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문백 광고의 모델 겸 인플루언서 로리하비.
‘레트로’를 넘어 재해석한 ‘뉴트로(뉴+레트로)’ ‘힙트로(힙+레트로)’ ‘빈트로(빈티지+레트로)’ 등 복고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며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복고 트렌드 흥행의 주역인 MZ세대가 요즘 꽂힌 고전 아이템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던 문구·완구류다. 카드캡터 체리, 딸기가 좋아, 마시마로 등 추억의 캐릭터 문구류부터 국내 팬시·문구업체 바른손, 영아트, mr.k 등의 자체 캐릭터 상품, 장난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판매가격도 천차만별. 기자가 직접 중고 거래 사이트인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에서 ‘고전 문구’로 검색해보니 5월 중순 기준 뿌까 편지지 4000원, 마시마로 공책 5000원, 개구리 중사 케로로 보이스 인형 2만 원, 웨딩피치 천사의 크리스탈 요술봉 토미판은 무려 200만 원에 판매 중이었다.
좀 더 적극적인 컬렉터들도 있다. 2004년 방영 당시 1990년대생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달빛천사’는 한 팬이 직접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고 2022년 11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다이어리 문구 세트를 자체 제작해 판매한 바 있다. 또 팬시·문구업체에 원조 버전 재출시를 건의하기도 한다.
고전 애니 캐릭터 문구류로 유명한 푸른팬시의 경우 2000년대 초등학생 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바타 코디 스티커 북을 2020년 복각했다. 출시 후 빠르게 동나자 푸른팬시는 선호도 조사를 통해 캐릭캐릭체인지와 슈가 슈가 룬, 꿈빛 파티시엘 등의 오리지널 버전 다이어리, 코디 스티커를 순차적으로 재출시했다. “어릴 때 갖고 놀다가 스티커가 찢어지면 슬퍼했는데 이제는 소장용, 플레이용을 마음껏 살 수 있다. 다른 캐릭터도 팔아달라” “재출시 덕분에 추억 놀이를 할 수 있게 됐다. 고맙다” 등 만족하는 팬이 많다.
한편 ‘찐’ 오리지널 감성을 찾아 서울 동묘시장이나 창신동문구완구거리, 고전 아이템이 많은 지방 문구점 등을 둘러보는 ‘문탐(문방구 탐방)’도 인기다. 유튜브 채널 ‘레트로인간’을 운영하는 소지훈(41) 씨는 건담 프라모델을 모으다가 8년 전부터 고전 문구·완구류를 수집하고 있다. “문방구에 갈 때마다 어릴 적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소지훈 씨는 “동묘를 자주 가는데, 요즘 20대도 많이 보인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에게는 형형색색으로 화려하면서 몸으로 갖고 놀아야 하는 아날로그 완구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캠코더로 나도 ‘뉴진스 감성’ 내볼까
레트로 콘셉트의 뉴진스 2023시즌스그리팅.
고스펙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잊혔던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와 캠코더를 다시 찾는 이도 늘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유행에 민감한 패션계 셀럽들이 손에 디카와 캠코더를 들었다. 지난해 과감한 로라이즈 팬츠와 미니스커트로 Y2K 유행을 선도한 미우미우는 2023 F/W 캠페인으로 셀럽들의 디카 셀피를 선보였다. 프라다는 2002년 출시했던 문(Moon) 백을 재해석해 올해 다시 내놓으면서 과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품으로 폴더폰, 귀마개 같은 헤드폰, 똑딱이 디카를 택했다.
라이카 디카를 새로 장만한 르세라핌 사쿠라
특히 디카와 캠코더 중에서도 클래식한 디자인과 빛바랜 듯한 색감의 빈티지 제품이 인기다. 지금은 사라진 일본 가전 브랜드 산요의 초경량 캠코더 ‘작티’ 같은 인기종은 중고 거래가가 1~2년 전보다 최소 5배 이상 치솟았다. 이에 “저세상 화질일수록 오히려 좋다”는 사람들은 아예 2만~5만 원대 장난감 캠코더나 디카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일단 가격 면에서도 부담이 적고, 가벼우면서 조작이 쉬운 게 장점이다. 요즘 많이 팔리는 어린이용 기기 ‘프링캠코더’나 ‘아카라치 미니 캠코더 카메라’ ‘부이 디지털 카메라’ 등의 판매처 후기를 살펴보면 ‘어른이’가 더 많다.
미우미우 2023FW 캠페인 중 배우 엠마코린.
10대와 20대에서는 디카나 캠코더 촬영 효과를 내주는 SNS 카메라 필터와 편집 앱도 유행이다. ‘빈티지’ ‘레트로’ ‘디토’ ‘VHS’ 등의 이름을 단 필터로 보정하면 쨍한 사진도 순식간에 흐릿해진다. 스마트폰으로 달도 찍을 수 있는 요즘 세상에 왜 노이즈 낀 뿌연 화면을 좋아할까.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인간의 아날로그 본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 책임연구원은 “고해상도의 정밀한 디지털 화면에 질리고 피로감을 느낀 젊은 세대가 디지털 공간에서도 아날로그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레트로에 이른 것”이라며 “지금 세대들은 미디어를 통해 간접 체험한 디지털 이전의 세상이 신선하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현재 캠코더와 디카 열풍의 8할은 걸 그룹 뉴진스가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진스가 지난해 12월 선보인 ‘Ditto’ 뮤직비디오에는 캠코더로 찍은 영상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빛바래고 흐릿한 화면이지만, 교복 입은 소녀들의 그때 그 시절 풋풋함은 투박한 화면 속에서 배가된다. 촌스럽고 허술해서 더 힙한 이 아이러니함에 10·20대들은 푹 빠졌다. 저마다 렌즈 앞에서 ‘뉴진스 감성’ ‘1990년대 감성’을 구현해내고 있다.
위로와 재미를 주는 고전 아이템
창신동 문구거리.
20대부터 40대까지 MZ세대의 복고 사랑은 깊어지는 동시에 넓어지고 있다. 다만 좋아하는 이유는 나이대별로 다르다. 밥벌이의 무게에 눌려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 30·40대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의 추억 여행을 통해 작은 위로를 받는다. 예전에는 턱턱 사지 못하던 물건을 지금은 ‘내돈내산’ 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덤이다.
유튜브 채널 ‘레트로인간’을 운영하는 소지훈씨의 보물들.
반면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소비 특징에 대해 “과정을 즐기는 Z세대는 좋아하는 것을 디깅(Digging)하며 팬덤을 형성한다”고 정의한다. 힘들게 찾아내 구입하고 사용 후기를 인증하는 과정까지가 소비이며 일종의 놀이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고전문구깡(다량 구매한 상품을 한꺼번에 개봉한다는 의미)’ ‘문탐’ 브이로그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캠코더는 스티커로 ‘캠꾸(캠코더 꾸미기)’ 하고 촬영한 결과물을 SNS에 공유하는 맛이 있다.
유튜브에 자주 등장하는 ‘문탐’ 콘텐츠.
다만 손품 팔아 중고 거래를 할 경우 물건이 불량이거나 덤터기를 쓸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판매자 상품 소개란에는 ‘고전 아이템 특성상 상태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미개봉 제품의 작동 여부는 알 수 없다’는 주의 사항이 대부분 따라붙기 때문이다. 고전 문구·완구 컬렉터 소지훈 씨는 “고전 문구류 수집은 자잘함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적정 프리미엄은 권장 소매가의 150% 정도라 생각하나 다시 못 볼 물건이라고 판단되면 구입하는 편”이라며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넘으면 사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빈티지 디카나 캠코더는 후지필름, 캐논, 라이카 등 해외 브랜드가 대세인 만큼 반품이나 AS가 보장되는 해외 경매 직구 사이트에서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싸게 중고 거래되는 웨딩피치.
Y2K 패션부터 ‘할매 간식’, 고전 문구, 캠코더까지 뉴트로는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박성희 책임연구원은 “초기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세력들이 콘텐츠로 레트로를 다뤘다면, 레트로가 뉴트로로 진화하면서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시대의 융복합이 일어나고 있다”며 “차별성만 있다면 또 다른 고전 아이템이 계속해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MZ세대 #고전레어템 #여성동아
사진제공 @1982retroman 사진출처 뉴진스 ‘Ditto’ 뮤직비디오 캡처 미우미우·바이프링·사쿠라·푸른팬시·프라다 SNS 1창신동문구완구거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