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뮷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을 모티프로 개발한 상품’을 일컫는 국립중앙박물관 고유의 브랜드다. 2022년 1월에 론칭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기획, 제작, 판매, 마케팅을 담당한다. 그룹 BTS의 리더 RM이 소장해 화제가 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석굴암 조명, 청자 아이팟 케이스 등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상품이 많아 수년 전부터 젊은 층에서 ‘힙트래디션(hip+tradition)’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상품관 뮷즈 구입 관람객의 연령대는 30대(36.6%), 20대(17.4%), 40대(17.3%), 50대 이상(17.1%) 순이었다.
8월 14일,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을 만나러 간 날은 평일임에도 상품관 오픈런이 펼쳐졌다. 박물관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식품 회사 마케터로 일하다 2016년부터 국립박물관문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긴 김미경 본부장은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나만의 유물
상품관 오픈런을 직접 목격하니 인기가 더 실감이 납니다. 요즘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워낙 품절 상품이 많고, 특히 까치호랑이 배지는 소량으로 그때그때 조금씩 만들거든요. 사실 박물관은 메인이 전시잖아요. 요즘은 문화유산을 재해석한 상품 덕분에 유물에 관심이 갖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최근 초등학생들이 상품관에서 반가사유상이나 백제금동대향로 등을 보며 교과서에서 배운 유물 얘기를 한참 하는 걸 들었어요.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쁜데 실용성도 있으니까 더 갖고 싶은 게 아닐까요.
단청 키보드는 저도 사용하고 있어요. 자기만의 취향대로 꾸미고 싶어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니즈랑 잘 맞았죠.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도 집이나 사무실 등 오래 머무는 공간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용도로 쓸 수 있죠. 무엇보다 그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잖아요. 취객 선비 소주잔은 차가운 음료를 부으면 잔 겉면에 그려진 선비의 얼굴이 빨개져요. 재미있어서 인기가 많은데, 알고 보면 이 선비는 김홍도의 그림 ‘평안감사향연도’ 속 인물이에요. 스토리텔링이 있으니까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 선물용으로도 좋죠.



김미경 본부장이 좋아하는 청자 키링과 외규장각 의궤 머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스테디셀러다.
저도 ‘케데헌’을 재밌게 봤는데, ‘호작도’ 속 호랑이랑 많이 닮았더라고요. 용맹한 호랑이 그림은 많아요. 그런데 ‘호작도’ 속 호랑이는 어눌해요. 보통 호랑이는 권력의 상징이고 까치는 민초를 의미해요. 이 그림은 호랑이보다 까치를 당당한 모습으로 그리면서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해학을 담았죠. ‘케데헌’에서도 서씨(까치)가 더피(호랑이)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등 제작진이 공부를 많이 하고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인과 한국인이 관심 갖는 뮷즈가 좀 다른가요.
외국인은 조금 더 전통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우리는 익숙하지만 한복이나 ‘일월오봉도’, 단청, 불상 등이 서구권 시각에서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반면 한국인은 유물을 모던하게 재해석하거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상품을 좋아해요. 다만 외국인, 내국인 모두 많이 구매하는 아이템은 정해져 있어요. 키 링, 마그넷, 공책, 볼펜 같은 클래식한 굿즈들이죠. 특히 외국인들은 저렴한 가격대 제품을 선물용으로 대량 구입하는 사례가 많아요. 패브릭 청자 키 링이나 신라의 미소 키 링 등은 저도 좋아하는 아이템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굿즈는 뭔가요.
외규장각 의궤 머그도 좋아해요. 국립중앙박물관에 지난해 새롭게 조성한 외규장각 의궤실 가보셨나요? 예전에는 많은 유물을 쭉 진열해놓았다면 요즘은 사유의 방이나 의궤실처럼 유물 하나를 보더라도 온전히 몰입해서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의궤는 일종의 왕실 보고서예요. 굉장히 디테일한 그림으로 기록했는데, 아무래도 왕실 행사는 결혼식이나 잔치가 많아요. 그림을 살펴보니까 예쁜 가마들이 많더라고요. 그 미감을 살리려고 다양한 테스트를 거쳤어요.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 등 전 분야 중 가장 어려운 건 뭔가요.
다 어렵긴 한데, 처음이 제일 어렵죠. 예전에 식품 회사에서는 상품 기획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였다면, 지금은 유에서 새로운 유를 창조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위해선 유물이 가진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녹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디어 회의를 진짜 많이 해요. 기획이 핵심이고, 보통 특별전 상품은 기획부터 출시까지 3~6개월 정도 걸려요. 2~3년 준비하는 장기 프로젝트도 있고요. 11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순신’전을 열 예정이라 이제 막 회의에 들어갔어요. 우리가 다뤄야 할 콘텐츠는 국립중앙박물관부터 소속 지방 박물관 13개 유물까지 정말 방대한데, 팀에 디자이너는 3명뿐이에요. 정말로 치열하게 일하고 있습니다(웃음).
제품 수급에 대한 부담도 있겠어요.
최근에 올해 뮷즈 공모 당선작인 곤룡포 비치 타월을 500개 판매한다고 사전 공지를 했었어요. 그런데 직원들이 오전 7시 30분부터 줄 서는 분들이 있다는 거예요. 결국 다양한 항의를 받았어요. 업체와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정, 제작처 등에 대한 회의를 여러 차례 해서 곤룡포 타월은 물량을 늘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곤룡포 타월이나 까치호랑이 배지처럼 공모작은 해당 업체에서만 납품을 받아야 하니까 아주 많이 만들 수가 없어요. 이 공모 자체가 우리 전통문화에 많은 관심이 있는 업체를 발굴해 기회를 주기 위해 하는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까치호랑이 배지를 만드는 업체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죠. 또 다음 멋진 스탭을 구상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을 거예요.

국립중앙박물관은 뮷즈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관람객 기준 세계 8위에서 올해는 5위권을 넘보고 있다.
고루하단 편견 깬 반전의 멋
‘힙트래디션’ 트렌드가 수년째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요.한국인이라면 우리 문화유산이 이렇게 멋지게 재해석되는 것에 대해 싫어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RM, 나영석 PD 등 유명한 분들을 통해 계속 미디어에 노출된 영향도 크다고 생각해요. 물론 반짝 유행하지 않으려면 더 좋은 품질과 창의적인 아이템이 계속 나와야 해요. 최근 IP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최근에는 스타벅스, 신한카드와 협업을 했고 지난해에는 하이브와 손잡고 BTS 노래 가사가 적힌 달항아리를 선보였어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우리 문화유산을 자연스럽게 접하다 보면 시장이 더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본부장님이 생각하는 ‘힙’은 무엇인가요.
힙하다는 건 멋진 거죠. ‘힙트래디션’은 우리가 한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며 보도 자료에 처음 쓴 단어예요. 그 후로 여기저기서 사용하면서 하나의 트렌드가 된 느낌인데요. 전통은 촌스럽고 진부하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반전이 있는 멋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그런 힙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힙하려고 노력은 해요. 트렌드에 밝아야 하니까 무언가 유행한다면 살펴보고 분석해봐요. 주변 얘기도 많이 듣고요. 10대들이 빈말을 잘 안 하잖아요. 올해 스무 살인 딸 역시 늘 팩트만 얘기해서 참고가 많이 돼요.
따님이 트렌드 관련해 아이디어도 주나요.
딸은 제 일에 관심이 없어요(웃음). 딸이 초등학생일 때 이직했는데, 박물관에 와보니 정말 매력 있는 곳이더라고요. 그래서 주말에 전시도 많이 보여주고, 자원봉사자 해설 프로그램도 억지로 듣게 했더니 오히려 질려버렸어요. 그때 박물관을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걸 배웠어요. 반성을 많이 했죠. 그래서인지 딸은 제 일에 관심이 없는데, 딸이 최근 자기 SNS 알고리즘를 뚫고 뮷즈가 나온다는 거예요. “보니까 갖고 싶더라” 얘기해줘서 기분 좋았어요. 하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가다 보면 ‘이게 맞나?’ 헷갈릴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유물이다 보니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이렇게까지 재해석해도 되나?’ 늘 고민해요. 예를 들어 태극기를 들고 있는 광복 80주년 기념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경우 반가사유상의 포즈를 바꿔도 될지 조심스러웠어요.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역사적 지식이 많은 사람, 박물관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보고 결정을 내려요. 물론 제가 밀어붙이는 때도 있긴 합니다. 글로벌 액세서리 브랜드 ‘케이스티파이’와의 IP 사업은 “문화유산을 활용해서 외국 회사와 협업하는 게 괜찮겠느냐”는 우려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최종 리포트를 받아보니까 우리와 협업한 상품 구매자 중 40%는 외국인이더라고요. 굉장히 뿌듯했어요.
해외 박물관에서 전해오는 의견도 있나요. 반응은 어떤가요.
해외에서도 이제 K-컬처를 바라보는 눈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올 11월에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이건희 기증 유물 특별전이 열려요. 그동안 국외 전시회를 했을 때 굿즈를 수출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관심을 보여서 지난주에 굿즈 여러 개를 비행기에 태워 보냈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도전이 있나요.
‘케데헌’을 보면서 지금 우리는 상품을 만들고 있지만 영역을 더 확장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뮷즈’란 패밀리 브랜드가 있고 그 아래 한 유물을 활용해 브랜딩을 하는 거죠. 지금처럼 커다란 변화의 움직임이 있을 때, 그 변화의 시발점이 되고 싶어요.
#케데헌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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