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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joelkimbeck #column

J-Beauty Invasion

일본 화장품의 공습

조엘 킴벡

2018. 05. 17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J-Beauty’로 불리는 일본 코즈메틱 브랜드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특히 뷰티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건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고급 화장품 시장에서 SK-II나 끌레드뽀 보떼, 시세이도, 코스메 데코르테 같은 일본 브랜드의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백화점급’ 브랜드가 아니다. 뷰티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이른바 제2세대 일본 코즈메틱 브랜드의 인기를 말하는 것이다. 

요즘 일본을 다녀오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반드시 구매해야 할 상품으로 꼽히는 것은 모테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다. 이들은 엔도미네랄이라는 성분을 함유해 아침에 부은 눈을 가라앉히는 마법 같은 능력을 지녔다는 입소문과 함께 일본에서 초대박 상품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뷰잘알(뷰티를 잘 아는 사람)’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스킨케어 브랜드는 쓰리(Three), 메이크업 브랜드는 나스(Nars)와 어딕션(Addiction)이다. 일본 내에서의 히트에 힘입어 지난해 10월 롯데면세점(소공점)에 국내 1호 매장을 낸 뒤 가성비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알비온(Albion)의 스킨 컨디셔너 역시 ‘코덕(화장품 덕후)’이라면 반드시 써봐야 할 필수템으로 꼽힌다. 일본어로 좋다는 의미를 지닌 ‘스키(好き)’와 컨디셔너를 조합한 ‘스키콘(Skicon)’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제품은 일교차가 심한 지방에서 살아남아 강한 생명력을 지닌 홋카이도 율무 추출물이 피부 본연의 힘을 키워 건강한 피부 컨디션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방문판매 1위 화장품 회사 폴라(Pola)에서 생산하는 쓰리는 전 제품에 천연 유래 성분 함유량이 80~90%에 이르는 자연주의 화장품으로 일본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 면세점에 입점한 후에는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의 머스트 해브로 등극했다는 후문. 친환경을 콘셉트로 하고 있지만 자연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디자인에서 탈피해 정돈된 직선과 곡선으로 미니멀하게 디자인한 반전 패키지가 인상적이다. 쓰리는 유럽이나 미국 브랜드들이 강조하는 기능성을 굳이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텍스처와 발림성, 발랐을 때 은은히 퍼지는 향 등 사용감에 매료돼 재구매하는 고객들이 많다. 현재 쓰리는 뷰티와 헤어 제품뿐만 아니라 이너 뷰티를 위한 서플리먼트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런던을 거쳐 뉴욕에 정착한 일본 출신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야미 니시무라를 영입해 새로운 라인의 메이크업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중국 관광객들의 머스트 해브로 등극

1 2 마카롱을 콘셉트로 한 브랜드 라뒤레의 메이크업 제품과 립스틱.
3 쓰리의 앤젤릭 컴플렉션 프라이머. 
4 알비온의 자외선 차단제. 
5 한국 여성들이 일본 여행을 다녀올 때 꼭 산다는 스큐의 블러셔.



일본 내 최대 화장품 관련 랭킹 및 정보 사이트의 오프라인 스토어인 ‘앳코스메(@Cosme) 스토어’도 조만간 한국 면세점에 입점할 계획이다. 이 역시 한국 소비자들뿐 아니라 한국 면세점의 ‘큰손’인 중국 관광객들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앳코스메는 일본 여성 3명 중 1명이 이용하고 있는 화장품 랭킹 사이트로, 수많은 소비자들의 꼼꼼한 리뷰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소비자들은 앳코스메 스토어를 방문해 랭킹에 오른 화장품을 직접 사용해보기도 하고, 구매도 할 수 있다. 앳코스메의 랭킹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제품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이는 판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앳코스메는 혁신적인 제품을 발굴해 히트 상품으로 키우는 인큐베이팅 시스템,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브랜드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브랜드들과 관계를 맺으며 운영하는 덕분에 일본 내 화장품 시장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전체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 등 단독 아이템을 전개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후로후시(flowfushi)’도 이번 앳코스메 스토어의 한국 면세점 입점을 계기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설 준비를 하고 있다. 

홋카이도에서 시작한 작은 벤처 화장품 회사인 ‘시로(Shiro)’의 돌풍도 눈여겨볼 만 하다. 독특하지만 안정감을 주는 컬러 베리에이션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메이크업 라인이 대박을 치면서 일본 내 백화점들이 가장 영입하고 싶어하는 화장품에 등극한 핫 브랜드다. 쓰리에 버금가는 심플한 디자인의 용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담한 발상의 색감 전개는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시로는 화장품 브랜드의 격전지인 미국 뉴욕, 그것도 소호 한복판인 웨스트 브로드웨이에 단독 매장을 내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국 면세점 및 수입 회사들도 시로의 행보를 눈여겨보며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고 하니 곧 국내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K-Beauty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시점에, 일본은 물론 한국의 트렌드세터들 사이에서 J-Beauty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왜일까. 한국의 스트리트 뷰티 브랜드들의 한방, 안티에이징, 주름, 미백 등 전방위적 라인 전개에 식상함을 느낀 소비자들이 전문성과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일본 화장품 브랜드에 호응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를 대충 잘하는 것보다는, 하나를 고집스럽게 파고들어 일가를 이룬 브랜드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른다. 이런 J-Beauty의 신선한 도전들이 K-Beauty의 새로운 국면 전환에 힌트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사진제공 이데아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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