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패션위크 런웨이에 오른 다운증후군 모델 마델린 스튜어트. 최근 마델린처럼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배경과 신체조건을 지닌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왼쪽). 윤춘호 디자이너의 2020 S/S 런던패션위크우먼즈 컬렉션 무대. 이너웨어인 코르셋, 브래지어를 활용한 디자인으로 페미니즘과 여성성에 관한 자신만의 해석을 선보였다.
또한 세상은 개인이 가장 중요한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국가나 사회, 조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건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 돼버렸다. 개개인의 상황이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의적인 명분을 먼저 강요하는 것을 ‘극혐’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여기에는 SNS의 발전과 더불어 개인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부터 거대 조직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정보에 대해 불신하는 경향이 짙어지게 된 것도 한몫을 차지한다. 기존의 거대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보다, SNS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팔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어느새 세상은 천차만별의 의견과 각양각색의 취향으로 더욱 복잡하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스피디하게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셀 수 없이 많은 의견과 취향이 공존하는 세상에서도 그 흐름을 하나로 취합하는 ‘트렌드’가 존재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이 트렌드라는 것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왔을 때 이미 자신도 모르게 그 흐름 안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흐름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그 흐름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인싸’라는 단어는 이러한 트렌드의 최전방에 있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수식어다.
불확실한 것을 두려워 말라
요즘 패션계에선 나이와 종교, 성별, 인종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혹자는 지금의 시대를 경계도, 형식도, 기준도, 정체성도 모호해지고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불확실한 시대인 만큼 트렌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코드를 내포하게 되었다. 과거의 트렌드가 단순한 ‘유행’의 확장 버전 정도였다면, 현재의 트렌드는 그것을 넘어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에 가까워졌다. 거기에 SNS와 같은 개인 미디어가 소통의 큰 축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이제 트렌드는 지극히 대중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하는, 극한의 멀티태스킹을 수행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을 아우르면서도 나에게만 적용되는 선별성이 있어야 하고, 전체를 이야기하면서도 디테일을 잃지 않는 섬세함이 있어야 하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창성도 필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공통적인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 거의 마법의 주문에 비견될 만하다!
하지만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야를 넓혀서 살펴보면, 트렌드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자세히 파악해보면 현재의 트렌드라는 작은 흐름을 아우르는 큰 흐름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되면 현재의 트렌드는 물론 다음에 오게 될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31가지 피부톤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는 나스의 파운데이션.
경계도, 기준도, 개념도 모호한 이 시대의 트렌드는 결코 심플하지 않고 복잡한 구조로 겹겹이 레이어드되어 숨겨져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발상을 조금만 달리해보면 꼭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기준이 하나여야 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것의 개념이 명쾌하게 정립되어 있어야만 할 필요도 없다. 명확하지 않음, 결정된 것 없음, 예측하기 어려움 그 자체가 충분한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자, 이제부터 모호함에 대해 불안감이나 경계심을 가지지 말고 친근하게 지내보기를. 어쩌면 현재를 관통하고 있는 수많은 트렌드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트렌드의 흐름이 모호함 그 자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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