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날 아블로의 유족은 그의 인스타그램에 ‘지난 2년 동안 버질 아블로는 심장에 종양이 자라는 희귀한 암인 심장 혈관육종 진단을 받고, 힘든 치료를 받는 중에도 패션과 예술, 문화에 이르는 중요한 기구들을 이끌어왔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아블로에 대해 ‘예술과 디자인 안에서 거대한 평등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일했고, 다음 세대를 고무시키는 예술의 힘을 깊이 믿은 사람’이라며 그를 애도했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며 센세이션 일으킨 남자

흑인 여성을 지지하는 캠페인에 참여해 사인하는 버질 아블로.

석사 졸업 후 버질 아블로는 시카고에서 자신의 디자인 작업을 해나가던 중 카니예 웨스트를 만나 친분을 쌓았는데, 두 사람의 만남은 아블로가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2009년 아블로는 카니예 웨스트와 명품 브랜드 펜디에서 인턴 생활을 함께한 뒤 패션 부티크를 같이 여는 등 본격적으로 협업해나갔다. 2011년 8월 버질은 제이지와 카니예 웨스트의 ‘워치 더 스론(Watch The Throne)’ 앨범에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는데, 그해 버질 아블로는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며 남다른 디자인 감각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012년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첫 번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파이렉스비전(Pyrex Vision)’을 출시하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첫발을 내디딘다. 파이렉스비전의 제품 생산 방식은 독특했는데, 폴로랄프로렌의 비인기 제품을 40달러에 구입해 스크린 프린트 디자인을 입혀 5백50달러에 되파는 식이었다.
이는 기성 패션에의 새로운 접근법으로 큰 화제를 낳았고 젊은 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지만, 일각에서는 소비자 기만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엎친 데 덮쳐 미국의 주방 용기 브랜드 파이렉스가 상호가 같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고, 결국 승소하자 버질 아블로는 과감하게 브랜드를 접었다.

버질 아블로가 오프화이트에서 나이키와 협업에 출시한 ‘오프화이트×조던1 시카고’.
특히 하이엔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답게 고급 소재인 실크와 울을 캐주얼의 대명사 데님, 플리스와 믹스 매치한 디자인의 재킷, 코트, 후디 등은 기존과 다른 양상의 하이패션에 목말라 있던 소비자들로부터 반향을 일으켰다.
버질 아블로는 단순히 오프화이트를 총괄 디자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가능성을 확대해나갔다. 특히 나이키와 협업한 ‘더 텐(The Ten)’ 시리즈는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나이키의 상징적인 스니커즈 10개를 선정해 오프화이트에서 기존 틀을 비튼 디자인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한정판 제품을 만들어낸 것. 10개의 라인업은 대체로 20만원대에 판매됐는데, ‘오프화이트×조던1 시카고’의 경우 출시 직후 중고 가격이 20배까지 뛰어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 모델은 버질 아블로 사후 가치가 더욱 높아져 미국의 한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 1천1백만원에 거래됐다.
루이비통 최초의 아프리카계 아트 디렉터

12월 1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루이비통 2022 S/S 남성복 패션쇼에 설치된 버질 아블로의 동상.
자리를 옮긴 뒤 그가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에 전 세계 패션업계 인사들의 눈과 귀가 집중된 건 당연지사. 리한나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그의 혁신적이고 트렌디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런웨이를 누벼 화제를 모았다. 인형을 주렁주렁 단 스웨터, 빌딩 모양의 디자인을 입힌 패딩 등 다소 난해한 디자인도 있었으나 이마저도 혁신으로 평가받았다. 그해 버질 아블로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오프화이트로 젊은 소비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덕에 그의 영입 이후 루이비통 남성복 라인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국내에서도 그가 디자인한 라인의 제품들은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작업해온 버질 아블로는 루이비통에서도 다양한 컬래버로 명성을 이어나갔다. 2018년에는 나이키와 협업해 US오픈 기간 내내 세레나 윌리엄스가 입을 수 있도록 오리지널 의상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또 그해 6월 세계적인 캐리어 브랜드 리모와와 특별 컬래버를 진행해 한정판 여행 가방을 공개했고, 2019년 3월에는 이케아와 손잡고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가구를 제작하기도 했다. 버질 아블로는 인종 차별 문제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행보로도 주목을 받았다. 2018년 파리에서 열린 자신의 첫 루이비통 쇼에 3천여 명의 패션학도를 초대해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고, 자신의 고향인 가나 스케이트보더와 서퍼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코로나19 정세 속에서 병마와 싸우던 2020년에도 그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사회운동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캠페인에 동참해 장학 기금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을 남기고 떠난 버질 아블로를 향해 패션업계는 물론 유수 언론과 브랜드들 사이에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패션을 예술, 음악, 정치,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디자이너였다’고 평가했으며, 메르세데스벤츠는 ‘협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주변에 영감을 준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그가 태어난 록퍼드의 톰 맥나마라 시장은 “버질 아블로는 디자이너로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따뜻한 인간성으로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사진 동아DB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루이비통 오프화이트 버질 아블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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