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업과 취업뿐만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단절된 채 방 안에 머무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2024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 비율은 5.2%로 2022년(2.4%)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전국 1만5098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약 785명이 거의 집에만 머문다고 답했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를 통해 사회적 고립 청년이 약 54만 명에 달하며 이 중 13~18세 청소년이 14만 명으로 추정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성인이 돼서도 같은 문제를 겪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둔 생활을 하는 청년 중 25%가 10대 때부터 고립됐다고 답했다.
고립·은둔 문제는 개인을 넘어 가족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에 대한 질문이 두려워 부모가 본인의 사회적 관계까지도 단절하는 일도 많다. 이런 경우 심리적 부담감이 커져 결국 아이와 함께 무너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혜원 호서대학교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가족주의적인 한국 문화에서 고립·은둔 청년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함께 위협받고 있다”며 “부모가 자책과 후회 속에 머물면 정작 아이를 도울 힘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2015년부터 학교·사회 밖 청년들을 위한 단체 ‘PIE나다운청년들’을 운영해온 그는 은둔 청년을 상담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책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를 출간했다. 김 교수는 고립이 시작되는 청소년기에 이를 조기에 감지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멈춰버린 청춘, 고립·은둔의 현실
고립·은둔의 기준이 무엇인가요.일반적으로 ‘고립’ ‘은둔’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를 함께 논의합니다. 먼저, 고립과 은둔은 모두 사회적 관계가 단절돼 외출도 자제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양상은 비슷하되 고립은 은둔보다는 경미한 수준이고요. 니트는 학교나 직장에 속해 있지도 않고 이를 준비하는 상태도 아닌 것을 뜻합니다. 고립·은둔과 달리 사회적 관계 단절 여부와는 무관한 용어입니다.
여기서 관계란 온오프라인 모두 포함인가요.
네. 고립과 은둔을 겪는 이들은 온라인에서도 관계를 활발히 맺지는 않습니다. 커뮤니티에 접속은 자주 하고 일방적으로 글을 남기기는 하지만 쌍방향 소통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은둔 청소년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나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핵심은 스스로 관계를 끊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점차 어려움을 겪으며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특히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폭력과 같은 피해 경험이 누적된 영향도 크고요. 심한 경우 학교생활 자체가 버거워지면서 등교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생활 패턴이 깨지고, 게임 등 자극적인 활동에 몰입하면서 식습관과 위생 관리까지 소홀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죠.
이들의 내면에는 어떤 심리가 있나요.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스스로를 ‘노잼’ 혹은 ‘아싸(아웃사이더)’라고 정의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완벽한 인싸(인사이더)가 돼야만 사회에 나갈 수 있다’라고도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그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움츠러들게 되죠.
은둔에 들어가는 원인은 주로 교우 관계 때문일까요.
청소년의 경우 성인보다 생활 반경이 좁아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과 학교에서 보내는데, 이런 두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가정과 학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강조하는 학벌 중심 문화, 특정 연령대에 기대하는 역할과 모습,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사회적 기준 등이 은둔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틀에서 벗어난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 구조하에서 한번 고립이나 은둔으로 빠져들면 다시 사회로 나오기가 힘들어지고요. 이런 요인들은 부모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죠.
사춘기도 원인이 될 수 있나요.
사춘기는 신체적 변화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정서가 흔들릴 수 있는 시기지만 그것이 곧 대인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사춘기적 특징과 고립을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2가지를 구분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인적 성향도 영향을 미칠까요.
그럼요. 낙천적이고 예민하지 않아 갈등을 쉽게 넘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아이라면 스트레스가 내적으로 축적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거나 자책하는 성향이 강한 경우도요. 은둔 청소년 주변 어른들은 흔히들 “원래 착한 아이였다”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불만을 드러내기보다는 참고 맞추려고 노력해온 경우가 많죠. 이를 더 감당하지 못할 때, 외부를 향해 공격적으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숨기는 방식으로 반응하며 고립이나 은둔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의 기질을 미리 확인할 방법이 있다면요.
어릴 때부터 보였던 특징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4~5세 때부터 집 앞 놀이터에 나가는 것조차 무서워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거부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기질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환경이 불안정했거나 부모가 인지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겪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은둔에서 빠져나올 실마리는?

고립이나 은둔 상태로 가기 전, 많은 청소년이 공통적으로 “학교 가기 싫다”고 토로합니다. 이때 대부분의 부모님은 “다들 학교 가기 싫을 때가 있으니 참고 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표현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단순히 학교에 보낸다고 해서 그 이유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지, 가지 못할 만큼 에너지가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탐색해야 합니다.
아이가 등교를 잘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은둔의 기준은 아이가 단순히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가 얼마나 단절됐느냐에 있습니다. 등교를 강요받아 학교에 간다고 해도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보건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하교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등교하고 있지만 이미 상당히 고립이 진행된 상태라고 볼 수 있죠. 아이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대응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어떻게 아이의 학교 내 고립을 파악할 수 있나요.
자녀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부모에게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생각을 존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불편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세상은 단순히 참고 맞춰야 하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주장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가 ‘갑자기’ 변했다고 말합니다.
대개 ‘아빠가 크게 소리 지른 날부터 방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마지막에 드러난 특정 사건만을 원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고립·은둔은 오랫동안 다양한 요인이 누적되면서 서서히 진행됩니다. 비유하자면 어깨 위에 짐이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개의 짐을 버틸 수 있지만 마지막 하나를 올리는 순간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죠. 갑자기 변했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이전부터 쌓여온 요인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둔형 외톨이 자녀와 대화 시 유의할 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소통을 시도할 때, “게임 좀 그만해라” “일찍 자라” 등 생활 습관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이미 자신의 생활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부모로부터 비난받으면 스트레스가 심화돼 오히려 관계가 단절될 위험이 있죠. 날씨나 음식처럼 부담 없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상담 사례 가운데 거실에서 스포츠 중계를 함께 보며 물꼬를 튼 경우가 많아요. 아이가 반응하지 않아도 독백하듯 이야기하는 것 역시 좋습니다. 처음에는 대화가 1분도 안 이어지지만 점차 길어지면서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잘못된 생활을 가만히 두면 아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라고 걱정할 수 있지만 설령 그런 오해가 생기더라도 관계가 악화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말도 있을까요.
부탁이나 간청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발 밥 좀 같이 먹자” “다음 주까지 꼭 상담을 받아야 해” 같은 요구는 일방적인 통보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는 동의한 적 없는데 상담을 가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가 실망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관계도 나빠지고요. 많은 부모님이 병원이나 상담센터 방문 등 해결 방법을 찾지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하지 않는 것이 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자책에서 벗어나 마음 건강 회복해야
부모는 은둔 청소년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거나 친구를 만나지 않아도 여전히 부모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가 먼저 아이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 믿음을 꾸준히 표현해야 합니다. 많은 은둔 당사자가 부모님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을 기억하며 그때부터 스스로를 죄인처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비록 기대만큼 빠르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수용의 메시지가 꾸준히 전달될 때, 변화의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은둔 청소년들이 가족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많은 아이가 공통적으로 “나를 믿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부모님들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역으로 묻지만 이는 아이들이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한두 달 만에 스스로 변화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속도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처럼 아이를 독촉하면 안 됩니다. 특히 변화가 보인다고 해서 “이제 좀 나아진 것 같은데 더 노력해볼래?” 같은 말을 하면 아이들은 다시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나아갔다가 다섯 걸음 뒷걸음치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어요. 변화가 보인다고 해도 기다리는 과정에서 조급하게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기다리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둔 청소년의 부모도 함께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립 청소년 문제는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는 특징이 있어요.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 구조에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어려움을 겪으면 사회적으로 즉각적인 문제로 드러나지 않고, 집 안에서 장기적으로 머무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가족 전체가 함께 동요하고, 부모님들은 ‘이 아이의 문제가 내 탓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함께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는 어떻게 다른가요.
서양의 경우, 부모가 자녀의 문제를 독립적인 것으로 보고 일정 나이가 되면 경제적·사회적으로 독립하도록 하는 경향이 큽니다. 부모의 지원 없이 혼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은둔이 심해지면 홈리스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족이 끝까지 함께 돌보는 구조가 강하기 때문에 아이가 사회에서 완전히 단절되는 대신 가정 내에서 머물며 보호받는 측면도 있죠.
자녀의 은둔으로부터 오는 우울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자녀를 돕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더 건강한 상태여야 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아프다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듯이, 부모님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면 자녀를 도울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많은 부모님이 ‘이건 내 탓이다’라는 죄책감에 빠지고, 스스로를 미워하며 자책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녀를 돕는 힘마저 잃게 됩니다. 자녀를 돕기 위해서라도 이 생각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책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돕기 위해 부모님 자신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아이가 변화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볼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 아니지만요.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과거로 돌아가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겁니다. 많은 부모님이 ‘이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이사 자주 간 게 원인이었을까?’ 등 과거의 상황을 분석하려 합니다. 하지만 자책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정신 건강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설령 원인을 정확히 밝혀낸다 하더라도 아이의 현재 상태는 달라지지 않아요. 과거를 되돌릴 수 없을뿐더러 원인을 찾으려는 과정 자체가 부모님을 더 깊은 죄책감 속으로 몰아넣죠.
부모가 또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부모님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녀 문제를 혼자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부모님 역시 고립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조 모임이나 지원 단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자를 비난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키워서 애가 이렇게 됐다”는 식의 언쟁은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목표를 설정하고 협력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고립·은둔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자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부모님이 전부 알 수는 없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원인을 찾느라 고민 속에 빠지는 대신, 이 순간 자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부모님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자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너무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조금씩 함께 해결해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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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해윤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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