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도 달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지금까지도 건재하는 패션 하우스들을 창건한 이전 세대의 디자이너들부터 현시대의 패션을 빛나게 만들어주고 있는 지금의 디자이너들, 패션이라는 화려함의 이면에서 자신이 맡은 분야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장인 수준의 스태프들 모두 마스터라는 칭호로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 최근 들어서는 패션 브랜드 자체가 가히 달인의 경지라 할 만한 궁극의 스킬을 보이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패션 기업, H&M이 그 좋은 예다. 현재 패션계에서 하나의 큰 키워드로 자리 잡은, 브랜드 간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와 마켓을 창출해내며 괄목할 만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는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최근 몇 년째 지속해 큰 성과를 거둬온 H&M은 올해도 프랑스의 패션 하우스 발맹(Balmain)과의 협업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명품 브랜드와의 시너지를 통한 자사 브랜드의 이미지 상향은 물론, 발매 당일 매진이라는 화제 몰이에 주가 상승까지 혁혁한 결과를 낸 이 브랜드를 두고 사람들은 ‘콜래보레이션의 마스터’라 부른다.
1 2 H&M과 발맹의 콜래보레이션 제품은 11월 5일 전 세계에 동시 출시돼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왼쪽은 영국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오른쪽은 서울 명동 H&M 매장 앞 모습. 3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득템’에 성공한 이들이 매장 앞에서 ‘전리품’을 세워놓고 포즈를 취했다.
몇몇 앞선 기업과 브랜드들이 콜래보레이션 전략을 통해 새로운 고객군과 조우하게 되자 추종 기업과 브랜드들도 콜래보레이션을 중요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차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결정적으로 콜래보레이션이란 마케팅 용어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전파된 계기는,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근래 시도하고 있는 협업을 통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비약을 하자면, 콜래보레이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트렌드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요즘 패션계에서는 협업이 대세다.
처음 콜래보레이션이 패션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명품이라 불리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에서부터였다. 1990년대 들어 런웨이 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몇몇 디자이너들이 뚜렷한 특성을 지닌 여타의 브랜드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몇 가지 아이템들을 개발, 자신들의 컬렉션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콜래보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지 않아 두 개의 브랜드가 하나의 아이템을 선보인다는 의미로 ‘더블 네임’ 브랜드라 불리기도 했지만, 이 신선한 시도가 고객들의 시선과 관심을 크게 끌게 되면서 많은 브랜드들이 색다른 콜래보레이션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이것이 하나의 큰 흐름이 된 것이다.
1 2 3 발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텡의 지휘 아래 탄생한 H&M×발맹 컬렉션. 4만원대 티셔츠부터 55만원짜리 코트까지 저렴한 가격대로 소비자들을 설레게 했다.
결국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에 있어 콜래보레이션은 하나의 큰 특징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프랑스의 최고급 가방 브랜드인 루이비통과도 협업을 진행하기에 이른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리테일 브랜드의 영역을 넘어 명품 브랜드 간의 콜래보레이션이 성립되는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2008년에는 H&M과의 콜래보레이션까지 단행하며, 명실공히 콜래보레이션의 그랜드 슬램(리테일 브랜드, 명품, SPA)을 달성했다는 농담 같은 찬사까지 얻었다.
정제된 컬러와 웨어러블한 디자인의 유니클로와 르메르의 콜래보레이션 라인. 오른쪽은 콜래보레이션 의상을 입은 배우 고아라와 모델 김원중.
앞서도 언급한 H&M은 2004년 샤넬과 펜디의 책임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와의 콜래보레이션을 시작으로 스텔라 매카트니, 빅터·롤프, 로베르토 카발리, 꼼데가르송, 소니아 리키엘, 지미 추, 랑방, 베르사체, 마르니, 마틴 마르지엘라, 이자벨 마랑, 알렉산더 왕 그리고 올해의 발맹까지 현재의 패션계를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디자이너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콜래보래이션의 최강자로 떠올랐으며, 다음 행보에 모든 패션 관계자들은 물론 패션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또한 패션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패션계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른바 영향력이 큰 인물들과의 협업도 큰 성과를 냈다. 패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시대의 아이콘인 마돈나와 카일리 미노그와의 협업, 패션 매거진계의 거물이자 현 일본 ‘보그’의 패션 디렉터로 엄청난 팔로어를 몰고 다니는 안나 델로 루소와의 주얼리 콜래보레이션 등이 그것이다.
하나에 10달러 이하의 아이템이 즐비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탄생시킨 이 궁극의 이인삼각 마케팅은, 경쟁 브랜드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 역시 디자이너 질 샌더와의 협업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최근에는 에르메스의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르메르, 프랑스판 ‘보그’의 편집장이었던 카린 로이펠드와의 콜래보레이션을 전개하며 H&M의 아성에 도전 중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Macy’s)도 다양한 콜래보레이션을 선보이며 시장 창출에 큰 힘을 쏟았는데,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비롯해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잠바티스타 발리 그리고 알베르타 페레티와의 협업을 통한 아이템들을 발매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백화점들도 한정적이긴 하지만 콜래보레이션 상품을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신세계백화점이 프랑스의 디자이너인 피에르 아르디와 함께 한정판 상품을 제작해 조기 완판한 사례가 있다.
요즘은 인터넷 쇼핑 사이트들도 이 콜래보레이션 열풍에 동참하고 있는데, 명품 인터넷 쇼핑몰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네타포르테(www.net-a-porter)’의 경우도, 칼 라거펠트와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KARL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라인을 만들었고, 작년에는 끌로에와 한정판 아이템을, 올해는 리바이스와의 협업 데님을 발매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카니예 웨스트와 아디다스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YEEZY Season1.
2011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H&M과 베르사체의 콜래보레이션.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디자인 · 유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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