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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어머니의 어머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을 아끼는 법, 패션을 사랑하고, 좋은 옷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강조했던 할머니의 가치관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전해졌고, 다시 그 딸에게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좋은 옷을 보는 눈과, 어디든 가보고 무엇이든 해보는 비범한 용기로 이들의 패션 제국은 나날이 흥미로워지는 중이다.
▲(맨위img) 광택이 흐르는 크로커다일 Vanessa 토트백은 21드페이의 베스트셀러. 로즈 골드 소재에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핀 타입 브로치 Sofia Pin은 황소희 씨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가 착용하고 나와 이슈가 됐던 Loop Faye Bracelet과 각종 보석이 화려하게 장식된 반지들은 특별한 주얼리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사랑받는다.
패션계에서 매력적이면서도 파워풀한 ‘딸’들은 늘 돋보이는 존재다.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딸 비 섀퍼, 파리 ‘보그’전 편집장 카린 로이펠트의 딸 줄리아 헤스토앙 등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딸 릴라 그레이스, 크리스틴 맥메너미의 딸 릴리 맥메너미가 하루 아침에 셀레브러티 반열에 올랐던 사실을 생각해보시라.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원하는 패션계는 기존의 모든 것을 뒤집고 변화를 몰고 올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언제나 핫 이슈로 만든다. 방송인 황소희 역시 케이블 채널 패션 프로그램에 등장해 인터넷 검색 순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저 공부 잘하고 예쁜 ‘엄친딸‘ 여대생이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공개한 놀라운 패션 컬렉션과 복식에 대한 풍부한 상식, 여기에 포토제닉한 미모까지 더해져 대중의 관심은 단숨에 끓어올랐다. 결국 네티즌들에 의해 그의 어머니가 청담동에 위치한 하이엔드 부티크 겸 편집매장 ‘21드페이’의 대표이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뉴욕 상류층 사교계 패션 피플 ‘올리비아 팔레르모’의 이름을 별칭으로 얻게 되기까지는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패션계가 찾고 있던 변화의 세대, 신선한 페이스의 2세 셀레브러티, 모녀 소셜라이트는 그렇게 또 탄생했다.
“제아무리 예쁜 옷도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으면 안 입은 것만 못하죠. 자신을 옷에 맞추려 하지 마세요.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다고 유행의 물결에 휩쓸리다 보면 자신을 잃게 되니 조심해야 해요.”
그의 백그라운드, 진정한 오라인 이혜경 대표는 한국의 패션업계에 늘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매퀸 등 천재적 디자이너가 막 디자이너로 첫발을 뗐을 때 그들의 옷을 한국에 소개했고, 컬러풀한 최고급 모피와 화려한 색의 악어백을 누구보다 발빠르게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 늘 너무 빠르고, 너무 튄다는 주위의 걱정을 대담한 마케팅으로 극복하며 자신의 이름(페이 리; Faye Lee)을 내건 브랜드숍이자 편집매장 ‘21드페이(21DEFAYE)’의 문을 연 것이 지난해. 그가 직접 디자인한 황금색 21드페이 로고가 박힌 육중한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만의 패션 철학이 차곡차곡 쌓인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1백20년 된 이탈리아 공방의 장인들이 제작한 백과 주얼리, 모피를 비롯해 이탈리아, 파리 등지에서 직접 바잉해온 브랜드 제품까지.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이들은 이 대표의 호사스런 드레스룸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이렇게 호화로우면서도 세련된 감각은 그가 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것일까? 이 대표는 말한다. ‘모든 시작은 나의 어머니로부터’ 라고.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화장기 없는 말끔한 피부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미니스커트에 예쁜 샤넬 트위드 재킷을 입고, 반드시 하이힐을 신고 외출하셨어요. 바닥을 울리는 구두 소리와 날씬한 실루엣이 아직도 눈앞에 그려져요. 엄마를 보며 나도 꼭 저런 모습으로 자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든 신발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걸 말해준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발은 항상 예쁘고 깨끗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신발이 바뀌면 자연히 스타일도 바뀌어요. 새로운 디자인, 컬러, 소재의 신발을 끊임없이 구입하는 이유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딸과 저는 그저 갖는 것으로 만족하는 단순한 컬렉터가 아니라, 광적으로 즐기는 슈어홀릭이에요.” 이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어머니 역시 슈어홀릭이었다고 추억한다. 이 대표의 딸 황소희 씨에게 슈어홀릭의 DNA가 새겨진 건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가.
황씨 또한 촬영을 위해 선명한 레드컬러 킬힐 부티를 신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패셔니스타로서 어머니를 평가했다.
“엄마는 자신의 나이를 아주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에요. 제게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스타일을 시도해보라고 늘 말씀하시는 것도 지금 제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옷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고 지금 나이에 맞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으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모녀가 생각하는 남보다 ‘앞선 스타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어떤 옷을 어떤 스타일로 매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남보다 앞서서 ‘좋은 옷’을 고를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좋은 옷의 첫 번째 기준은 바로 ‘소재’죠. 소재가 좋지 않은 옷은 겉보기에 좋지도 않을 뿐더러 기본적으로 입었을 때 불편하잖아요. 하지만 좋은 소재라고 해서 무조건 고가의 옷을 구입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입었을 때 내 몸에 잘 맞는 디자인이어야 좋은 소재도 빛을 발하니까요. 첫째로 소재가 좋고 둘째로 내 몸에 ‘딱 맞는’ 옷이 그야말로 ‘럭셔리’예요. 좋은 소재의 옷이 몸에 확실하게 피트되는 느낌을 알기 시작하면 자세가 변화되고 그 아웃핏과 착용감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관리에도 힘쓰게 돼 있어요.”
지금 당장 눈을 사로잡는 건 런웨이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쇼 피스겠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오래오래 곁에 두고 유용하게 입을 수 있는 건 좋은 소재와 피팅감으로 자기 기능을 다하는 옷. 그것이 남보다 앞선 스타일을 즐기려면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패션 지론이었다. 하지만 이도저도 안 될 땐 베이식한 디자인의 옷을 제대로 입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하는 이 대표다.
“시즌에 상관없이 구입 가능하고 계속해서 무난하게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매 시즌 바뀌는 아이템과 적절하게 어우러지기까지 하니 가격 대비 실용성 면에서 단연 으뜸이죠. 4월 초에 홈쇼핑을 통해 론칭하는 드페이 블랙 라인도 그런 면을 강조해 디자인하고 있어요. 아주 간단한 아이템이라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옷장을 뒤져보면 의외로 실제로 갖춰져 있는 건 몇 가지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이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남보다 앞선 최고의 패션을 추구하려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할 것 같다. 그래도 어쩌랴. 이들 모녀야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지금 입어야 할 옷, 갖춰야 할 스타일, 당연한 애티튜드를 말이다.
기획ㆍ신연실 기자|사진ㆍ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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