천 장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 안휘성의 한 박물관 비공개자료실에서 고구려사와 관련한 문서를 발견, 비밀리에 촬영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간 일도 있었다고.
그는 중국 여행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한국에 대한 ‘애증의 마음’이 커진다고 한다.
“중국은 조금 덜그럭대긴 해도 방향을 제대로 잡았어요. 날로 커지는 중국의 힘 때문에 앞으로 한국이 많이 시달릴 것 같아 걱정이에요.”
유교 종주국의 언어와 문화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한국의 미래상을 고민하는 김경일 교수. 언제가 돼야 그가 힘겹게 만들어낸 ‘공자 바이러스 백신’을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내려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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