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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스마트폰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 공부에도 ‘덕후’ 마인드가 필요해요”

대안학교 ‘마이폴학교’ 설립자 박왕근 이사장

윤혜진 객원기자

2025. 08. 11

충북 괴산에 자리한 마이폴학교는 학생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짜는 독특한 학교다.
심지어 졸업생들은 대학을 건너뛰고 대학원에 가거나 세계 우수 대학에 진학한다.
박왕근 마이폴학교 이사장으로부터 그 비결을 들었다.

올해 전국적으로 고교학점제가 도입된 이후 학교마다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해야 할 공부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공부를 찾아 재미있게 하기란 아직 먼 얘기일까. 대안학교인 마이폴학교를 보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마이폴학교는 일찌감치 학생이 주도적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교사는 보조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해왔다. 하루에 한두 과목만 공부하고, 학년도 시험도 없다. 

이런 학교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설립자인 박왕근 이사장의 두 자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왕근 이사장은 학교 설립 당시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박사학위를 지닌 박 이사장은 당시 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에서 잘나가는 수학학원 원장이었다. 그는 명색이 ‘수학이 안 되는 머리는 없다’란 책을 쓴 수학 전문가이나 딸은 중학교에 올라가 치른 시험에서 수학과 과학을 반타작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공부는 물론 학교생활이 재미없다는 아이를 탓하지 않고 아이가 신나게 공부할 학교를 세웠다. 2014년 폴수학학교로 개교했으나 수학 문제 많이 푸는 영재학교란 오해가 잦아 2022년 이름을 마이폴학교로 바꿨다.

성적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살던 2001년생 큰딸은 마이폴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과정 4년 차다. 두 살 터울의 아들 역시 마이폴학교를 나와 고려대 수학과 박사과정 2년 차를 밟고 있다. 두 아이 모두 독학사를 통해 대학원에 바로 입학했다. 독학사(독학학위제)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4개 과정(교양과정, 전공기초과정, 전공심화과정, 학위취득 종합시험)을 모두 통과하면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다. 마이폴학교 설립 초기에는 졸업생들이 국내 학부에도 입학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국내 대학원과 해외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초 학습이 제로베이스인 상태에서 시작한 학생이 성균관대 컴퓨터공학부 대학원 석사과정에 합격했고, 올해 한 졸업생은 미국 미네소타대학을 비롯해 11개 대학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원래 교육에 관심이 많았나요. 

제가 전공이 수학이에요. 수학 교육에 관심이 많아 관련 벤처기업을 운영하다가 한동안 서울 잠원동과 대치동에서 아이들 수학을 가르쳤어요. 내신과 입시 준비를 도와주다 보니 아이들 역량 개발 자체에 관심이 생겨 연구를 많이 했어요. 한계 성적에 도달한 아이들의 수준을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자퇴나 유학도 있을 텐데 왜 학교를 설립했나요.  

현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아이가 경쟁도 심한데 자유마저 없어요. ‘7세 고시’ 이런 게 다 아동 학대예요. 이런 상황 속에서는 무기력하고 불행한 아이들이 늘 수밖에 없어요. 내가 아이를 직접 지도하거나 학원을 보낸다고 될 일이 아니라 우리 딸 같은 아이들을 담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구나, 생각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한 100년 동안 유지해온 표준 교육 모델을 AI 시대에 굳이 적용할 필요가 없잖아요. 제가 학교를 설립한 당시는 AI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인데, 저는 앞으로 빅데이터와 데이터 과학이 유망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존의 틀을 깨고 완전 개방형 개별 교육과정에 도전한 거죠.    

유해시설 없는 한적한 곳에서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스마트폰도 걷어가 학생들은 노래 부르고 천체 관측하고 독서, 운동하며 자유시간을 보낸다.

유해시설 없는 한적한 곳에서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스마트폰도 걷어가 학생들은 노래 부르고 천체 관측하고 독서, 운동하며 자유시간을 보낸다.

“수능 출제위원, 대학교수도 제시간 안에 다 못 풀어요”

아빠의 선택에 남매가 흔쾌히 따랐나요. 솔직히 제도권 밖으로 나간다는 건 아이에게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당연히 싫어했죠(웃음). 다 떠나 기숙학교에 다니려니 선뜻 발이 안 떨어졌겠죠. 고민하는 딸에게 제가 “이 학교는 시험과 수업이 없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고 설득했어요. 실제로 딸은 우리 학교에 입학해 중학교 과정까지는 음악 공부를 했어요. 우리 학교가 원래 교과 사교육은 금지되어 있지만 예체능은 허용해요. 주말이나 방학을 활용해 레슨을 받고 어떻게든 졸업은 하기로 약속했는데, 막상 작곡을 하다 보니 공부할 게 많은 거예요. 음악의 조성 변환에 코딩을 접목해 연구하다가 컴퓨터, UI(사용자 인터페이스), UX(사용자 경험) 등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산업공학 연구를 하게 됐어요. 아들도 좋아하는 야구를 연구하다가 데이터를 다루게 됐고요. 또 AI를 활용하다 보니 수학을 같이하게 됐어요.  

남매 모두 공부를 덜 했을 뿐 카이스트 수학과 박사 아빠를 닮아 원래 타고난 공부 머리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둘째의 경우 조금 수학적인 센스가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첫째는 어려운 수학 문제가 나오면 울었어요. 저는 공부를 잘한다는 건 단순히 유전적인 영향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교육을 통해 노력하면 사고력, 즉 결정 지능을 바꿀 수 있어요. 다만 이 결정 지능은 학교 시험이나 수능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워요. 이른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내신이나 수능 성적은 유동 지능, 다시 말해 순발력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거든요. 결국 지금의 입시제도는 교과 지식과 순발력이 결합해야만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는 한계가 있어요. 그런데 부모들은 이걸 잘 모릅니다. 유동 지능은 20대에 정점을 찍고 점점 떨어지기 때문에 수능 출제위원도, 교수도 수학 문제를 제시간 안에 다 못 풀어요. 

 그렇다면 자녀들과 마이폴학교 학생들은 이 결정 지능을 키워 대학원 진학이란 결과를 만들어낸 건가요.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관심사를 통해 어려운 논문들을 살펴보고 탐구하며 사고력을 극대화한 거죠. 아이들이 어려도 오히려 학부 졸업생보다 더 우수한 역량으로 대학원 공부를 따라갑니다. 왜냐하면 대학 이상의 공부에서는 유동 지능보단 무언가에 파고들게 만드는 결정 지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도 현실은 대학생을 선발할 때 ‘구구단을 외우자’ 같은 순발력 테스트로 뽑고 있어요. 

대학을 건너뛰고 바로 대학원을 목표로 하는 이유는 뭔가요.

일단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잖아요.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상과 안 맞으니까요. 많은 회사가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경력직 채용으로 가고 있죠. 또 저는 저출산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요즘 젊은이들이 왜 결혼과 출산을 꺼리냐면, 처음 취업을 하는 나이가 평균 31세인데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학비와 주거 대출 등으로 평균 빚이 3000만 원대입니다. 결국 부모가 도움을 주지 않는 한 일찍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결혼 적령기가 30대 중반으로 밀리는 거예요.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하니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기 관심사를 일찍 발견하고 20대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나라 구조를 보면 10대 때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하다가 20대에 방황하고 30대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갑니다. 

박왕근 이사장은 “심지어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다 의대에 간다”며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가 나오고 창업이 많아져야 고용 효과가 커지는데, 지금의 상황은 의대생 자신에게도 국가적으로도 기회비용 낭비”라는 이유에서다.     

현재 마이폴학교는 100명 정도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한 학기에 전공 융합 연구, 창작 심화, 디지털 랩 수업 등 3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때 10명의 교사가 연구실별로 지원한 아이들을 소수 정예로 지도하는데, 교과 진도 수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아이가 택한 주제로 연구를 하면서 그때그때 학생의 이해를 돕는 데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식이다. 하루를 크게 세 블록으로 나눠 오전과 오후에 1과목씩 탐구하고, 휴식 후 저녁에 자기주도학습 시간을 갖는다.  

졸업은 학교에서 정한 10가지 역량인증제를 통과해야 할 수 있다. 이 중 박왕근 이사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은 수리 통합 논술 역량이다. 학교에서 아이의 수학적 수준에 맞춰 내주는 개별 문제를 최소한 15~20개는 풀어야 졸업할 수 있다. 한 문제를 2가지 방법으로 풀고 교사에게 풀이를 설명해야 한다. 이는 사고력과 끈기를 길러주기 위함이다. 박왕근 이사장은 “생각을 안 하려는 아이들을 온갖 몸부림을 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도전하게 하면 그 노력이 단순히 지적 영역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인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그렇다고 우리가 수학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깊이 있게 파다 보면 여러 분야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결국 융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이가 필요에 의해 공부를 찾아서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몰입의 경험이 아이를 한 분야 전문가로 성장시켜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으면 그만큼 학교가 대비해야 하는 부분도 다양해지잖아요. 

그래서 박사학위 있는 분들을 교사로 뽑는 거예요. 박사들은 지식의 끝을 경험해본 사람들이에요. 끝까지 가봤기 때문에 아이들을 끌어줄 때 설사 분야가 다르더라도 어디까지 끌고 가야 할지 나름의 노하우가 있죠. 우리는 학생이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선생님은 아이와 같이 공부하면서 더 많은 걸 끌어내 주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그냥 무의미하게 왜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게 아니니까 아이들은 공부를 즐기게 되죠. 지금 포항공대에 인턴으로 가 있는 학생의 경우 인공지능 논문을 한 100편 넘게 읽었고, 그 아이가 쓴 논문이 해외 학회에 게재되기도 했어요.   

그런 식의 공부를 평범한 아이가 따라갈 수 있나요. 

안 그래도 우리 학교가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뛰어난 아이들을 받아서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해 좋은 성과를 낸다는 거예요. 교육청에 대안학교로 등록할 때도 심사위원들이 오해를 했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에 합격한 아이들의 예전 학교 성적은 9등급 체계였을 때로 보면 4등급 정도예요. 공부하는 시간도 일반 학교의 3분의 2 정도고요. 그러다 보니 처음 입학하면 아이들 기초학력이 더 떨어져요. 밖에서 억지로 잡고 있던 걸 탁 놔버리니까요. 사실은 필요한 과정이에요. 10대 아이들은 스스로 헤매고 고민하는 시간을 지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으면 그때부터 성장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요.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텐데 요즘 아이들은 무기력한 경우가 많아요. 이런 아이들을 어디서부터 무엇을 건드려주면 좋을까요.

가만 보면 남학생들은 대부분 게임을 좋아하고, 여학생들은 웹툰이나 SNS 등을 좋아하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세요. 게임을 좋아하면 처음에는 게임 전략 짜기를 하다가 게임 툴로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프로그래밍도 배워보는 거예요. 관심사에서 출발하되 단순히 취미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어떤 토픽을 잡아 들어가 보는 겁니다. 물론 어렵죠. 그럼 좀 더 쉬운 거리를 찾아서 바꿔요. 이렇게 몇 번 돌다 보면 아이들 사고력이 향상되면서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가요. 그러다 ‘어, 이거 할 만하네’ 하는 분야가 생기면 그때부터 그게 자기 전공이 되고, 계속 파고들게 되는 거죠. 경험을 해봐야 해요.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는 좀 힘든 방법 아닌가요.

인생을 길게 보면 가능해요. 과감하게 좀 내려놓고 지방 어디든 자기 관심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대학에 가서 열심히 하면 돼요. 어차피 사회에서는 최종 학위로 여러 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에 길게 보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 가서 전문성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에요. 당장 대학 문턱만 생각하면 10대를 희생해야 하잖아요. 그건 아이를 너무 불행하게 만드는 일 같아요.  

자기주도학습의 첫 단계는 진짜 꿈 찾기 

꿈이 있더라도 스스로 해나가는 게 힘든데, 자기주도학습의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꿈이 있는데 열심히 안 한다면 그건 진짜 꿈이 아니에요. 진짜 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막 생각이 나고 하고 싶어져요. 저는 교육에도 ‘오타쿠’나 ‘덕후’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봐요. 푹 빠져 있는 것, 몰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 경험을 하고 그때의 감각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가면 그게 자기 길이 되고,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됩니다. 

마이폴학교에는 시험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시험과 경쟁을 피할 순 없잖아요.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이 부분은 부모님들이 먼저 변해야 해요. 아이들은 공부가 마음대로 잘 안 되는데 생활적인 면에서도 통제받으니까 불행한 거예요. 저는 생활과 교육을 분리해 오히려 생활만 엄격하게 지도하고 공부는 일절 터치 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공부하라고 해본 적이 없어요. 학교를 만들어 보낸 게 다입니다만, 대신 저는 스마트폰 사용은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서면 스마트폰을 제출하고 3주 후 집에 가는 날 돌려받아요. 인터넷 사용할 일이 있으면 학교 컴퓨터를 허락받고 사용합니다. 생활 지도만 잘해주면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반대예요. 스마트폰 붙들고 사느라 일상이 무너져 있으니 공부도 개판이 되고,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아이들이 아무것도 할 게 없고 심심하잖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찾아서 하는 게 독서라니까요(웃음). 

발상의 전환이네요. 나아가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느끼고 대안학교를 알아보는 부모들이 체크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대안학교도 1세대는 자연주의 학교, 공동체를 강조하는 관계 학교가 있었어요. 그 1세대들은 졸업 후 진로 부분에서 부모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지금은 많이 쇠락했어요. 2세대 대안학교는 학원형 학교들이에요. 수능 준비를 하는 학교나 공부 많이 시켜서 해외 대학교 보내는 데 주력하는 국제학교가 요즘 많잖아요. 1세대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2세대로부터 일부 영향을 받은 3세대 대안학교는 아직 많지 않아요. 일단 학부모와 아이의 성향에 맞는 학교를 골라야 해요. 무엇보다 아이의 관심이나 호기심을 존중해주고 그 부분을 더 끌어주는 학교인지를 살펴보세요. 

#마이폴학교 #자기주도학습 #대안교육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박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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