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 화장품 시장에서 백화점의 위상을 위협하는 커다란 변화들이 일어났다. 바로 단일 브랜드 숍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백화점 못지않은 매출 신화를 기록하는 로드숍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한국의 화장품 문화 전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로드숍 제품의 퀄리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국산 화장품이면 대체로 믿을 만하다는 신뢰가 쌓였다. 백화점이냐, 로드숍이냐는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도의 문제일 뿐, 기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브랜드의 콘셉트만 잘 정립돼 있다면 백화점이든 로드숍이든, 고가든 중저가든 상관없이 얼마든지 소비자의 지갑을 공략할 수 있는 사실상 ‘무한 경쟁의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제품이 나와 있는 뷰티 시장에서 새로운 창조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세분화되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에 부응하는 것일 것이다. 요즘 코즈메틱 브랜드들이 새로운 마켓으로 삼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향수 시장이다. 기존 향수들보다 좀 더 세련되고 독특하며 남과 겹치지 않는 자신만의 향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니치 향수와 향초, 디퓨저, 헤어 퍼퓸, 텍스타일 퍼퓸 등이 그것. 니치 향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생산되는 세탁 세제나 섬유 유연제 등도 주목받고 있다.
‘샤넬 백을 드는 대신 샤넬 립스틱은 바른다’는 건 과거에는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 하는 샤넬 백을 살 형편이 못 되기에 몇 만원대로 구매할 수 있는 립스틱이라도 바르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요즘 패션 업계의 트렌드인 다양한 취향의 스펙트럼으로 재해석해보자면, ‘샤넬 백은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정수가 담긴 립스틱은 하나쯤 발라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옷과 가방에 이어 가구와 이불까지 베르사체나 펜디 혹은 미소니로 통일하는 것은 너무 과하거나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침구나 커튼에 뿌리는 섬유 전용 향수인 패브릭 프래그런스 혹은 텍스타일 퍼퓸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짓는 취향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마트에서 손쉽게 구매하는 세탁 세제 대신 해외 직구를 통해 니치 향수 브랜드의 조상 격인 ‘르 라보(LE LABO)’와 럭셔리 세제 브랜드인 ‘더 런드레스(The Laundress)’가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발매한 세탁 세제를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내 판매가 급증하자 르 라보는 최근 서울 가로수길과 이태원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작은 차이를 통해 자신만의 만족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시장도 성장하는 추세다. 앞서 말한 더 런드레스는 고급 호텔 등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니치 향수 브랜드 메종 프란시스 커정은 자신들의 시그니처인 아쿠아 유니버설 향을 넣은 섬유 유연제를, 조 말론은 섬유에 직접 뿌리는 텍스타일 퍼퓸을 발매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딥티크 역시 ‘오 플루리엘르’라는 텍스타일 퍼퓸을 선보였는데, 출시 직후 국내 판매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딥티크가 인수한 스웨덴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는 프랑스어로 ‘리넨’을 뜻하는 ‘뚜왈’이란 이름의 텍스타일 퍼퓸을 출시하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브랜드의 텍스타일 퍼퓸들은 기존의 향수에 비해 약 30% 정도 저렴한 가격이라 선물용으로 각광받을 뿐 아니라, 니치 향수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한 엔트리 제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나는 특별하다, 고로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제품들은 일반적인 세탁 세제나 향초에 비해 많게는 30배 이상의 가격 차가 난다. 절대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내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해지는가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접근 가능한 가격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손안의 작은 사치’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제공 르 라보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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