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패션계는 오래전부터 발 모양을 드러내는 파격 시도를 이어왔다. 1989년 메종마르지엘라가 선보인 타비 슈즈를 기억해보라.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을 둘로 가른 그 부조리한 디자인은 처음엔 “소 발굽 같다”는 조롱을 받았지만 지금은 하우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아이템으로 꼽힌다. 2023년 JW앤더슨 역시 맹수의 발을 본뜬 삼지창 모양의 뮬 슈즈로 타비의 아성에 도전했다. 고양이 발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 슈즈는 공개 직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패션 하우스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발렌시아가는 2025 프리폴 컬렉션에서 엄지발가락만 남기고 윗부분을 모두 없앤 제로 슈즈를 공개했다. 얇은 몰드 솔이 발뒤꿈치를 살짝 받쳐줄 뿐 발가락이 모두 드러나는 과감한 디자인이었다. 발렌시아가는 이를 두고 “신발의 본질만을 남긴 채 최대한 맨발에 가깝게 만들고 싶었다”고 의도를 드러냈다. 또 다른 급진적 사례로는 이탈리아 출신의 아방가르드 브랜드 아바바브를 들 수 있다. 지난 S/S 컬렉션에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협업한 핑거 슈즈를 공개하며 열띤 반응을 이끌어냈다. 아디다스의 상징인 쓰리 스트라이프를 두른 혁신적인 발가락 스니커즈는 올해 패션계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2025 F/W 컬렉션에서는 아예 모델들에게 신발 대신 두툼한 스포츠 양말을 신긴 채 런웨이를 활보케 했다. “신발이 꼭 있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듯 두 발의 자유를 극대화한 연출이었다. 다가오는 시즌에도 맨발화 바람은 계속될 예정이다. 런던의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2026 S/S 컬렉션에서 발가락 실루엣을 강조한 시스루 양말과 플립플롭의 믹스 매치를 선보였고, 코펜하겐의 오페라스포트는 하바이아나스와 협업해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플립플롭을 쇼에 올렸다. 기능성 조리가 첨단기술을 만나 고감도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못생긴 것일수록 힙한 요즘 트렌드
셀럽들도 발가락 신발 열풍에 합류했다. 해외에서는 모델 팔로마 엘세서, 패션 인플루언서 멜리사 본, 데보라 로사 등이 앞다퉈 발가락 신발 OOTD로 피드를 채웠다. 우아한 에르메스 백을 들고 비브람파이브핑거스를 신은 파격적인 믹스 매치 룩은 ‘못생긴 것일수록 힙하다’는 요즘 패션 지론을 몸소 입증하는 장면이다. 국내에서는 모델 김성희와 젤라비 등이 개성 넘치는 데일리 룩을 선보이며 발가락 신발이 일상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발가락 신발은 어떤 옷과 매치하느냐에 따라 단아한 무드부터 시크한 애슬레저 스타일까지 두루 소화해낸다. 헐렁한 슈트 팬츠에 신으면 스트리트 감성이 되살아나고, 반대로 스커트와 함께하면 걸리시한 매력을 살릴 수 있다.
#발가락신발 #핑거슈즈 #제니신발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발렌시아가 메종마르지엘라 JW앤더슨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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