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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단추와 핀으로 가장 화려한 인생의 찰나 표현해요” 설치미술가 황란 작가

정세영 기자

2024. 09. 25

작품 소장에 집착하지 않고 사라짐을 당연시하는 황란 작가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설치미술가 황란 작가

설치미술가 황란 작가

단추는 더 이상 기능적이고 장식적인 목적을 가진 작은 도구가 아니다. 황란 작가의 손끝을 거치면 새로운 예술 기법으로, 들판의 찬란한 꽃으로 재탄생한다.

‘단추 작가’로 불리는 황란 작가는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는 설치작품을 만들어낸다. 플라스틱부터 한지까지 다양한 소재를 입은 단추와 실, 옷핀, 비즈 같은 패션 재료를 활용해 매화, 기와, 봉황, 독수리 등을 표현한다. 황란 작가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의 경계가 없다. 작품의 소재와 고유한 분위기로 동양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화려한 색감과 대담한 컬러 조합으로 서양 미술의 선명한 기운을 내뿜는다.

궁궐(경복궁)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무한한 가능성 표현했다. The Red Wind, H140xW110cm, 2022

궁궐(경복궁)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무한한 가능성 표현했다. The Red Wind, H140xW110cm, 2022

황란 작가는 30대 중반 늦은 나이에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추라는 독특한 재료를 건축물과 꽃, 동물 등으로 진화시킨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쌓아온 그는 뉴욕 퀸스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유럽과 아랍에미리트, 아시아 주요국에서 전시를 열며 전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또 미국 휴스턴 미술관과 브루클린 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있으며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가 황 작가의 매화 작품을 개인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2일 인터뷰를 위해 ‘RH 황란 스튜디오’를 찾았다. 작업실을 들어서자 황란 작가와 어시스턴트 여러 명이 작품 앞에서 힘차고 규칙적인 리듬으로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단추를 캔버스에 고정하려면 최소 20~30번은 망치질을 해야 해요” 하며 웃음 짓는 황란 작가. 그는 인터뷰 내내 익숙하면서 낯설고, 진중하면서도 위트 있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원래 패션계에서 일하셨다고요.

작품 완성을 위해 다양한 크기의 단추와 비즈 등에 핀을 꽂아 망치로 일일이 고정시키고 있는 황란 작가.

작품 완성을 위해 다양한 크기의 단추와 비즈 등에 핀을 꽂아 망치로 일일이 고정시키고 있는 황란 작가.

유년 시절 매우 내성적이었어요. 친구가 필요했지만 먼저 말을 걸지 못했죠. 당시 친구들에게 저를 어필할 방법은 ‘그림’이었어요. 종이에 그림을 그려 색칠하고 오려서 인형 옷을 입히는 종이 인형 놀이를 자주 했는데,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며 관심을 가져줬거든요. 또 붓글씨를 쓰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붓글씨를 배우게 됐어요. 그때는 학교에서 그림이나 붓글씨 잘 쓰는 학생의 작품을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놨는데, 제 작품이 자주 걸렸죠. 그렇게 미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그림만 그리게 된 것 같아요. 패션업계에서 일하게 된 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어요.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선 재료, 도구 등을 살 돈이 필요한데 경제적으로 어려웠거든요. 평소 관심 있었던 패션업계에서 일하며 그 비용을 충당했죠.

뉴욕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어요. 수많은 나라 중 뉴욕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유학 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해서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30대 중반에 유학길을 떠났어요. 당시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은 주로 파리와 영국으로 유학 갔어요. 그중 파리에 유학을 다녀온 한 친구가 전시회를 했는데 제 눈에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남들이 다 가는 곳 말고 나만의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고민하다 뉴욕을 택했습니다. 그때 뉴욕은 독특함과 실험적인 미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예술의 중심지였거든요.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서 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모아놓았던 돈은 거의 바닥이 나고 학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힘들었죠. 그래도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경제적인 것 빼고는 모든 게 좋았죠.

유학 생활 후에도 계속 뉴욕에 머무르셨는데요.
원래는 학교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어요. 하지만 너무 아쉽더라고요. 뉴욕에서 받은 영감을 그곳에서 자유롭게 표현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요. 그래서 자수 회사에 취직해 도안 그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했기 때문에 개인 작업 시간은 퇴근 후나 주말뿐이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어요.

단추를 활용해 완성한 작품이 대다수예요. 계기가 있다면요.
자수 회사 1층에 단추와 핀, 실을 파는 상점이 있었어요. 자수 회사에서 일을 해보니 사용하지 않고 버려지는 단추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어느 날은 공간 구석에서 먼지에 싸여 있는 단추들을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하루 종일 일하고 작업하느라 피곤에 절어 있는 제 모습 같은 거예요. 순간 버려진 단추를 심폐 소생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사장님께 쌓여 있는 단추들을 싸게 팔 수 있냐고 물어보니, “어차피 안 팔리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박스 하나에 단추를 가득 담아 작업실까지 가져왔어요. 이후 스튜디오 벽에 단추를 붙여가며 다양한 실험을 했고 옷핀, 실 등의 재료를 더해 지금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죠.

캔버스가 아닌 벽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캔버스 살 돈이 부족했거든요. 때문에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 벽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죠. 단추와 실, 옷핀 등을 활용한 작품 몇 가지를 완성한 뒤 큐레이터들을 작업실에 초대했어요. 제 나름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기획한 거죠. 이전에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력도 있어 이미 저를 알고 있는 큐레이터들과 소문을 들은 이들이 참석했어요. 그 행사를 시작으로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그러다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됐고, 그걸 시작으로 점점 공간을 넓혀가며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캔버스와 단추 등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캔버스를 활용해 작품을 구현하기 시작했어요.

단추와 실, 옷핀과 같이 작고 섬세한 재료는 다루기 까다롭지 않나요.
맞아요. 시간과 노력도 배가 들어요. 제 작업은 단춧구멍에 일일이 핀을 꽂은 뒤 망치로 두드려 완성해요. 오랜 시간 벽에 망치질하는 건 분명 고행이에요. 굉장히 고된 일이죠.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도 많습니다. 이 같은 행위는 저에게 마음을 비우는 의식과도 같거든요. 망치질을 하거나 실을 꿰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고 평온해져요. 이 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은 재료를 고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벽면에 설치한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모두 해체했다고요. 아쉬움은 없었나요.
전혀요. 자수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브루클린 다운타운에서 살았어요. 어느 날 TV를 켜보니 난리가 났더라고요. 모든 방송사에서 빌딩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생중계하고 있었죠. 몇 분 후 옆에 서 있는 빌딩으로 검고 작은 무언가가 돌진하는데, 겁에 질린 사람들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걸 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무섭고 공포스러웠죠. 그 후 제 작품은 왜곡되고 변형된 형태를 추구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삶,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벽 설치작업 해체는 인간이 재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의식이에요. 우리는 오늘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9·11 테러 사건을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저에게 작품이 사라지는 것은 삶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사라짐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작품이 사라지는 것 역시 당연하고 고귀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소장하고 있는 작업 초기의 작품은 없겠네요.
당시에는 모든 작품을 벽에 설치한 뒤 해체했기 때문에 소장이 하나도 없죠. 하지만 대형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비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소장 가능한 프레임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규모의 작품을 완성한 뒤 판매되면 그 수익으로 대형 설치 작업을 하죠. 작품 판매 후 전시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왜곡과 변형을 입은 인간의 삶과 죽음

한글 한지 단추를 활용해 파리 개선문과 에펠탑의 왜곡된 모습을 표현한 작품. The Beginning of The Bright, H220xW270cm, 2015

한글 한지 단추를 활용해 파리 개선문과 에펠탑의 왜곡된 모습을 표현한 작품. The Beginning of The Bright, H220xW270cm, 2015

내포된 의미는 무거운 편이지만 대담한 컬러 때문인지 작품 자체는 화려해 보여요.
그게 제 모습이거든요. 겉으로는 밝고 환해 보이지만 속은 깊고 조금은 우울한 면이 있는 저를 작품에 투영했어요. 인간은 누구나 외면과 내면이 있어요. 저는 내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겉으로 티 내는 걸 싫어합니다.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관객들이 제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기분 좋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깊이 들어가 작품 속 의미를 알게 됐을 땐 내포된 인간의 존엄성 등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줬으면 하고요. 누군가는 제 작품을 보며 “상업적이다” “공예적이다”라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예술은 독창성이잖아요.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이 저만의 독창성과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안에 삶의 본질과 작가님 나름의 성찰을 담아내고 있는 거네요.
제 작품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들을 작품 속에 녹여내면서 권력 투쟁과 같은 주제를 담아내기도 하죠. 이런 키워드는 대부분 궁궐로 표현합니다. 권력 역시 언젠가는 사라지잖아요. 그 모습을 궁궐처럼 오래된 건물이 무너지는 이미지로 만들어내죠. 이런 식으로 삶과 죽음의 본질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작가님은 매화, 기와, 독수리 등 주로 동양적인 피사체 표현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이니까요. 30대 중반에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더 집착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어릴 때 아버지가 붓으로 그리셨던 매화, 절에 다니며 봤던 기와 등이 아직 선명하게 기억나거든요. 이 중 매화는 제 작품을 가장 잘 나타내는 소재예요. 이른 봄에 활짝 피었다가 얼마 안 가 모두 떨어지잖아요.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영원은 없다’라는 의미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죠. 무엇보다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동양적인 피사체들을 더욱 눈여겨보게 되고요.

꽃이 피고 사라짐을 통해 찰나의 화려함과 덧없음 그리고 삶의 순환성을 나타냈다. Whimsical Dream, H150xW500cm, 2011

꽃이 피고 사라짐을 통해 찰나의 화려함과 덧없음 그리고 삶의 순환성을 나타냈다. Whimsical Dream, H150xW500cm, 2011

파리 유네스코 본부 초대전에서는 작가님만의 고유한 기술로 개발한 한지 한글 단추를 선보이며 화제가 됐어요.
2006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지 페스티벌에서 한지로 만든 다양한 작품이 소개됐었어요. 당시 갑자기 비가 내렸는데 한국의 전통 한지로 만든 등만 불이 꺼지지 않았죠. 그 후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나라의 한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한지로 발간한 팔만대장경 일부가 약 850년 동안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어요. 그 소식을 듣고 팔만대장경과 관련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지를 활용한 한글 자모음 단추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죠. 지난 2015년 유네스코 본부의 미로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한글과 한지의 우수성을 접목한 개인전이었어요. 프랑스 대표 건축물인 개선문과 에펠탑을 한글 단추로 표현한 작품 ‘The Beginning of The Bright’가 그 주인공이고요.

프랑스를 상징하는 건축물과 한글 단추를 결합한 계기가 있다면요.
이 작품에는 사람들이 즐겁게 살길 바라는 제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웃음소리를 상징하는 ‘ㅋ’ ‘ㅎ’과 오케이를 의미하는 ‘ㅇ’이 새겨진 한글 단추를 활용했죠. 또 개선문 앞쪽은 하얀색으로, 뒷부분은 회색이에요. 회색은 개선문의 그림자를 표현합니다. 개선문 형태도 조금 변화를 줬어요. 오른쪽이 왼쪽보다 낮게 제작했는데, 이는 건축물의 형태를 왜곡해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함이에요. 사람들 각각의 외면과 내면이 다른 것처럼,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개관 3주년을 맞아 특별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컬처럴 링크(Cultural Link)’라는 주제로 대표작 4점을 호텔 1층 웰컴 로비에 전시하게 됐어요. 찰나의 삶에서 느껴지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담은 ‘매화 시리즈’, 인간의 헛된 욕망과 허상을 표현한 ‘기와 시리즈’, 가시적인 빛과 화려함을 담아낸 ‘샹들리에 시리즈’ 중 대표작 4점을 엄선했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제 작품을 즐기면서 폭넓은 예술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작품을 하는 게 더욱 재미있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해져요. 예를 들어 매화 하나에도 수만 가지 색과 모양, 디테일을 표현해낼 수 있잖아요.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들을 빨리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싶어요.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자체가 작가에게 무척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부담감은 있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 늘 감사하죠.

요즘 한국 작가들이 전 세계에 진출하며 미술계의 위상을 높이고 있어요. 해외 진출에 성공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일단 한국 작가들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토록 훌륭한 우리나라 작가들이 드디어 빛을 보는 것 같아 대견하면서 자랑스럽습니다. 저 역시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조언을 한다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있어요. ‘작업이 안 풀린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죠. 주위의 반응, 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작업의 길을 바꾸거나 중간에 멈춰버리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들이 조언을 구하면 저는 “무조건 생각대로 밀고 나가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면 중심을 잃게 되고 작품마다 추구해온 본질이 희미해지거든요. 자신을 믿고 작품 하나하나를 진취적으로 완성해나가면 좋겠어요. 또 체력 관리도 중요해요. 오랫동안 작업하기 위해선 건강한 육체는 필수니까요. 한때 저도 몸이 아파 병원을 전전하다 우울증까지 와서 괴로운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어요. 그때 우연히 요가를 접하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습니다. 이렇게 운동이든 취미 생활이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꾸준히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대중에게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나요.
즐거움을 주는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저는 제 작품을 보면서 “예쁘다”고 말해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죠. 신인 작가 때는 하얀 캔버스를 보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백지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걱정이 앞섰거든요. 지금은 캔버스를 보면 설레는 마음뿐이에요.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 완성작 모두 저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이 감정이 작품 속에도 분명 녹아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황란 #단추작가#소피텔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황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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