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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이상이 현실이 되는 오트쿠튀르에 대한 모든 것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2024. 08. 30

지난 7월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전설의 디바 셀린 디옹은 디올의 쿠튀르 요소가 녹아든 시퀸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를 우아하게 유영했다.

지난 7월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전설의 디바 셀린 디옹은 디올의 쿠튀르 요소가 녹아든 시퀸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를 우아하게 유영했다.

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F/W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라이브로 감상하다가 불현듯 미국 작가 폴 갈리코의 1958년 소설 ‘미시즈 아리스 고즈 투 파리(Mrs. ‘Arris goes to Paris)’가 떠올랐다. 누구나 가슴속에 동경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지 않는가. 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갈망 말이다. 소설은 평생 일만 해온 영국의 평범한 청소부 아리스 부인이 디올의 오트쿠튀르 드레스에 반해 홀린 듯이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매장에서 일개 노동계급인 청소부에게 드레스를 내어주려고 할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처럼 들리지만, 꿈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부인의 모습은 삶에 잔잔한 희망의 불씨를 지핀다. 그에게 화려한 디올 드레스는 스스로 존재감 없는 여성이라 여기며 살던 자신을 바꿔놓을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디올 아틀리에는 유명 쿠튀리에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레이디 가가를 위해 파리 개막식 의상을 만드는 모습을 공개해 기대를 높였다.

디올 아틀리에는 유명 쿠튀리에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레이디 가가를 위해 파리 개막식 의상을 만드는 모습을 공개해 기대를 높였다.

도대체 오트쿠튀르가 뭐기에, 우리는 이토록 그것에 열광하는 것일까. 먼저 오트쿠튀르의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자. 오트쿠튀르(haute couture)는 고급 옷이라는 뜻의 ‘haute’와 재봉 또는 의상점을 의미하는 ‘couture’의 합성어다. 장인의 숙련된 손길로 만든 최고급 의류인 것. 그 역사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 프랑스 패션을 선도하던 디자이너 찰스 프레드릭 워스가 상류층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첫 오트쿠튀르 하우스 ‘워스 & 보베르(Worth & Bobergh)’를 창설하며 현 오트쿠튀르의 시초가 됐다. 그는 각 계절에 한두 달 정도 앞서 오트쿠튀르 패션쇼를 열어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옷을 짓는 ‘선주문 후 제작’ 방식을 도입한 것도 그가 세계 최초다. 까다로운 심미안과 완벽에 가까운 재단 기술에 비즈니스 감각까지 더해진 워스 하우스는 상류층 여성들의 마음을 빼앗으며 승승장구했다. 그 명성이 얼마나 자자했는가 하면 이듬해 나폴레옹 3세의 궁정 쿠튀리에(옷을 만드는 재봉사)로 공식 임명됐다. 그뿐 아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황후, 코라 펄 같은 유명 화류계 여성, 배우 사라 베르나르, 가수 데임 넬리 멜바 등으로부터 드레스 제작 의뢰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오트쿠튀르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프레드릭 워스의 1882년 작 이브닝드레스.

오트쿠튀르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프레드릭 워스의 1882년 작 이브닝드레스.

안타깝게도 1895년 워스가 작고한 뒤 워스 하우스는 아들을 포함한 여러 경영자에 의해 계승되다 역사의 끝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패션 유산은 1910년 ‘파리의상조합(Federation Francaise de la Couture)’을 창설케 했으며, 1945년 규정된 엄격한 조건에 따라 100여 개의 브랜드에 오트쿠튀르 자격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오트쿠튀르에 입성하려면 파리 아틀리에 20명 이상의 기술직과 전속 모델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매 시즌 연 2회 열리는 파리 패션쇼에서 적어도 50벌 이상의 새로운 의상을 발표해야 한다. 그렇게 자격을 부여받은 하우스는 2024년 기준 41곳에 불과하다.

루이비통의 글로벌 앰배서더 정호연을 위해 한국적인 멋을 추가한 코스튬 드레스(왼쪽). 디올의 쿠튀리에가 배우 송혜교가 결혼식에서 입을 웨딩드레스를 손수 제작하는 모습.

루이비통의 글로벌 앰배서더 정호연을 위해 한국적인 멋을 추가한 코스튬 드레스(왼쪽). 디올의 쿠튀리에가 배우 송혜교가 결혼식에서 입을 웨딩드레스를 손수 제작하는 모습.

그렇다면 오트쿠튀르를 소비하는 고객은 누굴까. 산업혁명 이전부터 패션이란 카테고리는 귀족과 왕족을 포함한 최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이들은 질 낮은 기성복보다 시간과 돈을 더 들이더라도 값비싼 원단을 갖고 오랜 기간 정성껏 제작하는 맞춤복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격조 높은 디자인은 재벌들을 잠재고객 삼아 세계적인 스타들과 상생 관계를 맺으며 뻗어나갔다. 현대의 오트쿠튀르는 고급 맞춤복이라기보단 예술성과 패션 철학을 보여주는 아트 전시로 변모했다. 최고의 쿠튀리에들 손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그해 트렌드를 이끄는 이정표가 되어 디자이너들의 영감의 원천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오트쿠튀르를 입는, 아니 입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이다. 매해 컬렉션의 5~10% 정도만 판매될 정도로 일상복에서는 소화하기가 어렵다. 난해한 디자인은 차치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은 여전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패션 하우스들이 앞다투어 각지의 글로벌 앰배서더를 내세워 대중에게 친근히 다가가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례로 샤넬은 2017년 블랙핑크 제니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임명하고 긴 우정을 지켜오고 있다. 이토록 힙하고 사랑스러운 샤넬이라니. 젠지들의 제니 사랑은 샤넬로 번져갔다. 202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블랙핑크 월드 투어에선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가 제니를 위해 손수 제작한 커스튬 의상이 실시간 차트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루이비통은 2022년 흥행작 ‘오징어 게임’으로 처음 얼굴을 알린 정호연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제28회 미국 배우조합상(SAG) 시상식에서 아틀리에 공방이 정성껏 제작한 블랙 실크 자카드 드레스를 입고 한국의 전통 댕기 머리를 한 채 씩씩하게 수상 소감을 전하던 그에게 전 세계의 관심과 러브 콜이 쏟아졌다. 배우 송혜교는 또 어떤가. 송중기와의 결혼보다 더 화제가 됐던 건 바로 그가 선택한 디올의 웨딩드레스였다. 컬러와 소재, 디자인을 변형하여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든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이 웨딩드레스의 가격은 자그마치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에 달한다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부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디올은 얼마 전 막을 내린 2024 파리 올림픽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개막식 피날레를 위해 무대에 오른 전설의 디바 셀린 디옹을 위해 파리의 밤 풍경만큼이나 반짝이는 시퀸 드레스를 헌사했다. 희귀병을 얻고서 2022년부터 공연을 잠정 중단한 셀린 디옹의 복귀 무대였으니, 더욱 떠들썩했으리라. 1000시간의 인고를 거쳐 탄생한 드레스는 디올의 유명 쿠튀리에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손길에서 탄생했다. 같은 날 레이디 가가 역시 풍성한 새털 장식의 디올 드레스를 입고 행위예술가다운 퍼포먼스를 펼치며 환호를 받았다.



1930~80년대 미우미우 빈티지 드레스로 구성해 오트쿠튀르의 지속 가능한 패션 가치를 알린 업사이클 바이 미우미우 컬렉션.

1930~80년대 미우미우 빈티지 드레스로 구성해 오트쿠튀르의 지속 가능한 패션 가치를 알린 업사이클 바이 미우미우 컬렉션.

셀럽을 활용한 쿠튀리에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는 오트쿠튀르에 대한 대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취향과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를 빠르게 흡수시켰다. 특히 레트로에 열광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오트쿠튀르 빈티지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미우미우는 전 세계 매장과 빈티지 의류 시장에서 수집한 80벌의 드레스를 재해석한 ‘업사이클 바이 미우미우’ 컬렉션을 내놓으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클래식한 실루엣에 현대적인 장식 요소를 더해 재탄생한 미우미우의 드레스들은 고유번호를 부여받아 특별함을 더했다. 수십 년 전 출시된 디올과 샤넬의 빈티지 드레스를 찾아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를 찾는 인플루언서들로 빈티지 편집 숍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최근에는 오트쿠튀르 의상을 두고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지암바티스타발리의 충성고객인 중국 인플루언서 루 민이 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할리우드 배우 안야 테일러조이의 드레스를 보고 자신이 주문한 지암바티스타발리의 2024 S/S 오트쿠튀르 제품을 허락 없이 빌려준 것이라며 브랜드에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것. 그는 몇 개월 전 쇼룸에서 드레스를 입어본 뒤 이미 20만 위안(약 3788만8000원)을 보증금으로 지불한 터였다. 이에 대해 브랜드 대변인은 “역사적으로 고객이 모델에 대한 독점권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며 “고객이 독점권을 확보하려면 주문 시에 미리 요청 사항을 명시하고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패션 역사가이자 오트쿠튀르 전문가인 토니 글렌빌은 이를 두고 “오트쿠튀르가 가진 희소성의 가치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생긴 일”이라며 브랜드 책임을 탓하는 논평을 싣기도 했다.

오늘날 오트쿠튀르는 단순한 의상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하며 우리를 꿈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이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양길로 접어들 뻔했던 어려운 시절에도 오트쿠튀르 패션은 건재하게 살아남았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오트쿠튀르에 대해 희망찬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시 돌아가, 앞선 소설의 결말은 이렇다. 디올 드레스에 반해 500파운드(약 87만 원)를 들고 파리로 건너온 아리스 부인은 일부 귀족들의 비위 맞추기에 전전긍긍했던 오트쿠튀르를 변모시킨다. 누구나 마음껏 오트쿠튀르를 꿈꿀 수 있는 세상, 그런 유토피아가 펼쳐질까.

#오트쿠튀르 #오트쿠튀르드레스 #여성동아

‌기획 최은초롱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사진제공 디올 미우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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